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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의 길 위에서] 文人들 흔적 찾아 떠난 늦여름 남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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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약초 농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24회 작성일 15-09-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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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人들 흔적 찾아 떠난 늦여름 남도 기행

: 오태진 /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청준 초라한 生家 마음 아팠고 영랑 집에선 영롱한 詩語 떠올려
습지 속 순천문학관 생명 숨쉬고 이병주문학관은 지리산 기운 충만
청마 놓고 거제·통영은 다투기도… 강진서 거제까지 文香 그윽한 길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장흥반도 남쪽 끝 진목리까지는 군청에서 35㎞ 길이었다. 노염(老炎)에 지친 듯 적막한 회진 면 소재지를 지나 산허리를 몇 차례나 돌았을까. 언덕에 고만고만한 집이 다닥다닥 붙은 진목 마을을 만났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은 콘크리트 담과 벽을 꽁꽁 둘러쳤다. 그 사이로 쩨쩨하게 난 고샅길 바닥에도 시멘트를 발랐다. 두 번 꼬부라진 골목 끝에 대문도 없는 네 칸짜리 일자 기와집이 있다. 작가 이청준의 생가다.

남향집 마당에 서면 간척으로 메운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이청준 어릴 적엔 집앞까지 바닷물이 들던 갯벌이었다. 그 갯벌에서 60년 전 이청준이 도회지 중학교로 유학 가기 전날 모자(母子)가 게를 잡았다. 홀어머니는 가난했지만 아들을 맡아줄 친척집에 빈손으로 보낼 순 없었다. 이튿날 이청준이 삼백리 버스 길을 가 친척집에 닿자 게들은 상해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친척 누님이 코를 막고 게 자루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이청준은 자기가 버려진 듯 비참한 심사가 됐다. 가난과 어머니는 이청준 문학의 숨은 씨앗이었다.

이청준이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가난에 몰려 집까지 팔아야 했다. 아들에겐 집 판 일을 숨긴 채 빈집을 드나들며 먼지 털고 걸레질했다. 아들이 고향에 다니러 오자 내 집인 양 밥해 먹이고 하룻밤 재워 보냈다. 어머니는 신새벽 눈 쌓인 십리 산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까지 배웅하고 돌아선다. 눈길엔 모자가 걸어온 발자국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온기가 밴 아들 발자국만 밟고 온다. 이청준이 단편 '눈길'로 쓴 사연이다.

이청준 문학의 태 자리 옛집을 장흥군이 사들여 기와 얹고 손질해 문학 순례자들에게 열었다. 마루에 작은 나무 밥상 놓고 방명록을 올려놓았다. 안방엔 이청준이 쓴 어머니와 고향 집 이야기들이 걸려 있다. 따스하면서도 애틋한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5년 전 떠난 그의 체취를 맡았다.

진작부터 와보고 싶어했던 바람을 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언짢았다. 방 둘에 남은 그의 흔적이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안방 문에 기대놓은 이청준 사진은 한쪽이 찢겼다. 집 입구부터 곳곳에 거미줄이고, 문간방 문설주를 벌레가 갉아먹는지 나뭇가루가 널려 있다. 돌아 나오는 골목길 뙤약볕이 더 따가웠다.

지난주 느지막하게 여름휴가를 냈다. 전남 영암부터 경남 거제까지 며칠 남해안을 가며 쉬엄쉬엄 문인들의 고향에 들렀다. 영랑 생가는 강진군이 30년 다듬어 온 국가 민속자료다. 영랑 김윤식이 1903년 태어나 유학 시절 빼고 마흔 몇 해를 살았다. 초가 안채 옆 삼백 살 동백숲에 시비(詩碑)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이 서 있다. 우물가엔 '마당 앞 맑은 새암을'이, 붉은 감잎 날아들던 '장꽝'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가 새겨져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뜰엔 모란을 심어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기렸다. 꽃 대신 열매가 벌어져 야무진 씨앗을 드러냈다. 사랑채엔 배롱나무가 진분홍 꽃가지를 드리웠다. 영랑이 심은 은행나무는 거목으로 자랐다. 거기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시인의 곧은 삶과 영롱한 시어(詩語)를 떠올렸다.

순천문학관은 차가 닿지 않는 습지 뚝방길가에 들어앉았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장난감 같은 '갈대 열차'만 다닌다. 탈것 대신 습지 속 자전거길을 1km쯤 걸어 들어갔다. 우거진 수초 사이로 새와 게와 물고기, 갖은 생명이 숨 쉰다. 이런 문학관도 있을 수 있구나 싶다. 초가 두 채에 순천 사람 정채봉과 김승옥의 흔적을 모았다. 박이 소담스럽게 열린 정채봉관에선 배냇저고리에 눈길이 갔다. 태어나 얼마 안 돼 어머니를 잃어 엄마라고 한번 불러보지 못했다는 그가 배냇저고리를 평생 간직한 마음을 생각했다.

이병주문학관은 지리산 남쪽 그의 고향 하동 북천면에 자리했다. 깊은 골에 알프스 산장처럼 지붕 높은 건물이 시원스럽다. 선 굵고 스케일 큰 '기록자·증언가로서 소설가' 이병주를 닮았다. 한창땐 한 달에 원고지 천 장씩 써냈다는 몽블랑 만년필이 전시관의 상징으로 서 있다.

재작년부터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진주(晉州) 시인 유홍준이 가지와 오이를 한 접시 차려준다. 주변 비탈을 괭이로 일궈 가꿨다고 한다. 벌목장 통나무 메고 나르는 산판부터 정신병원 관리사까지 온갖 궂은 일을 해 '정육점의 시인'으로 불렸던 그다. 생전 처음 하는 책상 일이 답답해 틈틈이 고추 농사 지어 마흔 근을 거뒀단다. 이젠 김장 배추 씨를 뿌릴 참이다. 달도록 공기 맑은 곳에서 봄 산나물 캐고 여름 계곡 다슬기 잡는다니 이보다 좋은 일터도 드물겠다. 좀이 쑤신다는 엄살과 달리 얼굴이 해맑다.

통영 청마문학관과 생가는 바다를 바라보는 망일산 기슭에 올라앉았다. 한 사람에게 두 생가가 있을 리 없지만 거제에도 청마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이웃한 두 도시는 청마 유치환이 자기네 태생이라고 다퉈 왔다. 거제는 청마가 둔덕면에서 태어나 두 살에 통영으로 이사했다고 말한다. 통영은 청마의 호적부와 고향에 관한 글을 내세운다. 복도 많은 청마지만 그의 생가를 두 곳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문학 기행의 흥이 식는다. 그래도 여행길 내내 그윽한 문향(文香)에 늦더위를 잊었다.

필자 약력 - 오태진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198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문화부·경제부 기자와 LA특파원, 문화2부 부장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취재 현장으로 1985년 멕시코 대지진과 콜롬비아 화산폭발, 1990년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북총리급회담, 1992년 LA폭동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두 차례에 걸쳐 4년 남짓 ‘맛 기행’을 연재했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해 주말이면 카메라 메고 길을 나선다. 오피니언면에 쓰고 있는 에세이 ‘길 위에서’는 그 주말 여행의 기록이다. 책은 ‘오태진·이동진의 시네마 기행’(2002년·공저) ‘내 인생의 도시’(2011년) ‘사람 향기 그리운 날엔’(2013년), 세 권을 썼다. 신문엔 고담준론뿐 아니라 독자가 잠시 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조선일보 2013.09.05




農夫 崔奉煥이 傳하는 삶의 香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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