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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詩的인 길 안내가 내비게이션보다 좋은 이유 - 최영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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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약초 농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13회 작성일 15-11-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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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的인 길 안내가 내비게이션보다 좋은 이유
: 최영철 시인

외진 시골로 옮겨와 산 지 5년
벌판 도열한 벚나무가 길 안내, 마당에는 누군가 주고간 고추 봉지
무엇이든 오래 걸리는 농촌에서 간절함 진해지니 詩농사 절로 풍작
은근히 숙성된 갈망의 純度 높아져



최영철 시인
외진 강마을에 들어와 산 지 5년째다. 뜸 들인 기간도 없이 덜컥 보따리를 싸버려서 그랬는지 처음 1, 2년은 도시의 친구들이 여럿 찾아왔다. 정말 살림살이 전체를 옮긴 것인지 주변환경은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맞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경우 대충 길을 설명해 주지만 그것은 곧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고속도로를 나와 읍내를 통과하는 데까지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강을 넘어 들판으로 접어들면 이렇다 할 지형지물이 없는 막막한 들판뿐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십여 분이면 올 수 있는 길을 한 시간쯤 헤매다 도착하는 경우도 있고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까지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분에게 고작 해준 말이 "조심해서 살살 오세요"였다. 그 말은 지인들 사이에 나의 우매함을 대변하는 관용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 오명을 덮어쓰게 된 원인은 내가 아주 외진 시골에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왔다 간 분 중에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대놓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나는 한술 더 떠 마을로 오는 길을 이렇게 설명해보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셨으니 이제 우선 차의 속도를 절반으로 줄이시고, 한참 잎이 물들고 있는 벚나무들의 사열을 5분쯤 받으신 후, 산으로 접어드는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인근 축사의 쇠똥 냄새를 5분쯤 맡으시기 바랍니다. 코를 틀어쥐고 차창을 닫으려 하시겠지만 그 상황을 감수하지 않으면 원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하시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고 자랐던, 또 어느 날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온 고향의 냄새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가슴을 펴 그것들을 심호흡으로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뒤라야 왼쪽으로 도열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 강의 환영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며, 잘하면 도로 중앙을 점거한 채 낮잠에 빠진 잡종개 한두 마리쯤 만날 수도 있으니 그들이 짓밟히지 않게 조심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곤 "당신의 시간을 50년 전쯤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귀띔도 하곤 하는데 그건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그 나름의 근거가 있다. 5년 전 부산 수영의 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한동안 대문을 닫고 살았다. 이렇다 할 연고도 없는 낯선 마을이니 응당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가보니 현관 앞마당에 검은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도시 할머니들처럼 봉투 값을 아끼려고 쓰레기를 그렇게 버린 줄 알았다. 도시 할머니들은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대문 앞에 살포시 놓고 가는데 여기 할머니들은 기운이 넘쳐 이렇게 와일드하게 마당 안으로 집어던지고 가는구나 생각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검은 봉지 안에는 새벽이슬을 촉촉이 머금고 있는 고추와 상추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 무단투기는 농사철에 수시로 계속되었고 내용물도 수시로 바뀌었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분이 던지고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미여서 묘안을 냈다. 일이 있어 나갔다 올 때마다 음료수나 빵 같은 걸 사서 이웃집 마루에 몰래 올려놓고 왔다. 다행히 낮에는 모두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고 빈집들이었다. 그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가끔 골목 어귀에서 마을 어른들과 만나면 혼잣말처럼 먼산을 보며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누가 우유를 한 통 놓고 갔어."

"저희 집에는 누가 호박을 한 덩이 놓고 갔어요."

지난해 추수철에는 건너편에 사시는 어르신이 막 탈곡한 햅쌀을 한 자루 가져 오셨다. "촌에서 농사도 안 짓고 뭘 먹고 사느냐?"고 걱정하셨다. 사실 이 외진 시골마을로 들어오며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나의 주업인 시(詩) 농사였다. 이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시골에서 과연 시가 쓰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나는 눈물이 더 많아졌고 지난 5년간 더 많은 시를 썼다. 시의 동력을 간절함이라 본다면 나는 더 간절해졌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도시에서는 사이다를 마시고 싶으면 슬리퍼 끌고 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다른 용무들과 함께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 다른 필요한 것들과 함께 줄 서서 기다리며 그 갈망들은 천천히 숙성된다. 그 힘으로 드디어 들이켜게 된 사이다의 맛은 더욱 시원하고 경쾌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우리 삶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도 이를테면 그런 간절함일 것이다. 모든 욕구와 욕망은 바로 해결되고 해소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일정 시간 유보되면서 자체 검증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 과정을 참지 못한다.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가부(可否)가 결정되어야 하고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것을 저지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상도 불사한다. 층간 소음이나 추월 때문에 빚어진 여러 불상사를 이미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보상도 처단도 즉각적이고 곧 아무렇지도 않게 잊힌다. 충동적인 욕구가 은근하고 지속적인 바람으로 숙성되어야 이윽고 간절함의 정점에 이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배설처럼 해소되어 버리고 만다. 절실해질 틈이 없다,






출처 : 조선일보 2015.11.11




農夫 崔奉煥이 傳하는 삶의 香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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