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햇볕을 보았다고
벌써 지느냐
몇 날, 달빛을 보았다고
벌써 지느냐
바람 여전히 불어오는데
난 여전히 좋아하는데
뭐 그리 급한 일 있어
벌써 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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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이 곳, 미국에서도 연속극을 바로바로 볼 수가 있다.
'마더'라는 수목극의 꼬마 주인공, 윤복이...
낳은 엄마의 학대로 버림을 받고, 인연에 이끌려 얻은 새엄마가 지어준 이름 윤복이.
그 윤복이란 이름은 내 짧지 않은 삶 속에서도 몇번의 인연이 겹쳐졌다.
소금으로 이 닦던 내 어린 아이 시절, 영화보기를 즐기시던 엄마는 럭키치약 하나 사면
영화 초대권 한장을 준다는 방문 판매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셨다.
식구 수에 맞춰 산 치약을 집에 쌓아두고 그 며칠 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형과 누나들과
함께 헌책방 즐비하던 남문사거리 '대도 극장'을 갔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그 당시 명덕초등학교를 다녔던 윤복이란 아이의 일기를 그 담임선생님이 책으로 펴내셨고
전후 복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사람들이 그나마 숨을 돌릴 정도가 됐을 60년대 중반,
그 책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곧이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전후의 빈곤에다가 엄마가 떠나버린 가정의 아이들, 술만 마시고 구타를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들, 그 동생들을 어깨에 짊어진 맏이의 이름이 '윤복'이었다.
다섯살 쯤으로 기억되는 어렸던 나도, 하루 세끼를 부모님 밑에서 편히 먹고 산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던지,
내내 훌쩍거리며 그 흑백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며 훌쩍였던 나는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신학기 새 전과가 필요했다.
학교 가는 길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영화 포스터가 보였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속편)'
돈 생기면 보러가야지...
수업이 끝나고 학교 앞 문방구, 새 전과들 옆 바구니엔 그 전 해에 다 못판 헌 전과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내용을 보니 새 전과나 헌 전과나 똑 같았고, 헌 전과를 사고 남는 잔액이면 영화를 보고도 남을 정도였다.
뱀은 내 양심을 거침없이 물어 뜯었고, 나는 곧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윤복이 형은 고등학생이 되어있었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옆 능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매일 다니는 등교길도 영화에 나오고, 윤복이 형은 집을 떠났던 엄마도 만나고, 여전히 그 삶이 곤궁하긴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결말로 영화는 끝이 났었다.
집에 돌아오니, 내가 저지른 일들은 이미 들통이 나있었고, 나는 내가 어떻게 뱀의 유혹에 빠져들었고,
뱀을 따라 어떤 여행을 했는지 낱낱이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엄청 혼도 났지만, 다행히 그 일로
저녁을 굶지는 않았다.
내가 성년이 되어 사회 생활을 시작할 무렵, 신문지 귀퉁에 조그맣게 났던 기사 한 줄이 윤복이와 나의
인연의 끝인 줄로 알았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주인공인 ?윤복씨 간암으로 사망....
연속극을 통해 만난 새로운 '윤복이'
시대는 달라졌어도 윤복이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걸리며, 장터 길마당에 좌판 깔고 앉으셨던
억척스럽던 어머니들도 떠올랐다.
맏이의 도시락에 동생들 몰래 계란 후라이를 넣어주던 어머니들의 소망도...
수돗가에서 나늘 목욕 시키고는 마루까지 업어 날라주시던 내 어머니의 그 든든한 등도...
떠올랐던 수많은 생각들을 다 나열 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지던 오늘,
나는 괜히 안절부절하며 하루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