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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 기행2 - 쌍곡구곡과 쌍곡폭포ㆍ화양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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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06회 작성일 19-08-10 12:09

본문


2019.8.2.일요일 괴산 화양구곡의 백미, 금사담과 암서재

괴산 화양구곡 암서재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2일간의 충북 괴산 기행2-쌍곡구곡과 쌍곡폭포ㆍ화양구곡
2019.8.1.토-8.2.일(1박2일) 


둘이서 

장마도 이제 끝나고 폭염이 온단다.
오늘은 어디를 산책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낭군님이 괴산 쪽 1박으로 
다녀 오잔다. 

요즘 중앙박물관에서 개최중인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에 전시중인 
이인문(李寅文, 古松流水館道人, 1745~1821)의 수옥정(漱玉亭)을 찾아
이 기회에 괴산(槐山)지역을 탐방하기로 한다.

조선후기 화가 이인문의 '수옥정도'라는 작품에 그려진 수옥폭포를 보고 
마침 잘 되었다 싶어 그 폭포와 괴산탐방을 하기로 하곤 아침식사를 마친 후 
벌떡 일어나 충북 괴산으로 멀리 길을 나선다.

괴산 다른 유적지는 가 보았어도 수옥폭포는 초행길이다.
네비에 괴산 연풍면 수옥폭포를 쳐도 나오질 않아
일단 괴산 연풍면을 치고 가다가 연풍면 IC를 빠져나와 수옥폭포를 치니 
길안내가 잘 되어 바로 찾아 갈 수 있었다.

도로변 수옥폭포 주차장에서 
평지 숲길로 도보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수옥정은 수옥폭포 아래 산 언덕에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수옥폭포와 수옥정의 이야기와 그림을 인터넷 그림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풍류와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치 그 시대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좌측 그림이 조선후기 화가 이인문의 '수옥정도(漱玉亭圖)이고,
우측 그림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김홍도의 '모정풍류'이다.

수옥정은 조유수(趙裕壽, 1663~1741)가 1711년 연풍현감(延豊縣監)으로 
재직할 당시 관내에 있는 수옥폭포(漱玉瀑布)를 바라보는 위치에 건립한 정자이다. 

좌측 이인문의 이 그림에는 폭포 앞 정자의 모습이 표현되지 않았다.
*그림은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77.0x45.0cm

<수옥정도〉는 이인문이 남긴 몇 작품 안 되는 진경산수화의 하나이다. 
마치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연상케 하는 구도를 취하고, 그 아래 갓을 쓴 선비들이 
유람하면서 한때를 즐기는 모습을 그려 더욱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폭포 주위로 줄지어 늘어선 소나무들이 단단한 조형감을 더한다. 
이렇듯 이인문의 작품들은 비교적 섬세한 필치로 단단하고 각이 진 모습의 
선묘적 경향과 깔끔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데, 만년에는 강하고 대담한 
발묵(潑墨) 위주의 표현적인 붓질로 격식을 초월한 그림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
*다음백과에서 옮김

이인문의 '수옥정도(漱玉亭圖)' 작품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수옥정도' 라는 
작품에서도 이 곳 수옥폭포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수옥정은 괴산팔경의 하나로 충주 수안보 가는 길에 자리잡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둥근 웅덩이에서 휘감아 돌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 경이로운 장관을 
지켜보고 앉은 선비들은 폭포에 비해 작게 묘사되어 있다. 
절벽 좌우에 소나무와 단풍은 층을 이루며 서 있다.
(글자료;국립중앙박물관)

이인문이라는 화가는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후기 
김홍도와 친구이자 라이벌인 화원으로 남 북종화를  뛰어나게 구사하였다.

*남 북종화: 당나라 시대의 양대화풍으로,
남종화는 왕유(王維, 701-761)를 주축으로 수묵 산수화를,
북종화는 이사훈(李思訓, 601-716)을 주축으로 하는 채색 산수화를 말한다.


우측 김홍도의 '모정풍류'는 수옥폭포를 배경으로 
수옥정에서 양반들과 기생들의 풍류를 즐기는 모습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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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둘쨋날(2019.8.2)은 

수옥폭포를 이른 아침, 다시 한 번 아무도 없는 수옥정과 폭포를 돌아보고 
그 길로 쌍곡구곡으로 내달렸다. 2010년에 다녀온 지 꼭 9년이 지났다.

물 맑은 쌍곡계곡을 거슬러 올라 조그마한 폭포인 쌍곡폭포을 보고 
우암 송시열선생의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있으며 괴산지역의 가장 이름이 난
화양구곡을 찾아 탐방하고 무더운 날씨에도 잘 달린 우리 愛馬가 
무척이나 고마웠고 탈없이 무사히 잘 다녀옴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수옥폭포에서 쌍계폭포로 달리는 중에 만난 풍경들이다.




병풍처럼 내린 쌍벽, '소금강'
소금강은 쌍곡구곡 중 제2곡으로서 금강산을 축소한 것 같다고해서 소금강이라 불리고 
있다. 또한 계곡 위에 병풍처럼 두러친 천길 절벽의 바위 틈새로 소나무와 야생초, 
그리고 들꽃 등이 신비로움을 자아내어 예로부터 문인들이 이곳의 자연 절경에 감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 신묘한 경관 때문에 '충북의 자연 환경 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2002년 10월 30일 충청북도지사 괴산군수






쌍곡구곡
쌍곡구곡에는 1곡 호롱소, 2곡 소금강, 3곡 병암(떡바위), 4곡 문수암, 5곡 쌍벽,
6곡 용소, 7곡 쌍곡폭포, 8곡 선녀탕, 9곡 마당바위(장암)가 있다.








쌍곡폭포앞의 이정표에는 칠보산(七寶山)까지 3.6km로 표시되어 있다.




쌍곡구곡의 분홍빛 상사화(相思花)


'꽃이 필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아
서로 불 수 없으니
그립고 그립다!'
꽃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쌍곡폭포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


쌍곡폭포(雙谷瀑布)
쌍곡구곡(雙谷九曲)중 제7곡으로, 8m정도의 반석을 타고 흘러 내린 물이 마치
여인의 치마폭 처럼 펼쳐진 약 660m2의 넓이로 흘러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의
시원함을 주는 곳이다.






























쌍곡폭포까지..
다시 오던 발길 되돌려 주차장쪽으로 하산하면서 이풍경 저풍경을 담는다.


코스모스 꽃밭, 가을엔 알록달록 코스모스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내며 
찾아 오는 산객들을 유혹하겠지. 
그 때 다시 와서 아름다움으로 장관을 이룰 코스모스 꽃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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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코스모스꽃




새 빨간 칸나꽃 위에 앉은 잠자리 한마리


키다리 노랑꽃


닭 벼슬같은 발간 맨드라미꽃


쌍곡계곡에서 폭염속 무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우리 애마는 폭염속을 달려 화양계곡 주차장에 이른다.


점심부터 먹기 위하여 주차장내에 있는 팔각정 식당에 자리에 잡는다.




올갱이국으로 속을 채우고..


팔각정 식당 아래 성황당










속리산 화양동구곡 소개

선유동계곡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면 화양동계곡은 남성적인 웅장함이
느껴지는 계곡이다. 화양동구곡은 효종 임금을 잃어 슬픈 마음을 간직한 채 계곡을
찾아 은거하며 세월을 보낸 조선 중기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이 중국의 무이구곡
(武夷九曲)을 흠모하여 이름 지었다는 아홉 곳의 절경이 이어지는 곳이다.

1. 경천벽(擎天壁)
물가로 가파르게 솟아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경천벽이라 불렀다.

2. 운영담(雲影潭)
깨끗한 물이 소를 이루어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 하여 운영담이라 한다.

3. 읍궁암(泣弓巖)
우암(尤庵) 송시열 선생이 조선시대 효종 대왕께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신 것을 크게 슬퍼하여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청곡하였다 하여 읍궁암이라 부른다.

4. 금사담(金沙潭)
맑고 깨끗한 물과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당이라 불리며 화양구곡 중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다.

5. 첨성대(瞻星臺)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고 부른다.

6.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

7. 와룡암(臥龍巖)
용(龍)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와룡암이라 불린다.

8. 학소대(鶴巢臺)
큰 나무들이 운치 있게 조화를 이루며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하여 학소대라고 부른다.

9. 파천(巴川)
계곡 전체에 흰 바위들이 티 없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그 위에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 놓은 것처럼 보여 파천이라고 부르며, 신선들이 이곳에서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다.


















입구 안내판을 살펴본 뒤 숲길로 경치찾아 뚜벅 뚜벅 뚜벅이 걸음으로 걸어 들어간다.






왜 화양동(華陽洞)이라 불릴까요?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선생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화양계곡은, 원래 황양나무(회양목)가 많아 황양동이라 불렸으나, 선생이 거처를
이곳으로 옮겨와서는 중국을 뜻하는 중화의 화(華)와 일양래복(一陽來腹)의 양을
따서 이름을 화양동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화양동 터줏대감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우리 선조들이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행복,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심었던 나무입니다. 여기 서있는 이 느티나무도
화양동을 지키며 사람들과 함께해 온 나무입니다.










역사가 흐르는 계곡- 화양구곡
* 화양동계곡(華陽洞溪谷)
화강암의 박물관이라고 불리우는 화양동계곡은 총길이 4.5km, 최대 계곡폭 65m에
너럭바위와 절벽, 소(소)가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미와 암서재, 만동묘 등
우암 송시열과 관련된 유적을 함께 품고 있는 곳이다. 

'구곡' 명칭은 우암 사후 수재자인 수암 권상하가 아홉개 설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단암 민진원이 구곡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전한다.

*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조선시대 성리학자(1607~1689)
1635년 봉림대군(효종) 사부 임명을 계기로 관직에 나갔으나 효종 급서뒤 
현종에 대한 실망으로 낙향하여 22년간 이곳에서 산수를 읊으며 제자를 길렀다.

1689년 장희빈 아들(경종)세자 책봉 반대 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어 
서울로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으나, 갑술환국 이후 
억울한 죽음이 무죄로 인정되어 관직이 회복되고, 제사가 내려지는 등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






운영담(雲影潭)
이 곳은 화양구곡 중 제 2곡으로, 경천벽(擎天壁)에서 약 1.2k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 하여 운영담이라 이름했다.
















우암 송시열 유적(尤庵 宋時烈 遺蹟)
사적 417호,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이 유적은 조선 성리학을 계승하고 완성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애국사상과
중국 청나라의 무력에 굴하지 않는 민족자존 정신이 깃든 곳이다.

화양서원은 송시열이 은거했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모임 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중국 명나라 황제(신종神宗,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옛터가 잘 남아 있다. 또한 주변에는 송시열의 묘소와 신도비,
암서재, 읍궁암 외에 암서재 주변의 암벽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비례부동非禮不動
등이 새겨져 있어 반청애국사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건립이후 조선조 말까지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이 유적은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왜곡되고 파괴당하는 수난을 겪은 곳이다.


괴산 만동묘정비
(槐山 萬東廟庭碑, Memorial Stone of Mandongmyo Shine in Goesan)

만동묘는 尤庵 宋時烈의 遺敎에 따라 遂菴 權尙夏가 
숙종 29년(1703)에 건립하고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파견한 
명나라의 神宗과 毅宗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던 곳이다.

경술국치 이후 1917년 일제가 만동묘의 제사를 금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유림을 구속하였으나 유림에서는 춘추계를 조직하여 몰래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는 1937년에 이들을 체포하고 위패와 제구를 불사르고 묘정비를 정으로 
쪼아 훼손하더니 1942년 건물을 불사르고 묘정비를 땅에 묻어버렸다.

묘정비는 가로 142cm 세로 117cm 높이 38.5cm의 사각형 臺石위에 
너비 76.5cm 두께 45cm 높이 229cm의 碑身과 가로 126cm 세로 97cm 
높이 43cm의 屋蓋石을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1942년 이후 매몰되어 있던 것을 광복후 찾아 다시 세웠다. 건립당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이 있었으나 파괴되었던 것을 2003년에 복원하였다








풍천재(風泉齋)
숭정기원후오갑술맹동(崇禎紀元後五甲戌孟冬)
* 숭전기원(1628년)후 5 갑술(1634 + 5x60 = 1934)이 지난 1934년 음력 10월에 씀










만동이란 물이 만 구비를 꺾어 흘러 마지막에는 동해로 들어간다는 말로서 
존명의식(尊明意識)을 표현한 것이다. 

1689년(숙종 15) 송시열이 사사되기 전에 
제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1641~1721)에게 서면으로 
신종과 의종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부탁했다. 

만동이란 이름은 권상하가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취한 것이다.


만동묘앞 두 개의 정료대(庭燎臺)






華陽書院 備忘記 (화양서원 비망기)

予惟琅城有華陽書院商山有興巖書院乃兩先正賜額書院也
(내가 오직 낭성에 화양서원, 상산에 흥암서원이 있는데 
양 서원은 먼저 정히 사액서원이다)

揭額歲月已久病裏筆畵尤拙而必親書鏤板以下者所以寓予尊敬之心也
(편액에 걸린지 오랜세월 시들은 속에 글씨와 그림이 더욱 고졸하고 
그래서 반드시 친히글을 써서 현판에 새기는 것이 
이하 내가 존경하는 마음을 두고자 하는 까닭이다)

噫人主尊賢出於至誠則亦庶幾定士趨而熄邪說
(아! 사람들은 주로 
존경과 어짐이 지성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곧 어진이(현인)에게 
바라는 것이다. 선비들이 바로잡아 좇아서 간사한 말을 종식시키는)

予意夫豈偶然哉其令儀曺並卽題揭仍爲賜祭
(나의 뜻은 대개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 令儀 즉 威儀를 훌륭하게 갖추고 무리들과 더불어
곧 제목을 게재하고 인하여 祭를 賜하기 위한 것이다)

丙申 十月 日 (1776년 영조 52년? 혹은 1836년 헌종 2년?)

한자
寓 : 머무르다,부치다.마음을 두다, 
定 : 바로 잡다, 
趨 :쫓다, 
熄 :없어지다,꺼질 식,
邪 : 간사할 사
庶幾 : 바람,현인, 令儀 : 威儀를 훌륭하게 갖추고
해석 : 권진순


네면에 적힌 글을 옮겨 놓는다.

일찍이 君王들이 어진이 부르는 禮를 다하고 大妃의 懇曲한 諺札도 있었으니 그
待接함에 隆崇함을 이에서 알 수있다. 일찍이 鳳林大君의 師傅가 되시어 때에 스승이라
하더라도 大君앞에 나아가 가르치는 것이 慣例이었는데 스승은 가서 가르치는 禮가
없으니 와서 배우도록 하여 스승의 嚴正함을 보이시니 나이 수물아홉에 이미 行하신바가
이와 같았다.

鳳林大君이 仁祖의 뒤를 이어 君王이 되시니 孝宗大王이시다. 丙子의 恥辱을
씻고자 스승이시었던 先生을 부르시니 平素에 先生이 丙子의 恥辱은 한강물을
몽땅 쏟아부어도 씻을 수 없다 하시고 淸나라를 섬기지 않음은 물론 復讐雪恥
하실 뜻이 있음을 알고 不書僞號(이미 淸나라에 服屬된 處地여서 絶對的으로
그 年號를 써야함에도 不拘하고 그 義理精神에 感服하여 거짓 年號를 쓰지 
않은 일) 하시니 主體精神이 이에 더 할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처음에는
스승이요, 나중에는 君臣의 義로 北伐을 圖謀하심에 때에 奸臣의 무리가 敵國에 
고자질하는 일도 있어 嚴密하게 推進하니 이로하여

獨對도 하시고 世子로 하여금 密札도 주고 받으시어 그 實行을 눈앞에 두고 大王의
急逝로 中途에 挫折되어 이 나라 數千年에 일찍이 없었던 雄圖가 水泡로 돌아가니 
그 落望됨이 어떠하셨으랴. 사람의 道는 恩義에 報答하는데 있는 것이니 父母에 孝하는
것이나 祖上을 받드는 것이나 나라에 忠誠하는 것이 이 모두 그런 義理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壬辰年에 凶惡無道한 倭兵

이 侵攻 近八年間의 이 땅에 陣을 치니 그 慘狀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그 후 丙子에 胡軍의 來侵으로 또한 그 羞辱이 말로 다할 수 없는데 前者는 
明나라 神宗의 救援으로 國土를 回復하여 우리 民族을 救하였으며 뒤에는 
毅宗이 救援하고자 하였으나 힘을 다하지 못하여 일이 끝나 이로하여 明나라가 
胡金에게 滅亡하니 이 어찌 우리 國民의 痛憤함이 이에 더 하겠는가. 
이런 뜻을 기리기 위하여 神毅兩宗의 祠堂을 지어 그 靈을 慰勞코저하시다
미처 이루지 못하시고 遂庵께 遺囑하여 이루시니 이 萬東廟이다.

先生의 書院이 數里밖에 있었는데 後學들이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 그 義에 
맞다하여 萬東廟곁에 移建하였고 正祖大王때에 이르러 特別히 吩咐하시어 
萬꾸러미의 돈을 내려 先生의 文字를 모아 平安監營에서 이를 開刊하니 
이 宋子大全이다. 많은 著述이 있으시며 이 大全의 卷數가 百二冊으로 
二百十五卷에 達한다.

여기 先生이 起居하시던 冽泉齋 大全板刻을 收藏하는 藏板閣 御筆을 奉安하던
雲漢閣 先生이 쓰시던 物件과 影堂을 奉安하던 草堂도 있었으며 慕月樓라는 
樓閣도 있었다. 여기 깎아지른듯한 絶壁위에 巖棲齋를 지어 懸板도 親히 쓰시고 
巖棲齋詩도 지어 걸으시니 그 詩에 學問에 오르매 分寸이라도 다툰다고 하신 뜻이
있으니 後學들은 모름지기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 九曲이 있으니 朱子가 사랑하시던 武夷九曲과 같고 各石壁에는 萬折必東을
비롯하여 많은 義理 文字와 先生의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 가운데 泣弓巖이
있는데 일찍이 孝宗大王 돌아가신 날에 새벽 일찌기 이 바위 위에서 痛哭하시고
詩를 읊으시니 北伐을 이루지 못하신 千秋의 恨을 새기심이 아니겠는가.

朝鮮朝末 悖戾한 사람이 나더니 이곳을 지나매 皇廟에 奉審할 때 禮를 다하지 못한
꾸짖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로하여 萬東廟를 비롯한 全國의 書院(私學)을 一部만 남기고
모두 毁撤하여 學問하는 道場을 잃어 선비들의 義理 講論의 求心處를 잃게 하니 
이로하여 나라가 滅亡하는데도 忠誠을 다하는 사람이 적고 窮乏한 나라 財政에서 
景福宮 重建으로 國庫를 탕진하니 軍隊를 기를 힘이 없어 後日을 對備하지 못하여
이러한 것들이 싹이 되어 변변히 抗拒도 못해보고 마침내 倭에게 倂呑되어 나라 잃은
悲運을 맞았으니 民族敎育의 切實함이 이에 더할때가 있겠는가.

그 후 萬東廟가 復設되어 日帝統治下에도 先生의 恩義의 道와 北伐義理가 綿綿히 
이어져 오직 이곳이 民族主體의 道場이 되더니 日帝의 虐政三十餘年이 지나 그 나라

가 亡할 즈음 이곳이 韓民族의 唯一한 不穩思想의 溫床地라하여
先生宗孫의 抗拒에도 不拘하고 毁撤되어 그 慘狀이 到處에 보이니
이 事實을 大略記錄하여 보시는 분들로 하여금 마음이 일깨워졌으면 한다.

檀紀 四千三百二十六年(1993년) 月
宋子思想宣揚事業會


읍궁암(泣弓巖)
이 바위는 화양구곡 중 제 3곡으로, 우암 송시열선생이 "조선시대 효종대왕
(孝宗大王, 1619~1659)께서 북벌北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昇遐하신 것을 크게 슬퍼하여 새벽마다 한양을 향하여 활(弓)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하여 읍궁암이라 부른다.










금사담(金沙潭)과 암서재(巖棲齋)

이 금사당은 화양구곡 중 제 4곡으로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당이라 불리우며 화양구곡 중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다.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이 정계를 은퇴한 후 이곳 반석 위에 집을 지어 이름을
암서재라 하고 이곳에서 은거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였다. 이 건물은 그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고,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중수되었다.










첨성대(瞻星臺)
이 바위는 화양구곡 중 제 5곡으로,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부른다.














제 7곡 와룡암(臥龍巖) 그림








아홉골짜기 기암괴석, '화양구곡'
우뚝솟은 기암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화양구곡은 흙한점 없는 암반 위로
사계절 맑은 물이 쏟아져 아홉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숲에는 천연의 
장령림과 각종 야생초화류가 자생하는 곳으로 자연환경이 우수하여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2001년 12월 31일 충청북도지사 괴산군수

1975년에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었으며 청주에서 동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동에 9곡(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을 이름 지었다 한다. 화양동 계곡은 괴산 선유동 계곡과 7km거리에 있으며 
푸른 산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華陽書院 廟庭碑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에 문정공 좌의정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창건되던해에 賜額을 받고 숙종 42년(1716) 어필로 扁額을 달았다
전국의 사액서원중에서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당당한 사원이었으나 祭需錢의 봉납을 
강요하는 華陽墨牌의 폐단으로 좌의정 김좌근의 주청으로 철종 9년(1858)에 폐쇄되고 
고종 7년(1870)에 건물이 헐리었다.
서원이 헐리면서 땅속에 매물되어 있던 것을 광복후 다시 건립하였다.

이 비는 높이 210cm 폭 75cm. 두께 30cm로 넓이 150cm의 화강암 대석 위에 
세워져 있으며 비문은 尹鳳九가 지었다


암각서 -忠孝節義-


도명산 탐방로는 사진만 담곤 패스다.

여름철 장마가 끝난 직후 떠난 1박2일 폭염속 기행은 
계곡마다 물이 철철 넘쳐 흘렀으며 
하얗게 부셔지며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수는 
폭염에 절은 심신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인상적인 괴산 수옥폭포, 그리고 쌍곡폭포 두 곳 폭포와 
화양구곡에서 역사도 공부하며 폭염도 식히며 원없이 노닌 기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찬란한 빛/김영희(쌍곡폭포에서)

시마을 전문영상시방  영상작 '씨앗' | 詩: 고향집 수수밭 /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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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소슬바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소슬바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발자취를 또 밟아 봅니다
화양계곡이 그냥 산수좋은 골짜기인줄 알았는데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일것으로 생각됩니다
九曲으로 불리우고 있군요
배우게 됩니다
저는 문학기행과 세미나 체험하고오면 글감을 꼭 찾아오게 되더라구요
화양계곡이 이렇게 유서깊은 곳 인줄 예전엔 미쳐 몰랐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견문을 넓히게되니 이 은혜 무엇으로 보답을 들여야할지
문인으로써 좋은 자료가 됩니다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또 이동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자료로 생각해 주심은 참 감사하답니다.
화양구곡은 예전에 갔을땐 화양계곡이라 불리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계곡이 구곡으로 명칭이 바뀌었더군요.
정리해 놓은 안내판에서 구곡의 풍치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현장답사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서울로 올라 올 시간이 촉박해서 첨성대까지만 보고
발길 돌림이 좀 아쉬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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