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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이 서린 홍유릉에서 덕혜옹주도 만나며, 그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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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362회 작성일 19-06-19 01:43

본문


▲경기도 구리시 홍유릉..2019.6.15.토.오후


망국의 한이 서린 홍유릉에서 덕혜옹주도 만나며, 그 역사속으로 
2019.6.15.토..오후

오전에 동구릉 관람을 마치고 그 입구에서 허기를 달래곤
우리 애마는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으로 내 달렸다.
초여름이지만 날씨가 매우 더운 햇빛 쨍한 오후였지만,
일반왕릉과 차별화 된  황제의 릉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마지막 황녀인 덕헤옹주 만남은 흥분이었다.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고종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덕혜옹주, 

천재 동시작가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비극적인 삶을 보면서 
가슴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단에 드리우며...홍유릉부터 함께 할까요?

홍유릉 (洪裕陵) 사적 제207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번지 1호에 있는 홍릉과 유릉의 합칭. 

홍릉은 조선 제 3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 1대 황제인 고종(高宗)과 
명성황후(明成皇后)를 합장한 능이며, 
유릉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純宗)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를 모신 능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을 하나의 봉분에 모시고 있습니다.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과 비(妃)인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의 능이다. 
고종은 1919년 1월에 죽어 3월 홍릉에 초장봉릉되었고, 
명성황후는 1895년 8월 학살당하여 같은 해 10월 청량리 홍릉에 
장사했다가 1919년 1월 홍릉으로 이장했다.

유릉은 조선왕조 제27대 순종과 그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閔氏) 
그리고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尹氏)의 능이다. 

순종은 1926년 4월에 죽어 6월 이곳에 초장봉릉되었고, 
순명효황후는 1904년 9월에 죽어 11월 성동구 능동 유릉에 장사했다가 
1926년 6월 이곳에 천릉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66년 1월에 죽어 이곳에 묻혔다.

홍·유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받았다는 데 있다. 
즉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으며, 
양석과 호석 대신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를 세웠다.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과 무인석의 성장이 강조되었다. 
홍릉의 석인은 전통적 수법을 따르고 있는 데 비해, 
유릉의 것은 매우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다.






현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금곡 홍유릉 정문

홍릉 : 고종과 명성황후 합장
유릉 : 순종과 순명황후그리고 순정황후 합장,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한 봉분에 세분을 모신 합장릉

홍유릉은 일반 왕릉이 아닌 황제릉으로 조성된 묘역이라고 한다




정문으로 입장해서 왼쪽 방향이 홍릉이 위치하고
홍릉은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고
오른쪽 방향이 유릉이 위치한다.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황제와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두번째 황후 순정황후 윤씨의 능이다.

홍릉 비각 쪽 문으로 나가면 홍유릉 외곽인데 왼쪽 방향으로 가면 
영원 회인원 그리고 덕혜옹주 묘와 의친왕 묘가 위치한다.
관람하고 다시 홍유릉으로 들어 오려면 
비각 쪽문으로 소지한 입장권을 확인이 있다.

영원(英圓)엔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를 모셨고,
회인원(懷仁園)엔 황세손 이구를 모셨다.
영친왕의 이복동생 의친왕묘(義親王墓),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德惠翁主墓), 
후궁묘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

조선왕릉(동구릉)은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아래는 홍릉 유릉 종합안내도이다.








홍릉 연지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방형(方形) 연지가 아닌 
원형(圓形) 연지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홍릉 재실 (洪陵 齋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高宗皇帝)와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陵參奉)등 이
상주하던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모든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기(祭器)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제물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과 그 외 부속 공간인 행랑(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길은 향로(香路:Incense Road)이다.

'향을 갖고 가는 경건한 길입니다.
좌우측의 낮은 길(왕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안내되어 있다.


침전
명明 황제 태조 효릉을 본받아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一" 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다


일자각(一字閣) 형태의 침전(寢殿) 내부


문석인(文錫人)과 무석인(武石人)


무석인(武石人)과 문석인(文錫人)


홍릉 비각(洪陵 碑閣, Hongneung Stele Pavilion)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이다.

홍릉 비문(洪陵 碑文)
大韓 高宗太皇帝洪陵 明成太皇后祔左(대한 고종황제홍릉 명성황후부좌)

* 홍릉 표석標石 뒷면에는 음기(陰記, 표석에 새긴 글) 되어 있는 내용이 없음


좌측: 산신석(山神石)- 능이 위치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
우측: 예감(瘞坎, 望燎位)-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곳


홍릉의 제정(祭井), 산릉제례에 사용할 물을 긷는 우물이다


홍릉의 능상(陵上)






수복방(守僕房)
수복방은 능에서 화재나 부정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다.

* 수복은 조선시대 단(壇)·묘(廟)·원(園)·능침(陵寢)·전(殿)에서 
청소하는 일을 맡은 사람.


천원지방(天圓地方, 밖은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이고 안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연못이 아닌 가운데 둥그런 섬을 두고 연못 전체의 형태도 원형인 원지원도(圓池圓島)
형식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유릉(裕陵)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황제(純宗皇帝: 1874~1926, 재위: 1907~1910)와
원후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 1872~1904), 
계후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 1894~1966)의 합장릉이다.

순종은 연호를 융희(隆熙)로 하고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고 했으나
1910년에 국권을 일제에 강탈당하여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었다.
1826년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고, 장레일을 계기로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황후는 민태호(閔台鎬)의 딸로 1907년에 황후로 추존되었고, 
1926년에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천장(遷葬)하여 합장하였다.

순정황후는 윤택영(尹澤榮)의 딸로 1907년에 황태자비가 되었고,
순종 즉위 후 황후가 되었다.

유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되어 있는 능이다.


유릉의 문석인(文石人, 금관조복金冠朝服이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다)


유릉의 무석인(武石人, 투구와 갑옷을 입고 황제와 황후를 호위하는 인물상)












홍릉 비각을 지나 언덕 위에 영원(영원)으로 나가는 후문이다.


홍릉에서 나와 
영원(영친왕 이은李垠 園)으로 가는 도중에 전시된 문석인(文石人)




영원과 회인원의 재실

영원은(英園)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금곡동)에 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李垠.1897~1970)과 
부인 이방자(李方子.1901~1989)의 묘다.
홍릉ㆍ유릉과 더불어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일본 육군 정복을 입은 영친왕과 
일본 황실 전통의상 차림의 이방자 여사.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본명이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인 그는 1920년 
영친왕 이은(李垠)과 결혼한 뒤 남편 성을 쓰는 일본 풍습에 따라 리마사코가 됐다. 
이를 한국식으로 읽은 이름이 이방자다. 

일제는 일본 황족과 조선 왕가의 혼인을 통해 내선(內鮮) 융화를 과시하겠다며 
이은과 이방자를 강제로 결혼시켰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이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여사였으니 
대한제국(조선)의 끝과 대한민국의 처음은 다문화가정이 장식한 셈이다. 

이은은 1897년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적통인 순종은 후사가 없어 1907년 8월 황제로 즉위할 때 그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20살이나 많은 의친왕 강(堈)을 제치고 황태자가 된 것은 정비 명성황후가 1895년 
시해되고 없는 상태에서 생모인 황귀비 엄씨가 내명부 서열이 가장 높은 데다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은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조선이 망해 황제가 되지 못했다. 
고종 태황제와 순종 황제는 각각 이태왕(李太王)과 이왕(李王)으로 격하됐고 
황태자도 왕세자가 됐다. 

그에 앞서 이은은 책봉 넉 달 만에 10살의 나이로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귀족학교 가쿠슈인(學習院) 중등과를 거쳐 육사에 입학했다 

이은보다 4살 아래인 이방자는 
메이지(明治) 천황의 조카 니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守正)의 맏딸로 태어나 
가쿠슈인 초·중등과를 졸업했다. 요시히토(嘉仁) 천황의 맏아들 히로히토(裕仁)의 
배우자 물망에 올랐다가 사촌 나가코(良子)에게 밀려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됐다. 
일본 어의가 그를 불임 관상이라고 판정하자 조선 왕실의 적통을 끊으려고 
이은과 결혼시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은과 이방자가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1916년 8월 3일 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에 실렸다. 육사 생도이던 이은은 
휴가지 별장에서 신문 보도를 통해 자신의 약혼 사실을 알았다. 이방자도 
자서전에서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전하와 약혼하게 되다니!"라고 술회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매일신보도 같은 날 신문에 도쿄발로 보도한 것을 
보면 고종과 순종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이방자는 
그때부터 머리를 조선식으로 가르마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일본은 둘의 결혼을 위해 
일본 황족은 같은 황족이나 그 아래 화족(華族)하고만 결혼할 수 있도록 한 
황실 전범까지 개정했다. 결혼식은 1919년 1월 25일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종이 1월 21일 급서하는 바람에 미뤄져 1920년 4월 28일 도쿄에서 거행됐다. 

도쿄의 이은 집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편지가 연일 날아들었다. 일본 유학생 
서상한은 결혼식장에 터뜨릴 폭탄을 만들었다가 동료의 밀고로 체포됐다. 
상하이(上海)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은을 '구녀(仇女·원수의 여자)를 
취한 금수(禽獸)'라고 꾸짖는가 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김규식이 발행하던 잡지 
자유대한(La Coree Libre)에도 비판 기사가 실렸다. 

이들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1907년 황태자비로 
간택됐다가 파혼당한 민갑완의 사연을 크게 실었다가 압수 조치를 당했다. 


이방자는 불임상이라는 소문과 달리 결혼 이듬해 아들 진(晉)을 낳았다. 
그러나 1922년 4월 조선을 방문했다가 잃는다. 생후 9개월 만에 원인불명으로 
갑자기 숨지자 독살설도 흘러나왔다. 이방자는 1923년 한 차례 유산했다가 
1931년 12월에야 둘째 아들 구(玖)를 얻었다. 일본에 유학 와 있던 시누이 
덕혜옹주(德惠翁主)도 일제의 강압에 따라 
그해 5월 쓰시마섬(對馬島)의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했다. 

1926년 4월 순종이 승하하자 이은은 이왕 작위를 계승하지만 계속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1917년 12월 임관한 뒤 육군대학을 졸업했고 보병 59연대장, 
근위보병 제2여단장, 오사카사단장 등을 거쳐 중장으로 육군 제1항공군 
사령관까지 지냈다. 이은·이방자 부부는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호화 생활을 
누리기는 했으나 일제의 감시와 조선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이은은 귀국을 서두른 반면 이방자는 한국 정세가 불안하다며 만류했다. 
한국인들은 영친왕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귀국을 바라지 않았다. 미국 군정은 황족의 각종 특혜를 폐지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이방자는 커튼을 뜯어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1947년 일본 국적도 박탈당했다. 
1956년에는 미국에 유학 중이던 아들의 MIT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여권 발급을 신청했으나 주일 대표부가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일본 국적을 얻어 미국을 다녀왔는데, 
이 소식을 듣고 실망한 한국인들은 동정적 시선을 거뒀다. 

영친왕 부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귀국을 권유하자 1963년 귀국했다. 
그러나 영친왕은 1959년 뇌혈전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였다. 
1970년 영친왕이 타계한 뒤 이방자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며 장애인 봉사에 전념했다. 복지법인 명휘원과 
자혜학교를 설립하는가 하면 작품전과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보탰다. 

이방자는 1989년 4월 30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해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옆 영원(英圓)에 묻혔다. 낙선재에서 함께 지내던 덕혜옹주가 숨진 지 
9일 만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의 연호 쇼와(昭和)가 끝나고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헤이세이(平成)가 시작된 해였다. 

유일한 혈육 이구는 미국 유학 중 만난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인 줄리아와 
결혼했다. 자녀 없이 살다가 영친왕의 도쿄 저택 자리에 지어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2005년 홀로 숨졌다. 
이구의 죽음과 함께 조선 왕실의 적통도 끊어졌다. 

*2019-04-23 연합뉴스 옮김 



영원. 왕릉의 형식을 갖췄다.
홍살문, 배위, 향로, 어로, 정자각, 신도비각


영원 정자각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 1897~1970)과 방자비의 합장묘 영원(英園)

영원(英園)은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1897~1970,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懿愍皇太子妃:1901~1989,영친왕비)의 합장 원(園)이다.

의민황태자는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의 아들로 1900년에 영친왕에
책봉되고, 1907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은 뒤에는 왕세자로 불리다가, 순종황제 승하 후
명목상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1920년에 일제에 의해 일본 왕족 
마사코(方子.방자)와 결혼한 이후 일본에 거주하다가 1963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1970년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의민황태자비는 일본 왕족 모리마사 친왕(守正親王)의 딸로 의민황태자와 결혼 후
진(晉)과 구(玖) 두 아들을 낳았다. 1963년에 의민황태자와 함께 귀국하여 여생을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였으며, 1989년에 세상을 떠나자 영원에 합장되었다.


大韓(대한)
懿愍皇太子  英園(의민황태자  영원)
懿愍皇太子妃祔左(의민황태자비부좌)




회인원(懷仁園, 황세손 이구李玖 원園)

회인원(회인원)은 이구(이구: 1931~2005)의 원(원)이다.
황세손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마사코/방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생활하였다. 1950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지에서 건축가로 활동하였으며, 1963년에
귀국한 후 창덕궁과 일본을 오가며 지냈다.

2005년에 세상을 더나자 영원 경내에 모셨다.


덕혜옹주 묘 가는길 옆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입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고명딸로 덕수궁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 부터 돌아가실때 까지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동구릉에 있는 건원릉도 전시되어 있어 반갑게도 억새풀 봉분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래 종합안내도를 보면 좌측이 덕혜옹주묘, 우측이 의친왕묘이다.
가운데 붉은색글(홍유릉) 위로 검은 네모가 후문으로 나가는 안내소이다.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로 가려면 이 후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다시 되돌아 올땐 후문 안내소에서 입장권을 다시 확인하므로 꼭 간직해야한다.


의친왕묘(義親王墓)는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의 아들인 의친왕
(義親王 : 1877~1955, 李堈)과 의친왕비 김씨(義親王妃 金氏 : 1878~1964)를
합장한 묘이고, 덕혜옹주묘(德惠翁主墓)는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 : 1912~1989)의 묘이다.

1955년 의친왕이 세상을 떠나자 처음에는 서울 화양리에 묘를 조성하였다가
1965년에 고양 서삼릉(西三陵) 경내로 옮긴 후, 1995년에 다시 현재의 자리에
묘를 옮겼다. 묘를 옮기면서 1964년에 세상을 떠나 홍유릉 경내에 조성한
의친왕비의 묘소도 함께 옮긴 후 합장하였다.

이 후 1989년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의친왕묘와 덕혜옹주묘에는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상석(床石)을
배치하였으며, 표석(表石)은 덕혜옹주묘에만 세웠다.


덕혜옹주 묘 德惠翁主 墓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고명딸인 덕혜옹주(1912~1988)의 묘이다.
고종은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덕혜옹주를 아꼈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 때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에 봉해졌고, 1925년에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으로 데려갔다.

일본에서는 영친왕의 숙소에 기거하면서 학습원과 중등과정을
수료하였다. 19세에 소 다케유키(宗武志,종무지)와 정략결혼을 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다가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사진은 2017년 6월 대마도 여행시 
금석성터(金石城跡) 가네이시지요우 國지정문화재 史跡에서 찍은 기념비이다.


李王家宗伯爵家御結婚奉祝紀念碑
(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

이 비는 덕혜옹주와 일본 宗武志公 두분의 성혼을 축하하여
대마도거주 한국인이 건립한 비이다.

조선국 제26대 고종의 왕녀 德惠翁主는 1931년 5월 宗武志公과 결혼하여
동년11월에는 대마를 방문했다. 옛 대마도주 宗家當主가 조선의 왕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來島하였으므로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이 비는 두분의 성혼을 축하햐여
대마도거주 한국인들이 건립했다. 한편 청수산성에 대마도민들이 경축하여 세우고
심었던 기념비와 철쭉이 지금도 잘 남아 있다.

결혼생활은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딸 正惠를 낳아 서로 신뢰와 애정이 깊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갈등이 심하여 두분은 1955년에 이혼하였으며 무지공은
1985년에 덕혜옹주는 1961년 귀국후(낙선재에 머물다) 1989에 별세하였다.

이제 역사에 묻혀있던 이 기념비를 재건하여 두분의 힘들었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양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영원한 평화를 희망한다.


의친왕 묘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친왕과 의친왕비 김씨의 합장묘





후문밖 관람을 마치고 지니고 있던 입장권을 다시 후문 안내원에게 보여주고 
홍유릉 안으로 들어와 정문을 향했다. 


일반 왕릉과 달리 침전앞에 있는 여러 동물 형상들








재실을 지나 정문을 빠져 나온다.


홍유릉 역사문화관..매표소 건너편에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한번 둘러 보았다.
아쉽게도 디카 전지가 다 닳아서 사진을 못 담아 아쉬웠다.

이해를 돕기위해 위 사진뿐 아니라 여기 게시물의 몇 점은 
인터넷에서 옮겨  약간의 편집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룻동안 조선왕릉인 구리시 동구릉을 시작으로 
망국의 한이 서린 남양주시 홍유릉 이야기, 그 슬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며 숙연함과 함께 다른 조선왕릉과 차별화된 황제릉의 모습도 보았지요.

그 방대하고 세세한 슬픈역사를 인터넷 검색으로 옮겨도 놓으면서 
사진으로도 만나며 많이 알게 된 뿌듯함에 가슴 벅차 오르기도 했습니다.

오전부터 참 많이도 걸었습니다. 
건강에 제일 쉬운 운동이 걷기인데, 건강도 많이 챙긴 하루였습니다.

혼신을 다 한 긴 게시물..두고두고 쉬어가며 보세요.

감사합니다.

홍유릉 대중교통 
전철은 경춘선 금곡역 1번 출구에서 
약 900m 도보 약 15분 소요된다고 합니다.

능(陵):  왕과 왕비의 무덤
원(圓):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세손과 왕세손비,  왕을 낳은 후궁의 무덤
묘(墓):  그  외 왕족 및 일반인의 무덤을 말합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추천1

댓글목록

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덕혜옹주의 세세한 이야기가 지난 4월 연합뉴스에 나와 있어 옮겨놓고
영친왕과 이방자여사 이야기까지 몰랐던 황실이야기에 심취되었던 1일 산책겸 나들이었답니다.
망국의 한이 서렸던 그 역사들을 함께 나누고자 이 게시물에 두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몇날을 혼신을 쏟으며 공부도 많이 한 그래서 더욱 뿌듯한 게시물입니다.

미리 내용을 숙지하시고 그 현장을 답사하면 기행의 기쁨은 배가 되지요.
동구릉은 규모가 크고, 금곡은 아늑한 분위기에 두 곳다 6월의 녹음이 짙어
푸른 숲 오솔길 따라 흙길을 걷는 기분은 어디 도심지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기막힌 힐링길이지요.
참 좋은 길 역사이야기속으로 빠지며 하루 잘 보내 보세요.
가시기 전에 제 게시물을 반드시 보시고 알고 가시면 그 날은 산책만 하고 오시면 되지요.
모쪼록 유익한 휴식이 되시길 바라며,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김영희* 記行作家님!!!
    "김영희"作家`先生님!"東九陵" 과 "弘陵`裕陵"의,由來를 詳細히..
    日帝時代에 얽힌 얘기들과,歷史的인 記述에~感銘이 깊고,感謝드리며..
    期會가 되면,仔細히 熟讀하여~訪問토록,할께如!"김영희"任!늘,安寧하세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 상세히 보셨군요.
늘상 제 게시물을 아껴주시니 참 고맙답니다.
건강한 여름으로 행복하세요.

소슬바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소슬바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생님 덕분에 역사내지는 여행기행을 잘 배우게 되어
감사함을 잊을 수 없는것이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할지
선생님께 큰 절 이라도 올리고 싶습니다
연세도 있으신것 같은데 가볍게 여행을 하시는 그 집념을 높이받들어
존경합니다
서울의 중심부 섬에 사시고 운치가 있는 과연 여행작가님
의 면모를 갖춘 명실상부한 삶을 사십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만인들을 위해 1004의 위치 자리를 오래도록 잘
유지하시면 더 없이 고맙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옵소서
松岩 李周燦 드림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슬바위시인님
저두요 놀랍답니다.
그간 건강이 좋지 않을때가 많아 이제는 끝이련가 했는데
아직 끝이 아닌 걸 보면요.
사는동안 이렇듯 건강한 모습으로 다니며 스케치해 온 현장 사진과 이야기들을
같이 나눌 수 있음이 저에겐 여간 행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체질화 되어 황혼임에도 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송암 이주찬시인님, 보내 주시는 그 찬사와 격려에 힘 입는 듯 합니다.
두손 모으며 감사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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