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매년 40억 명 정도가 낯선 이를 돕는다. 23억 명이 보육원에 기부하고, 16억 명 이상이 자원봉사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이도 잇다.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는 와중에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하려 애쓴 비유대계 사람은 2만 7천명이 넘는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부터 자선 활동을 펼쳤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과 상품 등을 제공받아 몸이 불편한 이들이 양식을 사고, 참전 군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작업이 없는 사람들은 공공사업에 참여하게 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다. 기원후 1세기에도 손길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결혼 지참금을 자선기금으로 내놓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돕는데 썼다. 유대교 회당에 쉼터를 만들어 가난한 여행자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아픔도 모른 체 하지 않았다. 177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수도 이스본에 진도 8.5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만으로도 큰일인데 촛불들이 넘어지며 대화재가 함께 발생했다. 18미터가 넘는 해일마저 덮쳤다. 연이은 재해로 주민 4만여 명이 세상을 떠나고 도시의 건물80퍼센트가 파손되었다 소식을 들은 스페인의 왕은 리스본으로 현금과 구호 품을 보냈다. 3주 뒤 프랑스까지 소식이 전해지자 그곳에서도 현금을 지원했다. 영국에서도, 함부르크에서도 돈과 식량, 보급품을 전했다.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자 낯선 이들을 도울 방법이 더 많아졌다. 1984년 에티오피아 대 기근 뉴스가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아일랜드의 뮤지션 밥 겔 도프도 집에서 그 뉴스를 보았다. 그는 동료들을 모아 자원봉사 밴드 ‘밴드 에이드’를 결성했고, 그들과 노래를 발매해 1,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그 수익으로 기근 구제를 도왔다. 영국의 정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더없이 이기적일 수도 있는 게 인간이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며 또 그들의 행복을 필요로 합니다. 설사 다른 이가 행복해지는 걸 지켜보는 기쁨 외엔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해도 그렇습니다.” 스위스 은행가 장 앙리 뒤낭이 유럽 12개 국가를 설득해 ‘국제 적십자 위원회’를 설립한 것도, 이탈리아에서 부상병을 도운 평범한 시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부상병의 상처를 닦은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 뒤낭은 그 시민들이 한 말을 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형제다." (참고: <타인의 친절>, 비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