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세계의 극문학이 이룰 수 있는 비극적 감정의 최고봉이라고 어느 영문 학사에 적혀 있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발표 한 것은 1608년 그러나 17세기 중에는 거이 상영된 적이 없었다. 19세게 전반까지도 원작이 그대로 상영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여기엔 그 많은 까닭이 있었다. <리어왕>의 줄거리는 우리에게 꽤 잘 알려져 있다 늙은 리어왕은 퇴위에 즈음하여 왕국을 세 왕녀에게 분배하려고 했다. 이때 가장 애정이 깊고 효심이 두터운 딸에게 최대의 은혜를 주겠다고 말한다. 장녀와 차녀는 온갖 감언으로 노부를 기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가 가장 귀여워하든 막내 딸 코넬리아는 자식으로서 의무를 다해 사랑하고 존경 할 뿐이라고만 말한다. 노한 리어왕은 코넬리아의를 내 쫓고 왕국을 두 딸에게만 나누어준다. 그리고 두 딸집에 한 달씩 번갈아 묵기로 한다. 그러나 왕국을 차지하고 난 후 두 딸은 노부를 푸대접하여 내 좇고 만다. 뿐만 아니라 코넬리아 까지 잡아죽인다. 비극에 젖어 광란 상태에 빠진 리어왕은 코넬리아의 유해를 안은 채 숨을 끊는다. 이것이 리어왕의 줄거리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고대 희랍 극에서 볼 수 있는 주제들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인간과 운명 우연과 필 연등을 논한다. 그러나 일반 관중은 그저 효를 등진 딸들의 배신과 이를 비통해 하는 노부의 애처러운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이어 왕이 상영되지 못했 것은 리어왕의 말로를 너무 잔인하게 그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전혀 상연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런 관중의 압력에 의해서 리어왕은 <해피엔딩>으로 개작되어 19세기 중엽 이후 1백 60여년 동안이나 상연되어 왔다. 자식으로서의 의무로 효를 다한다는 코넬리아의 말이 리어왕에게는 몹시 못마땅하고 서운했다. 그는 의무 이상의 것을 딸에게 바랐던 것이다. 다만 코넬리아로서는 말로만 노부에 대한 애정을 표현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말로만으로는 효를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를 말하는 코넬리아를 우리네 관중도 역시 리어왕처럼 못 마땅하게 여길게 틀림없다. 그러나 자식으로써 의무를 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코넬리아 만큼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9일 한국에서 팔순의 노부모가 남몰래 자살했다는 소식은 퍽 충격적인 사건으로 전해 졌다. 그 노부모에게는 자손도 많았다. 그러나 그 많은 자식들 집을 떠돌아다니며 눈칫밥을 먹기에 지쳐 버린 것이다. 자손들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까닭이 있었다. 효심이 없어서만 은 아니였을지 모른다. 그 노부모 역시 리어왕처럼 자식으로서의 의무 이상의 것을 바랬을지 모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손 이외에는 의지 할 곳이 없는 노부모를 자꾸 만들어 내고 있는 우리네 사회 제도에 깊은 검토가 있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