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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기행1-구미시 상모동 박정희생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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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73회 작성일 21-07-0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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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생가 민족 중흥관에서...2021.6.20.일
1964년 12월 뤼브케 서독 대통령 초청으로 방독한 박정희대통령과 뤼브케대통령
서독파견 간호사와 광부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


경북기행1-구미시 상모동 박정희생가를 찾아서

2021.6.20.일 

아 아! 지금으로 부터 42년 전의 일이 다시 떠올라서 재차 박정희대통령 생가를 방문하여 
경모하고, 이 나라를 5천년 역사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로 나아 간 웅비의 시대를 조감하고자 한다.

2021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3박4일간 구미, 경산, 대구, 영천, 안동시를 돌아보았다. 

제1편으로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대통령 생가, 
제2편으로 구미시 선산군 아도화상의 도리사,죽장사 5층석탑(국보 130호), 야은 길재선생의 채미정, 
제3편으로 경산시 팔공산 갓바위, 대구시 동화사, 
제4편으로 팔공산케이블카, 영천시 임고서원, 정몽주 생가, 유허비,
제5편으로 안동시 법천사지 칠층전탑, 임청각, 월영교로 이어지겠습니다.

제1편으로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대통령 생가이야기이다.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대통령 생가앞, 박대통령께서 한 농부에게 막걸리를 따르는 장면.
그 제목이 그립습니다. "다시 보고픈 그 모습"






박정희대통령하사건물
여기 상모동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출생하신 곳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의논도 하고 노인들이 모여 편히 쉴 수 있는 회관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신 대통령께서는 서기 1975년 4월 부지를 구입해서 건축할 
자금을 내려 주셨고 당시 선산군청에서는 이를 맡아서 그 해 11월 15일 
훌륭한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준공시켰습니다.

경로당은 금오당(金烏堂)이라 이름하여 당시 어르신네들의 휴식공간으로 하고 
마을회관은 예전 자연부락일 때의 친목모임이던 모노실회(慕魯室會)에서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한 새대(世代)가 지나는 동안 마을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혹시나 세월의 뒤안길에서 이러한 사연들이 잊어질까 염려하여 이를 영원히 
기리고자 금오당(金烏堂) 회원들의 뜻을 모아 이 돌에 사연을 새깁니다.

서기 2005년 7월 일
상모동(上毛洞) 금오당(金烏堂) 회장 이종순(李鍾洵)
전 구미문화원장 김교홍(金敎洪) 서(書)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

건국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지칭되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내노라하는 건설관계자와
야당의원, 경제학자 등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반대를 하였다. 당시 박대통령은 '하면 된다' 
고 하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계획안


준공식 직후 고속도로상에 삼페인을 뿌리시는 박정희대통령






치산녹화(治山綠化) 달성(1978)
자연보호 운동(1978)

박정희대통령이 1977년 9월5일 귀향길에 금오산에 들렸을 때 일이다. 
금오산(金烏山) 중턱 대해폭포 주변 계곡에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 하면서 수행원과 함께 몸소 쓰레기와 오물을 주웠다.

박대통령은 이 때 "이 공원이 품위 있고 쾌적한 휴양지가 되도록 평소에 환경정화에
힘써야 한다" 라고 말하며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자연보호운동은 온 나라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더니 1년 뒤인 1978년 10월에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1967년 4월30일 대통령선거 인천유세장에서 
찬조 연사의 유머에 소탈하게 웃고 계시는 대통령 내외분 














1976년 어느 화창한 봄 날에 청와대 뒤뜰에서 박정희대통령과 함께한 박근혜 대통령 모습


헌혈하시는 육영수 여사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후 청와대 뜰에서 영구차를 보내면서




청와대 집무실에서 창문을 내다보면서 국정을 생각하시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뜰에 곱게 피어있는 석류꽃




사랑채






사범학교 재학시절 어머니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은 강직하고 결단성있는 군인이자 역사의식을 지닌
정치가였으며 탁월한 경제인이었다. 또한 섬세한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한치도 농부의아들임을 잊은 적이 없었다.


박대통령께서 공부하시던 책상, 책꽂이, 호롱불

이 건물(방)은 박대통령 부모님께서 1916년 약목에서 이 곳으로 이주하여
신축한 건물이나 너무 허술해서 1960년말경 현재대로 보수하였다.

박대통령께서는 이 방에서 1917년 11월14일 탄생하시어 1937년 대구사범을
졸업하시고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할때까지 공부하시던 방이다.


















우물
박정희대통령께서 사용하셨던 펌프

체험펌프
☞ 마중물을 부어서 사용해 보시고 파손에 주의 바랍니다.

식수금지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 민족중흥관(President Park Chung-hee Memorial Hall)


1964년 12월 뤼브케 서독 대통령 초청으로 방독한 박정희대통령과 뤼브케대통령
서독파견 간호사와 광부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


건국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지칭되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내노라하는 건설관계자와
야당의원 경제학자등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반대를 하였다.
당시 박대통령은 "하면 된다"고 하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1968. 02.01~1970.07.07 경부고속도로준공
1968. 12.21 경인고속도로준공
1970.04.15~1973.11.14 남해고속도로준공








박정희대통령이 유년시절 소를 메어 놓고 독서 및 휴식을 취하던 소나무






박정희대통령이 1932년에 졸업한 구미보통(초등)학교의 졸업대장, 국가기록원 소장
















제5대 대통령 취임사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동포들이여!

나는 오늘 영화로운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신 국민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보람있는 이날의 축복을 보전하기에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지켜 온 충용스러운 전사장병, 그리고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적인 4월 혁명의 영령 앞에 나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중략-

새로운 정신, 새로운 과제로서 희망에 찬 우리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갑시다.
끝으로 하나님의 가호 속에 탄생되는 새 공화국의 전도에 영광 있기를 빌며, 이 식전에
참석하신 우방친우들에게 감사와 뜻을 표함과 아울러 동료 여러분의 건투와 행운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세계를 감동시킨 새마을운동

1990년대 새마을 운동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역량을 기울였고
'세계화' 및 '지방화' 시대의 환경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변화를 시도하였다.
1998년에는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을 선언하였으며 저개발국가 및 사회주의국가를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의 국제보급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운동은 2000년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지역사회개발운동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받았다. 새마을중앙회가 2000년 UN의
NGO로 가입하였으며 2003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콩고, 스리랑카, 몽골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개발국가 및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새마을운동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새마을'브랜드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로터리 코리아 2003년 6월호에 실린 김유복(金遺腹,1925~2008) 전 로터리 코리아 총재의 글.

'육사교장의 편지' 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50~60 대를 수구(守舊) 골통이라 몰아부치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보렴,

너희가 조국을 위해 과연 얼마만큼의 땀과 눈물을 흘렸느냐? 지금 너희들이 느끼는
편안함 뒤에는 지난날 너희들 또래 젊은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베어 있음을
너희들이 알고 있느냐?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였다.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까지 갔지만 끝내 그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렀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서독에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천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힌 것이다.

당시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4만 6천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봐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간신히 면접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출국장인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과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이 바다가 되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 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굳은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하루종일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과 달리 열 몇시간을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일을 한 것이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들과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코리안 엔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쿠데타 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다행히 서독 정부가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 시민들이 플랫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탱큐! 땡큐!"를 반복해서 외첬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 장소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 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모두들 목이 매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지하 1,000미터 속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박대통령은 목이 매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열심히 일하자는 말만 반복했다. 광부들도 울면서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도 함께 울면서 자식같이 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 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같이 울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십시오.
여러분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와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 등록국가 120여 개국중 
필리핀은 국민소득 170여달라, 태국은 220여달라였지만 한국은 겨우 76달라였다. 
세계 120여 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1964년에는 국민소득이 100달라가 되었다.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외국에 팔았다. 
서울 간 아들 학비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랐고,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짤랐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고, 곰 인형을 만들어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여서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워든지 다 만들어 팔았다. 결국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 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큰 아버지"였다. 적어도 지금
우리 세대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큰 아버지였다.

박 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수천미터 지하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 지난 세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자료관은 6월30일 예비개관이라 관람을 못해 아쉬웠다.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박정희 

님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소리 우거진데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 
제철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번가면 못 오는고
님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 백일홍도 제철 찾아 또 왔는데
님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세월은 흘러 가고
강물이 흘러 가니
인생도 오고 가네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 

                1975. 8. 14. 








건 립 취 지 문

박정희 대통령은 구미에서 태어났다.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원대한 꿈과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불굴의 의지로 이를 실천하는 한편,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 라고 호소하면서,
국민의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았으며, 반인반신(半人半神)의 혜안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이끌어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

이에 고향 구민 시민과 듯있는 분들의 성금으로, 한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이곳에 세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앞에 대통령의 업적을 돌에 새기고 느티나무를 심어 터널로 만들었다.

이것으로 경북여행(1) -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대통령 생가를 마치며 
이어서 제2편으로 구미시 도리사, 죽장사, 채미정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진ㆍ글
찬란한 빛/김영희
추천1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김영희* 旅行作家님!!!
  오래間晩에 "김영희"作家님의 記行文을,熱心히 耽讀하고 있습니다`如..
  夫君과 함께 3泊4日간 "慶北"의,"구미`경산`대구`영천`안동"을 探訪하시고..
  感動的으로 擔아주시는 "記行문(談)"을,즐`感하며 1~5篇을 期待하겠습니다요..
  第1篇에 擔아주신 "구미시篇"의,"박정희"大統領의 生生한 貌襲에~感激했습니다..
  生前의 "朴`대통령"님을 79`4月,"충주市廳"에서 만나뵈었눈데..10,26에,逝去하시다니..
"김영희"作家님!平素에 가장 尊敬하는,"朴`대통령님"을 追憶하며..늘 ,"健康+幸福"하세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 반갑게 뵙습니다.
박대통령님을 그랬었군요. 직접 뵈셨다니 마음이 특히나 남다를 것 같습니다.
관람내내 그 시절속에서 가슴 짠히 둘러보았지요.
훌륭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피땀 흘리며 나라를 일으킨
안박사님을 비롯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 또한 훌륭합니다.
그 시대를 하나하나 다시 사진과 전시물로 접하면서
생생히 떠 오르는 지난날의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들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오래전에 다녀오긴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 생가만 빼곤 많이 변모했더군요.
역사관 개관을 앞둔 상황이어서 그곳 관람을 못해 좀 아쉬운감도 있었지요.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을 누리며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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