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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서..2021.4.28.수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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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46회 작성일 21-05-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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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4.28.수요일.남양주 다산 정약용선생 생가 '여유당' 모습   

▲ 다산 정약용유적지 앞 남한강에서..


남양주 다산 정약용유적지를 둘러보면서

4월28일.수요일 오후 

남양주 수종사 사찰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다산 정약용유적지로 향하면서
기와집 순두부 맛집을 만나 늦은 점심식사 후 다산유적지에 닿는다.
먼저 유적지 전면에 흐르는 남한강부터 둘러보고 정약용 생가인 여유당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다산유적지앞 남한강, 열수(冽水 - 정약용의 호, 茶山 혹은 冽水) 풍경


















정약용유적지 안내도
1. 문화관, 2. 기념관, 3. 문도사, 4. 정약용 선생묘, 5. 여유당(정약용 생가),
6. 서화관, 7. 주차장, 8. 천일각, 9. 기념탑, 10. 조형물(꺼지지 않는 불),
11. 거중기, 12. 실학박물관




수령은 백성을 위해서 있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생겨난 것인가?
백성이 곡식과 옷감을 바쳐 수령을 섬기고 또 수레와 말과 하인들을 내어
수령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며, 또는 기름과 피와 진액과 골수를 다 없애서
그 수령을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수령을 위하여 생겨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여유당집 원목(原牧)>






실학연수(實學淵藪)
실학이 모여 귀결하고 완성된 곳








다산 정약용선생 생가 '여유당'이 보인다.
정약용선생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은 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 있다. 그 옛날에는 이곳을 소내(소川) 도는 두릉(杜陵)이라고 했고
정약용선생의 5대조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정약용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고졸한 자태로 은근히 나그네 유혹하지만, 정작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곳은 여유당의 오른편을 돌아 뒷편 동산의 정약용선생의 묘소이다.
정약용선생은 여기서 세상을 떠났고 이 집 뒷산에 묻혔다. 모진 비바람에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박한 호석(護石)의 보호아래 풍산 홍씨와 함께 조용히 누워있는
정약용선생은 여유당을 휘감고 도는 한강의 여유로운 흐름을 관망한다.

1935년 대 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집앞 천이 흐르고
집 뒤로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선생은 수각이라고도 표현하였다고 한다.


여유당앞 느티나무


여유당 사랑채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은 1800년 정조 서거후,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與兮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는
노자의 말을 빌려,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짓고 침거했다.










'ㄱ'자형의 안채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






장독대와 우물


안채 옆면과 뒷면, 그리고 굴뚝






與猶堂重建上樑文(여유당중건상량문)




안방














이 곳은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이던 여유당이 있었던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선생의 후손인 정일권 국회의장의 휘호를 자연석에 각자하여 이 비를 세우다.
1974년 10월 * 일 경기도지사




조선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지은 자신의 묘지명(墓誌銘)
유배에서 돌아온지 4년 뒤 회갑때 지나온 파란의 삶을 회고하며 지었다.
무덤에 넣는 소략한 광중본(壙中本)과 문집에 실을 상세한 집중본(集中本) 두 가지가 있다.
















여유당(與猶堂)과 正門인 실학연수문(實學淵藪門)


















정약용은 문집에 남긴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자평했다.

爾紀爾善 至於累牘 紀爾隱慝 將無罄竹 
爾曰予知 書四經六 考厥攸行 能不愧忸 
爾則延譽 而罔贊揚 盍以身證 以顯以章
斂爾紛紜 戢爾猖狂 俛焉昭事 乃終有慶

너는 너의 착함을 기록하여, 서너 장에 이르고 숨겨진 악을 기록하여, 누락 없이 하려고 한다.
너는 말하지, 나는 아노라, 사서와 육경이라고. 하지만 행한 바를 살펴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너는 명예를 바라겠지만, 찬양할 것 하나 없다. 어찌 몸으로 증명하여, 덕을 드러내고 밝히지 않느냐.
네 번다함을 거두고, 네 미친 짓을 베어내어 힘써 하늘을 섬긴다면, 마침내 경사 있으리라.

(심경호 저 '내면기행' 인용)




다산 정약용

1. 성장기(成長期)

다산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7세에 "작은 산이 큰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써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다. 9세에 어머니 해남 윤씨가 별세하고 10세에 부친에게서 경서와 역사서를 배우기 시작했다.

15세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남인계 소장학자들인 이가환(李家煥,
이익의 종손) 이벽(李檗) 이승훈(李承薰) 등과 교유하면서 실학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이익(李瀷)의
유고를 읽게 되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고 사숙하기로 했다. 이후 다산은 20세를 전후 해 과거공부에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였으며 급기야 22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정조대왕을
만나게 되고 총애를 받게 된다. 28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2. 사환기(仕宦期)

28세때 벼슬에 나아간 다산은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는 등 정조의 총애속에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30세 때 진산사건(珍山事件,1791)이 발생한 후로 정적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배다리 설계에서 재주를 보인 다산은 31세에 부친상으로 여막살이를 하는 동안
정조로부터 수원화성(水原華城) 설계를 명령받는다. 33세에 경기북부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참혹상을 목격하고, 권세를 휘둘러 민폐를 끼친 관리들을 처벌하도록 정조에게 보고했다.

1797년 6월 정조는 다산을 동부승지로 임명했다. 이에 대해 다산은 '동부승지를 사양하는 상소문'을
올려 천주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사직상소를 낸 다음달 정조는 다산을 황해도 곡산부사로
특별히 임명했다. 곡산 부임길에 데모 주동자 이계심(李啓心)을 만났다. 다산은 관청의 행정에
항의하는 그의 태도가 오히려 관청이 밝은 행정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위적 지배를
부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해결해주려는 목민관의 자세를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38세(1799)때 정조는 다산을 조정에 불러 참의에 제수했다. 다산은 39세(1800) 봄에 처자식을 거느리고
마현(마현)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낙향에 있던 다산은 노자의 <도덕경> 중 "머뭇머뭇, 겨울시내를
건너듯 <與兮 若冬涉川> 조심조심, 사방을 두려워하듯 <猶兮 若畏四隣>" 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여유당(여유당)이란 당호를 짓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자했다. 그러나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한
'신유사옥(辛酉邪獄,1801)이 일어났다.

3. 유배기(流配記)

신유사옥으로 셋째 형 정약종은 순교하고, 한때 천주교를 받아들였다가 이제는 거리를 둔
둘째 형 정약전과 다산은 기나긴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산의 첫 유배지는 경상북도
장기(현 포항)였다. 황사영백서사건으로 서울로 다시 압송된 다산은 그해 11월 하순에 둘째형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형제는 나주 율정에서 눈물로 헤어진 뒤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형은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6년 후에 죽고,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8년 후에 귀향했다.

다산이 강진에 도착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40세,1801). 대역죄인이라 모두 접촉을 피했는데
이때 불쌍히 여겨 챙겨준 사람이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의 주모였다. 다산은 자신이 거처하는
누추한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이고 '네 가지 마땅함' 즉 '생각은 맑아야, 용모는 
장엄해야, 말은 과묵해야, 행동은 중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초기의 엄혹한 감시와 압박이 조금씩 풀리면서 다산은 1808년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초당은 제자들과 함께 학업에 정진하는 연구공간이 되었으며, 방대한 저술을 낳는
곳이 되었다. 다산의 제자에는 읍중시절에 수학한 제자(邑中弟子)들과 다산초당에서 수학한
제자(다산 18제자)들이 있다. 다산의 제자들은 다산의 저술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다산은 4서 6경에 대한 연구를 하였으며 1818년 해배되기까지의 마지막 기간에는 경세학(經世學)
연구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마쳤다.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등을 저술하였고 
미처 끝내지 못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는 고향집에 돌아가 저술을 마친다. 또한 다산은 수많은
서정시 및 사회시를 지어 19세기 초반 강진일대의 풍속과 세대를 읊으며, 압제와 핍박에 시달리던
농어민의 참상을 눈물어린 시어로 대변해 주었다.

4. 만년 삶(해배 이후)

18년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다산은 저술의 수정보완을 계속했다. 한편, 소론계의
석천(石泉) 신작(申綽), 노론계의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등과 같은 석학들과 학문 교류를 했다. 다산은 회갑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을 썼는데, 여기서 자신의 호를 사암(俟菴)이라 했다. 이는 "백세이후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百世以俟聖人面不惑)" 에서 따온 이름이다. 학문적 자부심일 수도
있고, 훗날에 대한 기다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836년 회혼일(回婚日)인 2월 22일(양력 4월 7일) 회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다산 정약용 생애
1762년 6월 16일(1세) - 초부면 마현리에서 넷째아들로 태어남
1776(15세) - 홍화보의 딸과 혼인함, 아버지 정재원이 다시 벼슬길에 올라 한성으로 이사함,
- 이익의 성호사설을 읽고 실학에 뜻을 둠
1783(22세) -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됨
1784(23세) - 정조에게 중용을 강론함
1789(28세) - 대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름
1790(29세) - 나라에서 금지하는 서학을 공부하였다고 하여 충청도 해미로 귀양갔다가 풀려남
1792(31세) - 홍문관 수찬이 됨, 수원 화성을 쌓는 일을 연구하여 수원성제를 지음
1794(33세) - 경기도 암행어사가 되어 어진 정치를 베품, 천연두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마과회통> 을 지음
1801(40세) - 신유사옥 때 경상도 장기(포항) 귀양감, 황사영백서사건에 관련되어 강진으로 귀양감
1808(47세) - 다산에 있는 정자로 옮겨 다산이라는 호를 쓰고 책을 쓰기 시작함
1817(56세) - <경세유표> 40권을 완성함
1818(57세) - <목민심서> 48권을 완성함, 귀양에서 1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옴
1819(58세) - <흠흠신서> 30권을 완성함
1836(75세) - 세상을 떠남
























정약용의 시 '送別(송별)'

驛亭秋雨送人遲(역정추우송인지) - 역정에 가을비 소슬하니 님 보내기 서러워 머뭇거리네
絶域相尋更有誰(절역상심경유수) - 멀고도 먼 이 고을 강진 땅 뉘라서 다시금 찾아주려나
班子登仙那可望(반자등선나가망) - 반자가 신선이 되어 가는 길 내 어찌 가히 바라겠는가만
李陵歸漢竟無期(이릉귀한경무기) - 이릉은 마침내 한나라로 돌아올 기약조차도 없었으니
尙思酉舍揮毫日(상사유사휘호일) - 아직도 유사의 그 일필휘지 뽐내던 일 눈앞에서 삼삼한데
忍說庚年墜劍時(인설경년추검시) - 어찌 차마 말할 수 있으리오, 상감님이 돌아가신 날을
苦竹數叢殘月曉(고죽수총잔월효) - 대숲에 내려 앉았던 달빛은 새벽이 되면서 사위어가고
故園回首淚垂垂(고원회수루수수) - 고향의 동산 회고하니 머리숙여 눈물이나 흘릴 뿐이네



















다산 정약용의 사상

* 정치사상
임금은 백성을 위하고(爲民思想), 군자는 자신을 바로 세운 후에 남을 다스리는(修己治人)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선생의 정치사상은 오늘날 지도자가 걸어야할 바른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경제사상
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제시하고 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정책인
여전제, 정전제를 제안,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조세 부담의 공평성을 기하는 등 능률적인
경제운영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 사회사상
폐단과 부패로 어지러운 봉건 시대에 핍박받는 민생의 편에서 사회제도를 백성을 위한 혁명적
개혁으로 주창하고 신분제 개혁, 서얼제도(庶孼制度) 철폐 등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사회, 
능력위주의 사회를 주장한 다산의 모습 속에서 모순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고뇌했던 
참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과학사상
서양의 천문, 지리, 농사정책, 수리 기술, 측량법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이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실용론을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거중기, 프리즘, 종두법을 발전시키는 등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과학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문학사상
진실은 삶의 맥락에서 권력에 저항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때 아름답습니다. 참된 지식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사회의 폐해를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경륜의 정신이 담긴 다산의 문학은 이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 교육사상
개혁은 치산(발전)을 위함인가 제산(평등)을 위함인가의 물음에 다산은 결론적으로 치산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연구하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實學)교육을
주창, 민생과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는 학문교육으로 교육의 정도(定道)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사진ㆍ글
찬란한 빛/김영희

추천1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김영희* 旅行作家님!!!
"남녘당`3泊4日"의 紀行文以後로,오래間晩에 "댓글"을 드립니다`如..
"南楊州`수종寺,烏山시`홍사용`文學觀과 숲길體驗,다산`정약용遺跡地 등..
  精誠으로 擔아주신 "紀行文"을,感動으로 滿喫하며 感謝히 즐`感하였습니다..
"찬란한빛`김영희" 旅行作家님!항상,,感謝드리며..늘상 健康하시고,幸福하세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 오랫만에 더 반갑네요.
오늘도 즐감하셨다니 기쁘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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