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덕동을 지나자 나는 일어섰다. 가방을 다리사이에 끼우고 왼손은 손잡이를 잡고 오른 손으로 바지 새끼주머니를 뒤졌다.
'어!! 어디 갔지...?'
얼굴이 벌개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새끼 주머니에 넣었는데...잃어버릴까봐 일부러 새끼 주머니에 따로 챙겼는데...'
안내양 누나는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교...돌아보면 다시금 가슴이 끓어오르고 팔뚝에 힘줄 불끈 솟아오르는 추억의 보물단지.
아침 등굣길 버스 정류장엔 안내양 누나들과 학생들의 몸싸움, 입씨름으로 늘 시끌벅적 했다.
그땐 전철도 없고, 도보 아니면 자전거, 아니면 만원버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온 힘 다해 사람들 구겨 넣고 붉은 제복의 안내양 누나, 간신히 매달린 채, 목청껏 "오라잇~!!!" 힘껏 외치면
기사 아저씨 덜커덩 한번으로 사람들 적당히 챙겨 넣고 힘차게 출발하셨다.
버스 비를 후불로 내다보니 학교 앞에 이르면 안내양 누나는 숫제 비상이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만원버스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뒤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치기 일쑤고...여러 명이 한꺼번에 내리면서 십원짜리 떼어먹기 일쑤...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안쓰러운
모습이란...그러고 나서 지친 몸 끌고 회사로 돌아가면 삥땅 방지란 명목으로 몸수색까지 당했다니...
우린 참 어려운 세월을 지나온 거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은 그날의 버스 차비 안내고 도망친 이야기를 영움담처럼 늘어놓았다.
우리 학교 옆에 여고가 하나 있어 그 또한 많은 에피소드들을 낳았다. 책가방을 맡겼더니...반찬 통에서 김칫국물이 새서 여학생 치마를
다 버렸다는 둥...모자가 떨어져서 어제 두발검사에서 바리캉으로 밀린 고속도로가 들켜 버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둥...
이루 다 나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난 그 만원버스 신세 별로 안 지고 고등학교 삼 년을 마쳤다. 오히려 대구를 가로지르는 방천길 버드나무 가로수 밑을 걸어 학교를
오가는 축복까지 받은 터였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가 부러웠을까...
그 당시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친한 친구랑 학교를 파하고 시내까지 걸어나갔다가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학교에서 매일 보면서도 못 다한 이야기가 뭐 그리 많이 남았던지 시내의 풍경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향촌동 자유극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헤어질 때까지 이야기들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날도 똑같은 길을 걸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랑 헤어지고 20번 버스를 탔다. 타기 전에 혹시나 싶어서 유일한 전 재산 버스비
50원을 새끼주머니에 넣었었다.
버스는 중동교를 지나고 나는 이제 내려야 되는데...그 동전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이미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졌고, 목도 메어왔다.
분명히 있었는데...일부러 없이 탄 게 아닌데...
버스 문이 열리고...나는 안내양 누나에게로 갔다.
"누나...저..."
"얼른 내려~"
"저...돈이...분명히...넣었는데... "
"알아~ 얼른 내려~ 담에 누나보면 갚어~"
친구들이 말하는 누나들은 이런 사람이 아닌데...악다구니를 쓰고...차비가 없다면 종점까지 못 내리게 하고 데리고 간다던데... 머뭇머뭇...
"얼른 내려~"
엉겁결에 얼른 내렸다. 꼭 갚겠다는 말도 못하고...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버스는 떠나고 방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 차게 느껴지는 거 보면 얼굴이 정말 많이 붉어졌고 화끈거렸나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새끼 주머니에는 늘 50원 동전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누나를 다시 만나진 못했다.
꼭 갚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나는 그래서 갚지 못한, 갚을 수도 없는 50원의 무거운 빚을 지고 산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만난 천사에게 진 빚을...
만원 시내뻐스 타든 추억
60-7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일 고역은 여고생들과 한 몸이 되듯이 해서
흔들거려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난감하고 당황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걸어 다니기도 했으니...ㅎㅎㅎ
고운 작품 즐기고 갑니다.
강추위가 계속입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우시기를 빕니다.
저렇게 고생들 하는 버스 타기를
못 타보아서 안달햇던 어린시절...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곳에 편하게 학교다녔구나 싶습니다
저 버스 안내양들 요즘 같어면 상상도 못할 인격 침해도 받았다 하더군요
현금을 만지다 보니...
그 여인들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고 더러는 돌아가셨겠지요~!
세월이 참 허무 합니다
건강 하신 겨울 보내시고 하시는 일 술술 잘 풀리시길 빕니다 마음자리님~!
버스 안내양이 있던 그시절
전 만원 버스속에서 시내 중앙통에 내리는데
조카 친구 초딩 칭구가 안내양으로 있더라구요
나를보고 내릴때 동전을 한 웅큼 손에 쥐어줬는데
순진한 나는 그걸 놓아버렸지요
동전 소리가 요란했었는데 ~~
지금 생각하면 후회로 오네요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나지만~~
아마도 꾸중은 안당했는지 여태껏 미안함으로 자리하고 있다네요
마음님 글을보며 그때 미안한 맘이 전해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