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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길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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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개도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39회 작성일 24-01-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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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길과 인간의 길을 생각한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말할수가 있다.현재의 나의 상태는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 이유를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어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길중에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수있는 나자신이 노년의 길을 다가가고 있던지 아니면 노년의 길에 도달한것인지 나스스로는 판단을 하기는 힘이들지만 나는 분명히 나이가 들었고 나이가 들었다는것은 몸이 나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것과 기억력이 쇠퇴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과연 나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는 나의 일상의 나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라고 해야 한다.문득 잠에서 깨어서 어떠한 상쾌한 생각을 할수없는 상태라든지 몸도 마음도 노쇠의 길에 덥어들기 전의 상태인지 아니면 노쇠해서 있는 상태로 잠깨어 있는지 판단을 할수가 없는것은 나의 가슴에 항상 생각나는 사랑하는 딸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말고는 더이상 생각의 증가나 감소를 시킬수가 없다는것은 항상 가슴에 담고 사는 한가지 말인 인간 너가 불쌍하다는 말이 나의 가슴에 안개처럼 떠오르는 말인것은 틀림이 없다.나의 일상은 항상 피곤과 건망증과 그리고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살면서 금전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 화물차를 운전하고 어떻게 하면 노동의 착취를 당하는 것처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수밖에 없는것은 나의 화물운송 일을 하면서 웬지 모를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까닭은 화물 운임이 박하다는 사실과 운송료를 조금 더받기 위해서는 이사짐을 운송해서 화주들에게 이사짐양이 증가했다는 소리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힘이들고 무거운 이사짐을 들어가면서 뻘뻘 흘리는 땀을 흘리면서 받는 운송료가 적다고 생각되면 화주들에게 운송료를 더 줘야한다는 소리를 할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착취의 개념은 운송료를 화주들에게서 수주를 하거나 계약을 할떼 수수로라는 명목으로 많은 금액을 부르고 화물을 운송하는 기사들에게는 최소의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 중계업자들은 사무실 임대료나 전화나 각종 전자기기들 그리고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빌미로 그렇게 하는것은 옳거나 상도의라고 말하거나 사업을 하는것의 중요한 요소인 이윤의 목적을 언급할수가 있겠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나의 일상이 노동과 그리고 피곤과 무리한 이사짐 운반을 통해서 얻는 몸이 점점 노쇠해져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비교한다면 결과적으로 나의 노쇠의 명백한 증거나 나의 노동의 대가중에 노쇠의 속도의 증가를 통해서 그들은 분명히 잘먹고 잘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이러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과연 이러한 생각이 옳은것인지를 나는 판단하기보다는 비난의 입장을 언급할수 밖에 없을것이다.그것은 서로 서로 먹고 산다는 개념으로서 나의 노동의 착취가 정당화 된다는것을 말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자 들의 사회 변혁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시켜서 유지 시키는 사회는 혁명이라는 방법으로 업어버리는것은 정당화 한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지만 그가운데 가장 큰 약점이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절대로 벗어날수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외면하거나 눈감는다는것이 가장 큰 문제인것은 틀림이 없다.사회의 변혁이 옳은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사회변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사회변혁이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사회혁명은 폭력혁명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수가 없는데 혁명은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수가 없고 혁명이란 사회를 혁명 시킬수 있는 수단이라고 할수있는 폭력의 수단이 강하게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아니한가와 관계가 있다라고 할수가 있을것이다.인간에게 폭력이 강한가와 약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잘갖추어져 있는가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폭력에 의한 사회혁명중에 노동자와 같은 계급적 한계에 의해서 사회혁명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것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러한 힘이 없다거나 능력이 없다는것에 가슴한편으로 아려온다고 생각하고 있다.현재의 나의 상태는 정신적인 분열이라고 말할수있을 만큼의 폭력적 망상이 하루도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나의 정신적인 분열의 원인은 가족의 해체에 있고 분노와 증오가 나의 일생중의 절반에 걸쳐서 나의 정신세계를 짖누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나의 정신분열적인 상태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그러지 말자는 생각과 그렇게 생각해서 행복해 질수없다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언어를 생각해서 정신분열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려고 마음을 추수리지만 그것도 잠시 후에 지금까지의 생각속에서의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떠오르고 어느순간에는 스스로를 또다시 위로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으련느 시도를 다시하는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나의 일상이라고 보아야 한다.나의 일생중의 거의 절반을 이렇게 보내면서 나는 분노의 감정과 증오의 감정을 얽누르기 위해서 나는 많은 언어적 접속들을 할수밖에 없었고 어느순간에는 나는 무엇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어쩌면 운명의 길을 가고있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를 인류사에 던지는 역활을 하도록 강요 받고있다는 사실을 느낌을 받게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땅의 소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느끼는데 인류 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어떠한 의미인가 그리고 그뒤에 이어지는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않을리라 라는 언어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는것과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제기된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와 어떻게 연관 시켜야 하는 가 하는 물음과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것이 나의 입장이며 견해라고 나는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길인가 아니면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길인가에 대해서 나의 입장에서는 전자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현상이라고 말하려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말한다.하나님의 현상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신의 길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질문이 생겨야 하고 그질문은 세대에서 세대로 물어야 하며 어떻게 행위해야 하며 어떻게 인간의 길과 어떻게 연관 시켜야 하는가의 문제가 바로 지구사일수밖에 없을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현상이어야 하는가와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나는 단정하는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은 신이 유지 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인간은 던져보아야 한다.아니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말그대로 신의 길이기에 신이 유지 시켜나가고 있거나 유지 될것이라고 말할수가 있겠지만 나의 언어중에 중요한 화두인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나 무생명체나 하물며 존재되거나 존재를 유지하거나 존재를 언급될 가능성이 있거나 존재의 미짐함이 본질이라고 할지라도 존재의 명제는 모두다가 이기적인 유전자를 어쩔수없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어쩌면 신이라는 혹은 하나님이라는 명제인지 존재인지 확인할수가 없고 단정할수없다면 신조차도 아니 하나님 조차도 이기적인 유전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신이 생명체 라는 증명을 나는 하지 않는다.신이 생명체 일수도 있고 생명체라는 명제가 내가 살고있는 이세상이 혹은 이우주가 하나의 생명체라고 가정을 하거나 상상할수도 있고 그것이 진리이거나 사실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나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생각한다는 명제라거나 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진리라고 할떼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이세계는 나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명제가 진리가 된다는것을 나는 생각한다.이러한 전제를 나의 존재는 우주를 혹은 모든 진리가 나의 몸과 나의 생각에 내재되어있는 진리라고 정의를 내릴수가 있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 이유라고 할수가 있을것이다.여기에서 말하는 나의 존재는 나의 존재속에 우주가 내재되어있으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이 내재되어있다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행위하여야 하는 양심이라고 말해야 하고 행위의 정당성이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열되어진다라고 해야한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다.어쩌면 인간 그대가 불쌍하다라는 언어가 나의 인생전반에 언어로서 그리고 행위하여야 하는 정당성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가여운 것인지도 모른다.나는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위해서 행위하고있는를 묻고 싶은것이 나의 신의 개념이며 하나님의 개념이라고 말하고 싶은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동일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며 인간의 길이라는 제하의 물음에 대해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하나님께서 천지를 청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어떻게 유지되도록 행위하여야 하는가의 명제를 인간의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은지도 모른다.하나님이라는 언어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개념이 같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동시적이며 동일시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이라는 개념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개념이 다르다면 하나님은 존재의 가치가 혹은 존재의 목적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할수가 있을것이다.하나님과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동시적이며 동일시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되어야 한다는것이 나의 입장이라는 것과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가 정의라는 개념과 진리라는 개념이 일치하도록 인간은 생존의 본질을 행위하여야 하는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라고 할수가 있는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개념이 생명체의 구성을 내재하고 있다라고 나는 언급하였고 모든 생명체의 구성요소는 절대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내재하였다라고 하였을때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의 유지는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질서이다라고 정의 내리거나 단정할수가 있을수도 있을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스스로 구성되고 흘러가고 성장하거나 쇠퇴한다는 사실은 진리라고 나는 동의한다.이러한 자연의 질서라고 단정하는것이 인간의 길이여 신이되고자 하는 인간의 길이여 신이 될수밖에 없는 언어를 구사할수있는 능력이 있는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을수없을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하나님의 언어인가 아니면 인간의 언어인가를 물을때 나의 견해로는 하나님의 언어이다라고 단정하지만 인간은 추구해야 하는 가치관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향하여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관에 머물고 있다라고 하는것이 현대의 사회문화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하는것이 나의 입장이지만 언어가 추구하는것은 생각이나 언어나 상상이나 이상이 아니라 끝없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행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나의 현실적인 능력으로 나의 입장 나무를 심어라 살생하지 말라라고 하는 인간의 행위로서 이해 할수있는것들로 부터 행위하여 하는 것이 인간이어야 하는것이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하나님과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동시적이며 동일시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기도나 찬송이나 주기도문이나 성서의 암송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영원불멸한것과 같은 현상으로 만들어 간다는 현상성을 유지하려는 행위하여야 하는것은 인간인 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성에 인간인 냐의 존재가 있다라는 사실과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성은 한구루 나무를 심는 행위가 혹은 살생이라는 행위가 자연의 질서로서 행위하지 않아도될 만큼의 현상성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변화가 없어지는 순간에 이르러야 만이 인간은 마치 인간의 삶을 살면서 아기에서 아이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중년으로 그리고 장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시간이 되면 자연의 질서로 되돌아 가는것과 같이 천지를 창조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되돌아가는것으로 인간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이성이라는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순간 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거나 이성으로 느끼거나 본능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거나 느끼지 못하는것이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자연의 질서는 매우 미약하게 변하고 있고 자연의 질서가 인간에게 있어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인지 아니면 소년이나 청소년이나 청년의 시기인지 아니면 중년이나 장년이나 내일이면임종을 맞을지 모르는 시간인지 그것을 판단할수는 없다.이와 같은 맥락으로 몇일전에 일어나 지진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었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해서 사경을 헤메거나 간신히 목슴을 건져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있는 인간의 모습인지 모른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위험요소나 또다른 점점 부유해지는 경제력이 상승하거나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경제력이 하강을 해서 먹고사는것에 목슴을 걸어야 하는 현상속에 있는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처해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아비규환의 상황처럼 죽이지 않으면 죽음을 맞을수밖에 없는 현상속에 있는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어떻게 인간은 처해있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깊게 언어적 으로 생각해볼수도 있을지도 모른다.인간은 인간의 길을 제시하고 있고 신은 신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나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신의 길이여 하나님의 길이라고 결론도 내리고 이것을 절대진리라는 명제로 말하고 있는것은 가능하다면 인간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마치 신의 길 하나님의 길 아닌것과 같은 언어를 신의 길 하나님의 길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고 그길을 갈것을 권유하고 믿음이나 신앙으로 받아들일것을 말하고있는 사상이 인간적 자연주의라고 말하고 있는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신앙한다거나 종교라고 말하는것은 하나님은 곧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이기 때문에 그렇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기도나 성경을 읽거나 암송하거나 찬송을 부르거나 하나님께 나는 죄인이라는 기도를 하는것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성이 발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성속에 인간이 있다라는 말만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선 인간은 깨닳아야 하는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언어는 그속에 각종 야생동물과 각종 나무들과 각종 식물들과 물이나 불과 그리고 산과 바다 그리고 낮과 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님과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있듯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속에는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성이 있다는 사살과 이러한 사실은 한구루의 나무를 위하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창조물들이 존재한다라고 인간은 인식의 능력을 가져야 하는것이 인간의 의무이다라고 느끼고 깨닫고 행위하여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이것은 강가에 흐르는 물줄기를 위하여 한모금의 물과 한구루의 나무나 한줌의 흙을 위하여 인간을 위시간 모든 존재적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인간은 깨닫고 느끼고 행위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길이라고 할수있는것이다.신은 인간에게 신의 길을 가도록 강요하고 있을까의 문제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는것이 어쩔수없는 현실인것은 틀림이 없다.하지만 현대의 종교는 가령 기독교나 천주교나 이슬람이나 불교까지도 인간의 길을 가도록 권유하고 어떻게 보면 강요나 강압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길과 신의 길에 대해서 어떤것이 인간의 길이여 어떤길이 신의 길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나의 개인적인 결론을 말한다면 신의 길이 인간의 길이여 인간의 길이 신의 길이다.라고 히미한 제시를 할수밖에 없다는것이 현실적인 한계라고 할수있을것이다.신의 길을 논하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신의 길이다라고 나는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시간의 문제인가 아니면 공간의 문제인가 아니면 단지 언어에 불과한것인지를 분명하게 정의내리는것은 불가능하다.신은 혹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언제 창조했고 언제 그런말을 하였느지를 제시할수가 없다는 사실과 수없이 언급한 말인지 아니면 언어인지 인간의 언어는 뇌신호인데 뇌의 신호체계인지 정확하게 증명할수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사상적으로 혹은 철학이나 과학적인 어떠한 접근의 가능성을 가름할수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신의 길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어떻게 대중들에게 제시할수있는  무엇인가로서 유용한것인지를 정확히 알수가 없다.하지만 철학이라는 정신사적인 큰 물줄기로서 인간적 자연주의 사상으로 신의 길로서 인간이 따라야 하며 행위의 사상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라고 할수있는것이다.우리는 또한가지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수있는 인간의 길이라는 명제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생각 할수 있다는 사실과 기록의 능력을 가진 생명체라는 사실에 의해서 인간에게 신의 능력을 가진 생명체라든지 아니면 신을 창조하거나 신을 만들수있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반박할수없다라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신을 창조하였다라는 말을 할수있다는것과 신은 인간일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다.우리는 신을 말할때 그것이 실제인가 아니면 언어인가 혹은 기록인가 하는 문제를 결코 무시할수가 없으며 신은 실제라는 언어를 바탕으로 인간은 신이 존재의 긍정을 전재로 아니 전재나 추측이나 상상 아니 습관이나 경험으로 신은 삶이나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신을 혹은 하나님을 믿어서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것이다.우리는 하지만 신을 말할때 반드시 집고넘어가야 하는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에 모든 현상을 비교해야 하는 의무가 인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것은 인간이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을때 과연 너희는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면서 너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의미와 어떠한 행위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행위하였는가를 물었을때 어떠한 답을 할수있을까.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인류사의 문제라고 말하거나 시대나 역사 역사나 철학적인 문제일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사상사로서 철학이나 정치 종교적으로 문화나 사회사상으로라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참조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이언어를 바탕으로 인간은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다.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사상이나 현상으로 사회나 문화가 흘러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서 창조한 언어중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인간이 발견하거나 발명한 언어중 가장 중요한 명제라는 사실이다.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도 있고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을리라.도가도 비상도나 학이시습지 불역여호아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고 유용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여야 하는 언어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이다라고 말하는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신의 언어이며 하나님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것이 나의 절대적 입장이다.신의 언어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행위의 원천이기도 하고 행위를 함으로서 행복을 느껴야 하는 언어라고 말하고 싶은 입장이다.하지만 땅을 갈고 그속에서 식량을 얻고 가족을 부양하거나 할때 땅은 땅의 이기심이 있다라고 할수있다.땅이란 시간과 공간과 물과 불과 빛과 추위와 결코 떼어놓고 정의내릴수없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는 생명체인 인간은 땅을 낭만적으로 생각할수가 있거나 그리고 땅은 경험과 관념의 저주가 깊이 박혀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인간의 이성으로 인간의 경험으로 관념으로 극복할수있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쯤은 인간은 받아들여야 한다.땅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있으면서도 인간은 생명을 이어나가야 하는 생존의 비릿함이 땅에 스며들어있는 땅인것이다.땅은 하나님의 땅이면서도 인간의 생존의 땅이라고 할수가 있는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땅에서 이루어지고 인간은 생존의 피눈물을 또한 땅에서 흘린다.하나님의 길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의 영원한 유지가 하나님의 길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말한다.하지만 인간에게 땅에서 잘먹고 잘살아가고자 하는 곳이 땅이며 이것을 인간의 길이라고 말한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와 인간의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 욕망이 땅에서 충돌하면서 이어져온것이 인간의 역사이며 인간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해야 한다.성서에 언급되어있는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에 대한 인간이 접근할수있는 언어적 해석을 해야 하는것은 과연 인간은 신이 될수있는가의 문제와 과연 인간이 신이 될수있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반드시 던지지 않으면 안될것이다.또한가지는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에 대해서 인간은 어떻게 죽지 않을수가 있지 라는 문제와 그렇다면 죽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해서 신이 죽지 않도록 해준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의 물음을 던질수있을것이다.개인적으로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명제는 성서에서는 사탄이 제시한 언어라고 말하거나 나중에 예수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사탄이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라거나 높은곳에서 떨어져 보라는 언어가 언급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인간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과 인간은 신이 될수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불사라는 개념은 불가능한 언어적 제시이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데 이것을 인간이 추구하고 싶은 언어이다라고 말하고 싶은것이 나의 입장이다.하지만 어떤사람이 이러한 제의를 한다면 그 인간은 나에게 사기를 치고있다라고 결론 내려도 된다는 입장이다.앞에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신의 언어이며 하나님의 언어이며 인간이 이언어에 사상적인 부여와 철학적인 부여를 통해서 반드시 행위를 할수있어야 한다는것이 나의 입장이다라고 말했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언어는 인간의 가장 최선의 이성적인 언어이며 몸이 혹은 본능이 반드시 존중의 함미와 행위의 본질로 삼아야 한다는것을 분명한 입장으로 언급했었다면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인간의 현실성과는 결여되거나 인간은 감성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끼는 죽고싶지 않은 죽어서 안되는 결코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지극한 욕구에 던지는 메세지라고 할수있을것이다.어떻게 보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것인가를 명제를 제시한것이라고 해야할것이다.인간에게 신이 될수있을까의 명제와 어떻게 신이될것인가와 인간이면서 신의 가능성에 대한 욕망이나 희망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인간의 명제는 신이 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며 어떻게 행위하여야 하는가를 염두에 둔 언어이며 인간의 발전이나 문명의 발전을 명시한 언어라고 할수있을것이다.인간에게 인류사에 던져진 매우 중요한 메세지중에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이며 두번째 메세지는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세번째 메세지는 원래는 첫번째 메세지와 두번째 메세지에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자리해야 한다.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다음에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자리할수가 없었던것은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을수가 있지만 자연의 질서에는 반드시 음양의 혹은 장단이나 선악의 이치가 먼저이기 때문에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가 자리하고 세번째가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있게되는것이다.그다음이 도덕이나 학문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과 같은 언어가 따라오는것이다.하지만 인간의 역사의 오류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적 테제가 되지 못한것은 매우 인간에게 불행한 역사를 이끌어 오게된 배경이다라고 말하고 싶은것이 솔직한 심정이다.인류역사는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명제가 인간에게 언어적 으로 그리고 철학이나 종교나 학문으로 발전한 까닭으로 인간은 신이되는 방법론이 구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원히 죽지 않을수있는 방법론이 제시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인것이다.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운데 인간과 신에 관한 의제를 논할수밖에 없을때 신은 어떠한 특징이나 특성을 가지는가를 가지고 인간과 신을 구별한다라고 할수밖에 없는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신을 신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동양에서의 귀신이라는 개념을 신이라고 규정을 해야 하는지를 판별의 오류를 본질적으로 가질수밖에 없지만 신이라는 개념은 죽지않는다는 영원불멸한 존재를 의미한다라고 한다면 사탄이 아담에게 금단의 열매를 주면서 유혹의 말이 진실이라는 언어와 진리라는 언어에 대해서는 신이라는 언어는 실현가능하지 않은 언어일수밖에 없지만 신이라는 의미가 하나님이나 사탄이 영원불멸하다는 전제에 의해서 너희도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은 영원불멸을 하거나 인간이 죄를 짖거나 했을때 지옥을 간다거나 천국을 간다라고 했을때 인간이 죽음을 맞은다음에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을 간다라고 했을때 영혼은 분명히 영원불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신이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영원히 지옥이나 천국에서 지낸다는 의미는 영원불명한다는것이 옳다는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영혼은 영혼불멸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것이 된다.인간의 영혼은 성서에서 말하는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이 진실이라거나 진리라고 한다면 인간은 죽음이후에 영원히 사는 영혼이 있다면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음 이언어가 있으나 없으나 영원히 사는 것은 맞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만 성서에서 말하는 천국이 어떤곳이 천국인지 어떤곳이 지옥인지는 성서의 창세기 일장에서 언급할 말은 아니라는 사실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인간의 길과 신의 길에 관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성서에서 말하는 금단의 열매를 먹는다는것은 신의 길을 강요하거나 제시하는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이다.하지만 성서를 통해서 비판받아야 하는것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않으리라라는 언어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말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언어와 통해 있다는 사실이다.가장 큰 이유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말이 예수그리스도의 언어인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거나 요한의 물로 세래를 받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아서 깨끝하게 씻김을 받았다라고 해서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이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받게된것과 같은 언어를 구사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어인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라는 언어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고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다는 사실이다.어떠한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갔다는것과 옮겨간 세계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다 라고 할때 구원을 받거나 해서 옮겨간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명제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함께 보고있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사실과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함께 혹은 같이 보고있는것이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같이 천국에서라는 말이 종교적이든 아니면 믿음이라는 말에 의해서 언어가 성립된다면 결국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말이 성립된다는 사실에 의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탄이 한말이기 때문에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이 성립이 된다면 믿음이든 구원이든 하나님을 믿어서 천국을 같던 아니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아서 가는 천국이 영원히 산다는 전제가 되는 것이라면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말이 성립된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된다고 할수있는것이다.인간은 어떻게 신이되고있는가라는 의심을 언급한것이지만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 인간의 길인가 아니면 신의 길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나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이언어는 사탄의 언어이자 신의 언어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또다른 인간이 추구하고 싶은 언어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또한 말은 신의 길에 관한 언어이지만 인간이 행위하여야 하는 인간의 길을 위한 언어이다라고 말하고 싶은것이 솔직한 마음일수밖에 없다.무엇보다도 천국에 간다는 의미와 천국에 가기위해서 기도를 하거나 성서를 읽거나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아니면 찬송가를 열심히 읽어서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는 말이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서적인 측면에서는 악마의 느낌을 전혀 배제하였다라고 말하기 어렵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 사실이다.가령 인간의 생존의 과정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파괴해서 생존하는것이 현실적인 진실이라고 할수있다.그이유는 성서를 만들거나 교회를 짖거나 찬송가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사소한 의자나 의복들 조차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파괴하지 않으면 만들수없는 물질들이다.믿음이라는 언어나 기도나 찬송을 부루고 성서를 암송한다고 할지라도 성서는 혹은 찬송가나 목주나 십자가 의자나 하물며 하나님께 정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아름다운 옷을 걸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파괴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그래서 묻는것이다.성서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어떠한 현상으로 변하여 가는가를 물는적이 있는가라고 하나님을 믿은다는것과 성서를 읽는데 이세계의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것이 바로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에 인간은 이언어가 나쁘고 사탄의 언어 인것 만을 믿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것에 인간의 본질인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성서적으로 반666이라고 하는 사실을 한번 쯤은 인식하여야 한다.그리고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의 실현을 666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666이란 나뿐것이라고 인식을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나뿐것인지는 모르는것이 인간인것이다.신이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이든 할수있지만 인간은 안타깝게도 언어적으로는 신이 될수있지만 인간은 신이되는것을 현재의 나로서는 증명하지 못한다.단지 나의 입장에서는 책에 기록되었다든지 이렇게 역사나 기록에 그의 이름이 남는것 이상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은것이 현재의 솔직한 나의 입장이다.그리고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할수있을것인가라는 물음과 신이 되었다면 할수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의 물음도 생길수밖에 없을것이다.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말을 통해서 신이 될수있을까의 물음도 있겠지만 어떨게 신이될까의 문제와 그리고 신이되려면 얼마나 걸리고 신이 되었을때 그다음의 물음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도 하겠지만 신이된 인간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구현되었는지 궁금한것도 사실이다.가령 모세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믿었다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평생을 살았다고 기록되어있는데 그들은 과연 하나님이 사는 하나님의 세계에 갔을까의 의문과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언어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에 있는것인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하나님과 같이 보고있는것이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속에서 존재하는것인지 단지 영혼으로 궁금하지만 나의 분명한 견해는 아담과 이브이든 모세나 기타의 성서속에서 언급되어있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세계에 가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같이 혹은 함께 보고있는것이 아니라.성서에 언급되어있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처럼 흙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더 높게 친다.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 가진 의미는 성서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라는 언어나 하나님에 대한 거역을 논하고 있자만 개인적으로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과학의 숭상의 몇가지 언어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인류의 의학의 발전이나 건강을 위한 기술을 발전 시키는 언어의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언어가 될수가 있다는 사실일것이다.인간의 역사는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하는가라는 물음의 실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수있기 때문이다.인간의 역사는 의술의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며 의약품의 제조나 연구 그리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역사이기도 하다.어떻게 너희는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역사는 성서적인 측면에서 너희는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언어는 예수그리스도의 기독교와 천주교의 탄생을 위한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라고 할수있으며,마호멧의 이슬람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라고 할수있는것이다.하지만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인간의 길이 아니다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는데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의 길의 언어이며 인간의 이성의 길의 언어이다라고 말하는 까닭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을리라 라는 언어가 동시적으로 동일시 될수가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의 영원한 존속이 있다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이든 하나님의 제제나 억제에 의해서 인간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크다.매우 중요한 요인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개념은 자연의 질서의 온전한 균형성이 잡혀있다는것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대부분의 대중들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외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앞에서 언급한 이세계는 나를 위하여 존재한다거나 이세계는 나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라는 사상을 극복하여야 하지만 이세계는 현실적으로 나를 위하여 이세계는 존재한다는 본질을 스스로가 극복할수있는 마음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를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스스로 알고 포기할수있는 인간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사상을 인간은 가능하다면 사상으로서 그리고 철학으로서 유지를 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인간은 신과 같은 생존을 할수가 없다는것을 스스로 인정을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어느정도 존중할수있는 마음은 비록 이기적인 유전자를 내재하고 있을지라도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스스로 약화 시키거나 어느정도는 양보할 정신적으로 건강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속에 인간은 있기 때문이다.앞서의 언급이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는 의학이나 의술 약품의 발달을 위한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에 대한 발전은 인간의 여러가지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는것도 사실이며 인간이 과연 의술의 발달이 의학이나 약품의 발달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와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는 철저히 왜곡되어지거나 파괴되어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을 인간의 발전은 인간의 과학의 발달이나 전쟁과 같은 재해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필요하게 되어있으며 전쟁은 자연의 질서에 있어서라면 엄청난 태풍이나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한 결과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크다. 인간에게 본질이라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묻는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입장에서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본질을 말할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나는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단지 나의 정신사를 혹은 동양인의 정신사를 바탕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다.하지만 본질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했을때 나의 현실과 결코 떼어서 인간의 생존을 말해야 할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인간의 본질에 두지 않을수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서양사의 언어를 가지고 동양의 사상을 조율하는것 처럼 언급하는것 같지만 나의 중요한 사상인 나는 하늘아래 살고있다는 사상말고는 내가 받아들일수있는 사상은 없다라고 나는 단정적으로 말하거나 천지인이라는 사상이나 천지 불인이라는 사상을 생각했을때 하늘과 땅은 인하다라는 개념이나 하늘과 땅은 불인하다는 것을 언어적으로 혹은 사상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해서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를 생각했을때 천지인이라는 언어나 천지불인이라는 언어를 합쳐놓았다러가 나는 하늘아래 살아간다는 말을 합해놓은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에서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해본다고 할때도 나는 받아들일수가 있을것이다.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인간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한다면 인간의 이상은 영생에 대한 갈망이나 아니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수있다는 소망을 인간이라면 할수밖에 없다고 할때 인간은 생명으로서 영생을 살수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수있을것이다.현대의 모든 종교들은 영생을 말하고 영생을 바라고 영생이라는 의미를 어느 언어에서 붙잡아 왔는가를 언급할때 하나님이라는 언어나 부처님이나 예수그리스도라는 언어나 마호멧과 같은 사상에서 부터 영생할수있다라는 언어나 믿음이나 찬송이나 기도를 구했다라는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할수있는데 과연 실제라는 언어나 현실이라는 언어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과연 영생이라는 실제가 실재한다거나 생명체로서 과연 영생은 실현 가능한가라고 물을수있을까.기독교나 천주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종교나 기도 그리고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받는 다는 가능성을 믿는것은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좋교적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다라고 말할지라도 개인적으로 그것은 성서를 바탕으로 믿는 종교나 신앙으로서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이다.그것은 영생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넘어서는 사상이며 종교이며 믿음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마음이며 영생이라는 말은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라는 말이나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나는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영생과 죽음은 영생이라는 것이 종교적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편입되는것인가 라는 의문과 만약에 영생이라는 말이 실제적이라면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감상하고 있는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한번쯤은 심도있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상태로 있음을 선언하는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지 영생이라는 개념은 성립이 되기 위해서는 전자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청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성립시키고자 하는것인지 아니면 전자를 망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인지를 한번쯤은 깊은 성찰이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을뿐이다.앞에서 영생을 위한 조건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언어나 신앙이 깊다라는 의미와 찬송이나 기도를 열심히 진심으로 한다라고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인간은 어떻게 접근해 있는가라는 문제와 어떻게 행위하고 있는가를 인간적 자연주의자들은 묻지 않을수가 없다는 사실이다.영생이라는 개념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현대의 믿음에 대한 평가와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어떻게 행위하였는가에 의해서 영생이라는 개념이 판단될것인가른 또한 인간적 자연주의 자의 생각이라는 분명한 어조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바라보고 있는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속하여 있는 상태를 추구하는 영생이라고 인간적 자연주의자들은 말하고 싶은것이다.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라는 언어와 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파괴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수없는 생명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하물며 인간의 문명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파괴하지 고 믿음이나 신앙으로 혹은 찬송이나 기도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영위할수 있는것처럼 신앙이나 종교를 사는것이 현대의 모든 종교인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수가 있다.경제적으로 부유한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미친소리나 어리석은 생명체가 아니고 서는 할수없다.나의 부의 증가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철저히 그리고 잔인한  파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부의 성립이 죄라고 할수가 있는것은 천지인이라는 언어가 천지는 무엇 때문에 인한가와 천지는 불인이라는 언어가 무엇 때문에 불인하지를 인간은 모든 생명체적인 관점에서 천지는인하다라는 언어를 고안해내고 천지가 인 하다라는 과정을 인간은 만들어가야 하는 의무를 인간에게 있다라고 한것과 마찬가지로 천지불인의 언어가 하늘은 무엇 때문에 불인한가를 인간은 생명에로서 천지불인의 문제를 도출해내야 하는것이다.그 본질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언어에서 연관성을 도출해내야 하는것이다.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세계가 극락이라는 언어나 천국이라는 언어가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면 지구라는 환경과 광활한 우주의 환경속에서 인간은 어쩔수없이 지구라는 환경에서 진화나 유전적 조건들을 받아들이거나 극복해가면서 생명체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왔다.과연 인간이 어느정도의 발전을 해야 하는가를 물을때 과학의 힘을 빌려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세계와 인간이 이성이라는 힘을 빌려서 인간이 도달할수있는 한계 아니면 인간이 종교적인 힘을 빌려서 인간이 도달할수있는 한계가 있다라고 할때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언어는 매우 의미있는 언어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종교를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다고 할때 하나님과 같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같이 감상하고 있는것이 영생이라는 사실을 인간은 한번쯤은 인간이면서 생명체로서 추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종교의 목적인가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속에 생명체로 있음을 선언하는것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현상속에 인간이 있다는 논리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에 속한 영생인가를 한번쯤은 돌아보아야 한다.사탄이 아담과 이브에게 유혹하면서 먹도록한 선악과를 먹음으로 해서 인간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명제를 어떻게 행위하는가를 위한 인간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간은 잊고있겠지만 만약에 인간이 신이될수있는 방법론의 발견이나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언어로 신이될수있는 논리를 반드시 만들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마찬가지로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을수있는 방법론을 구현하려는 역사를 인간은 구현하여왔다라고 할수있다.플라톤의 논리나 소크라테스의 논리도 이에속한다라고 단정짖는것은 너자신을 알라라는 언어가 나는 어떻게 하면 신이될수있는가를 알기위해서 인간은 생존하며 역사를 만들어왔다라는 것은 분명하며 인간은 죽지 않으려고 의술이나 과학을 발견하며 법칙이나 이론을 만들어내거나 인간의 언어로 구현해내는 역사를 이어왔다라고 말할수가 있는것이다.전자의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라는 언어가 어떻게 실현되어왔는가를 말할때 혹은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실현하여왔는가는 첫번째가 믿음이라는 언어이며 신앙이라는 언어이며 기도나 찬송이라는 언어가 신이되기 위한 조건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만약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언어가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라는 사탄의 유혹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절대적으로 그렇게 될수없는것은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전제로 하는 어떠한 언어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영원히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 구원을 얻는 믿음이나 신앙이나 기도나 성경암송이나 찬송가를 부를지라도 그속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사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지적 하고 싶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너희도 신과 같이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 언어와 예수의 언어는 무엇때문에 동일한가라라는 의문을 말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의 근본은 어떻게 행위하여야 하는가와 어떻게 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때 반드시 인간은 전제해야 하는 행위는 모든 자연의 질서에 스스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선 예수그리스도는 행위하지도 전제하지도 언어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사상은 인간에게 하나님깨서 운영하라는 명령이나 인간에게 사명을 주었더라고 말할수는 있을것이다.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명제를 인간은 어쩔수없었다라는 변명을 할수도 있고 하늘과 땅의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이 사냥을 하거나 아니면 땅을 파헤치고 광물질을 체굴하거나 바다에서 각종 물고기나 인간이 먹을수있는 물고기를 잡는것에 대해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관점에서 인간은 행위하지도 않고 있으며 이성적으로나 본능적으로라도 인간은 결코 접근하지 않고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간은 성서의 언어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사상의 새로운 철학적 접근이나 인간이 사회적 규칙이라는 입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인간은 행위하는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고 인간적 자연주의자는 말하지만 예수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나 철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사탄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시고 참보기에 좋았어라로 변하여가는 상황이나 세상을 인간은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한다.인간적 자연주의자인 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사상을 반666이라고 일컬으며 사탄이 천지를 멸망시키시고 참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세상이 구현되려는 세상을 인간은 살고있는데 이것을 666이라고 나는 정의내린다.반666이란 이세계가 인간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은 세계 이세계가 모든 에너지 현상이 가장 충만한 세계 하나님께서 최초로 창조한 각종 창조물들이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있는 상태를 반666이라고 말하는것이며 666이란 성서에서 말하는 머리가 여섯달린 괴물이 이세계를 멸망 시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한 6일의 모든 현상들이 인간의 믿음이나 인간의 권력이나 인간의 경제적 발전 인간의 이성의 극명한 발전 인간의 지극한 인간적인 세상이 펼쳐진 세상 인간의 지극한 믿음이나 기도 찬송 성서가 가르치는 것들을 열심히 따르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의미를 모르면서 인간중심주의의 위대성이나 철학이나 문화나 과학의 발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의 구성요서인 월요일이 악마가 되며 화요일이 악마가 되며 수요일이 악마가 되며 목요일이 악마가 되며 금요일이 악마가 되는 현상을 666이라고 말할수가 있는것이다.인간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공자나 맹자 아니 마호멧이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문화나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말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이해하고 행위하지 않는 철학이나 사상이나 믿음이나 종교는 인간의 본질적 사상이라고 말할수가 없는것이다.인간은 아니 나는 솔직히 죽고싶지 않으며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결코 가지 않았다라고 말할수는 없다.하지만 인생을 경험한 생명체로서 다시 이땅에 태어나서 다시 인간이며 생명체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따르고 행위할것을 사상으로서 그리고 문화로서 제시할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인간적 자연주의자의 삶은 대단한 삶을 사는것이 아니라.자기의 수입의 일은 현대사회의 교회나 성당이나 모스크에서 행위하고 있는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철학을 행위하는것을 시작으로 하는것이며 자기의 십일조는 첫번째 엄청난 나무를 식수하는것이며 두번째 십일조의 일부는 산과 강과 대지의 파괴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회복하는것이며 세번째 십일조의 일부는 바다에서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보 보기에 좋았더라를 회복하는 일에 사용하여야 하는것을 사상이나 철학으로 행위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사탄이 천지를 명망시키고 보기에 좋았더라가 현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것이다.개인적으로 이러한 운동이나 혹은 사회현상이 실제적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월요일의 저주가 시작될것이 자명하며 화요일의 저주가 시작될것이며 수요일의 저주가 시작될것이며 목요일의 저주가 시작될것이며 금요일의 저주가 시작될것이다.마지막으로 토일일의 저주는 땅이 일어나며 땅이 갈라지며 천지만물은 스스로 멸망하기를 사람이 한사람도 살아남지 않을때 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수가 없는것이다.이언어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나의 인생은 나스스로가 가엽다라는 언어의 끝없이 쓰며 스스로 자책하는 인생을 살아왔음을 부인하지 못한다.인간의 역사속에서 수많은 예언을 해왔고 그예언이 맞다 틀리다 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이루어졌다 라는 증명을 하려는 경향을 보여온 역사를 인간은 살아왔었다.하지만 분명한것은 나의 언어가 실제적으로 일어날것인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단지 상상에 불과한것인지 확신을 하지 못한다.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것은 천지만물이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라는 권유가 이언어를 통해서 인간에게 전하고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하지만 믿음이나 신앙 혹은 기도는 아니다.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는 기도나 신앙이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닌 한구루의 나무를 심는 행위가 인간세계 전반에 행위할때만이 그행위가 숲이되어서 숲에서 각종 생명체들이 번창함으로 이루어지며 강과 바다에서 엄청나게 인간의 이익으로 잡혀져서 인간의 경제적이득이나 인간은 먹어야 하는 생명체를 어떻게 절제와 절약하며 함부로 살생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삶을 살때만이 이루어지는 천지자연의 질서이다라고 말할수밖에 없는것이 나의 최선의 언어인것이다.만약에 인간적 자연주의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지금 부터라도 자기의 수입의 십퍼센트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인생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권유하며 오늘 내가 심는 한구루의 나무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것을 믿음으로 한구루 나무를 심는다는 사상을 행위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한구루 나무를 심는 행위는 신의 길이며 인간의 길인것은 틀림이 없다.그다음에 너희도 신과 같이 되리라.너희는 죽지 않으리라를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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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용호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시간 마련합니다.
함께 읽는 이 글 란은 종교 정치 색이 짙은 글은
운영자가 다른 게시판으로 옮기거나 삭제합니다.
참고하셔서 다른 게시란으로 옮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곁에 있으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함께 하시는 분들과
즐거움이 그득하시길…….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역시 난 행운아라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더 할 수 있는
차암 기분 좋은 일들이 분주하게 진행되시길 빕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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