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리 이장님이 시영상방에 비슷한것 올리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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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1건 조회 365회 작성일 22-02-20 20:0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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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부라질에 살고 계신
부라질 샹기님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그분은 언제나 동일한 영상을 올려주셨거든요
보고싶으네요
부라질 샹기님 한번 들어와 주세요 .~~~^^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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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피난길에 뒤에서 쫒아가는 저 여아 모습이
혹시 나 ( 산을)아니가 싶어요
넘 슬퍼서 눈물이 팡팡 쏫아지네요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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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랑 갑장님이신 안박사님은 그 시절 그때
피난길에 글쎄 황소등위에 앉아서 피난을 하셨다나요 ?
안박사님 빨리 들어 오셔서 이영상좀 봐주세요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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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영상마당이 침체 되어 쓸쓸했었지요
앞으로 우리 모두함께 즐거운 영상마당이 되었으면요
그당시 나도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 아빠가 제주도 노무대로 끌려가시고
울엄마 만삭인 배불러 언니는 나보다 5살위
도 내동생은 3살 엄마 뱃속엔 임신 10개월짜리 머리엔 피난길에 먹을 쌀 봇다리
울언니는 어린나이에 머리에 잔득 물건 올리고 울면서 따라간것이 가까운거리요
그때 인민군이 집으로 가라고해서 집으로 오니 집엔 포겪으로 화제발생
간신히불끄고 얼마 있다가 중공군 병원으로 안방엔 밤에 그놈들 신발 ( 다비 ) 신고
우리를 예뻐하던 생각이 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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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생한 메밀꽃 산을입니다
절대로 산을이를 공격하거나 마음아프게 하지말어주세요
특히 어떤 미치광이 난 영원히 못잊어 .
리앙~♡님의 댓글의 댓글
리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그~
산을님~^^
산을님 그냥 잊으세요~^^
아시지요~?^^
ㅈ ㅔ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유모방에 둘러...다시 들어와서 인사 드릴께요~^^
일단 추천만 올리고 갑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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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앙님 그래야 하지요
영상이 피난가는 다급한 사진이 있어서
올여보았어요
하지만 그때 그시절 아픈 추억들은 어찌 잊을수가 있겠어요 ~~^^
다만 표현을 안하는것이지요
네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림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시절엔 쌀도 가마니 ( 집으로짠부대 ) 에다가
짐을 넣고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지금은 얇은 부대도 한번쓰고 버리는세상
우리 지인님들 이 영상은 참 교육적인 자료이네요
지금 은 하고 싶은것 다하고 다 자가용있고 가고 싶은곳 다니고요
카메라 메고 사진도 찍고요
네 읽어 주신분들 고맙습니다.
데카르트님의 댓글
데카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6.25 (1950 년 6.25일) 우리는 동족 상잔의 죄속에서 웁니다
모윤숙 / 시인님의 시향이 그리워지는 지금입니다 억새풀 우거진..
저는 4년후 지나서 태어났습니다 625 를 겪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송구합니다 함께 고생을 못한죄 큽니다 용서하십시요
정말 고생 많이 하셨지요 메밀꽃산을 작가님께서 4년 연배 이셨군요
동안 버릇 없었다면 용서 바랍니다 윰방 부반장님 헤헤..
부반장 감투 야무지게 쓰셨습니다 반장이면 반장이지 부반장이 뭡니까?
남사 시럽게요 이렇게 버릇 없이 선배님을 놀려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아따! 참말로 쪼께 거시기는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시마을 사람이다가 보니께
어쩔수가 없군요? 헤헤헤...잠시 쉬다 가렵니다 항상 건강 함께 하시구요
메밀꽃산을님의 댓글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양촌리 이장님 안박사님의 계산하신걸로 보아
그당시 내가 5살이면 울님이 그후 4년후에 태어나셨으면
9살차이가 되네요
뭐 나이먹은것이 자랑은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시대엔 질서란 단어가 있지요
그래도 앞으로 우리도 이곳에서 싸우지 말고 함께 웃자구요
고마워요 .
데카르트님의 댓글
데카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참 그냥 갈수가 없지라! 추천 한개 올려드리고
우리 부반장님 갈채까지 손바닥 아프게 올립니다요!!!>!!<img src="https://blog.kakaocdn.net/dn/bZUlLi/btrnqw416fy/hbD9esEMlWQ1O2GdOOnb4k/img.gif " width=150>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하핳하ㅏ
참 웃습니다
그시절엔 먹을것도 없었고 사진을보면 산과들에
나무들도 전부 베어다가 밥해먹고요
잘은 모르겠으나 그후 박정히 대통령시대에 산림녹화 시대가 정해져서
연탄이 들어어고요
지금 젊은분들은 얼마나 호화스러운 생활을요
그래서 저는요
나이 많아지고 서글퍼서 남을 돕고 베풀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으로 난 우리 아버지가 우리 자식들을 공부 시킨다고 서울로 요 .
워터루시인님 우리 언제나 즐건 펜으로 남아요
리앙~♡님의 댓글
리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을님...섬세하게 적어주신 글 속에...
그 때 그 모습들이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네네..
좋은 세상에 사는 제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한참이나 감사히 머뭅니다~^*^
산을님, 데카르트 시인님~^^
늘~건강하세요~^*^
안박사님의 댓글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메밀꽃`산을* "정매화"甲丈님!!!
"영상시`房"에 들`갔다가,"메밀꽃"任의 多急한 부름소리에..
"영상마당"房에서 "산을"任의 經驗談들으며,6.25戰爭을 連想요..
"데카르트"任은 1954年生 이시면,"甲丈"님보다 8`9歲쯤 아래입니다..
언제나 明朗하고 방가운 "리앙"任 말씀데로,그냥 跨敢하게 잊어버리세如..
"정매화"女史님!슬픈過去는 떠올리면 괴로우니,잊지만 말고서 살아갑시다요..
"메밀꽃산을"作家님!,"리앙"作家님!&"데카르트"作家님!늘,"健康+幸福"하세要!^*^
(追申:"메밀꽃`산을"任과 "리앙"任을,"영상마당"에서 자주 만났으면 기쁘겠습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꼼꼼하신 안박사님 어쩜 양촌리 이장님의 나이 차이도
알고 계신지요
전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지요
사실 그땐 세월이 먹거리도 부족한 시대때 울 안박사님은
황소 잔등에 올라타고 피난길을 가셨다는 말씀에
얼마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신분인가 생각했어요
사실그땐 활소한마리만 있어도 재산 목록 1호였지에
늘 고맙고 존경하고 하고있어요
건강하세요 .
함동진님의 댓글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내 나이 11세의 6,25전쟁 피난길 장면과 같습니다.
이미지를 보는 마음이 저리고 아픕니다.
저렇게 피난길을 보내신
어머님은 피난지 충남 논사에서
물말(水草)만 삶은 물을 마시고
영양실조로 저와 어린동생 3남매를 남기고
타계하셨습니다.
다행이 6,25전쟁 고아들을 보호양육하는
보육원 운영 미국선교사에 의해 양육되어 중학교를 마치고
독립되어 성인이 되어 군생화을 마치고
이곳에서 총무직을 맡아 봉사도 하였습니다.
저는 글씨. 붓글씨. 그림등, 손재능이 있어 이곳에서 활용하였습니다.
그때는 타자기 글짜도 삐딱하였기에, 좋은 필체가 더 유용했습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선 함동진 시인님부터 답글 쓰네요
네 말씀처럼 함동진 시인님은 이런 고통을 철져히
겪으셨지예
저는 약간에 기억만 그래도 그 추억들이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있네요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함동진 시인님이 가슴 아픈 사연 말씀해 주신기억이 나네요
이젠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하겠지요
이곳까지 오신 함동지니시인님 감사합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함동진 시인님 말씀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효자이신 시인님 어린나이에 큰 아픔을 저위에 중학생의
울음이혹시 함동진 시인님이 아니신가요
우린 전쟁을 겪은 시대의 산 증인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요 ,
함동진님의 댓글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6,25북괴군 남침전쟁을 서울 마포 도화동 거주지에서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생후3개월된 아가를 업고, 피난보퉁이를 이고
나는 두살배기 동생 아가를 업고 미수가루 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다섯살 동생은 걸려서 피난길을 전러남도 순천까지
전쟁포화 폭격속을 뚫고 떠났지요.
어머니는 전쟁중 굶주림 속에 영양실조로 휴전직전에 타계하시고,
우리남매들은 아버지께서 감당 못할 고아가 되었습니다.
다행이 6,25전쟁 고아들을 보육하는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성장해 군제대후 이곳에서 총무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저는 손재주가 있어 붓글씨 펜글씨 그림 등을 잘했기에
몇년간 봉사하였습니다. 그당시는 처음 출현한 한글타자기는
글씨가 삐딱히 찍히고 고르지 못히여 곱게 쓴 글씨체를 선호했습니다.
부친께서는 목사로 북괴군에 체포되면 즉시 처형되거나
북한으로 끌려가 어떤 수난을 당할지...... 먼저 피신하여 전남에서 수복무렵
가족들과 상봉했습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휴 ~~~ 우 우리 함동진 시인님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그시대 그고통을 함께 체험한 동일한 사람이지요
저도 그당시 울 아버지가 제주도 노무대 로 끌려가시고
엄마가 만삭인 몸으로 우리들을 살릴려고 고생하신
그 고통
지금은 효를 할려고 해도 안계시니요
참 가슴아픈 동족의 현실 우린 그런 고통을 함게 겪은 시대적 인물 맞지예
모쪼록 우리 더 오래 살었으면 하는 바램임니다.
함동진님의 댓글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6,25북괴남침전쟁은 쏘련(현재 러시아의 국명)이 김일성을 앞세워 저지른 전쟁으로
요즈음 젊은세대들은 6.25남침전쟁 근원을 잘 모르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의 도발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6,25와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메밀꽃산을님의 댓글의 댓글
메밀꽃산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함동진 시인님 저는 하루 종일 우크라이나 에서 탱크가 폭격으로 망가지고
옆엔 군인이 죽어서 쓰러져 있는모습이 뉴스에 나오는것을보고
하루종일 속상하고 마음아프드라구요
비록 모르는국가의 청년 국인이 지만 그모습이 자꾸 떠 오르네요 .
참 전쟁은 없어야 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