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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내가 이미 갖고 있는 幸福의 이름들 -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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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약초 농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72회 작성일 16-01-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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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미 갖고 있는 幸福의 이름들
: 황주리 화가

"나, 져도 되지?"라고 물으면 "그럼!"이라 답해주는 그 사람,
져도 되고, 못 해도 되고 살쪄도 되고, 늙어도 되는
무한 긍정의 "괜찮다"는 답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응답



황주리 화가
"덕선아, 나 져도 되지?"(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에서 바둑기사 택이가 좋아하는 덕선에게 하는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바라는 건 이렇게 묻는 말에 "그럼!"이라 해주는 무한 긍정 아닐까? "나 져도 되지?" "나 못해도 되지?" "나 살쪄도 괜찮지?" "나 늙어도 괜찮지?"에 "응!"이라 해주는 것. 그러니까 사랑, 그건 나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내가 욕하는 상대를 같이 실컷 욕해주며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내게 늘 그렇게 말해준 이는 27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성공 못 해도 괜찮아. 결혼 안 해도 괜찮아. 힘들면 돌아와도 괜찮아."

1988년 나는 뉴욕 맨해튼에서 외로운 유학 생활 1년차였다. '응답하라…'를 보면서 1980년대를 떠올리면 세월의 속도에 섬뜩해진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산울림의 '청춘'을 80년대에 들었을 때는 딱 내 마음 같아 슬펐다.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1년 뒤 든든한 후원자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떠나는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펑펑 울면서 냉장고 속의 음식들을 정리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달나라를 처음 밟은 암스트롱만큼이나 외로웠던 시절 참 많은 여행을 했다.

내 인생이 내게 준 선물이 있다면 그건 여행이었다.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들은 이런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 인생에서 남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닌 기억이다. 나를 채워준 건 그 여행의 기억들이다. 그 기억 중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중국 윈난성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커다란 절에서 나는 돈벼락을 맞았다. 아무도 없는 큰 절에서 수많은 불상의 모습에 마음을 뺏겼는데 문득 사방에 돈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내 주머니에서 떨어진 줄 알고 지폐 몇 장을 얼른 주웠다. 하지만 눈을 들어 위를 보니 수많은 중국 인민폐가 회오리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잠시 흥분했던 감정을 수습하고 나니 열려 있는 불전함이 눈에 들어왔다. 내 것인 줄 알고 주머니에 넣었던 돈을 꺼내 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림=황주리.

회오리치는 돈벼락을 피해 법당문을 닫고 빠져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꿈 아닌 꿈을 통해 내가 받은 메시지는 '아~, 돈이다. 아니 돈이 아니다. 아~, 꿈이다. 아니 생시다. 그게 그거다.' 뭐 이런 모호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재밌는 꿈만 꾸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크고 작은 슬픈 꿈들로 얼룩져 있다. 시간은 쓰나미처럼 내 청춘을 쏜살같이 관통해 지나갔고, 2016년 나는 우리 나이로 거짓말 같은 육십 살이 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많다고 생각했던 나이, 우리 어머니가 남편을 잃었을 때보다 한 살 많은 나이다.

젊은 시절 그림 한 점 못 팔다가 팔십이 넘어 국제적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노화가들을 바라보며 나는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진다는 건 결코 경제적인 측면만은 아니다. 그 나이에 그림이 아무리 비싸게 팔린다 한들 돈벼락을 맞는 꿈을 꾸는 것과 뭐가 다르랴. 백 살까지 살면서 꿈을 버리지 않으면 시인도 화가도 다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세상은 좋아지리라. 아니 매일 딱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과한 행복은 다 먹을 수도 없는 제과점과 같다는 어느 스님 말씀을 따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행복의 이름들을 적어본다. 햇볕과 공기와 꽃들,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람과 동물들, 세상의 모든 풍경과 함께했던 순간들로 인해 행복하다. 내 부모를 부모로 만나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 내 형제가 세상을 떠났어도 함께했던 기억들로 행복하다. 오늘 같은 겨울날 늘 오빠 같던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와 후후 불어가며 뜨거운 만두를 사먹고 집까지 걸어오던 옛 기억이 행복하다. 재작년 세상 떠난 동생이 캄캄한 하늘의 별로 떠서 내 길을 안내해주는 것 같아 슬프지만 행복하다.

문득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가 떠오른다. 연평해전에서 천안함에서 자식을 잃은 당신들이 아프다.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아프다. IS에 가담해 낯선 나라 시리아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 외로운 청년의 어머니, 당신이 아프다. '나 그대가 아프다.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나 그 사람이 아프다.'하는 노래만큼이나 아들을 잃은 지 일 년 반이 되었는데도 칫솔 하나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신 우리 어머니가 너무 아프다. 그동안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는 일로 슬픔을 달랬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렇게 위대한지 나는 그때 알았다. 어머니 옆에서 같이 드라마를 보는데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노랫말 하나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내 영혼을 비추던 어느 봄날의 햇살,' 하지만 나는 이제 봄을 기다리지는 않겠다. 겨울이어서 좋다고. 이왕이면 겨울답게 좀 더 추워도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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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20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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