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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에, 그것도 춥다는 날에 행주산성과 그 아래 역사공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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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06회 작성일 23-01-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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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대첩비 뒷면아래 충의정에서..2023.1.28.토 충의정(영상교육관) 1977년 건립한 영상교육관으로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승리'에 대한 영상물을 상시 상영한다. 겨울날에, 그것도 춥다는 날에 행주산성과 그 아래 역사공원을 걸었다 2023년 1월 28일 토요일 지난해 중순부터 한달 넘도록 집콕신세를 면치 못했다. 겨울한파 때문이냐구요? 아니예요 그간 너무 과한운동으로 무릎에 이상이 와서 치료및 관리차원에 외출을 못했는데 점차 호전되어 이제서야 조심조심 바깥세상 발디딤을 했다. 새해들어 새희망으로 나선 첫 나들이길이다. 스마트폰 온도가 영하9도라지만, 햇볕이 따사롭고 옷을 단디 챙겨입고 나서니 체감온도는 그리 낮지 않아 쾌적하게 겨울 한낮을 행주산성에서 즐길 수 있었다. 햇볕이 너무 따사로워 봄인듯 착각도 들었지만, 더러 흰눈이 덮힌곳도 있어 겨울산임을 입증해 주었다. 스틱에 의지해 한발한발 내 딛으며 쉬었다가기를 여러차례, 그래도 그건 행복이었다. 이렇게 나들이를 다시 할 수 있었음은 축복이 아닌가? 감사함으로 가슴이 연신 뭉클해짐이다. 오래전에 다녀온 행주산성과 행주산성 역사공원이 많이 정비가 되어 놀라웠다. 쉼터로 잘 정리되어 더욱 안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역사공원으로 탈바꿈되었다. 행주산성과 달리 역사공원은 입장료는 물론 주차료 없는 시민들의 쉼터로 썩 훌륭한 공간이었다. 우리부부는 먼저 행주산성(주차비:2,000원) 부터 둘러보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아래쪽 음식점골목 맛집 '나루터1관'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곤 행주산성역사공원에 이른다. 그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풀어보며 다시 그날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다. 고양시 행주산성 대첩문 행주산성 안내도 행주산성의 명소 고양의 문화유산 어서 오세요 행주산성에.. 행주산성 입구 대첩문에 들어서면 바로 권율장군 동상을 만난다. 행주가(街) 예술이야(夜)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 선정 대한민국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된 행주산성의 야간개장으로 매년 일정기간 밤 10시까지 개장하여 행주산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충장공 권율 도원수 동상 -고양시 상징건축물 제1호 지정 문무를 겸비한 명장 충장공 권율 도원수상은 1986년 건립되었으며 높이는 5m, 좌대높이는 3.35m로 근대조각가 김세중 작품이다. 동상 뒤 4폭 부조물은 행주대첩 당시 관군, 의병, 승군, 여상들의 치열한 항전모습을 담았다. 조선 최초의 여성의 병장, 행주치마와 노적봉의 전설 충장사 입구, 홍살문이다. 홍살문은 신성한 영정을 뵙기 전 액이나 악운을 쫓아보내는 역할을 한다. 충장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도원수)의 전공을 기리고 그의 호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0년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사당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충장사에서는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를 모신다. ▲ 행주산성 충장사의 권율 장군 표준영정. ▲ 충장사 삼문 밖 오른쪽 터에 세워져 있는 '행주 대첩비'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 새겨둔 비석. 행주 대첩비 '이곳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적은 군대를 가지고 많은 적을 격타한 전적지이다. 장군의 자는 언신, 영의정 권철의 아들이다. 1537년에 출생, 15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임진란이 발발한 뒤에 의주목사에서 광주목사에 전임되어 전라순찰사 이광의 휘하에 들어갔으나 이광은 (천천히 공격하자는) 장군의 말을 듣지 않다가 마침내 전군이 궤멸당하였다. 장군은 광주로 돌아가 군대를 모집하여 금산 이치에 주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오는 적을 크게 격파하여 침입을 저지하였다. 장군은 다시 전라도 순찰사에 임명되었다. 장군은 곧 군대를 모아서 약 4천 명을 거느리고 9월에 수원 독성에 주둔하였다. 이때에 적들은 평양, 황해도 및 개성을 나누어 점령하였고 후방 부대들은 서울에 모여 있었다. 장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공격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고 앞에 나아간 적들의 기세를 꺾기 위하여 또 다시 이듬해 2월 2300명을 거느리고 양천강을 건너 고양의 행주산성에 주둔했다. 이때는 중국에서 파견된 대장 이여송이 평양에 있는 적을 격파한 뒤이므로 평양, 황해도, 개성 및 함경도에서 후퇴한 적들이 모두 서울에 집결해 그 세력이 강대하였다. 장군은 소수의 군대를 거느리고 서울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었으나 워낙 적은 수였기 때문에 적군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달 12일 수 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산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장군은 군중에게 동요하지 말도록 주의시키고 성 안에서 활을 쏘며 돌을 굴려서 기어오르는 적을 격파 하였으며 적이 목책에 불을 지르면 물을 쏟아서 이를 방지하였다. 일부의 적이 방위가 약간 허술한 쪽으로 들어오자 장군은 칼을 뽑아들고 앞장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세 차례 격전 끝에 적은 마침내 참패하여 전사자의 시체를 네 곳에 모아 불태우고 달아났다. 이것이 이른바 행주대첩이다. 그해 6월 장군은 도원수에 임명되었고 정유재란에 울산 및 순천 전투에 참가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장군은 1599년 63세로 돌아가시니 나라에서 장군을 선무1등공신에 올려 영가부원군의 칭호와 의정부영의정의 관직과 충장공의 시호를 추증하였다. 1602년 장군의 부하들이 산성에 비를 세웠다. 최립의 글, 한호의 글씨에 김상용이 머리글을 썼으며 비 후면에 장군 사위인 이항복의 추기를 김현성의 글씨로 새겼다. 1842년 조인영의 건의로 나라에서는 장군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사당인 기공사를 짓고 여기에 새로 비를 세웠는데 조인영의 글과 이유원의 글씨로 되었다. 1979년 10월, 임창순 옮기고 김응현 쓰다.' 충장사에서 바라본 삼도삼문(三道三門) 삼도삼문(三道三門) 궁궐, 사당, 서원, 향교에서 볼 수 있는 삼도는 가운데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參道)를 두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는 곳으로 일반인은 오갈 수 없으며, 부득이 넘어가게 된 경우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넘어가면 된다. 삼도와 삼문이 있을때 들어가는 방법은 우입좌출(右入左出)로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온다. 충장사에도 세개의 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충장사관람을 마치고 대첩기념관 ▲ 행주대첩기념관 건물이다. 본래 무기고와 군량 창고가 있던 터에 1980년 지어졌다. 당시 권율 장군이 썼던 보검, 화차 40대를 제작하여 권율 장군에게 제공함으로써 행주대첩이 가능하도록 한 변이중 선생의 문집, 문종화차를 복원한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첩기념관 자리는 본래 무기고와 군량 창고가 있던 터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빈 땅이 되었고, 1980년에 대첩기념관을 지었다. 기념관 안에는 권율 장군의 승전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치대첩도, 독산성싸움도, 행주대첩도가 걸려 있다. 기념관에는 선조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장수가 있으면 이 칼로 처단하라."면서 권율 장군에게 주었다는 보검도 있다. 행주대첩 때 사용된 화차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진열해 둔 문종화차 복원품도 볼 수 있다. 화차 40대를 권율 장군에게 제공하여 행주대첩을 거두는 데 결정적 공로를 세운 변이중 선생의 문집도 전시되어 있다. 행주토성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토기와 기와 조각 등은 이 산성의 오랜 역사를 증언해준다. 2020년 3월 5일 코러나바이러스가 처음 창궐할 때 마스크쓰고 오르던 옛생각을 하면서... 그 때 행주산성 대첩기념관은 완전 통제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개방되어 권율장군의 행주대첩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자 그럼 대첩기념관 입구로 들어 가 볼까요? 각궁(角弓) 우리나라 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물소뿔, 뽕나무, 소힘줄, 실 등을 복합적으로 붙여 만든 활이며 그 탄력성이 매우 강하다. 일반적 사정거리는 약 200보에 달하였다. 당파 당파는 창의 일종으로 일명 삼지창이라 한다. 당파는 중국의 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세개의 창날 뿌리 부분에 주석으로 용수를 떼어 붙였으며, 좌우의 밑뿌리는 모두 딱 벌린 입 안에서 솟아나와 굳세고 날카로웠다. 당파는 전투에 있어서 찌르고 잡아채는데 효율적인 병기로서 병사들에게 널리 쓰였다. 나졸복 나졸복은 조선시대의 일반 병사들이 입었던 복장이다. 흰 무명 바지저고리 위에 검정괘자를 입고 허리에 진대를 매었으며 흰 수건을 두르고 벙거지를 썼다. 나졸복 차림으로 손에 창검을 들면 일반 병사가 되고, 육모방망이를 차고 오랏줄을 갖추면 오늘날 경찰의 역할을 하였다. 장군복 두석린갑주(豆錫鱗甲冑)는 두석(놋쇠)으로 만든 미늘(찰편)을 연결하여 만든 갑옷이다. 이 갑옷은 장수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원수가 입었던 것으로 투구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이마가리개의 중앙에도 원수라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다. 행주대첩 이후 도원수가 된 권율장군도 전군을 호령할 때 이 갑옷을 입었다. 보검 보검은 왕이 장수들에게 하사했던 칼로 휘하 군사들의 인행을 좌우하는 지휘자의 통솔과 용맹을 상징한다. 칼에는소유자의 무운을 비는 문장을 새기거나 실존하지 않는 동물, 북두칠성 등을 새겨 넣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근왕군을 이끌고 북상하던 권율 장군에게 주며 "모든 장수중에 명령을 듣지않는 자가 있거든 이 칼로 처단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변이중 선생 문집 행주산성(토성) 출토 유물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행주산성(토성)의 학술 발굴조사 당시(1991년) 출토된 와당 및토기들이며 삼국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의유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주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 행주산성은 이때부터 중요한 군사적 방어 요새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주요 전황도 행주치마 행주치마는 부녀자들이 앞에 두르는 작은 치마로 행주산성 전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당시 행주산성 전투에서 쉴새없이 공격해오는 왜군의 공격앞에 모든 무기와 화약이 바닥나게 되었다. 이에 부녀자들은 치마를 짧게 잘라 허리에 묶고 거기에 왜군에게 떤질 돌을 담아 날랐고, 군사들이 다시 분전하여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한몫을 했다고 한다. 신기전(神機箭) Shingijeon(Rocket) 귀신붙은 기계화살이란 뜻으로 크기는 대,중,소 세가지가 있다. 대나무는 안정 막대로서 신기전이 똑바로 나갈 수 있게 해주며 발화물은 목표물에 이르면 저절로 폭발하는 것으로 지금의 로켓, 미사일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권율장군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추위도 잠시 밀려 햇볕이 따사로웠다. 행주가(街) 예술이야(夜)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 선정 대한민국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된 행주산성의 야간개장으로 매년 일정기간 밤 10시까지 개장하여 행주산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소원성취 오는분들 소원 성취하세요 방화대교 방화대교(傍花大橋 / Banghwadaegyo(Way Bridge))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을 잇는 한강의 교량이다. 총 연장 2,559m로 한강을 넘는 교량 중 제일 길다. 창릉천 하구 구간을 종단하는 구간까지 방화대교로 되어 있기 때문이며, 한때 국내의 교량 길이 순위에서 5위 안에 들기도 하였다. 진강정은 100m아래 위치해 있다. 진강정은 줌으로 당겨 찰칵! 왼쪽으로는 덕양정, 오른쪽으로는 대첩비가 시야에 든다. 덕양정. 진강정 1970년 건립한 정자로 한강과 인근의 서울과 김포시, 고양시 등의 경치를 관망할 수 있다. 특히 진강정 아래로는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공원으로 이어지는 행주산성누리길이 연결되어 있다. 덕양정 신 행주대첩비 신 행주대첩비는 높이가 15.2m이며 1970년 11월에 세웠다. '幸州大捷碑(행주대첩비)' 큰 글씨는 박정희대통령이 쓰고 비문은 사학자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한글로 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전쟁에 익숙한 자들로서 조총이라 하는 새 무기를 가졌으며 우리나라 군대는 2백년 동안 평화스러운 생활을 하던 농민군으로서 무기다운 무기도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싸움은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다. 부산 동래 상주 충주가 연달아 함락되고 정부가 의주로 피난하였으며 전라도와 평안도의 일부를 제외한 전국 방방곡곡이 왜군에게 유린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적의 수군을 전멸시키고 육지에서는 권율장군이 행주대첩을 얻어 차차 전세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인도하였다. 권율 장군은 본래 문신이었으나 장수의 자질을 겸했기 때문에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의 특명으로 전라도 광주목사가 되었으며 7월에 왜군이 금산으로부터 전주로 쳐들어 올 때 이치(梨峙)에서 이것을 막아내어 적으로 하여금 전라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8월엔 전라감사로 승진하였으며 9월에 근왕병 4천명을 거느리고 북으로 올라가 강화도에 진을 치고 있다가 12월에 진지를 수원 독성으로 옮겨 때때로 왜병을 공격하면서 명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1593년 1월 8일에 명장 이여송이 4만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평양을 수복하였으나 27일 벽제관 싸움에서 패하여 개성으로 후퇴한 뒤 다시 전진하지 아니하므로 권율장군은 명군과 연락하여 서울을 수복할 목적 으로 2월 11일에 조방장 조경, 승장 처영과 함께 정병 2천 3백명을 거느리고 양천으로부터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으로 들어와 토성을 쌓고 목책을 치고 있었다. 이때 서울에는 평안도 황해도로부터 후퇴한 왜병 3만 명이 집결하고 있었는데 12일 새벽에 왜병 우기다 히데이에가 3만 대병을 총동원하여 행주산성을 포위하고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서로 교대하여 가면서 공격해 왔으나 워낙 산성이 높고 가파르며 아군이 고지대에서 활과 총통을 쏘고 돌을 던졌기 때문에 쉽게 쳐 올라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두울 무렵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서북쪽 자성의 목책 한 칸을 파괴하고 쳐들어 왔으며 그곳을 지키던 승군이 조금 물러서려고 하므로 그 찰나 권율장군이 칼을 들어 물러선 자 두어 사람을 죽이고 독전하여 마지아니하였다. 이엔 전군이 죽음을 무릎쓰고 적과 싸워 마침내 이를 물리치고 다시 목책을 세웠다. 이 싸움은 2천2백의 작은 군대로써 3만의 적을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이 물러갈 때 시체 네 무더기를 불사르고 갔는데 아군이 적의 시체를 주운 것이 130이오, 기치와 창검을 얻은 것이 또한 많다 하니 실로 큰 전과이며 이 싸움으로 인하여 아군과 명군의 사기가 일어나 차차 적을 남으로 쫓고 정부가 환도하게 되었으니 그 의의는 실로 크다 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싸움을 임진왜란의 3대첩의 하나로 손꼽으며 권율장군은 그 공으로 도원수가 되어 우리나라 육군을 총지휘하였고 전쟁이 끝난 뒤 선무일등 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장군이 돌아가신 뒤에 행주대첩비를 건립하고 산밑에 기공사를 세워 장군의 영렬을 봉안하고 그 비각과 정자를 지어 장군과 부하장병 및 구국의 결전에 참여한 백성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널리 선양하여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나라를 스스로 지키는 자주의 정신을 길이 계승하고자 한다. 이 비는 1963년 8월15일 당시 재건국민운동경기도지부가 세웠던 것인데 비문에 훼손이 심하여 다시 새기어 세우는 것이다. 큰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쓰다 1970년 11월 일 충의정 이름에 정(亭)이 들어 있어 정자인가 싶지만 교육장으로 쓰이는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일 뿐이다. 충의정 뒤로 흙으로 쌓은 성이 있다. 삼국시대 토성이 임진왜란 당시에도 여전히 요새로 남아 3대 대첩지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충의정 앞에서 토성으로 내려가는 길은 바라만 보고 평평한 길따라 원점회귀로 돌아 내려간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행주산성 아래 강변 행주산성 역사공원으로 이동이다. 점심은 '나루터'제1관에서..'참게장 영양돌솥정식' (1인 23,000) 밑반찬까지 맛짱!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소재 행주산성 역사공원은 행주산성의 서쪽 한강변에 있는 수변공원으로 행주대교 북단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70년대 무장공비의 침투에 대비해 설치한 남북분단과 갈등의 상징인 한강하구 군 철책 일부를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42년만인 2012년 제거한 곳이다. 고양시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잇던 한강하구 수변공간 활용계획의 일환으로 한강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친수공간인 빨랫돌머리, 군초소 전망대인 행호정, 철책 포토전, 바람개비 언덕을 갖춘 역사공원으로 조성해 각종 축제 및 행사가 이루어져 시민여가공간을 제공하며 공원일부는 행주산성누리길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고양인재개발원 앞 공원주차장 바로 옆에는 군부대초소에서 전망대로 변신한 행호정이 있는데 이곳에는 행주산성 역사공원 관련 각종 자료와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역사공원 내 볼거리를 8경으로 정해 놓았는데, 이들은 팔각정 전망대, 공원입구, 행호정, 중앙전망대, 갈대밭, 고기잡이배, 친수스탠드, 발랫돌머리이다. 행호정에서 내려다보면 한강변의 수변공간을 잘 볼 수 있다. 행호정 주변에는 행주산성 돌탑, 도산 안창호 선생의 거국가, 독립운동가인 장효근 선생 생가, 만화로 보는 한강하구의 생태, 역사, 평화이야기, 석주 권필 선생의 시비, 겸재 정선이 그린 황호관어도에 관한 안내문이 있다. 행주산성 돌탑은 행주대첩 당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을 모아 쌓은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거국가는 도산이 1910년 이곳에서 신채호와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지은 이별가이다. ' 문정공文貞公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 선생(1551~162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경칙景則, 호號는 석탄石灘, 본관은 전의全義다. 형조참의(증 참판) 원손元孫과 정부인 이씨의 삼형제 중 둘째로 한성에서 태어나 고양에서 성장, 생활하였다. 16세에 행촌杏村 민순閔純의 문하에 취학, 20여 년간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스승의 권유로 관직에 나갔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이내 사직하고 학문에만 심취하여 대학차록大學箚錄, 가례차록家禮箚錄을 완성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300여 명을 모아 의병장으로 창의사倡義使김천일金千鎰과 함께 한강, 행주산성 주변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우니, 조정에서 직산현감에 제수하여 나갔다. 이후 괴산, 임천군수, 홍주, 해주, 광주목사 등 16여 년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목민관으로 봉직하면서 덕치德治, 애민愛民, 선정善政하여 공신 녹훈, 군왕 포상 등의 업적과 선정 유애비, 차도해遮道解를 남겼다. 광해군이 난정을 일삼더니 아우 영창대군을 죽이고, 모후 인목대비를 폐하려하자 분연히 일어나 항론을 올리니 곧 정사헌의丁巳獻議다. 이 사건으로 함경도 회령에 위리안치 유배되었다가 전라도 흥양으로 이배되어 6년 여의 고초를 겪었다. 이때 거문고를 구하여 사우가四友歌와 단가육장短歌六章을 지으니 오늘날 학술연구, 대학수능모의 시험출제 등 문학적 가치성을 높이 인정받고 있다. 특히 사우가는‘송松 불변의 절개, 국菊 청고한 정신, 매梅 고매한 인격, 죽竹떳떳한 충정’을 노래하여 대의와 충절을 나타냈으며, 학자들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 보다 작품연대가 24년 앞서 오우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인조반정 이후 유배지에서 형조참의로 조정에 복귀 경연특진관, 형조참판으로 승차하여 임금에게 1강12목의 봉사封事를 올렸다. 정묘호란으로 인조임금의 강화 피난길을 호종하다 수원 마정리에서 오직「우국일념憂國一念」이라는 유훈을 남기고 파란만장했던 77세의 생을 마치니, 아! 슬프도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묵재默齋 이귀李貴 선생과 교분이 두터웠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시장諡狀과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좌의정左議政 이이명李頤命 선생이 지명誌銘을 지었다. 숙종임금 때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문정文貞의 시호를 내렸으며 고양 문봉서원, 괴산 화암서원, 광주 유애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석탄집石灘集」이 있다. 선생은 오직 백성과 나라만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자랑스러운 고양의 8현八賢으로 우리 고양시의 후학들은 숭모의 뜻을 담아 이 비碑를 세운다. 2012년 9월 19일 석탄 이신의 선생 시비건립위원회 書 하루나들이 잘 보내고 집으로...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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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김영희* 記行作家님!!!
"癸卯年"을 맞으시어 첫`記行을,"杏(幸)州山城"으로 向하시고..
 詳細하고도 慈狀하게 譯어주신,"행주산성"의 以力을 즐`感하면서..
 先祖님들의 欻隆한 業積과,國家를 사랑하신 忠成心에 感揖합니다`如..
"김영희"旅行作家님!"記行文"에,깊이 感謝드리며..늘,健康+幸福하세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행주산성은 홈에서 자차로 30여분 거리에 있어
그 아래 역사공원은 심심치않게 다녀오곤 했는데
한참을 잊고 있다가 오랫만에 나들이 했습니다.

휑했던 곳이 많이 정비가 되어 쉼터로 참 좋아졌더군요.
점심도 맛집에서 맛있게 들고
아주 좋은 기분으로 다녀왔다지요.
이렇듯 고운 정성도 남겨주시고 오늘도 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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