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4(하와이)---그리움 밀려 올 때면/은파 오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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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波오애숙님의 댓글

[풍경화-4]
그리움 밀려올 때면/은파 오애숙
스쳐가는 바람에도
그리움 일렁이는 서녘
내 그대 그리워라 소리치고
목 놓아 불러봐도 소용없는데
애처롭게 그리워하는 건
사무친 까닭이런가
내 그대를 못 잊어
사랑이란 너울 쓰고서
찬 이슬이 바람 되기까지
그대 향한 그림자의 넋으로
지평선 멀리 억겹의 그리움
곰삭였다 할지라도
걸어가는 길 위에
문득문득 그대의 향기
스쳐오면 답장 없을 줄 알면서
바닷가로 나가 고운 꽃잎에
절절한 그리움 버무려 쓴
연서 띄우고 있네요
恩波오애숙님의 댓글

시작 노트/은파 오애숙
영상의 풍경은 하와이입니다.
한민족 설움 그 한 품어 봤습니다
초기 한인이민에 있어서 중요한 부류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미국으로 건너 간
정치 망명자들이 있습니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시기
1910년부터 1924년까지 541명가량의
학생들이 신분으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그들은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한인 사회의 지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급부상하였기에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민 사회는 1945년 조선이 독립
쟁취하기까지 하와이에는 6,500명 그리고
미국 본토(특별히 캘리포니아)에 3,000명가량
미국 주류 사회와는 고립된 상태로 존재하다
오늘 날에 이르렀고 지금도 이민의 물결
셀 수 없을 만큼 끊임없다 싶습니다
하와이 한인 이민은 1903년 1월에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도착하며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이민선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항을 출발하여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는
역사적 기록 마주해 봅니다
당시 사진만 보고 신부들의 유입으로
가정 이루게 되어 2세를 낳고 가족 중심
사회로 변하였으며 일용 노동자에서 벗어나
장기적 사업 분야에 참여하게 되었다지만
얼마나 고국에 대한 향수가 깊이 가슴에
절절 흘러 넘쳐났을런지 생각합니다
하여 그리움 가슴에 잠시 슬어서
은파는 오빠가 유학 오게되어 결혼해
초청받아 왔기에 고국이 그리워 질 때면
바닷가에 가서 태평양 바닷가 맞닿는 곳
내 고국이라 싶어 그리움 달래던 기억
아스라히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요
하여 그리움 한민족의 설움과 함께
시 한 송이 영상과 함께 올립니다
애플영주님의 댓글

시인님 안녕하세요~
시인님의 시 와 영상 그리고 음악 은 헤어 날수없는 매력의 향기를 느낍니다~ㅎ
늘 건강하세요^^
恩波오애숙님의 댓글의 댓글

녜, 애플영주님, 어서오세요.
은파도 영상과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에게 전해주는 시를 쓰곤 합니다
3년 전에 하와이를 다녀 왔을 때
당장이라도 다시 가서 살고 싶었습니다
겨울이 이곳 LA 보다 더 따뜻하고
공기가 좋아 있던 병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실제 은파도 가기 전에 위장병으로
심각했는데 그 곳에서 아무런 문제 없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 그곳에 가서
살고 싶어 가기 위한 대책을 연구했었습니다
하여 2년 후에는 갈 수도 있다 싶네요
친정 아버님 연세도 있고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기에...
가족도 찬성을 하고 있어...
하지만 어디까지 생각 중 입니다
늘 건강 속에 향필하시길
주님께 중보의 기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