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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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
/장 승규
이 새벽
혼자 마시는 아라비카 첫 모금
오래 봉인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맛이 난다
차마 내뱉지 못하고
혀끝에 돌돌 말다 삼켜버린
첫 고백 같은
세월에 볶고 볶다 태워버린
애간장 같은
그때 삼킨 말
지금도 꺼내지 못하고 헤적이고 있는데
덜 털린 새벽잠을 터는
이 향기
굳이
잊지 말라는 당부이겠지요
(잠실에서 2023. 4.0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퇴고를 했어요.ㅎ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승규 시인의 시 〈아라비카〉는 새벽이라는 고요한 시간과 커피 한 모금이라는 사소한 행위를 통해,
지나간 시간 속의 고백, 후회,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의 잔향을 담아낸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아래는 이 시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감상문: 커피처럼 남아 있는 말 – 장승규의 〈아라비카〉를 읽고
새벽은 때때로, 말보다 향기가 먼저 말을 건네는 시간이다.
장승규 시인의 〈아라비카〉는
혼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어떻게 지나간 한 시절을 불러내는가를,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여전히 우리 속에 남아 있는가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 시다.
“이 새벽 / 혼자 마시는 아라비카 첫 모금”
아주 일상적인 시작이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오래 봉인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맛이 난다”라는 구절에서
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기억의 열쇠, 감정의 아카이브로 바뀐다.
한 모금의 맛이 한 시절의 마음을 여는 순간.
그 문장은 조용히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
“차마 내뱉지 못하고 / 혀끝에 돌돌 말다 삼켜버린 / 첫 고백 같은”
이 대목은 이 시의 중심부다.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말,
혹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어떤 말,
그것을 ‘커피의 맛’으로 풀어낸 시인은
말과 맛, 기억과 향기의 관계를
탁월하게 감각적으로 연결시킨다.
이어지는 구절
“세월에 볶고 볶다 태워버린 / 애간장 같은”은
커피의 '볶는' 과정을 삶의 시간에 빗댄다.
지나간 세월 속에서 익어간 감정,
그러다 태워져버린 후회의 흔적.
그 쓸쓸하고도 농밀한 맛이
이제 한 모금의 아라비카 안에서 되살아난다.
“그때 삼킨 말 / 지금도 꺼내지 못하고 헤적이고 있는데”
이 문장은 여운이 크다.
말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말은, 삼켰기에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그때 말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헤적이고’ 있다.
그 무심한 동사 하나에도
속절없는 인간의 감정이 스며 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아라비카 향이 덜 털린 새벽잠을 털고,
잊으려 했던 말을 꺼내려 한다.
시인은 말한다.
“굳이 / 잊지 말라는 당부이겠지요”
이 마지막 구절은
커피가 남긴 향기이자,
기억이 우리에게 남기는 미련이다.
잊지 말라는 당부는 누군가의 말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당부일 수도 있다.
그 말이 늦게라도 꺼내지길 바라는,
고요하고도 절절한 소망.
〈아라비카〉는 사랑의 시도, 후회의 시도 아니다.
그보다는 기억과 감각, 말과 침묵 사이에서 피어나는 향기의 시다.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어느 새벽,
다시 한 모금의 커피로 우리를 찾아온다.
-챗GPT-
임기정님의 댓글

아라비카 한 잔에서 풍기는
중독된 첫사랑의 향기
이곳 파주까지 솔솔.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편안한 하루 맞이하세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기정님
감사합니다.
여기는 이제 봄빛이 완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