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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청령포의 단종애사와 동강 어라연의 풍광 / 함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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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56회 작성일 21-01-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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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청령포의 단종애사와 동강 어라연의 풍광

                                                    함동진


 친지 네 가정이 어울려 강원 정선 유람을 떠났다.
서울서 오후에 출발한 관계로 영월 청령포관광단지 동강산장에서 하룻밤 유하고
 다음 날 서둘러 단종애사가 서린 청령포에 들러 유지비각, 금표비,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 왕방연시조비를 둘러보았다.
청령포 나룻배에 오르기 앞서 주차장의 끝 도선장 입구에는
 노래비 하나가 애틋한 가사를 가슴에 새겨 넣고 서있다.

 (노래비) [두견새 우는 청령포]
작사 이만진 / 작곡 한복남 / 노래 심수경 / 휘호 작사자 이만진

1. 왕관을 벗어 놓고 영월 땅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 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2.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구비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 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있네

3. 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고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 피고 지네.
 *(1998.1.4. 영월 노타리클럽 건립)

조선의 4대째 왕인 세종은 병약한 아들 문종이 단명할 것을 예견하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앞날을 부탁한다. 세종의 세손인 단종(홍위)은
 생후 3일 만에 어미를 여의고 서조모 혜빈 양 씨(세조의 후궁)의 젖을 물고 비운의 운명으로 성장한다.
홍위가 10세 되던 때에 세종 할아버지가, 12세 되던 때에 문종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 혈육이 없는 어린 왕으로 사고무친의 고아가 되고 만다.
명석한 두뇌를 가져 세종의 총애를 받던 어린 단종은 정치적 야망을 품고
 주위를 맴도는 대군들과 특히 왕권에 눈독들인 둘째 숙부인 수양대군의 야욕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단종이 15살 때인(단종 3년) 1445년에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상 왕으로 물러나 앉는다.
그러나 다음해에 충정의 군신들(사육신 등의 거사)에 의해 단종의 왕권복위를 꾀하였으나
 실패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된 후 1456년 6월 28일 서울의 광나루를 건너 귀양가게 된다.
이 때에 관리 3명 군졸 50명의 호송을 받으며 여주 원주 신림 주천을 거쳐 7일 만에 청령포에 도달한다.
고도(孤島)와 같은 귀양처 청령포 숲속에 들면
 단종이 거처하였었다는 장소의 표지로 '유지비각(遺址碑閣)'이 세워져 있음을 보게되고
 또 한편에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390척'이란 금표비(禁表碑)를 세워두고,
단종은 물론 외부인들에게 조차 금족령을 내려 통행과 행동이 철저하게 제한되었던 사실을 보게 된다.
이를 관음송(觀音松,천연기념물349호)이라 부른다.
그 까닭은 단종이 그 나무에 걸터앉아서 비탄으로 흘린 피눈물과 오열로
 외로이 읊은 한숨의 노래를 모두 듣고 보게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대로 관음송은 단종의 애절한 사연을 되새김질하는 것 같아
 추위에 시린 가슴이 더욱 애닲아 진다.
청령포의 관음송 뒤켠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육봉산의 깎아지른 절벽에 이른다.
두려움과 무서움과 한의 고통으로 외로움을 견디어 내기 어려운 단종은
 육봉산의 절벽을 오를 때마다 서울의 하늘과 왕비 송 씨를 그리워하며
 돌을 하나 둘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望鄕塔)'이 현존한다.
그리고 하루의 해가 기울어 석양이 붉게 물들어 올 무렵이면
 봉우리에 올라앉아 한양의 궁궐을 향하여 가슴 저미며 한숨지었다는 자리인 '노산대'가 있다.
 . 저 아래 서강의 시퍼런 물줄기 속에는 아직도 어린 단종의 구슬픈 넋이 맴도는 것만 같다.
600년 가까이 한(恨)으로 흐르는 서강을 끌 배의 줄이 가로질러 희게 그어져 있어
 사람들이 단종의 외로운 넋을 뭍으로 끌어당겨 내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월의 청령포를 돌고 있노라면 살기 어린 얼굴과 핏발 서린 눈으로
 살생부(殺生簿)를 들고 분주히 의기 양양하는 한명희(韓明澮)와 그 일당
 그리고 그것을 합당하게 지시하는 세조의 얼굴이 떠올라 한 줄기 소름이
 온몸에 휘 돌며 장릉(莊陵, 사적 제 195호)도 생각케 된다.
장릉은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로부터 2km 남짓한 곳이며,
영월읍으로부터는 서북쪽 3km 지점인 동을지산에 위치한다.
솔숲에 쌓여 있는 장릉의 둔덕은, 봉분이 있는 능묘에 오르기까지의 길이 갈지(之)자 형으로 나있다.
세조 3년(1457년)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단종의 복위운동을 꾀하자
 이에 놀란 세조는 후환이 두려워 급기야는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게 된다.
같은 해 10월 24일 오후 6시 사약을 지닌 금부도사 왕방연이 관풍헌에 도착한다.
익선관과 곤룡포를 반듯이 차려입고 온 까닭을 묻는 노산군에게,
왕방연은 어정쩡 입을 열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며 배알할 뿐이다.
이때 공생(심부름꾼) 복득(福得)이란 자가 공명심을 발끈하여
 활시위로 잔인하게 노산군의 목을 졸라 목숨을 끊어 대신 처리함으로
(이 부분 사약을 받는 데에 대한 사실의 이견과 시비가 있음) 무참히 죽게 된다.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동강(東江)에 둥둥 떠다니게 되나 아무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는 야음을 타 가문 멸족의 위험이 따르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거두고 동을지산(東乙旨山)에 사고무친(四顧無親) 곡소리도 없이 모시게 된다.
어쩌면 엄흥도의 흘린 눈물만이 진흙범벅으로 봉분을 이루었으리라.
후일 200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년)에 단종으로 추서되고 능묘 형성과 아울러
 장릉(사적196호)이란 정식 능명을 갖게 된다. 장릉 묘 앞에는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의 한을 달래기 위한 뜻으로 무인석은 세우지 않고 문인석만을 세워 두었고,
그녀의 영혼이라도 서려 있을까, 사능(정순왕후의 묘)에서 접붙여 옮겨온 적송을 심어
 사후에나마 서로 만나 슬픈 이별을 풀도록 하게 하였다.
조선조의 능들은 서울에서 사방 1백 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장릉만이 유일하게 규례를 어기고 머나먼 영월땅에 위치하고 있다.
영월에서는 1967년부터 단종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해마다 청명일을 기해
 전야제를 여는 것으로 시작 3일간의 단종제가 계속된다.
또한 장릉 내에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있고,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오직 한 임금 섬기기에 목숨을 바친 264명의 충절들을 함께 모신
 배식단사가 단종의 능 입구에 세워져 있다.
능의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장릉의 원찰인 보덕사(報德寺)가 있고,
금몽암(禁夢庵)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의 이름은 단종이 유배 중에 들려
 꿈에 보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단종이 유배된 어느날 밤에 청령포가 물에 잠길 기세로 폭우가 쏟아지자
 영월읍내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어린 임금 단종은 관풍헌 앞 뜨락에 있는 자규루(子規樓-지방 유형문화재 제 26호)에 올라
 답답한 가슴을 달래며 한 서린 시를 읊는다. 너무나 애절하다.

 [자규시 子規詩] / 단종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궐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어진 새벽 산봉우리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엔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 먹어 이내 하소연 듣지 못하는지
 어쩌다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밝은가!

청령포 경내에 있는 비각 안내 표지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 端廟在本府時遺址碑 라는 제목 아래 이런 내용이 게시되어 있다.
 "1456.6.22. 조선6대 단종대왕의 왕위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 중 거처한 어소가 있었으나
 소실되어 영조 39년(1763년)에 비를 세워 어소위치를 표시함,
높이 162cm 1단 화강석 기단에 오석비신, 비전면에 '端廟在本府時遺址碑'라 음각,
후면 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 悌敬書令原營竪石地名淸令浦로
 음각 전면 측면 각 1칸식 비각안에 보존."

일행은 다시 청령에서 서강을 나룻배로 건너와 청령포가 마주보는
 건너편 낮은 언덕 위(영월읍 방절리,芳節里)에 자리잡고 있는
 왕방연 시조비(王邦衍時調碑)에 새겨진 서러운 노래를 감상하였다.

천만 길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청령포와 단종을 떠올리면 당연 정순왕후 송씨를 생각치 않을 수 없다.
아래의 시는 필자가 지은 시이다.

 (시) [사릉思陵에서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 / 함동진

 장릉의 솔바람
 서강의 강바람
 날아올 적마다 슬퍼라 두견제혈 杜鵑啼血
그리운 낭군 오시리라 기다림
 애타는 수수백년

 남양주
 솔병풍 둘러친 신방 아늑히
 금잔디 금침 펴놓고 기다리는 이 밤
 보름달은 휘영청
 저 자지러지는 촛불인양
 둥근 달 보며 비는 기도,
이런 비극 거두소서
 장릉의 낭군 이리로
 합방케 하소서

 능역 솔숲에는
 마르지 않는 이슬눈물
 가슴마다 저며오며
 오늘도 흐느낌으로
 돌아서는 발길
* (두견제혈杜鵑啼血: 피를토하며 우는 두견이-소쩍새).

한에 서린 역사의 고장 영월의 청령포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정권의 권력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 역사는 차치 하고라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고려의 군신들을,
그의 아들 태종과 손자인 세조 또한 친인척과 군신들을 처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정권 유지하기를 비롯하여 500년이나 계속 되 왔다.
근 현대에 와서도 정권을 거머쥐거나 찬탈하기 위해 일제침략, 해방을 맞아
 자주독립을 얻은 후에도 여순반란 사건, 6 25전쟁은 물론 테러,
쿠데타, 혁명을 구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무참히 짓밟히고 인권을 유린당해 왔던가?
청령포를 생각하면서 식은땀으로 후줄근해짐은 왜일까?
바로 코앞에서 체험했던 여순반란 사건과 6 25전쟁, 이승만 독재와 4 19의거,
5 16군사 쿠데타, 5공화국 탄생과 5 18사건들의 아픈 기억들이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행은 영월읍을 지나 동강에 이르렀다. 동강변을 따라 어라연漁羅淵 까지 트래킹을 하였다.
거운교를 건너 거운초등학교에서 비포장길을 100m쯤가다가
 우측으로 돌아 산길에 잣봉 등을 오르락내리락 약 3km 정도 가면
 동강 기슭인 만지동에서 비포장 강변길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2km 더 가면 길이 끝이 난다.
어라연 까지 남은 1km는 발에 채이는 돌밭과 모랫길이라 초행인 사람은 힘든 트래킹이라 할 수 있다.
풍광이 빼어난 강변을 따라가면서 수없이 지나는 레프팅 떼를 볼 수 있었다.
레프팅이 동강오염에 일조 한다는데 염려스럽다.
동강의 레프팅은 거운교를 건너면(어라연 트레킹코스와 반대편 건너) 비포장길을 따라
 직진하여 상류 쪽에 이르러 절운재 - 문산리를 거쳐 8km를 오르면 문산 나루가 있다.
여기에서 래프팅을 출발하여 하류를 따라
 두꺼비 바위 - 어라연 - 만지 - 거운교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일행은 어라연이 내려다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 위까지 가까스로 올라
 큰 적송나무 숲에서 시원한 강바람에 숨을 고르며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선경仙境에 탄성을 발할 수밖에 없었다.
동강은 오대산 월정사계곡에서 시원이 되어 진부를 거쳐 오대천이 되고,
동면의 화암구곡을 거쳐 , 정선에서 소금강의 절경을 따라 내려오면서 동대천이 된다.
이어서 그 물은 조양강과 정선 가수리에서 합쳐지며 영월땅으로 들어와 동강이 된다.
빠른 기세의 물살과 여울을 이루며 흘러가는 푸른 옥빛 물길의 강 양안에 깍아지른
 기암 절벽과 가파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연이어지는 비경은 산수화 파노라마 장관이다.
영월의 동강에서 으뜸 경관을 꼽으라면 당연 어라연으로 이어지는 강줄기일 것이다.
 <어라연漁羅淵>은 "저녁 무렵 물고기들이 물밖으로 뛰오르며 내보이는
 비늘이 마치 비단처럼 반짝였다"고 하여 붙여진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
어라연이 속해있는 동강은 우리 나라에서 물이 가장 좋은 곳의 첫번째로 꼽히는 곳이다.
어라연은 영월에서 동강을 따라 12km정도를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으며
 정선에서 한강까지의 천리길 초입의 물즐기가 영월의 어라연에서
 처음으로 물굽이를 급회전하며 한차례 쉬게 되는 곳이도 하다.
어라연은 물이 직각으로 굽이치면서 중간에 섬이 만들어져 있고,
그 작은 섬 안에는 세 개의 큰 기암이 머리에 소나무 관을 쓴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또 계곡 밖 양쪽으로는 천길단애의 절벽이 둘러 있어 그 경관은 신비감 마저 들게 한다.
동강은 얼마나 협곡인지 "이 고을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마치 깊은 우물에 비쳐 보이는 것처럼 좁다." "하늘이 세 뼘",
 "앞산과 뒷산을 이어서 빨래줄을 맬 수 있는 곳", "닭이 울면
 그 소리가 온 고을을 메운다"고 동강이 산간오지임을 말해주는 속담이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 비경을 간직한 채 처녀강이라고도 불리우는 사행천(蛇行川)인 동강에서는
 찬성론 자와 반대론 자 간에 한판 승부전이 전개되고 있다.
영월군(정부)이 동강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환경운동가, 주민 등이 반대와 저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댐이 건설된다면 동강과 그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로는
 수달, 하늘 다람쥐, 까막딱따구리, 비오리 등과 식물로는 층층둥굴레,
비술나무, 털댕강나무, 연잎꿩의다리, 동강할미꽃 등 희귀 동식물들이 설 땅을 잃게 되고,
특히 유일하게 한국의 동강에서만 벼랑에 매달려 하늘을 향해
 분홍색으로 핀다는 동강할미꽃 등이 실체가 밝혀지지 못한 채,
선사유적과 백룡동굴(영구 미공개 천연기념물)등
 많은 동굴들과 함께 수몰하게 되는 대량 자연파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미련스럽게 자연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한다면
 후손들로부터 받게될 원망과 수모를 어떻게 면할 것인가?
 "자연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 주인인 후손들의 것이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행은 나머지 기행일정에 따라 영월의 청령포와 동강의 어라연을 뒤로하고 정선땅으로 향하였다.
 (일정 1999.7.1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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