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단풍절정을 즐긴 가을날에..2편(평화의 댐ㆍ비수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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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찬란한은빛소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464회 작성일 16-01-12 16:3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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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은빛소녀님의 댓글
찬란한은빛소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파로호가 숨겨 둔 때묻지 않은 오지마을,
비수구미(非水九美)
'신비의 물이 만든 아홉가지 아름다움'이라는 설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여행중 알게 되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는 새봄에 1번 코스로 다시 탐방하고 싶어요.
함동진님의 댓글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행)
양구.화천 문학기행
-한국문인협회구로지부의 문학기행
함동진
◼청수골
오늘은 한국문인협회구로지부 역대회장들이 모두 참가하고, 증원된 많은 회원들이 성황을 이루어 관광버스가 만원을 이루었다. 비가 내린다고 예보가 되어 있는데 강원도로 가까이 갈수록 날씨가 더욱 흐려졌다. 문학기행에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다행이 일정중 <양구명품관>에 들러 양구군과 백두산 부대에 서적을 기증하고 나서 <박수근미술관>, <선사유적지>를 기행하는 동안에도 비는 내리지 않고, 이어지는 다른 일정에도 무사하였다.
중식 시간이 되어 청수골에 들러 휴식을 취하는데, 해변에 있어야할 해당화가 청죽골이라는 고산준령(高山峻嶺)에 피어있는 것을 처음 보니 기이하였다. <청수골>식당에서의 메뉴는 산채비빔밥이었다. 모두들 시장한터이고 맛깔스런 산채비빔밥에 반하여 피곤한 기색을 거두고 화기가 넘쳤다. 회장의 지엄한 명령에 한 잔이 없었어도 산채나물 비빔밥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모두들 만족해하였다. 사연인즉 중식 후 비무장지대인 두타연 탐방을 경건하게 하기 위하여서 였다.
창파 밀려드는 백사해변
님 보내드리며 손 흔들던 언덕
하세월 가녀린 몸 그대로그대로
모진 해풍 견디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님 향한 사랑의 향기 머금고
맵시 지키는 고된 시련의 세월
겁탈하려는 늑대들 주위 맴돌고
정조를 탈내려 건달들 들끓어
위협 견디기 털가시옷 휘감아
망망대해에 눈물뿌리기 더 얼마나 하오리까
수평선 끝 한 점
님타신 배일까?
님 오시는 고동 소릴까?
환시 환청의 몽유병 앓이
꽃잎 떨구는 슬픈 언덕으로
그리운 님이여, 사랑의 품이여 어서 오셔요
여기 모래의 언덕 나 발 디딘 곳
님 위하여 마련한 잔치마당 닳아 사라지기 전에
그리운 님이여 기쁨을 몰고 어서 오셔요.
(시: 해당화 / 함동진 전문)
◼두타연(백두산부대관할 비무장지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에 소재하며 <두타연(頭陀淵)>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그 인근에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 두타사와 연관 되어서 붙여진 두타연계곡(頭陀淵溪谷)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두타(頭陀)>라는 어의는 인생살이에서 걱정과 욕심을 떨쳐 버린다는 것이다.
양구는 한반도의 정중앙이라 이라고 한다. 마라도, 독도, 등 한반도의 꼭짓점을 연결하여 만나는 한 점이 양구인 것이다. 동서남북 생태계도 이곳에서 마주치는 것이니 두타연계곡은 아름다움이 이곳에 집중하여 모여든 것처럼 그 아름다움도 빼어남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남북이 분단된 DMZ안에 비밀스레 꼭꼭 숨어 있으니 말이다.
두타연을 탐방코자 한다면 최소 삼일 전까지 양구군청 경제관광과에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 탐방인원 4명 이상이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4시간여를 탐방해야 한다.
휴전이 된지 6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철조망과 지뢰밭이 자연경관 훼손을 방지해주고 있으니 천혜의 비경을 누리고 있는 셈이 된다. 통제된 절차에 따라 제한된 허가를 받아 초소출입문을 통과하여 오르는 계곡에는 약 20m의 암석이 병풍을 두르고 맑은 옥수가 급물살로 흐르다가 폭포를 연출하고 있다.
신기하게보이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보살이 덕을 쌓았다 보덕굴로 불리워 졌다. 여기에 흰 돌산인 백석산이 있어 특이함이 더한다.
금강산의 물이 흘러내려온다는 맑은 계곡을 따라 18㎞의 생태관광을 하며 산책하는 이곳은 타에 견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두타연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조금은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최소 삼일 전까지 양구군청 경제관광과에 출입신청을 해야 한다. 최소 인원 4명 이상이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4시간여의 산행을 함께 한다.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더욱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찾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인지 비경(秘景)으로 간직된 양구의 제일경(楊口第一景) 답게 두타연의 그 속내를 탐방하기란 아무렇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두타연입구를 등지고 드높이 바라다 보이는 저 병풍같은 고지들은 치열한 전투를 치뤄 많은 순국자를 낸 산들이다. 올려다 보면 산의 왼쪽편에 창끝같은 뽀쭉한 바위가 있는데 로마병정 투구바위, 장군바위라고도 부른단다.
금강산 금강바위틈새 분단의 슾픔을 토해낸 눈물로
어딘들 못 가랴 동포 찾아 험준계곡 흘러흘러 왔네
옥수되어 두타연폭포수 이루니 저마다 감탄하는 경지
두타계곡 손담가 어루만지는 금강산만물상 여기있네
되돌아서기 아쉬운 심경 뒤돌아보고 또 돌아다보아도
졸졸졸 뒤따라 한양천리 마다않고 좇아오는 물소릴세.
(시: 두타연 / 함동진 전문)
◼양구전투위령비(楊口戰鬪慰靈碑)|
전적지역에 문학기행을 하다보면 자칫 주변경관에 심취되어 가장 먼저 찾아야할 전적지 탐방을 놓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금번에도 두타연과 그 계곡의 빼어난 경관에 푹 빠져 6.25남침전쟁 중 누란의 위기를 버텨준 격전장을 비켜갈 뻔하였다. <양구전투위령비>에는 6.25남침전쟁에서 북괴군과 맞서 용맹을 떨치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순국한 전투부대 및 장병을 기리기 위하여 오석에 새긴 명패(銘牌) 9개가 부착되어 있다. 애국에 용맹을 떨치며 산화한 순국의 현장을 답사하며 참배할 수 있어서 크나큰 다행이라고 감사히 생각한다.
제3 사단 순국장병
제5 사단 순국장병
제7 사단 순국장병
제8 사단 순국장병
제21사단 순국장병
해병1연대 순국장병
미2사단 순국장병
경찰.주민 결사순국자
무 명 영 령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종교인은
혹독한 형벌을 받았고
끝까지 신앙으로 버티기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이런 죽음에서 해방된 것은
목숨을 아끼지 않은
애국지사와 독립군이 있었기에
얻어진 종교의 자유이다.
후손들은 나라를 잘 지켜나갈
빚을 지고있다
그 빚 갚는일 중 제일 큰 것이
병역의무이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6.25전쟁은
맑스, 레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합작한
북한공산당의 불법남침에 의해서다
그 공산당은 종교를 탄압했고
신앙을 유지하겠다고 각오하면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6.25때 목숨바친 전몰군경과 상이용사들의
용전과 승리가 있엇기에
얻어진 종교의 자유이다.
후손들은 나라를 잘 지켜나갈
빚을 지고있다
그 빚 갚는 일 중 제일 큰 것이
병역의무이다.
국방이 든든할 때 나라가있고
나라가 있을 때
부모가 있고 내가 있고 자녀가 존재한다
그리고 종교도 있고
넉넉함과 배부름의 행복도 있다
조국에 대한 빚갚기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무슨 양심인가?
(시: 빚을 갚는게 양심이다 / 함동진 전문)
◼평화의 댐
버스는 아름다운 풍광의 호수(파로호) 곁을 벗어나서 사행(蛇行)의 해산령을 넘어 평화의 댐을 향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승차한 회원 중 아무도 평화의 댐과 비목동산에 대하여 아는 이가 없었던터라 내가 준비해둔 자료를 가지고 간단하게 설명을 하였고, 이태극 시인의 시비에 실린 “산딸기”도 낭송하여 주었다. 해산령의 고도가 더해질수록 산은 온통 운무에 잠기고 우리들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나는 것 같다. 버스가 지친 듯 기어오른 해산령 마루에는 2Km나 가까이 되는 기나긴 터널(실제 길이 1,986m)이 버티고 있다. 터널을 지나면 평화의 댐까지 구불구불 내리막길이다. 이 내리막길 저 산골짜기 아래에는 “비수구미”라는 오지가 있다. 화천읍 동촌2리 소재로 파로호 줄기가 평화의 댐에 이르는 상류부분에 위치하여 화전민이 거주하는 곳이다. 낚시꾼들만이 비밀스레 출입하던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으로 통하는 해산령과 터널이 생김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잦아져 이제는 화전을 일구는데 주력하지 않고, 낚시꾼 시중들기와 산채, 약초, 버섯 등을 채취해 판매하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 비목동산, 비수구미계곡과 더불어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화천의 땅, 산의 능선과 골짜기 어느 한 곳도 전쟁터가 아닌 곳이 없다. 장마로 흘러내린 길가의 언덕에 조국을 위해 숨져간 젊은 국군의 애인이라도 되는가. 나리꽃이 비목의 계곡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함초롬이 눈물을 머금고 있다.
뿌우연 안개비 속으로 볼품없는 커다란 둑이 시야로 들어오고 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86년 11월, 공포의 뉴스가 장안을 강타한지 어언12년, 지금 우리의 눈앞에 쓸모없는 “바보댐”(?)이 가로막고 있다. 화천읍 동촌2리 속칭 애막골에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평화의 댐>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시멘트 벽면 널빤지판넬, 철근, 골재 등이 을씨년스럽고 흉물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하여 2백억 톤의 물을 저수하였다가 수공작전으로 일시에 터트리면 서울 전역이 수몰된다는 선전을 극성스럽게 하였다. TV들은 63빌딩이 반쯤 물에 잠기는 컴퓨터그래픽 그림을 연일 방영하였고, 공포에 휘말린 국민들은 어린이의 코가 묻은 돈에서부터 각계각층에까지 성금을 거두었고, 정부의 예산을 합쳐 평화의 댐 건설에 2천억 원을 투입했다. `87년 2월 28일 착공에 들어간 공사는 `88년 5월에 1단계 공사를 마쳤는데(1899년 5월 27일 완공) 댐 높이 80m, 길이 420m의 규모로 모습을 들어냈다. 그러나 이 댐은 홍수조절 등 기능성이 없어 볼품없는 둑막이에 불과했고, 저수 없이 바닥을 드러낸 모습은 자연을 훼손한 작태로밖에 볼 수 없다. 더군다나 댐 안쪽에 10억 원을 들여 `96년 6월 착공한 안보관광지와 안보전시관은 댐 안의 상류 쪽에 있어 침수지역에 들어선 셈이니, 평화의 댐이 수공을 막기 위한 대응 댐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10여 년을 넘긴 지금까지 높이 2백여m, 길이 1천여m로 건설된다던 2단계 공사는 추진했는지 흔적도 없다. 그것뿐인가. 이곳에 투입된 50여 억 원대의 각종 고가의 장비들이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 숲 속에 처박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댐 구축을 위한 진입로로 화천에서 댐까지 38Km구간, 양구에서 댐까지 39km구간을 건설하기 위하여 국고 6백 46억 원이 낭비되었다고 한다. 과잉 안보수단은 자연훼손과 물자낭비를 몰고 오면서 오히려 평화를 거슬렸다는 평을 받게된 것이다.
나는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성금모금수단으로 서예학원운영자로서 한국학원총연합회 서예분과위원회가 주관한 서예학원장 서예작품 전시회에 출품한 바 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입가에 쓰디쓴 웃음만이 맴돌 따름이다. 지금 우리가 오르고 내린 해산령과 터널은 후일 평화의 댐을 공개하면서 포장하고 다듬어 관광코스로 개발한 길이다. 이 길이 완공되기 전에는 파로호선착장에서 뱃길로 70리를 수상으로 달려야 했다. 역시 평화의 댐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이 고장 출신인 詩人 길명희의 詩 <평화의 댐 가는 길>에서도 잘 표현해 주고 있다.(여기까지의 기록은 당시의 현황과 곱지않은 눈으로 보는 사회상에 비친 현상을 감안하여 기록한 글이다.)
후일 이 댐은 더 높이 둑막이 공사를 보강하여 만약의사태(북한 금강산댐인 임남댐 붕괴)에 대비한 공사를 추가로 하였다. 그로 인한 평화의 댐 1.2차 공사결과를 대비해 본다.
[평화의 댐 추진과정]
*1차 댐건설
1986. 11. 26 : 평화의댐 건설계획 발표
1987. 02. 28 : 1단계 공사 착공
1899. 05. 27 : 1단계 공사 완료(댐높이 80m)
*2차 증설댐건설
2002. 05~ 08 : 보강공사 시행계획 수립
2002. 09. 30 : 2단계 공사 착공
2006. 06. 15 : 2단계 공사 준공
(댐높이 125m, 저수용량 26.3억t)
(해발 170.0m, 댐 길이 601m)
제5공화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속살 한번 들어내지 않은
처녀림을 만년설처럼 간직한 처녀였지
감히, 점접 못할 품위
아프로디테의 경지였는데
끄릉끄릉 지반이 속울음 참던
칠월 어느 날
내 무성한 수풀은 군화발에
무자비하게 능욕 당하고
그 우두머리 머리처럼
내 녹색치마는, 한 올
남김없이 벗겨졌네
단말마 같은 외마디 비명은 여름내
흑, 흑 하늘을 울렸건 만
모태 같은 대지는
벌건 속살 흉측하게 드러내고
산과 산 사이 가랭이로
검붉은 피 밑 빠지게 하혈하였네
통곡소리, 세상은
떠나갈 듯 하였지만
그래도 여지없이 벗겨지는 하체
늙은 창녀의 그곳처럼
뭇 사내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뻥 뚫린 구멍이 도원경인 듯
오르가즘에 취해 황홀해 할 때
예언이라도 하듯, 그 구멍에
찬바람 휭하니 불고
마지막 남은 저고리 섶 부여잡는
악착같은 손길
말채찍, 휘두른
상처처럼
산허리 끝없이
감고있네.
(<평화의 댐 가는 길> / 길명희시인의 전문. 필자의 지인인 화천의 시인)
◼평화의종공원
강원 화천군 평화의 댐에 자리한 <세계평화의종공원>은 2009년 5월 26일 공원이 준공되었다 이 종을 만드는 재료는 세계 각국 분쟁지역에서 모은 탄피로 제작 되었다. 분단의 비극과 냉전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장 화천에 있는 평화의 댐에서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한국전쟁과 기타 분쟁 현장 등 30개국에서 모은 탄피를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을 구로문인협회 회원들은 직접 타종을 하고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평화를 염원하였다.
<세계평화의종공원>은 댐 상단부(450여㎡)와 하단부(7,000여㎡)로 나눠 조성되어있다. 상단부의 너른 평지 한 끝에는 신라 범종을 본뜬 무게 37.5톤, 넓이 2.5m, 밑지름 4.7m의 대형 종이 설치된 것이다. 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애로사항도 적지 않았다. 평화의 종은 통상 37~40톤인 탱크 한 대 무게와 맞먹는 셈인데, 이 37.5톤은 전통 무게단위 관(貫)으로 환산하면 1만관. 평화의 소리가 만방에 울려 퍼지게 하자는 뜻에서 탄피 만관을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29개국에서 탄피를 공수해오기까지의 우여곡절은, 탄피 작전을 맡은 화천군 정책기획단이 평화포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모임인 피스잼(Peace Jam), 유엔 여성지위향상위원회, 세계교회협의회(WCC) 등을 찾아 다니며 도움을 청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비목공원
비목의 동산은 비목의 발상지 백암산에서 가장 인접한 곳으로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안쪽 현장에 1995년 5월 화천군이 2천여 만원의 예산을 들여 3백여 평 규모로 <비목의 계곡 달빛 동산>을 조성하여 두었다.
국민적 가곡 <비목>은 작사가 국악인 한명희(韓明熙 서울시립대학교)교수가 60년대에 이곳에서 청년장교로 근무하면서 댐 북방 백암산 계곡 산허리에 방치된 비목을 보고 시로 쓴 것을 작곡가 장일남씨가 곡을 부쳐 나온 것인데, 애잔하고 애틋하기까지 한 노랫말과 선율 때문에 가요처럼 전국민이 애창하는 가곡이 되었다. ‘비목과 노래말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한명희詩 . 장일남曲 <비목>의 가사 전문)
[Bimok -Memorial the Unknown soldier]
Where cannon smoke sweept through the vallry deep,
valley glinting on the sunny side,
the winds and rain of old, old time are etched,
etched upon a lonely wooden plaque,
Oh distant skies, old friends left far behind,
longing thoughts flood through the heart,
knotted cares, mossed o'er wiht pain,
crust acrossthe aching, tearful heart.
The belling stag calls through the vally deep,
neath a moon that bears the night on high,
The pain and tears of the unknown are etched,
etched upon a lonely wooden plaque,
Oh rueful thoghts, of a time that's gone away,
turned to stone, piled in a cairn,
fossiled cares, mossed o'er with pain.
crust across the tearful aching heart.
(한명희詩 . 장일남曲 <비목>의 가사 전문. / 영문번역 trans: by Kevin O'Rourke)
이와 같은 비목노랫말은 비목의 詩가 탄생한 평화의 댐 인근 비목공원에 노래비로 세워져 있다. 화천군 땅 어느 한 곳인들 비목의 골짜기가 아닌 곳이 있겠는가.
본 기행문의 필자 자신도 60년대 초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육군 제15사단사령부에 근무할 적, 수요일 군사훈련교육차 뒷산 숲 속에 들면 총탄에 숭숭 구멍이 뚫린 탄흔 투성이의 녹슨 철모와 썩어져 너덜거리는 군화, 개인화기 부품 조각들, 인골들이 심심치않게 발견되었었다.
화천군 전지역이 처절한 전투지역이었음을 증명하는 흔적들이었다. 이 비목공원에서 비목마을 사람들이 주최하고 화천군청과 칠성부대가 주관하여 제1회 비목제를 열었는데 작사자 한명희, 시인 신경림, 방송인 황인용씨 등이 공동대표로 하여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동참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 호국영령을 위로하였다. 비목문화제는 해마다 6월(현충일)이 오면 회를 거듭하고 있다.
비목의 계곡 평화의 댐을 빠져 나올 무렵 패랭이꽃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들의 혼불로 불게 피어났는가. 하늘대는 꽃잎 위로 실비에 젖은 나뭇잎이 눈물방울 떨구기까지 하여 더욱 애처롭게 보인다. 아, 애닲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혼령들이여! 감히 영령들을 위로하며 명복을 빈다.
◼끝맺으며
금번 문학기행을 기획 추진하느라 동분서주하신 정유준 고문께 특별히 감사드리며, 또한 후덕한 후원으로 문학기행에 큰 보람을 안기게 하여주신 양구군청, 수자원공사, 백두산부대에 크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기행을 마친 저희 구로문인협회 회원들은 전보다 더욱 구로문학 아니 한국문학을 빛내는 데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거듭하여 문학기행에 기획을 자임하신 정유준 고문, 시종일관 큰 봉사로 임하여 주신 김익하 회장, 윤수아 사무국장, 이양임 사무차장 등, 그리고 수고를 아끼시지 여러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귀중한 음식과 후원금을 희사하신 회원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많은 지식으로 양구지역 기행에 돔움이 되도록 열렬히 안내를 맡아주신 양구문화해설사 이병득 선생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다만 빽빽한 일정으로 문학기행에 계획된 코스인 <파라호>와 <오봉산 청편사>에 기행치 못함이 못내 아쉽다. 기행문이 길어지므로 <박수근 미술관>, <양구읍 상무룡리 선사유적>기행과 <파로호>, <오봉산 청평사> 이야기는 생략한다. (끝)
찬란한은빛소녀님의 댓글
찬란한은빛소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지마을 비수구미 가는길은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으면 서울에서 화천읍까지 버스로 와서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을 가는 정기 버스를 타고 해산터널 비수구미 트레킹입구에서 내려
트레킹코스를 다라 걸어오면 오지마을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버스가 자주 있질 않아서 시간이 맞질않을 때는 택시로 가야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