벌거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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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장승규
간밤
하늘에 천둥이 엄했다
멀리서 칠 때는 먼 일이려니 했다
머리 바로 위에서 칠 때는
오늘낮에
가만히 있는 공 뒤통수를 내려친 것이 겁이 났다
바닥에 엎드려 사는 잔디마저 짓밟고
여기까지 온 것이 겁이 났다
뒤뜰에 늙은 가로등은 눈도 한 번 깜박 않는데
나는 황급히
뒷머리 감싸 쥐고 공처럼 가만히 있었다
결국은 잔디처럼 엎드렸다
더, 더, 더
하지 않겠소
가득 채우지 않겠소
(남아공 서재에서 2024.02.1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그날 천둥은
나는 숨죽이고 숨어있는데
용케 나를 찾아와
마지막 경고를 하고 가는 듯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내려치는 천둥 아래서 엎드리는 자각 – 장승규의 〈벌거숭이〉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벌거숭이〉는 자연의 격렬한 이미지 속에 내면의 두려움과 자각, 그리고 겸허한 고백을 담아낸 강렬한 시적 독백이다. 천둥과 공, 잔디와 가로등—시인은 이 다양한 상징을 통해 존재의 나약함과, 그것을 인정하는 인간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첫 연에서 “하늘에 천둥이 엄했다”는 단순한 관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날씨의 묘사를 넘는다. 천둥은 이 시에서 절대적인 힘, 또는 신적인 존재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멀리서 칠 때는 먼 일이려니 했다”는 말에는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무감각이 묻어 있고, 그것이 “머리 바로 위에서 칠 때” 돌연 실존적 공포로 전환된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깨달음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시인은 낮에 가만히 있는 공의 뒤통수를 내리친 일을 떠올린다. 평범했던 어떤 폭력의 순간, 무심코 넘겼던 자신의 행위가 천둥을 계기로 되살아난다. 마치 자연이 인간의 무의식적 폭력에 대한 응보로 천둥을 치는 듯한 구조다. “잔디마저 짓밟고 / 여기까지 온 것이 겁이 났다”—이 구절에서 우리는 단지 ‘걸어온 길’이 아닌, 밟아온 존재들, 무시해온 생명들을 되짚는 시인의 양심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대비는 늙은 가로등과 시인의 반응이다. “눈도 한 번 깜박 않는 가로등"은 세상의 무심함이자 관조의 상징이다. 반면 시인은 “황급히 뒷머리 감싸 쥐고 공처럼” 움츠러든다. ‘공’이라는 비유는 의미심장하다. 낮에 자신이 내려친 대상이던 공, 이제는 그처럼 가만히 있는 상태로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은 무력화된 자아의 모습이며, 동시에 전환의 순간이다.
마지막 연은 시의 정서적 절정을 이룬다.
“더, 더, 더 / 하지 않겠소 / 가득 채우지 않겠소.”
이 절제된 고백은, 삶에 대한 욕망, 더 많이, 더 높이, 더 세게 향하던 행로에 대한 후회이며, 이제는 멈추겠다는 참회의 언어다. 물리적 욕망과 정신적 과잉을 모두 내려놓고, ‘엎드린다’는 것—그것은 굴복이 아닌, 회복을 위한 시작이다.
마무리
〈벌거숭이〉는 인간 존재의 알몸을 드러낸 시다. 천둥 아래 드러난 부끄러움, 잔디처럼 엎드려 깨닫게 되는 삶의 민낯. 그 끝에서 시인은 말한다. 더 이상 채우지 않겠다고, 이제는 덜어내겠다고.
이 시를 읽는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짓밟고 여기까지 왔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얼마나 더 채우려 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시인의 고백이 곧 독자의 고백이 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