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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넣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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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18-12-05 14:51

본문

 


 



      가슴 속에 넣고 싶은 사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속에
      넣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잊혀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도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슴에 새기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대해주세요.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베풀기로 작정하세요.

      나를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선대하는 일에 머물지 마세요.
      나를 잘 대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선대하세요.

      훗날 그들은 당신의 호의와
      사랑을 기억해낼 것입니다.
      당신을 가슴에 꼭 새기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하겠지요.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새겨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남으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유독 향기나는 꽃처럼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으십시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녹둔도를 아십니까?

      1889년 함경도의 한 관리가 고종에게 급한 전갈을 보냈습니다.
      '러시아 군사들이 우리 영토에 들어와 건물을 짓고 다닙니다.'

      함경북도 경흥 두만강 하류의 둘레 8km의 작은 섬. 녹둔도는
      세종 이후 500년간 조선의 땅이었지만 청나라와 러시아의 거래 속에
      허망하게 러시아에 점령되어버린 우리 땅.

      원래는 두만강 하류의 섬이었지만 강의 퇴적 작용으로
      쌓인 흙으로 섬이 러시아의 연해주와 붙어버리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것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의 베이징조약에서
      은근슬쩍 러시아의 영토로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조선에서는 몰랐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녹둔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와 함께 십여 차례의
      반환 요청이 이어졌지만 이미 국력이 약해진 조선의 정당한 주장은
      번번이 무시되었습니다.

      심지어 1937년 스탈린 정부는 녹둔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 녹둔도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1990년 대한민국 서울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녹둔도 반환을
      건의해 보았지만 거부당했습니다.
      북한 지역의 영토라서 대한민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우리의 땅입니다.


      영상제작 : 동제


 



      링컨의 청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 당으로부터 선거 운동비로 쓰라고
      200불을 보내왔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난했던 링컨에게는 큰돈이었다.

      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당본부로 되돌려 보냈다.
      당 본부에서는 놀랐다.
      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말을 탔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소.
      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이 있어서
      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센트 들었어.
      그 다음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소"라는 편지였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한말이 기억난다.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고 갚지 못하였구나.
      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 말고 갚아주기 바란다."
      깨끗한 가치관과 사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뒤를 파보아도 떳떳하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영상 제작 : 동제
      나오는 음악 : How Can I Keep From Singing~Enya



 



      정직의 열매

      잭슨과 루이스는 언제나 같이 다니며 모조품을 진품이라고 속여 팔아
      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속아주더니 차츰 신용을 잃게 되자
      그들의 물건은 도무지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공원 벤치에 모여서 더 이상 속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신세타령을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멋진 속임수를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믿기까지 한 10년 동안만 절대로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다가 결국 모두 믿게 되면 그때 크게
      한탕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잭슨과 루이스는 정직한 장사꾼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되자 그들은 공원 벤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10년 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정직한 잭슨', '고지식한 장사꾼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이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네.”
      잭슨이 말하자 루이스도,
      “그래, 드디어 크게 한탕 할 때가 온 거야.
      오늘을 위해 우리는 10년을 참아 견디며 정직한 장사꾼 행세를 한 거야.”
      그러나 그들은 서로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번에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10년 동안 정직한 체하며 신용을 쌓았다가 나중에
      크게 한번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거 아냐?
      그런데 정직하게 장사를 했더니 오히려 장사가 잘되더라구.
      그렇다면 우리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어때?”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남을 속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영상제작 : 동제


 



      국제 정의와 양심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시청 앞 빌리 브란트는
      독일 국가를 합창하고 있는 수십만 군중을 향해 외쳤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을 통일 독일로 이끈 빌리 브란트는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던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자연스럽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라는 가치관을
      갖게된 그는 사회 민주당 청년부에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
      쫓겨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반 나치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로 돌아와 시민권을 회복하고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브란트에게 대중적인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소련이 헝가리
      봉기를 무력 진압한 데 항의하는 시위에서 보여 준 통솔력 이였는데
      그는 유리창이 박살난 방송차 위에 올라서서 군중들에게 호소했다.

      대립은 전쟁을 일으킬 뿐입니다.
      우리 하나된 마음으로 국가를 부릅시다.
      이듬해 그는 서베를린 시장이 되었고
      이어 1969년에는 총리로 선출되었다.

      브란트는 독일의 미래를 위해 같은 민족인 동독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분단 이후 서독은 동독과 국교를 맺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와는 교류하지 않았지만 브란트는 처음으로 동유럽과 화해를 시도했다.

      폴란트를 찾았을 때 그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탄압 지역을
      둘러보다가 게토의 위령탑 앞에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려 전 세계인의
      가슴을 뭉쿨 하게 하였.다

      나치의 잘못에 대한 그 어떤 보상이나 사죄보다 감동적인 행동이었으며
      1971년 그는 적대국과의 긴장 해소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브란트의 정치적인 영향력과 국민들의 신임을 시기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보스정당과 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평화를 이끄는데
      헌신하던 브란트는 동료가 총리 사무실에서 기밀문서를 빼내 동독에
      넘겨준 사건으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정치인들에게 비폭력과
      평화를 호소했으며 독일과 마찬가지로 분단된 우리 한반도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3년 뒤
      비로소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브란트의 또 다른 이름은 국제 정의와 양심이었다.
      빌리 브란트 1913∼1992

      영상제작 : 동제
 

 

소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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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BR>1889년 함경도의 한 관리가 고종에게 급한 전갈을 보냈습니다.<BR>'러시아 군사들이 우리 영토에 들어와 건물을 짓고 다닙니다.'<BR><BR>함경북도 경흥 두만강 하류의 둘레 8km의 작은 섬. 녹둔도는 <BR>세종 이후 500년간 조선의 땅이었지만 청나라와 러시아의 거래 속에 <BR>허망하게 러시아에 점령되어버린 우리 땅.<BR><BR>원래는 두만강 하류의 섬이었지만 강의 퇴적 작용으로<BR>쌓인 흙으로 섬이 러시아의 연해주와 붙어버리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BR><BR>이것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의 베이징조약에서 <BR>은근슬쩍 러시아의 영토로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BR>하지만 이 사실을 조선에서는 몰랐다가 <BR>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BR><BR>녹둔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와 함께 십여 차례의 <BR>반환 요청이 이어졌지만 이미 국력이 약해진 조선의 정당한 주장은 <BR>번번이 무시되었습니다.<BR><BR>심지어 1937년 스탈린 정부는 녹둔도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모두 <BR>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합니다.<BR><BR>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겪고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 녹둔도에 대한<BR>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BR><BR>1990년 대한민국 서울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녹둔도 반환을 <BR>건의해 보았지만 거부당했습니다.<BR>북한 지역의 영토라서 대한민국이 영향력을<BR>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BR>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우리의 땅입니다. <BR><BR><BR>영상제작 : 동제<BR></UL></UL></SPAN></TD></TR></TBODY></TABLE></CENTER><BR> <CENTER> <TABLE border=25 cellSpacing=2 borderColor=#cceecc width=500 bgColor=beige cellspadding="0"> <TBODY> <TR> <TD> <CENTER><BR><EMBED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600 src=http://cfile7.uf.tistory.com/media/26744450564D84721AD8A5>&nbsp;</CENTER><SPAN style="FONT-SIZE: 9pt"> <P style="LINE-HEIGHT: 150%"> <UL> <UL><BR><BR>링컨의 청렴<BR><BR>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BR>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BR>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 당으로부터 선거 운동비로 쓰라고<BR>200불을 보내왔다. <BR>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난했던 링컨에게는 큰돈이었다. <BR><BR>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BR>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BR>당본부로 되돌려 보냈다. <BR>당 본부에서는 놀랐다. <BR>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는 것이다.<BR><BR>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BR>"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BR>말을 탔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소. <BR>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이 있어서 <BR>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센트 들었어. <BR>그 다음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소"라는 편지였다. <BR><BR>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한말이 기억난다.<BR>"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BR>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고 갚지 못하였구나. <BR>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 말고 갚아주기 바란다." <BR>깨끗한 가치관과 사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BR><BR>뒤를 파보아도 떳떳하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BR>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BR>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BR><BR>영상 제작 : 동제<BR>나오는 음악 : How Can I Keep From Singing~Enya<BR></UL></UL></SPAN></TD></TR></TBODY></TABLE></CENTER><BR><EMBED height=45 type=application/octet-stream width=200 src=http://www.lifewater.co.kr/audio-pop/EnyaHowCanIkeepFtomSinging.mp3 allowNetworking="internal" sameDomain? volume="0" showstatusbar="1" loop="-1" autostart="true" wmode="transparent"><BR> <CENTER> <TABLE border=25 cellSpacing=2 borderColor=#cceecc width=500 bgColor=beige cellspadding="0"> <TBODY> <TR> <TD> <CENTER><BR><EMBED style="BORDER-BOTTOM: khaki 2px inset; BORDER-LEFT: khaki 2px inset; BORDER-TOP: khaki 2px inset; BORDER-RIGHT: khaki 2px inset"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600 src=http://cfile7.uf.tistory.com/media/99AB893359E47C322CF5DA>&nbsp;</CENTER><SPAN style="FONT-SIZE: 9pt"> <P style="LINE-HEIGHT: 150%"> <UL> <UL><BR><BR>정직의 열매<BR><BR>잭슨과 루이스는 언제나 같이 다니며 모조품을 진품이라고 속여 팔아 <BR>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BR>그러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속아주더니 차츰 신용을 잃게 되자 <BR>그들의 물건은 도무지 팔리지 않았습니다. <BR>어느 날 그들은 공원 벤치에 모여서 더 이상 속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BR>신세타령을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멋진 속임수를 생각해냈습니다. <BR><BR>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믿기까지 한 10년 동안만 절대로 <BR>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다가 결국 모두 믿게 되면 그때 크게 <BR>한탕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BR><BR>그 날부터 잭슨과 루이스는 정직한 장사꾼이 되었습니다. <BR>세월이 흘러 10년이 되자 그들은 공원 벤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BR>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10년 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BR>'정직한 잭슨', '고지식한 장사꾼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BR><BR>“이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네.” <BR>잭슨이 말하자 루이스도, <BR>“그래, 드디어 크게 한탕 할 때가 온 거야. <BR>오늘을 위해 우리는 10년을 참아 견디며 정직한 장사꾼 행세를 한 거야.” <BR>그러나 그들은 서로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BR>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BR><BR>이번에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BR>“사실 우리는 10년 동안 정직한 체하며 신용을 쌓았다가 나중에 <BR>크게 한번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거 아냐? <BR>그런데 정직하게 장사를 했더니 오히려 장사가 잘되더라구. <BR>그렇다면 우리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어때?” <BR>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남을 속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BR><BR>영상제작 : 동제<BR></UL></UL></SPAN></TD></TR></TBODY></TABLE></CENTER><BR> <CENTER> <TABLE border=25 cellSpacing=2 borderColor=#cceecc width=500 bgColor=beige cellspadding="0"> <TBODY> <TR> <TD> <CENTER><BR><EMBED style="BORDER-BOTTOM: khaki 2px inset; BORDER-LEFT: khaki 2px inset; BORDER-TOP: khaki 2px inset; BORDER-RIGHT: khaki 2px inset"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600 src=http://cfile26.uf.tistory.com/media/99BEFB335A02B99907DF11>&nbsp;</CENTER><SPAN style="FONT-SIZE: 9pt"> <P style="LINE-HEIGHT: 150%"> <UL> <UL><BR><BR>국제 정의와 양심 <BR><BR>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시청 앞 빌리 브란트는 <BR>독일 국가를 합창하고 있는 수십만 군중을 향해 외쳤다. <BR>“이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BR><BR>서독과 동독을 통일 독일로 이끈 빌리 브란트는 사생아로 <BR>태어나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던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BR><BR>자연스럽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라는 가치관을 <BR>갖게된 그는 사회 민주당 청년부에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 <BR>쫓겨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반 나치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BR><BR>전쟁이 끝나자 독일로 돌아와 시민권을 회복하고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BR>시작한 브란트에게 대중적인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소련이 헝가리 <BR>봉기를 무력 진압한 데 항의하는 시위에서 보여 준 통솔력 이였는데 <BR>그는 유리창이 박살난 방송차 위에 올라서서 군중들에게 호소했다. <BR><BR>대립은 전쟁을 일으킬 뿐입니다. <BR>우리 하나된 마음으로 국가를 부릅시다. <BR>이듬해 그는 서베를린 시장이 되었고 <BR>이어 1969년에는 총리로 선출되었다. <BR><BR>브란트는 독일의 미래를 위해 같은 민족인 동독을 인정해야 한다고 <BR>생각했으며 분단 이후 서독은 동독과 국교를 맺은 동유럽 공산주의 <BR>국가와는 교류하지 않았지만 브란트는 처음으로 동유럽과 화해를 시도했다. <BR><BR>폴란트를 찾았을 때 그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탄압 지역을 <BR>둘러보다가 게토의 위령탑 앞에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려 전 세계인의 <BR>가슴을 뭉쿨 하게 하였.다 <BR><BR>나치의 잘못에 대한 그 어떤 보상이나 사죄보다 감동적인 행동이었으며 <BR>1971년 그는 적대국과의 긴장 해소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BR>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BR><BR>그러나 브란트의 정치적인 영향력과 국민들의 신임을 시기한 사람들도 <BR>많았지만 보스정당과 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평화를 이끄는데 <BR>헌신하던 브란트는 동료가 총리 사무실에서 기밀문서를 빼내 동독에 <BR>넘겨준 사건으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BR><BR>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정치인들에게 비폭력과 <BR>평화를 호소했으며 독일과 마찬가지로 분단된 우리 한반도에도 깊은 <BR>관심을 보였던 그는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3년 뒤 <BR>비로소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BR>브란트의 또 다른 이름은 국제 정의와 양심이었다. <BR>빌리 브란트 1913∼1992 <BR><BR>영상제작 : 동제<BR></UL></UL></SPAN></TD></TR></TBODY></TABLE></CENTER>&nbsp;</BLOCKQUOTE></TD></TR></TBODY></TABLE>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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