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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심훈기념관에서 만난 심훈의 객기 부린 기자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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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193회 작성일 19-04-0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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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29.일.곡성 심청한옥마을 당진,남원,곡성을 春風에 실려 두둥실 떠 가다 2015.3.28.토~29.일(1박2일) 어디어디를.. 충남당진 심훈기념관ㆍ전북남원 실상사 백장암ㆍ전남곡성 심청한옥마을과 태안사 지인이 운영하는 K답사에 낭군님 혼자 다녀 온 여행기를 사진과 글을 옮겨 재편집한 기록물입니다. 집안 중요한 일이 생겨 본인은 부득이 불참하게 되었는데, 태안사는 예전에 다녀와 익히 알고 있고, 나머지 유적지는 처음 접하기에 함께 사진여행이라도 즐기고자 이곳에 선 보입니다. 충남 당진 심훈기념관 필경사 필경사 뒷뜰의 대나무밭 심훈(본명 대섭, 1901~1936)이 여기 잠들다 심 훈(沈熏) 그 날 이 오 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글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구려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 훈 선생 지으시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백림 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장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이천삼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년 8월 10일 새벽 베를린올림픽마라톤에서 손기정.남승룡 선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쓴 즉흥시로 이 시는 심훈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전북 남원 실상사 백장암으로 보물 제40호 백장암 석등의 화사창(火舍窓)에서 바라 본 대웅전의 주인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 백장암 가는 길 백장암가는 지름길인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국보 제1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南原 實相寺 百丈庵 三層石塔)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이다.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 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 (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석탑의 3층은 천인좌상(天人坐像) 혹은 사방불(四方佛)을 조각했으며 특히 난간을 돌로 새긴 것이 특이하다. 지붕돌(屋蓋石)5계단 받침대가 없다 2층은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조각했다 석등의 연꽃, 꽃부리가 위로 향한 앙련(仰蓮) 대웅전 글씨는 당나라 유공권(柳公權 778~865)의 글씨체를 모각했다 대웅전의 주련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위대한 대법왕이신 부처님은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단점도 없으시며 또한 장점도 없으시다 本來非皁白(본래비조백)-본래부터 검지도 희지도 않으시다 隨處現靑黃(수처현청황)-아무 곳이나 사시사철 나타나신다 (중생을 구제하신다) 산신각의 주련(柱聯) 영산석일여래촉(靈山昔日如來囑)-옛날 영산에서 여래께서 부탁했듯이 방진강산도중생(放鎭江山度衆生)-가르침을 놓으셔서 강산을 누르고 중생을 구제하시니 만리백운청장매(萬里白雲靑嶂埋)-만리 흰구름이 푸른 봉우리를 에워싸네 운차학가임개정(雲車鶴駕任開情)-구름가마를 학이 이끌고 마음가는대로 정을 열었네 백장암(百丈庵) 백장암은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홍척대사(洪陟大師)가 창건한 실상사의 참선도량이다. 암자 이름이 된 '百丈'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유명한 법문을 남긴 중국의 선승(禪僧)의 이름이다. 암자 이름에서 어떤 수행자라도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지 말라는 백장스님의 준엄한 꾸지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백장암의 백미는 지리산 조망에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왼쪽의 반야봉까지 무려 30km 준령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암자의 수행자들이 왜 꽃보다 신록을 좋아하는지 비로소 다시 접어든 지리산 자락에서 풀린다. 꽃은 화려하나 혼이 달아나는 것 같고, 신록은 담백하나 혼이 스며 있는 빛깔인 것이다. 석등과 탑은 달밤에 볼 일이다. 템플스테이하거나 달빛 비치는 밤이면 더욱 좋다. -달빛에 돌탑이 눈을 뜨네, 지리산 백장암, 장남기님이 주신 자료에서 인용- 실상사경내에 편운(片雲)화상부도가 있는데 부도의 명문에는 견훤의 연호인 정개(正開)가 있다. 궁예도 수덕만세라는 연호를 썼고 왕건도 천수라는 연호를 썼다. 편운화상은 홍척의 제자였다. '정개'명편운화상부도탁본('正開'銘片雲和尙浮圖拓本) 創祖洪陟弟子-(실상사)를 창건한 조사 홍척의 제자이며 安峰創祖片雲和尙浮圖-안봉사를 개창한 편운화상의 부도이다. 正開十年庚午歲建-정개 10년 경오년(910년)에 세운다. 삼라망상(森羅萬象)이 지리산 연봉아래 펼쳐진다 향약(鄕約)은 북송의 여씨형제들이 만든 고향의 약속입니다. 中宗시 靜菴 조광조가 적극 장려하였으며 전북 태인의 고현동 향약이 으뜸이다. 좋은 일을 서로 권하고(덕업상권德業相勸), 나쁜 일을 서로 규제하고(과실상규過失相規), 올바른 예절과 품속을 서로 지키고(예속상교禮俗相交), 어려운 일에 서로 돕는다(환난상휼患難相恤)를 이름이다. 구룡천(九龍泉) 얼마나 가물었으면 구룡천에 물이 나오지 않는구나 나그네들을 편안하게 잠재워 준 지리산스위스관광호텔 심청한옥마을 유래 효녀 심청이야기는 1700년경 관음사 연기 설화에 의함니다. 장님 아버지를 둔 곡성의 효녀가 중국으로 건너가 진나라 황제의 황후가 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관음상을 만들어 고국으로 보냈습니다. 이 아버지는 딸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 흘린 눈물 때문에 눈이 밝아졌다고 하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추론하여, 서기 300년 곡성 땅은 철의 주산지였으며, 고대국가 형성의 중요한 자원이었던 철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상인과 무역선이 섬진강을 따라 드나드는 과정에서 곡성의 효녀가 중국 양자강 어귀의 보타 섬으로 건너가 귀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심청의 고장으로 떠오른 곡성군은 심청이 실천했던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인 효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전통한옥으로 된 심청한옥마을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연화화생설(蓮華化生說)에 의해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뱃사공에게 팔려가서 인당수에 몸을 던져 해왕의 제물이 되었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다시 화생(化生)하여 연꽃을 타고 사바세계로 다시 오게 되고 황후가 되어 그리운 아버지와 상봉하며 그 순간 눈을 뜨는 아버지... 우리의 효 사상의 극치이겠지요. 물레방아가 돌지 않는다. 따라서 방아도 찧지 않는다. 어떻게 자손과 마을이 번창할까? 연수원인 송정관이 송정가 창문으로 보인다. 세미나실 : 80명 수용, 식당 : 72명 수용, 분임토의실 : 10명 수용하며 방송실도 갖추었다.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공양미 삼백 석에 남경상인에 팔려간 심청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어올리 없지만 그래도 행여나 살아 돌아올까 그리워 그리워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객실 배치도 : 장미,국화,철쭉,심청, 산내음,들내음, 풀내음이 있으며 홈페이지 : http://sc-story.co.kr 전화 : 061-363-9910 주소 : 전남 곡성군 오곡면 심청로 178(송정리 274) 젖동냥으로 크는 심청 "여보시오 아주머님, 여보 아씨님네, 이 자식 젖을 좀 먹여주오. 나를 본들 어찌하고, 우리 마누라 살았을 제 인심으로 생각한듯 차마 어찌 괄시하겠으며,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불쌍하지 아니하오. 댁네 귀하신 아기 먹이고 남은 젖 한 모금 먹여 주시오." -심청전 중에서-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객실 철쭉 1번 초가집 댓돌에 신발이 외롭게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남원 실상사 백장암, 곡성 심청한옥마을을 마치고 태안사(泰安寺)로 들어서다 소 재 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원달리) 곡성의 태안사는 동리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로, 혜철선사가 구산선문의 하나로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시대의 태안사는 인근의 송광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넘어와 송광사의 사세가 크게 확장되면서 이 태안사가 크게 위축되었다고 한다. 태안사 능파각(泰安寺 凌波閣) 주차장을 지나면 첫 번째 마주하는 건물이 바로 이 능파각이다. 동리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 놓은 능파각은 태안사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누각이다. '능파(凌波)'란 미인의 걸음걸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 누각 밑을 굽이쳐 흐르면서 기포를 일으키는 물길을 가리킨 말인 듯 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물줄기다. 계곡의 양쪽에 있는 자연암반에다 낮은 석축을 올리고 길다란 통나무 두 개를 잇대어 걸친 위에 놓인 능파각은 정면 1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맛배 지붕의 건물이다. 난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천년의 세월도 찰나 같기만 하다. 세속의 번뇌를 이 다리를 건너면서 던져 버리고 불계로 입문 한다고 한다. 태안사는 6.25전쟁 때 대웅전을 비롯한 15채의 건물이 불타고 말았다. 그때 이곳에서는 지리산 빨치산과 경찰간의 격전이 벌어져 많은 경찰들이 희생되었기에 절 한 모퉁이에 추모탑을 세워 그들을 기리고 있다. 능파각은 태안사 건물 중 '일주문'과 함께 불타지 않고 남아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선사가 창건하고 고려태조 24년(941) 광자대사가 중수 하였으며 그 뒤 파손 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43년(1767)에 복원하였다. 그러나 원래의 능파각의 모습과 달리 복원되었다. 계곡에 가로질러 놓은 통나무도 현재처럼 각진 게 아니고 원목을 절반으로 나눈 반원형 이었다. 처마를 받치는 기둥도 전봇대처럼 매끈하게 깎은 직선이 아니고 자연목 그대로 사용해서 곡선미를 한껏 살려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일주문(一柱門) 다듬지 않은 지름이 거의 60cm가 되는 원목을 사용하였으며 앞뒤로 팔각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평방을 겹쳐서 일주문 전후에는 3具, 측면에는 1具의 空間包가 받치고 있다. 내3출목, 외4출목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앙설(仰舌)로 살미첨차들과 화려한 단청과 기둥 상부의 용머리 장식이 눈길을 끈다. 전면에는 桐裏山 泰安寺(동리산 태안사) 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지방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태안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원년(742)에 이름모를 스님 세 분이 세웠다고 전한다. 이후 문성왕 9년 (847년) 혜철 국사에 의해 선종사찰로 거듭 개산되어 구산 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뒤에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도량 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가 모두 이 절의 말사였다. 1925년에 최남선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 있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평했다. 6.25 때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15동의 건물이 불탔다. 그 뒤 다시 수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태안사에는 보물 등 문화재 9점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태안사로 들어가는 1.8km의 계곡은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녹음, 가을에는 짙게 물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광자대사탑비(廣慈大師塔碑) 보물 제275호,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원달리) 광자대사탑비는 광자대사를 기리기 위해 그 행적을 새긴 석비이다. 석비는 거북이 모양의 귀부(龜趺)를 맨 아래에 두고 그 위에 비문이 새겨진 비신(碑身)을 세운 다음 맨 위에 용으로 꾸며진 이수(螭首)를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는 비신이 파괴되어 그 일부가 석비 옆에 남아 있으며 새겨진 글자도 마모되어 부분적으로만 판독할 수 있는 상태이다. "조선금석총람"과 "해동금석원" 등의 문헌에 따르면 광자대사탑비는 고려 초 태안사를 고쳐 지은 광자대사의 탑비로 고려 광종 원년(950)에 세워졌다. 또한, 효공왕의 측근으로 불심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았으며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귀부는 아래에 얇은 받침돌을 두었고 귀갑무늬(거북등무늬)와 꼬리, 뒷발이 뚜렷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용머리는 목이 짧으나 생김새가 사실성을 띠고 있으며 비석 받침대에는 구름과 소용돌이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수에는 네 모서리에 몸을 감고 있는 용이 표현되었고 연꽃 봉오리가 세 곳에 얹어져 있으며 중앙에는 극락조로 보이는 새가 조각되어 있다. 비신의 일부가 소실되어 아쉽기는 하나 광자대사승탑과 함께 스님의 행적을 기리고 가람의 장엄함을 돋보이게 하는 귀한 탑비라고 할 수 있다. 광자대사탑(廣慈大師搭) - 보물274호 일주문을 막 지나 오른편 부도밭에 있으며 고승 광자대사의 부도당이다.높이는 약 3m에 달하고 지석대부터 상륜부의 보개까지 8각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 위에 탑신을 차례로 놓은 전형적인 8각원당형으로서 보물 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보물 제274호 이 승탑(부도)은 고려 초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대사의 부도로 고려 제4대 광종 원년(950)에 세워졌다. 이 부도는 기단부부터 옥개석과 상륜부 (꼭대기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8각형으로 이루어진 8각원당형 (八角圓堂形)으로, 신라시대 석조 부도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여러 단으로 중첩된 기단부의 맨 아래에는 저석과 좌대(받침대)를 대각선 방향으로 조각하였으며, 하대석의각 면에는 당초문(唐草文-덩굴무늬)을 정교하게 새겼다. 하대석 위에는 상단을 두었는데, 각 면에는 눈 모양의 안상(眼象)이 2좌씩 있고 그 위에 16엽의 이중 연꽃잎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 위에 단을 마련하여 몸돌인 탑신을 받치고 있는데, 이것은 2단의 팔각형 받침과 난간을 모방한 것이다. 탑신의 양 옆면에는 탁상에 놓인 향로를 두었고 좌우로 사천왕 입상이 양각되었으며 앞뒤 면에는 문 모양을 새겼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 양식을 따라 암키와와 수키와, 서까래, 부연 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륜부는 공양 그릇을 엎은 모양의 복발, 바퀴 모양의 보륜, 구슬 형태의 보주 등이 있다. 이 부도는 상하 비례가 우아하고 정교하며 완전한 상륜부 조각 또한 매우 우수하다. 시기적으로 앞선 적인선사탑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태안사 대웅전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셨다. 좌우 협시보살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후불벽 또한 본존불과 어울리게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한 극락회상도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근래 새로 중수하였으며 4벌대의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삼고 원형 초석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기둥위에서 결구한 다포양식의 겹처마 팔작 지붕 집이다. 전면과 측면의 중앙칸에는 주간에 2구의 공포를 얹고 나머지 칸에는 주간에 1구씩 내 3출목의 공포를 얹었다. 전면의 중앙칸에는 4분합 솟을 빗살문을 달았고 나머지 4칸에는 2분합 솟을 빗살문을 달았다. 태안사 대웅전 주련(柱聯)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부처의 몸은 전세계에 두루 퍼져 있고 三世如來一軆同 [삼세여래일체동]: 석가,비로자나,아미타 부처님은 다 같은 부처님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넒고 크게 원하는 것이 항상 끊이지 않으며 汪洋覺海渺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넓은 바다같은 부처님은 아득하고 궁함이 없으며 究竟淸淨微妙法 [구경청정미묘법]: 마침내 미묘한 법을 맑고 깨끗하게 하였으며 威光遍照利群生 [위광편조이군생]: 외경심이 모든 중생들에게 이롭게 두루 비춰주리라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혜철(惠哲)의 탑비인 적인선사비송(寂忍禪師碑頌)을 뵈려오려면 머리 숙여 배알하도록 해야한다고 하여 문이름을 배알문(拜謁門)이라고 했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 보물273호 적인선사탑(寂忍禪師塔, 惠哲 785년 원성왕1년~861년 경문왕1년) 보물 제273호 적인선사탑은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세운 혜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혜철의 시호는 적인선사이고 탑호가 조륜청정(照輪淸淨) 이어서 적인선사 조륜청정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승탑은 기단과 탑신, 옥개석이 8각형으로 이루어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신라시대 석조 부도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넓은 기단 가운데에 4각형 지대석을 2단으로 놓고 그 위에 8각 받침돌을 놓았다. 받침돌의 각 면에는 안상이 2좌씩 조각되어 있으며, 하대석의 각 면에는 사자가 1마리씩 새겨져 있다. 하대석 위에는 중대석을 4단으로 두었으며, 중대석 위는 활짝 핀 연꽃잎을 잘 조각하여 꾸몄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대좌 위에 놓여 있는 탑신은 낮은 편이나, 아래는 얿고 위는 좁아 안정감이 있으며, 각 면에는 문을 비롯한 다양한 문양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서까래와 추녀, 기왓고랑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륜부는 꽃이 위로 핀 연꽃 모양의 장식물, 공양 그릇을 엎은 듯한 장식, 바퀴 모양의 장식, 구슬 형태의 보주 등이 잇어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조성시기는 스님이 입적한 통일신라 경문왕 원년(861)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신라말 번성했던 禪宗思想의 근본 도량인 구산선문(九山禪門)이란 1) 가지산문 迦智山門 - 도의 道義 (장흥 보림사) 2) 동리산문 桐裏山門 - 혜철 惠哲 (곡성 태안사) 3) 실상산문 實相山門 - 홍척 洪陟 (남원 실상사) 4) 봉림산문 鳳林山門 - 현욱 玄昱 (창원 봉림사) 5) 사자산문 師子山門 - 도윤 道允 (영월 법흥사) 6) 성주산문 聖住山門 - 무염 無染 (보령 성주사) 7) 사굴산문 사崛山門 - 범일 梵日 (강릉 굴산사) 8) 희양산문 曦陽山門 - 도헌 道憲 (문경 봉암사) 9) 수미산문 須彌山門 - 이엄 利嚴 (해주 광조사) 을 말하며 신라말기 부패해가는 귀족중심의 교종 (敎宗: 종교의 교리, 부처님의 말씀만 중요시하는)을 벗어나서 깊은 산속에 참선(參禪)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 九山禪門이다. * 사崛山門의 사자는 門+者로 화장할 사 자 즉 불에 태우는 사 자입니다 태안사 일주문 앞에 자리한 연못, 가운데 삼층석탑이 보인다. 연못 가운데 자리한 진신사리를 모신 태안사 삼층석탑 이 석탑은 원래 사찰입구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있었으며 당시의 상태는 기단부 면석 1매와 탑신부 일부에서 유실된 보재가 있었으나 현 위치로 옮겨 보수하면서 완전하게 복원하였다. 탑의 구조는 당초 2층 기단인 3층석탑 이었으나 연못으로 옮기면서 기단부 지대석을 높여 탑이 전체적으로 높게 보인다. 탑신부의 각 옥개석 층급 방침은 4단이며 옥개석 상면에는 2단 괴임을 하였다. 상륜부는 모두 신제로 보충하였다 조성년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도지정 지방문화재, 자료 170호) 사진ㆍ글: 권진순 편집: 찬란한 빛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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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빛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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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내용의 글이 흐려서 이곳에 다시 옮겼습니다.

기자시절의 심훈

신문기자시절 심훈은 '객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원래 얼굴이 잘 생긴 호남인 데다
로이드형 안경을 쓰고 있어서 젊은 귀족인사 같았다.
그 안경도 시력이 약해서 쓴 것이 아니고
중국 상해로 밀항할때 가장을 위해 안경을 썼는데
그것이 습관화되어 계속 안경을 쓴 것이다.

이런 안경잡이 신사가 어느 날 친구 안석주와 구리개(지금의 을지로2가)를
걸어가다가 앞에 가는 일본 순경의 볼기짝을 툭툭 건드렸다.
순경은 누가 건드리는가 하고 돌아다 보았으나
그런 장난을 했을성싶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돌아다보고 살펴봐도 안경 낀 점잖은 두 신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번은 술기운에 종로를 거닐다가
파출소 앞에 보초 선 순사의 모자를 벗겨 냅다 도망쳐 소동을 빚었다.
그 순사는 뒤좇아가서 모자를 찾긴 했지만,
신문기자에다 경찰 출입기자라는 심훈의 직함때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친구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골려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2015년 3월28일 충남당진 기행 중 심훈기념관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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