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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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필 무렵 / 조경희
대문 앞 늙은 감나무가 손을 내민다
관절염을 앓는 다리가 휘어 있다
스님의 불경(佛經) 외는 소리 흘러나오는
방 안 향불이 피어오른다
돌아가신 지 사십구일 되는 날
빈 자리에 평소 즐겨 입던 옷 가지런히 개어 둔다
이윽고 백색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보살이
어머니를 호명한다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중음계(中陰界)에 머물러 있는 넋을 달랜다
그녀의 구슬픈 목소리에 젖은 행간엔
비가 내린다
재(齋)가 끝날 즈음
어느 먼 바람의 기척을 느꼈는지
감나무 이파리들이 수런거린다
생전 감나무를 아끼던 어머니는 감꽃으로 필까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날아올까
망자(亡子)는 사십구일 째 되는 날
명부시왕 중 일곱 대왕들에게 최종심판을 받는다는데
나는 어머니 전에 절하며
이승의 모든 시름과 고통 훌훌 벗어던지고
좋은 세상으로 건너가길 두 손 모아 빌었다
감나무엔 새들이 날아와 노래하고
연둣빛 잎새 사이 꽃망울이 맺혔다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조은님!
님 가신지 사십구일 되는 날
보살의 호명소리보다
그대
행간이 더 젖어 있네요.
감꽃 필 무렵
제어창님의 댓글

세월이 갈수록 그리운 마음도 깊어지겠지만
어머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아픔도 슬픔도 없는 좋은 곳...
임기정님의 댓글

오랜 만에 시 만나네요
저 역시 어머님이
헐헐 자유로운 곳에서
내려다 보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차분한 서술,
우리 조경희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읽어요
자주 좀 올려주세요
이시향님의 댓글

감꽃 이 피고
감이 잘 커가는데
저는
감은 잘 못 잡고 있습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더 내일 비가 없어서
망울
망울
망
울
꽃망울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