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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비진도', 옥빛 바다 한가운데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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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2회 작성일 22-05-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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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진도 바깥섬의 선유봉 아래 미인전망대. 해발 300m 남짓인 전망대에 오르면 비진도 안섬으로 이어지는 백사장과 그 주변의 물색이 다 내려다보인다. 남국의 휴양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바다색이 이국적이다. # 그 섬에서 보석을 떠올리는 이유 섬 이름 ‘비진도’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히 ‘보배(珍·진)에 비(比)할 만한 섬’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도 있고, 이순신 장군이 이 섬 앞바다에서 왜적과 견줘 승리한 보배스러운 곳이라 해서 이름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비진도를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얘기들이 빠지지 않는다. 예로부터 섬에 미인이 많이 살았는데, 미인(美人)이 일본어로 ‘비진(びじん)’이라, 거기서 지명 유래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다 근거 없는 얘기다. 다음은 4대(代)째 섬에 살고 있는 비진도 주민 천경순(86) 씨의 설명. 육지에서 보면 이 섬이 통영 남쪽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막듯이 삐져나왔다고 해서 ‘삐진 섬’이라고 했단다. 그게 ‘비진섬’이 되고, 소리 그대로 한자로 옮기면서 비진도가 됐다는 얘기다. 지금은 ‘견줄 비(比)’에 ‘보배 진(珍)’ 자를 쓰지만, 고지도를 확인해보면 조선 시대에는 ‘아닐 비(非)’에 ‘보배 진(珍)’ 자를 썼다. 한자의 훈으로 새기는 뜻이 정반대다. ‘가히 보배에 비할 만한 섬’을, 조선 시대에는 ‘보배가 아닌 섬’이라고 불렀다는 거다. 섬 이름의 유래를 ‘보배에 비견’해 운운하는 건 음만 빌려다 쓴 한자를, 뜻으로 새겨 해석하면서 벌어진 오해다. 비진도는 일제강점기에는 미인도라고도 불렸다는데, 이것 역시 한국식 한자 발음에 대한 일본인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진’은 일본어로 미인이란 뜻. 일본인들은 한자로 미인(美人)이라고 써놓고 ‘비진’이라 읽는다.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그대로 입말로는 비진도라 부르면서, 글로 적을 때는 습관처럼 미인도(美人島)라 적었고, 그게 비진도의 한때 지명으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비진도란 이름이 보배에 비유해 붙여졌다거나 미인도로 불렸다는 건 오해에서 비롯됐지만, 그런 얘기가 진짜처럼 믿기고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섬이 아름다워서다. 지명 유래에 대한 그럴듯한 해석이 오해에서 비롯됐지만, 그런 해석을 사람들이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섬 안의 미인전망대에서 옥빛 바다색을 내려다보고 나면 비진도에서 보배를 떠올린 이유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비진도 해변의 바다색이 초록빛으로 투명한 보석 에메랄드를 꼭 빼닮았으니까. # 섬의 안과 바깥…비진도의 두 마을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세 번, 100t 남짓의 연안여객선 ‘한솔호’가 비진도를 거쳐 매물도까지 간다. 통영항에서 비진도까지는 40여 분 남짓. 비진도에 여객선이 닿는 곳은 두 곳이다. 비진도에는 2개의 마을이 있다. 선착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멀지만 두 마을을 구분하는 고유지명이 없다. 통영 여객선터미널 운항노선표에는 ‘내항마을’과 ‘외항마을’로 구분해 적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비진도 주민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내항마을을 ‘안비진’, 외항마을을 ‘바깥비진’이라 하고, 더 간단하게는 ‘안섬’ ‘바깥섬’이라고 한다. 모든 섬이 그렇듯 내외(內外), 그러니까 안과 바깥의 기준은 육지다. 육지에 가까운 마을이 내항마을이면서 안비진이고, 육지에서 먼 쪽이 외항마을이자 바깥비진이다. 두 마을의 고유지명이 따로 없는 이유는 본래 비진도에는 내항마을, 그러니까 달랑 안비진 마을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섬에 마을이 하나였던 시절이었으니 구태여 구분할 지명이 필요 없었다는 얘기다. 비진도는 섬의 모습이 아령과 닮았다. 봉긋하게 솟은 2개의 봉우리 사이를 아령 손잡이 같은 고운 백사장이 잇는다. 백사장만 없다면 남북으로 나뉜 2개의 섬이 될 뻔한 운명이었다. 비진도를 남북으로 놓인 아령에 비유해 설명해보자. 안비진 마을은 북쪽, 그러니까 육지에 가까운 아령 위쪽 둥근 부분에 있다. 먼바다에 등을 돌리고서 통영항을 바라보는 자리다. 바깥비진 마을은 아령 위쪽 동그라미의 손잡이 부분에 있다. 바깥비진의 백사장에 해수욕장이 개발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자 안비진 주민들이 하나둘 해수욕장 쪽으로 옮겨가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안비진과 바깥비진의 가구 수는 거의 반반쯤 된다. 두 마을이 모두 각각 40여 호 남짓이고, 주민 수는 60여 명쯤 된다. 마을의 위세는 본래 마을이 있었던 안비진 마을이 당당하지만, 사는 형편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바깥비진 마을이 앞서는 듯하다. 안비진 주민들은 “안비진에서 이장을 돕는 심부름꾼 격인 ‘유사’가 바깥비진에서는 떵떵거리며 이장 일을 했다”면서 옛날얘기를 꺼냈다. 자랑이라기보다는 번듯한 펜션이 들어선 바깥비진 마을에 대한 부러움이나 쇠락해가는 안비진 마을의 소외에 대한 한탄에 가까웠다. # 섬에서 ‘걷는 즐거움’을 느끼다 비진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다. 걸으면서 보는 섬의 풍경이 좋기도 하지만, 섬 둘레를 걷는 길이 잘 정비돼 있어서다. 사실 비진도를 보려면 걷기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섬 전체의 찻길을 모두 잇는다고 해도 3∼4㎞쯤이나 될까. 차로 다녀야 할 만큼 섬이 크지 않으니, 섬에는 민박 손님의 짐을 싣는 1t 트럭 한 대와 사륜 바이크 몇 대가 섬 안 ‘탈것’의 전부다. 마을에서 세워둔 승용차 한 대를 보기는 했는데, 육지에서 이용할 차를 샀다가 여객선터미널의 주차비 부담 때문에 섬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온 경우였다. ‘타고 다니려고’ 차를 들여온 게 아니라 ‘세워두려고’ 차를 섬에 가지고 온 셈이다. 비진도가 걷기 좋은 건 ‘바다백리길’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백리길은 국립공원공단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에다 놓은 ‘걷기길’이다. 여기서 잠깐.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려’란 이름은 한산도와 여수, 두 지명의 첫 글자를 합쳐 지은 것이다. 서쪽으로 여수 오동도에서, 동쪽으로는 거제 지심도까지의 아름다운 바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바다백리길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통영 앞바다에 떠 있는 6개 섬에 놓은 둘레길이다. 바다백리길은 새로 낸 길이 아니다. 섬사람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지게 길이나 갯것을 캐러 다니던 해안 길을 누비듯이 이어붙인 것이다. 하나의 섬이 하나의 코스를 이루니 6개 섬에 조성된 바다백리길은 모두 6개 코스다. 비진도에는 그중 하나인 ‘비진도 산호길’이 있다. 비진도의 하이라이트라면 안섬과 바깥섬을 잇는 백사장과 그 백사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깥섬에서 가장 높은 선유봉 바로 아래 미인전망대다. 비진도 산호길이 줄곧 그 코스를 따라간다. 백사장 주변의 바다는 눈부신 옥색인데, 전망대에서 보는 바다색은 매혹적이면서 이국적이다. 형언하기 어려운 쪽빛 바다색이야말로 다른 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진도만 가진 근사한 경관이다. ▲ 비진도의 암자 비진암. 어부 납북사건 이후 주민들이 떠나 폐허가 된 집터에 지은 암자다. # 거리의 신, 섬사람들을 지켜주다 이제 차근차근 비진도를 걸어보자. 통영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먼저 비진도 내항마을을 들른 뒤에 외항마을에서 승객을 내려준다. 외지인들은 대개 외항마을에서 내린다. 해수욕장이 외항마을에서 가까운 바깥섬 쪽에 있고 바다백리길 코스도 바깥섬에 있으니 그렇다. 하지만 비진도를 샅샅이 보고 싶다면, 그리고 다음 배편으로 바삐 섬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내항마을, 그러니까 배가 먼저 닿는 안비진에서 내리기를 권한다. 안비진에서 바깥비진까지는 걸어서 30분 남짓이다. 섬마을 걷기를 권하는 건 자연 경관뿐 아니라 섬의 인문 경관까지 모두 만날 수 있어서다. 더불어 섬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호의를 주고받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안비진 마을은 전형적인 섬마을이다. 골목을 따라 낮은 집들의 처마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섬에 당도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번듯한 흰색 건물이 새마을회관 겸 어촌계다. 어촌계 건물 옆에는 화강암 기둥처럼 생긴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비석에는 ‘거리지신위(巨里之神位)’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신위(神位)’라니 위패 같은 비석인데 모시는 신이 ‘거리(巨里)의 신’이다. 섬 안에 ‘거리’란 마을이 있는 것일까. 알고 보니 ‘거리’란 마을 이름이 아니라 그냥 ‘길거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삐진 섬’이 ‘비진도’가 된 것처럼 순우리말을 음차해 한자로 표기한 경우다. 거리신은 말 그대로 ‘노신(路神)’으로 집 나선 이들을 아무 탈 없이 보살펴주는 신이다. 해마다 정월 보름쯤에 스님이 무당과 함께 섬에 들어와서 사나흘 밤낮없이 제를 지냈는데 그럴 때면 섬 전체가 다 들썩거렸다고 했다. 제를 지낼 때도 그랬지만, 비진도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나갈 때도 진학이나 입대, 취업을 위해 육지로 떠날 때도 이 비석 앞에서 무사 안녕을 빌었다고 했다. 비석에는 ‘병자구월(丙子九月)’이라고 새겨져 있다. 1936년 병자년일까, 아니면 1876년 병자년일까. ▲ 비진도 내항마을의 골목에서 자라는 해송. 당산나무가 따로 없는 섬에서 주민들이 소원을 비는 나무다. # 섬에 새겨진 오래된 이야기들 비석 맞은편 경로당 앞에는 자그마한 위령탑이 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세상을 뜬 이 마을주민 8명과 월남전에서 전사한 1명의 이름을 새겨 기리는 탑이다. 위령탑은 1981년 퇴비증산을 목적으로 열린 전국 풀베기 행사에서 비진도 내항마을이 우승해 받은 상금으로 세운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상금을 어디에 쓸까 궁리하다가 ‘뜻깊은 일’로 찾은 게 위령탑 건립이었다. 위령탑 옆에는 ‘박종하 송공비(頌功碑)’가 있다. 박종하는 비진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한산면장을 지냈는데, 마을 앞에다 선착장 공사에 자기 돈을 보탰다고 해서 주민들이 세워준 비석이다. 그런데 비석을 세울 정도로 훌륭했던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선착장을 짓는 데 제 돈을 보탠 건 사실이지만, 공사 도중 ‘선착장이 너무 크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공사규모를 거듭해 줄였고, 이렇게 공사를 줄여 남는 돈을 착복해 논도 사고 대구리배도 사고, 정치망도 샀단다. 자신이 기부한 돈을 다 뽑고도 남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챙긴 돈으로 자식들을 일본 대학으로 유학 보냈다던가. 작은 섬마을에 섬을 나간 이들을 보살펴달라는 거리신을 모신 비석이 있고, 전쟁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섬 출신 젊은이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으며, 공사를 빌미로 제 주머니를 채운 친일파 면장의 공적비가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빗돌 얘기만 해도 한 보따리니, 마을 안에는 얼마나 더 많은 얘기가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인가. 비진도의 내항마을은 일대의 섬마을 중에서 첫손으로 꼽을 만큼 부촌이었다. 1970년대까지 비진도는 ‘한산면의 서울’이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연안 바다에 멸치잡이 어장이 형성됐고, 자연산 미역이나 천초(우뭇가사리)도 많이 났다. 섬 주변에서 고등어, 해삼과 홍합도 지천이었다. 섬 가운데 물이 솟아 논농사도 성했다. 지금은 죄다 묵어버렸지만, 마을 주위를 빙 둘러 논의 자취가 남아있다. 그때 내항마을에만 80여 호에 300여 명이 살았다고 했다. 마을주민 천씨는 “그때 비진도에는 육지로 나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80명이나 됐다”며 “자식을 대구교대에 진학시킨 집도 여섯 집이나 됐다”고 기억했다. 쇠락한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던 시절의 얘기다. # 섬에서 만난 흑백사진 같은 풍경 바다백리길인 비진도 산호길은 비진도 바깥섬에 있다. 산호길 코스는 바깥섬에서 시작해 바깥섬에서 끝난다. 그러니 안섬의 내항마을에서 내려 비진도 산호길을 걷겠다면, 먼저 바깥섬에서 가까운 외항마을로 건너가야 한다. 내항에서 외항으로 가는 2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앞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뒤편으로 들어가 호젓하기 이를 데 없는 솔숲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두 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어떤 길을 택해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 만일 섬에서 나갈 때 내항마을에서 배를 타겠다면, 어차피 출발지점까지 되돌아와야 하니 갈 때와 올 때 서로 다른 길을 택하는 게 좋겠다. 마을 앞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딛고 가는 길이야 뭐 따로 설명할 것도 없으니, 마을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길 얘기를 해보자. 숲길은 비진초교 폐교 담장을 끼고 이어진다. 비진초는 1944년 개교해 102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12년 3월 문을 닫았다. 오래전에 문 닫은 학교 교정에 남아있는 건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풍경이다. 운동장 한쪽에 시멘트로 만든 기린이며 코끼리와 서툰 솜씨로 만든 이순신 장군부터 신사임당, 이승복, 효자 정재수 동상을 기웃거리다 보면 마치 먼지 뽀얗게 쌓인 어린 시절을 꺼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학교 담장을 끼고 산길로 접어들면 훤칠한 소나무들이 쭉쭉 뻗은 숲길이 나온다. 덩굴식물들이 온통 휘감은 소나무 둥치 너머에는 바다가 있다. 마음이 저절로 청량해지는 길이다. 발아래로는 찔레꽃부터 고들빼기꽃, 광대수염, 장딸기꽃, 쥐오줌풀, 살갈퀴 등 갖가지 들꽃들로 그득하다. 숲길을 40분쯤 걸으면 외항마을이다. 같은 섬에 있지만, 두 마을은 분위기가 판이하다. 안비진이 텃밭에 기대 사는 외딴 섬마을의 낡고 누추한 풍경 그대로라면, 고운 백사장을 끼고 있는 바깥비진은 제법 호텔 느낌이 나는 펜션과 두어 곳의 식당, 그리고 가게가 있다. 외항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맞은편 바깥섬까지 이어지는 백사장이다. ▲ 이른 아침 통영항에서 출항해 연안의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통영 국제음악당이다. # 비진도의 절경을 보는 자리…미인전망대 안섬과 바깥섬, 두 섬 사이를 모래톱이 띠처럼 이어주고 있으니 모래톱 양쪽이 다 바다다. 안섬에서 바깥섬 쪽으로 백사장을 걸으면 서쪽인 오른쪽은 은빛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이고, 동쪽인 왼쪽은 큼지막한 자갈돌이 뒹구는 몽돌 해안이다. 모래 해안은 바다가 잔잔하고, 몽돌 해안은 제법 파도가 거세다. 백사장에 서면 양쪽 바다가 저마다 만들어내는 두 개의 파도 소리가 뒤섞이는데, 이거야말로 비진도 해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비진도 최고의 장관은 바깥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선유봉(312m) 턱밑에 있는 ‘미인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백리길을 여기 비진도에다 놓기로 한 것도 아마도 전망대에서 보는 이 경관 때문이었으리라. 선유봉의 해발고도가 300m를 조금 넘는 정도라 산책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발 0m에서 출발하니 쉽지 않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등산이나 진배없다. 선유봉까지는 1.3㎞ 정도의 거리를 쉬지 않고 올라야 하는데, 특히 초입부터 미인전망대까지 400m 정도의 구간은 줄곧 숨이 차는 가파른 구간이다. 선유봉에는 전망대가 2개 있는데, 먼저 닿는 곳이 망부석 전망대다. 바다로 고기 잡으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선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기대와 달리 망부석 전망대는 바다 전망이 탁 트이는 자리는 아니다. 대신 전망대에서 뒤로 돌아서 산정 부근을 올려다보면 사람의 옆얼굴 형상을 한 망부석 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미인전망대에 오르면 거기서 비진도가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경관과 마주 설 수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른 보상으로는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발아래로 안섬과 바깥섬을 잇는 잘록한 백사장 주변이 내려다보이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건 백사장 주변 물색 때문이다. 비진도의 투명한 초록 물빛은 남국 이름난 휴양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 비진도 비진초등학교. 10년 전 폐교 이후 줄곧 비워뒀는데도 학교 교사와 운동장이 깔끔하다. # 섬에서 보내는 완벽한 하루 내리막길은 쉽다. 오르막길이 짧지만 음습한 느낌의 거친 길이었다면, 내려가는 길은 긴 대신 볕도 환하고 나무도 성근 편안한 숲길이다. 해안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내리막길이 좀 가파르긴 하지만, 발아래로 펼쳐지는 단애의 해안 경관이 눈길을 붙잡는다. 이쪽의 해안 경관에는 이름이 붙어있다. ‘노루여’도 있고 ‘설핑이치’도 있고 ‘갈치’도 있다.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한데, 분명한 건 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안내판의 내용이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갈치를 설명하면서 ‘ 태풍이 불면 갈치가 빨래처럼 내걸린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아무리 태풍이 분다 해도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갈치가 물 밖으로 나와서 바위에 내걸린다는 게 어디 있을 법한 얘기일까. 갈치는 생선이 아니라, 칡덩굴로 뒤덮인 바위 봉우리를 뜻하는 ‘갈치(葛峙)’였으리라. 선유봉을 다 내려오면 길은 자그마한 암자 비진암을 지난다. 1977년 통영호 납북사건 이후 섬 안의 작은 마을들이 소개되면서, 사라진 마을 자리에다가 요사채를 만들고 그 뒤에 자그마한 법당을 지어 올린 곳이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다 암자를 짓고 한동안 암자에 머물렀다는 비구니도 이제 떠나서 암자에는 인기척이 없다. 빈 암자의 툇마루에 앉아서 보는 바다가 평화롭다. 이렇게 섬을 다 돌고서 내항마을로 돌아가는 데는 바삐 걷는다면 4시간쯤, 쉬엄쉬엄 걸으면 5시간이 걸린다. 비진도를 이렇게 여행한다면 ‘섬에서 거의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비진도를 다 돌고 내항마을 폐교 마당에 텐트를 치고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2명의 여성 백패커도 이 얘기에 흔쾌하게 동의했다. ■ 바다백리길은 또 어디있을까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은 비진도 외에도 한산도와 매물도, 소매물도, 연대도, 미륵도 등에도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많은 섬 중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가려 뽑아 걷기길을 놓은 곳이니, 근사한 풍경을 끼고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경관으로만 겨룬다면 비진도 산호길 못지않은 곳이 소매물도 등대길과 미륵도 달아길이다. 통영(비진도)=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22년 5월 26일 목요일 문화닷컴에서 사진ㆍ글 옮겨 재구성 찬란한 빛/김영희 ▲ 청와대..청와대는 백악산(북악산)에 등을 딱 대고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 서울 도심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늘 ‘남에서 북으로’ 보는 시선 방향이 익숙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서울을 거꾸로 ‘북에서 남으로’ 보게 된다. 시선의 방향이 바뀌니 늘 보던 것들이 반대쪽에 있다. 오른쪽에 있던 것이 왼쪽에, 왼쪽에 있던 것이 오른쪽에 있다. 이게 다스리는 자리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이었을까. 청와대 본관 너머로 경복궁과 광화문 네거리가 보인다. ▲ 드론으로 찍은 청와대 관저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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