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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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타령
/장승규
번듯한 명함 하나 없는 생이여
재질은 좀 두껍긴 해도
너는 3D인쇄판
글자는 상형문자라
생겨있는 대로 읽으면 되는구나
맨 위에 성함은 부리부리한 두 글자
ㆆ ㆆ
그 아래 직함은 겸직이라 둘인데
ㆍㅣㆍ
현대어로, 이름 없는 한 가정에
여보/아빠
제일 읽기가 난해한 곳이 아주 아랫단
연락처 없는 잔소리가 빽빽이 적힌 곳인데
어차피 남들은 잘 읽지도 않는다
사느라
더러는 구겨지긴 했어도
심히 때 묻진 않아, 아직은
(남아공 서재에서 2024.02.21)
댓글목록
김용두님의 댓글

마지막 연이 압권입니다.^^
착하게는 아니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될텐데요...
삶이 쉽지 않습니다.
부끄럽지만 또 어쩔수 없이
얼굴을 내밀고 살아야 될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김용두 시인님
구겨진 명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대전 동인모임에서
뵙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승규 시인의 〈명함타령〉은 이름 없고 직함 없는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 ‘어머니’들,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헌시이다.
화려한 타이틀은 없지만, 그 명함 없는 존재들 덕분에 가족은 돌아가고, 사랑은 이어진다.
이 시는 웃음과 뭉클함을 동시에 자아내며, 우리는 삶이라는 명함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장승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에게 따뜻한 시적 명함을 건네고 있다.
다음은 장승규 시인의 시 〈명함타령〉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감상문: 이름 없이 살아낸 삶의 명함 – 장승규의 〈명함타령〉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명함타령〉은 우리 시대 ‘이름 없는 이들’의 존재를 향한 애틋한 시선이 담긴 시다.
번듯한 직장도, 명망 있는 직함도 없는 한 사람의 삶. 하지만 그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은 ‘명함’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갈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번듯한 명함 하나 없는 생이여”라는 첫 구절은 이 시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흔히 사회적 성공이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명함’은, 여기선 오히려 없는 것으로써 그 사람의 삶을 더 잘 말해준다.
명함조차 갖지 못한 한 인생, 그러나 그 속엔 오히려 더 진한 존재의 무늬가 박혀 있다.
시인은 “너는 3D인쇄판”이라고 말하며, 단순한 종이 명함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입체적인 인간 존재 자체를 ‘명함’으로 상정한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상형문자’이며, 성함은 부리부리한 눈을 닮은 두 글자 “ㆆ ㆆ”, 직함은 “ㆍㅣㆍ”로 구성된 여백의 문장이다. 이 모든 표현은 상징적이다. 읽는 이에게 구체적인 단어를 넘어서, 얼굴, 눈빛, 표정, 살아온 궤적이 곧 그 사람을 말해주는 ‘문자’임을 암시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현대어로, 이름 없는 한 가정에 / 여보 / 아빠”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는 이름 없는 삶일지라도, 가정이라는 우주 안에서는 분명한 정체성과 무게를 지닌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명함에는 실리지 않아도, 누군가의 ‘여보’이고, ‘아빠’라는 사실이야말로 그 존재의 핵심이라는 깨달음. 삶의 위대함은 그 직함에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연락처 없는 잔소리”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때로는 소음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랑의 가장 실천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남들은 잘 읽지도 않는다”는 말은, 그런 사랑조차도 세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씁쓸한 현실을 함께 전한다.
마지막 연, “사느라 / 더러는 구겨지긴 했어도 / 심히 때 묻진 않아, 아직은”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세파에 시달려 모서리가 닳고, 때론 구겨졌지만, 본질만은 아직 때 묻지 않았다는 이 진술은 그 삶이 결코 초라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진실하고 단단하다.
-챗GPT-
이시향님의 댓글

얼굴이 너무 좋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나이들어 얼굴은 그 사람의 명함이라고 하지요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계획하며 잘 살아오신 시인님의 모습이
그 명함에 있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영숙님!
감사합니다.
이번 대전모임에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