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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월대, 그리고 달이 뜨는 암봉 아래 신비로운 석벽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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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1회 작성일 23-03-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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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구정봉 아래 비밀스러운 공간에 새긴 월출산마애불좌상. 달이 뜨는 암봉 아래 신비로운 석벽 부처… ‘비밀의 낙원’을 만나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03-23 09:27 박경일 기자 월출산 주지봉 아래 바위 월대에 올라앉아서 구림마을 너머로 영암의 들녘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산강 하구언이 놓이기 전에 이 너른 들이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였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전남 영암 ‘월출산’ 숨은 매력 ‘달 솟는다’ ‘달 낳는다’ 의미 협곡과 능선이 굽이치는 산 주지봉 아래 ‘월대’ 올라서면 장쾌한 영암 들녘 ‘파노라마’ 서쪽 문산재엔 또다른 ‘월대’ 영산강 일대 절경이 한눈에 해발 743m에 ‘국보 마애불’ 거대한 모습 보면 경건해져 영암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전남 영암의 월출산은 존재감이 뚜렷한 산입니다. 산 전체가 바위로 이뤄진 데다 창끝과 같은 암봉이 능선과 협곡에 즐비합니다. 다른 산과 능선을 잇대지 않고 저 홀로 수반 위에 얹은 수석처럼 평지에서 우뚝 솟았으니 형상은 더 선명합니다. 나주의 금성산에서도, 광주의 무등산에서도 월출산이 보입니다. 그 까마득한 거리에서도 산세와 형상만으로 월출산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진 월출산의 절경과 뿜어내는 기운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그건 월출산에 발을 들이면 누구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월출산이 숨겨놓은 곳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장엄하고 화려한 산은 많은 것들을 가립니다. 따로 귀띔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숨겨진 두 곳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한 곳은 고증도 없이 덕지덕지 덧칠한 역사에 가려져서, 다른 한 곳은 멀고 힘든 길 끝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 첫 번째 명소, 월악산의 달을 보는 자리 전남 영암의 월출산은 ‘달이 솟는 산’이다. 고려 때는 월출산을 월생산(月生山)이라 했다. ‘월생(月生)’, 그러니까 ‘달을 낳는 산’이다. 월출산의 다른 이름인 보월산(寶月山)은 ‘보석 같은 달의 산’이란 뜻이고, 월악(月岳)은 ‘달의 산’이란 뜻이다. 달이 산 이름에서 빠지지 않는다. 월출산에는 영암의 들녘을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는 기막힌 전망의 특급 명당자리가 있다. 그 자리가 바로 ‘월대(月臺)’다. 서울 광화문에는 한창 발굴 중인 궁궐 기단 월대가 있는데, 전남 영암에도 두 개의 월대가 있다. 영암의 월대 중 하나는 도갑사 대웅전의 기단이고, 다른 하나는 월출산 주지봉 아래 바위다. 명당자리란 바로 주지봉 아래 월대를 말한다. 월대를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달을 보는 대(臺)’다. 광화문과 도갑사 대웅전 월대도 한자는 같지만 의미가 좀 다르다. 궁궐이나 사찰의 월대는 각종 행사나 의식을 벌이기 위해 건물 앞에 설치한 넓은 대를 말한다. 그렇다면 월출산 월대는 양수겸장이다. 달을 보는 자리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광화문이나 도갑사 월대와 마찬가지로 월출산 전체의 기단 역할을 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월출산 월대를 딛고 올라서면 시야각 180도로 펼쳐지는 장쾌한 영암 들녘 풍경에 깜짝 놀라게 된다. 바위산인 월출산에서는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넓은 시야로 영암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암봉이 여럿이지만, 경관이 주는 감동은 월대만 못하다는 느낌이다. 월대에서 보는 경관의 특징은 파노라마의 시야이면서도 풍경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높이 나는 비행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저공비행의 생동감 넘치는 시선이랄까. 월출산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형태의 질감이 사라진 2차원의 느낌에 가깝다면, 월대에서 내려다보는 영암의 들녘은 3차원의 입체감을 선사한다. 영산강에 하구언을 쌓기 전 영산강 변 영암의 너른 들녘은 죄다 바다였다. 그 바다가 호수같이 잔잔하다 해서 ‘서호(西湖)’라 불렀다. 간척으로 바다는 사라졌지만, 저 아래 너른 들을 끼고 있는 마을 이름이 ‘서호정(西湖亭)’인 건 그래서다. 옛 선비들이 월대를 오르내리던 시절을 생각한다. 월대에서 내려다본 간척으로 평야가 되기 전 바다였던 서호의 풍경은 어땠을까. 월대에서 보는 월출산의 달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암의 구림마을 서당이었던 문산재 오르는 길가에 핀 닥나무꽃. # 동백나무 숲길을 걸어 문산재로 월대가 있는 주지봉은 월출산 주 능선에서 한참 벗어난 서쪽 끝자락에 있다. 바위산인 월출산은 해발 800m 남짓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종주에만 예닐곱 시간이 족히 걸릴 정도로 험준하다. 월출산에서는 어디를 가든 적잖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상인 천황봉은 물론이고 사자봉도, 구름다리도, 육형제봉도, 통천문도 고된 산행 끝에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월대는 다르다. 월대는 산 아래 구림리 죽정마을에서 오르면 걸어서 20분쯤, 뒷짐 지고 유유자적한다 해도 30분이 채 안 걸린다. 월대는 문산재(文山齋) 위에 있는 바위다. 문산재는 산 아래 구림마을의 학동을 가르치는 서당이었다. 산 아래 있던 구림마을 서당을 문수암이란 산속의 암자 터로 옮기고 ‘문수서재’라 부르다가 ‘문산재’로 현판을 바꿔 달았다.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을 왜 마을 가운데 두지 않고 굳이 산속으로 옮겨갔을까. 그건 ‘터가 품고 있는 기(氣)’ 때문이었다. 월출산 주지봉 아래 문자향(文字香)의 기운이 단단하게 맺힌 자리로 서당을 옮긴 것이었다. 그 바람에 구림마을 학동들은 매일 문산재까지 오르내리느라 적잖이 힘들었겠다. 문산재 위에는 대암(大巖)이란 큰 바위가 있고, 그 위에 거대한 공깃돌처럼 올려진 바위가 월대다. 대암에서 바라다보이는 영암의 구림마을과 그 너머 영산강 일대의 경관도 빼어나지만, 바위를 딛고 월대 위에 올라서서 보는 경관에 비할 수는 없다. 월대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쾌한 경관 덕분에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월대나 문산재까지는 죽정마을에서 짧게 오를 수 있지만, 왕인박사유적지 쪽에서 동백 숲길을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유적지 깊숙한 곳의 너럭바위에 조암(曺巖)이라 새겨진 빨래터가 있는데, 거기서 문산재까지 이어지는 상록림 숲길이 있다. 문산재까지 거리는 2㎞ 남짓. 마지막의 경사구간만 빼면 내내 오르내림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길이 부드러워 걷는 맛이 좋다. 이 길을 일찌감치 알아본 건 산 아래 구림마을 주민들이다. 이 좋은 길을, 주민들만 걷는다. 1986년 ‘왕인박사가 8세 때부터 수학하던 곳’이라고 주장하며 복원한 문산재. # ‘올인’이 빚어낸 무리수들 이제 좀 불편한 얘기. 기막힌 경관을 품고 있는데도 월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왕인박사의 책임이 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왕인박사는 죄가 없다. 왕인박사를 기린다며 고증 없이 마구 가져다 붙인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스토리가 유죄다. 그냥 ‘만들어다 붙이는’ 정도라면 민망하긴 해도 뭐 그럴 수 있다고 치겠는데, 왕인을 앞세우느라 확인된 사실과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까지 죄다 가리고 지워져 버렸다. 왕인은 영암이 내세우는 대표 인물이다. 왕인은 고대 일본에서 활동한 백제 근초고왕 때 학자. 자그마치 1600여 년 전의 인물이다.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와 유교를 전했으며, 함께 간 도공과 와공 등 기술자들이 일본 고대문화의 대표 격인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됐다고 전해진다. 왕인의 이름은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속일본기(續日本記) 등의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우리 쪽의 기록은 전무하다. 왕인박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게 1970년대 초반이니 50년 넘게 왕인의 사적과 기록을 찾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허사였다. 국내에서의 기록이 없으니 행적도 확인된 게 없다. 왕인박사가 영암에서 나고 자랐다는 얘기도 명확하게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왕인의 영암출생설은 물론이고, 왕인의 실재 여부에 의문을 갖는 시선도 있다.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들의 업적이 모여 만들어진 가공인물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암이 왕인박사에 ‘올인’하면서 곳곳에 무리수를 두었다. 왕인박사가 복잡한 한일관계의 다양한 정치적 함의를 불어넣는 인물이라 그랬으리라.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국과 일본의 뿌리가 같다는 논리를 통해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왕인의 일본 귀화 사실을 강조했다. 반면 우리는 일본에 문물을 전한 ‘스승’ 왕인을 자부심과 우월감의 징표로 삼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한일 갈등의 시기에 우호와 선린을 말할 때마다 왕인을 호명하곤 했다. # 모든 것에 왕인의 이름을 매달다 양국에서 왕인의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왕인박사를 기리기 위해 덧칠된 이야기가 자꾸 만들어졌다. 문산재와 대암, 그리고 월대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영암군은 문산재가 왕인박사가 8세 때부터 수학하던 학당이며, 문산재 뒤 동굴은 왕인이 책을 쌓아놓고 공부하던 ‘왕인 책굴’이고, 대암 아래 세운 마애석상은 왕인박사의 제자들이 일본으로 간 왕인을 그리워하며 새겨놓은 ‘왕인 석상’이라고 봤다. 문산재 연혁은 구림마을 대동계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로 명확하게 고증이 된다. 문산재는 태인현감과 익산군수, 온양군수를 지낸 구림마을의 조행립이 낙향해 1657년 설립한 글방 ‘성기서숙(聖起書塾)’이 모태가 됐다. 서당은 구림마을에 있다가 관음사 터로, 다시 문수암 터로 옮겨졌다가 1830년 화재로 소실됐고, 두 해 뒤에 다시 지어졌지만 그것도 허물어져 없어졌다. 영암군은 그 자리에다 1986년 난데없이 ‘왕인박사가 공부했던 곳’이라며 문산재를 복원했다. 한때 암자였던 구림마을 서당 자리를 ‘1600년 전쯤에 왕인박사가 공부했던 자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근거는 ‘당연히’ 없다. 문산재 뒤쪽 대암 아래 굴도 책굴이 아니라 주민들이 ‘베틀굴’이라 부르던 곳이었다. 왕인 석상도 문수암 시절에 새긴 마애불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석상의 손 모양이 불교식 수인이 아니라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유교식 자세’라는 게 왕인 석상으로 보는 근거라지만,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동운암의 불상도, 경주 남산의 불곡 마애여래좌상도 똑같이 소매 안에 두 손을 넣은 불상이다. 그동안 빼어난 전망의 월대나 그윽한 산중 문산재의 정취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건 얼기설기 만든 이야기로 덧칠해 놓아서가 아닐까. 차라리 기록으로 확인되는 조행립의 행적과 구림마을의 학문적 전통으로 문산재나 월대의 이야기를 받쳐놓았더라면 어땠을까. # 군수가 ‘하늘 천(天)’을 자를 새긴 이유 영암에는 왕인박사 탄생지도 있다. 왕인박사유적지의 너른 공터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놓인 곳에서 왕인박사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바위에는 음각으로 ‘고최씨원(古崔氏園), 금조가장(今曺家庄)’이라 새겨져 있다. ‘옛날에는 최씨 정원이었는데, 지금 조씨의 정원이다’라는 뜻이다. 본래 이곳은 풍수 도참사상으로 이름난 도선국사 탄생지로 알려진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빨래를 하다 떠내려온 오이를 먹고 도선국사를 잉태했다는 처녀의 집이 여기 ‘최씨원’이라고 나온다. 처녀는 도선국사를 낳은 뒤 숲속 바위에 버렸는데, 비둘기 떼가 아이를 덮어 보살펴주자 다시 데려다 길렀다고 전한다. ‘비둘기 구(鳩)’에 ‘수풀 림(林)’ 자를 쓰는 구림마을 지명이 여기서 나왔다. 그렇다면 도선국사 탄생지는 왜 왕인박사 탄생지로 둔갑했을까. 그 연유인즉 이렇다. 도선국사 탄생 이야기가 전남 화순 출신의 진각국사 탄생 설화와 거의 같다. 도선국사 설화의 오이가, 진각국사의 설화에서는 참외라는 것과 내다 버린 아이를 보살핀 새가 도선국사는 비둘기, 진각국사는 학이라는 것 정도만 다르다. 도선국사의 탄생 얘기가 윤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이 대목에서 껑충 비약이 이뤄진다. 누군가 주요한 인물이 탄생하긴 했지만 그게 도선국사가 아니라면, 필시 왕인박사일 것이라는 게 영암군의 주장이다. 이렇게 도선국사 탄생지가 한순간에 왕인박사 탄생지가 돼버렸다. 왕인박사는 일본에 천자문을 전했다는데 결정적으로 시대가 맞지 않는다. 양나라 사람 주흥사가 엮은 천자문은 왕인이 죽고 난 뒤에 만들어졌다. 200여 년의 시차가 있다.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했다는 시기에는 지금과 같은 천자문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자 왕인박사보다 앞선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삼국시대 위나라 종요가 쓴 천자문을 들고 나왔다. 종요의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는 주흥사의 천자문과는 달리, ‘이의일월(二儀日月)’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왕인박사유적지에는 종요의 천자문이 아니라 하늘 천(天), 땅 지(地)로 시작하는 주흥사의 천자문을 새긴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2008년 세운 조형물에는 각계각층의 1000명에게 천자문의 한 글자씩을 받아 새겼다. 이름하여 ‘천인천자문’ 조형물이다. 천자문의 첫 글자인 ‘하늘 천(天)’ 자는 본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받기로 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한사코 사양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였으니 당시 노 대통령에게 ‘천’ 자를 양보하는 대신 ‘땅 지(地)’ 자를 써줬다. 영암군이 글씨를 의뢰한 때는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조형물은 퇴임 후에 세워졌으니, 소용돌이 같던 정치적 격랑의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이 글씨를 써보내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군주제국가의 왕을 연상하게 하는 글자인 하늘 천 자를 써보내는 걸 마뜩잖게 생각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글자를 받지 못하게 되자 천자문의 첫 글자를 누가 써야 할까를 놓고 설왕설래하다 결국 영암군청 간부회의에서 영암 군수가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전직 대통령과 장관 등을 다 제치고, 천자문의 첫 글자인 하늘 천 자를 영암 군수의 글씨로 새기게 된 연유다. 출산 구정봉 아래 비밀스러운 공간에 새긴 월출산마애불좌상. 액자처럼 걸쳐진 바위에 새겨 마치 허공에 떠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듯하다. 마애불은 구정봉에서 고스란히 되돌아 올라와야 하는 내리막길 끝에 있어 찾는 이들이 적다. 월출산 국립공원사무소와 영암군은 오는 9월쯤 영암의 대동저수지에서 곧바로 마애불상으로 오르는 탐방코스를 개통할 예정이다. # 하늘과 가장 가까운 부처 이번에는 월출산에 숨겨진 두 번째 장소 얘기다. 월출산에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부처님’이 있다. 해발 743m의 월출산 구정봉 아래 서북쪽 암벽에 또렷하게 새긴 월출산 마애불 좌상이다. 일찌감치 1972년에 국보로 지정된 월출산 마애불 좌상은 그야말로 명품 중에서 명품이다. 적막한 산중의 허공 석벽에 새겨진 미륵불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한지 ‘이것 하나 보려고 월출산에 오른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충분히 수긍이 갔다. 월출산 마애불 좌상까지 가는 길은 멀다. 마애불 주변이 늘 고즈넉하고 거기까지 가본 이들이 많지 않은 건, 마애불이 능선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마애불을 보려면 구정봉 능선에서 600m쯤 내려가야 하고, 불상을 다 봤다면 내려간 만큼 다시 고스란히 올라와야 한다. 마애불 바로 아래 용암사지에서 산길이 끊겨서 그렇다. 천황사에서 출발해서 정상인 천황봉을 딛고 구정봉까지 온 길이라면, 이미 체력은 바닥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니 마애불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원점회귀로 다시 천황봉을 넘어 출발지점인 천황사로 되돌아갈 생각이라면 체력을 남겨둬야 해서 더 그렇다. 벼랑의 자연석 위에 탑신을 올려 세운 용암사지 동탑. 탑 뒤로 바위벽에 새겨진 월출산 마애불좌상이 보인다. 월출산 마애불 좌상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비밀처럼 은밀하게 들어선 자리 덕이 크다. 펜으로 여러 번 그어 그려낸 듯한 마애불의 선 굵은 형상도 한몫한다. 인적이 워낙 드물어 침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온통 기암 산중에서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떠 있는 듯한 마애불을 올려다보면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든다. 마애불은 미래에 와서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다. 자세히 보면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 마애불의 손가락 두 개 크기쯤 되는 작은 인물이 새겨져 있다. 선지식을 찾아 법을 구하러 다닌다는 선재 동자다. 그렇다면 바위에 새겨놓은 건 선재 동자가 미륵을 만나 법을 구하는 극적인 순간인 셈이다. 마애불 주변에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있다. 마애불 아래 옛 용암사 터의 계단 위에 서 있는 탑을 동탑이라 부르고, 마애불 앞으로 난 오솔길 끝 벼랑의 삼층석탑을 서탑이라 부른다. 동탑의 매력은 텅 빈 절터를 보는 수평의 시선이, 계단 위 석탑을 바라보는 수직의 시선으로 바뀌는 순간 느껴지는 기막힌 공간감이다. 둥근 자연석 위에 쌓은 서탑 자리는 뒤로 물러서 마애불을 볼 수 있는 조망의 공간이다. 여기서 보면 마애불이 얼마나 절묘한 자리에 있는지를 알게 된다. ■ 영암왕인문화축제 오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전남 영암의 왕인박사유적지와 상대포역사공원, 구림마을 일원에서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오프라인 축제 개최는 4년 만이다. 왕인 탄생지의 고증 여부나 스토리 진위와는 관계없이 영암 일대에 구름처럼 피어나는 벚꽃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축제다. 올해 축제 주제는 ‘K-컬처의 시작, 왕인의 빛’이다. 테마 퍼레이드를 비롯한 3가지 주제행사와 19가지 문화공연행사, 22가지 참여체험행사가 진행된다. 박경일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 /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옮김:찬란한 빛/김영희 여의도공원에서..3.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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