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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 영월에서 떠나는 운탄고도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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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8회 작성일 23-05-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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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 한탄이 상춘객 감탄으로… 애잔한 기억 찾아나선 173.2㎞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05-04 09:06 박경일 기자 강원 영월 망경대산 자락의 옛 탄광마을 모운동에서 시작하는 ‘운탄고도 1330’ 3길의 시작지점. 이쯤에서부터 탄광이 번성했던 시절 석탄 더미를 실은 트럭이 오가던 산중의 길이 시작된다. 운탄고도는 다른 걷기 길과는 달리 한쪽의 시야가 트이고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길의 폭이 넓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영월에서 떠나는 운탄고도 1330 9개의 코스 중 2길~3길 추천 걷는내내 한쪽으로 시야 트여 청령포 서강변 풍경보며 출발 복병같은 고갯길선 숨 차올라 망경대산 품은 예밀2리 마을 산등성이서 만난 뜻밖의 폭포 ‘꽃절’ 망경산사 금낭화 만발 만경사서 내다보는 조망 압권 30→1만명 번성했던 모운동 폐광 뒤 썰렁한 빈터만 남아 3길부턴 탄광의 흔적 곳곳에 갱도 기둥·광부 동상 등 눈길 영월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운탄고도(運炭高道). 2011년 초가을에 그 이름을 문화일보가 처음 붙여줬습니다. 그해 9월 정선의 화절령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두위봉, 질운산의 어깨를 짚고 새비재(조비치·鳥飛峙)까지 옛 탄광의 자취를 따라 이어지는 25㎞의 임도를 걸었습니다. 그 길을 다 걷고 나서 든 생각. ‘아, 이렇게 좋은 길에 이름이 없구나.’ ‘석탄(炭)을 운반(運)하던 높은(高) 길(道)’이란 뜻을 담아 운탄고도의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입니다. 짐작하다시피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로 이어지는 육상무역로 ‘차마고도’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차마고도의 거대한 규모와 까마득한 시간의 깊이에는 감히 견줄 수는 없지만, 길에 새겨진 이야기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운탄고도 역시 능선에서 협곡으로 이어지는 압도적인 거대한 자연경관에다 생계를 위한 탄부들의 고된 노동이 비벼져 있으니까요. # 여태 살아남은 길, 운탄고도 지난해 가을, 강원도의 폐광지역 4개 시·군을 잇는 산악트레일 ‘운탄고도 1330’이 개통됐다. 운탄고도 1330은 강원 영월에서 시작해 정선과 태백을 건너 삼척까지 이어지는 9개 길(코스), 173.2㎞ 길이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1330’이란 숫자는 운탄고도가 지나가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의 해발고도 1330m에서 가져왔다.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산 어깨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운탄고도 대부분 구간은, 본래 화전민들이 밟아 만든 산중 오솔길이었다. 화전민들은 한해 농사로 거둔, 제 먹기에도 빠듯한 콩이며 옥수수 따위를 지고 이 길을 걸어 읍이나 면으로 나가 몇 줌의 쌀이나 간고등어 몇 마리로 바꿔왔다. 그러다 탄맥을 쫓아 산중 곳곳에 탄광이 들어서고 갱도가 뚫리면서, 오솔길은 캐낸 석탄을 실어내 가는 번듯한 비포장 찻길이 됐다.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 탄 더미를 가득 실은 근육질의 ‘지에무씨(GMC)’ 트럭이 줄지어 힘겹게 이 길을 오르내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화전민은 진작 떠나갔고 탄광마저 문을 닫고 쓰임새를 다 잃었지만, 길은 여태 사라지지 않았다. 산불 발생 시 접근로 확보를 위해서, 혹은 나무를 심거나 간벌한 목재를 실어내 가기 위해, 길은 임도로 겨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으되 이미 한 세대 전쯤에 쓸쓸하게 뒤로 물러앉은 길이었다. 그 길을 다듬은 게 바로 산악 트레일 운탄고도 1330이다. 12년 전 문화일보가 걸었던 정선 화절령에서 새비재까지 25㎞ 남짓의 운탄고도가, 7배쯤 길어져서 고산준령 능선을 따라 탄광 마을의 추억과 자연의 맥박을 느끼며 걷는 장거리 트레일이 된 것이다. 빛바랜 애잔한 추억을 따라 헐겁고 흐릿하게 이어지던 ‘운탄고도’는, 그사이에 눈부신 초록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단단하고 분명한 길이 됐다. 지금은 그 길이 놓인 뒤 처음 맞는 봄. 다음은 늦게 당도한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산간마을에서 그 길의 첫 번째 봄을 걸었던 이야기다. 망경대산 어깨쯤에 있는 절집 만경사에서 바라본 산 그림자. 산 그림자가 첩첩이 겹쳐서 마치 파도처럼 보인다. # 운탄고도가 청령포에서 출발하는 이유 ‘운탄고도 1330’은 강원 영월의 청령포에서 출발한다. 9개 길 중 첫 번째인 1길 시작지점이 청령포의 통합안내센터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는 영월을 대표하는 명소. 청령포는 사실 ‘운탄(運炭·석탄을 운반함)’과는 별 상관없는 곳이다. 청령포가 운탄고도의 출발지점이 된 건, 전적으로 이름값과 접근성 덕이다. 트레일 출발지점은 누구나 잘 알고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여기만큼 적절한 곳이 없었으리라. 짐작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자연 속을 걷겠다며 찾아온 이들에게, 영월 청령포 일대 서강 풍경을 차마 못 본 척하고 지나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운탄고도 1길의 시작은 고요한 수면 위에 버드나무 신록이 도장처럼 찍힌 서강의 강변이다. 팔괴리 카누마을 일대가 이런 풍경의 정점이다. 줄곧 푸근하고 여유 있던 길은 고씨동굴 뒤쪽 태화산으로 들어서면서 표정을 바꾼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길이 가파르다. 해발 637m 태화산 자락 고갯마루를 넘는다. 평지 코스의 해발고도가 250m 남짓이라고는 해도, 산길 4㎞는 ‘등산’에 가깝다. 운탄고도 대부분이 이런 길의 반복이다. 트레킹 코스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석탄 실은 트럭도 숨을 헐떡이던 산중 고갯길이 복병처럼 숨어있다. 그것도 체력이 소진된 길 후반부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걷는 속도를 적절하게 늦추며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험하고 가파른 산길도 기꺼이 걷게 되는 건, 고도를 높일수록 산속은 맑은 초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차오른 숨을 타고 청량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운탄고도에서 얻어가는 건 이런 기운이다. 이 긴 길을 걷는 이유도 실은 몸보다는 마음, 운동보다는 성찰이나 치유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운탄고도 1길에 부쳐진 또 다른 이름이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 코스’다. 첫걸음을 시작하는 이름으로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태화산 고갯길을 내려오면 1길 종점 각동리 입구다. 청령포에서 여기까지 거리는 15.6㎞.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쯤이다. 1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1길 이야기를 간단히 건너뛰는 건, 그 뒤로 운탄고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길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밀2리에서 망경대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예밀폭포. 물줄기는 작지만 폭포가 꽤 높다. # 경관부터 이야기까지… 좋은 길의 조건 운탄고도는 모두 9개의 길(코스)로 이뤄져 있다. 당연히 ‘9개 길을 다 걷는 것’이 가장 좋다. 길의 표정이 저마다 다르고, 하나씩 순서대로 걷다 보면 아껴가며 걷는 재미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되면 체력이 모자라고, 반대로 체력이 되면 시간이 모자라는 법. 그렇다면 구간 몇 개를 골라 걸을 수밖에 없다. 내내 ‘추천코스’를 생각하고 걸었으니, 묻는다면 답할 준비가 돼 있다. 운탄고도 1330의 길 중에서 요즘 말로 ‘원픽’은 ‘운탄고도 2길 뒷부분에 3길의 전 구간을 이어붙인’ 코스다. 출발지점은 2길 중간인 ‘예밀2리 마을’. 여기서 2길 종점인 ‘모운동’까지 간다. 그러고는 모운동에서 시작해서 3길 전 구간을 다 걷는다. 2길의 절반쯤에다 3길을 이어붙였으니 길 1.5개를 단번에 걸어야 하는 코스인 셈이다. 이렇게 하면 걸어야 할 거리는 25㎞쯤이다. 예밀리에서 모운동까지의 앞부분은 등산을 방불케 하는 오르막 구간. 하지만 모운동에서 예미역까지는 내리막이 많다. 얕잡아 볼 길은 아니지만, 체력에 자신 있다면 하루에 다 못 걸을 거리는 아니다. 힘에 부친다면 아쉽지만 2길만 걷는 것으로 하자. 코스를 조합해 추천하는 건 이 구간이 탄을 싣고 트럭이 달리던 ‘진짜 운탄고도’의 들머리인 데다, 다채로운 풍경은 물론이고 탄광 마을의 자취와 이야기가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운탄고도가 매력적인 건 그 길 위에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산업시대의 힘겨운 노동의 자취와 애잔한 추억을 만날 수 있어서다. 탄광의 번성과 폐광으로 인한 몰락의 자취와 이야기가 그 길 위에 있다. 예밀2리 마을 뒤쪽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산이 망경대산이다. 산 이름 ‘망경대(望景臺)’는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이 단종의 유배 소식에 여기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영월 땅 어디나 그림자를 드리운 단종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혹시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에게 과일을 바치는 신하의 그림 ‘단종영정’을 본 적이 있는지. 운보 김기창이 그린 이 그림에서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이가 바로 추익한이다. 만봉 불화박물관 마당에 걸어놓은 등. 2013년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닫다시피 했다. # 뜻하지 않은 폭포와 산중 박물관 예밀2리에서 운탄고도는 망경대산의 가슴 높이쯤으로 넘어간다. 망경대산에는 ‘갈 지(之)’ 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리면서 산 사면을 기어오르는 포장도로가 있는데 이 길을 버리고서, 짙은 숲길로 들어간다. 숲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5분 능선쯤에서 마주친 뜻밖의 폭포였다. 변변한 이름이 없어 마을 지명을 따서 붙인 ‘예밀폭포’다. 수량은 적지만 폭포의 물줄기가 제법 길다. 폭포 옆에는 가파른 경사 지형에 놓은 목제 덱 계단이 있다. 목제 덱이 마치 미지의 숲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보인다. 목제 덱은 오래전에 놓인 것이다. 운탄고도를 놓기 전 이곳에 ‘산꼬라데이 길’이 있었다. 산꼬라데이란 산골짜기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다. 산꼬라데이 길은 망경대산 일대에 있던 옥동광업소와 한일광업소 갱도 및 마을을 잇는 길을 정돈해 만든 8개 코스의 27.5㎞ 남짓한 호젓한 걷기 길이다. 예밀폭포 옆의 목제 덱은 그때 산꼬라데이 길을 정비하면서 만든 것이다. 그동안에는 찾는 이들이 적어 이정표며 표지판이 낡아 스러지고 있었는데, 운탄고도를 놓는 과정에서 산꼬라데이 길 일부 구간의 이정표를 새로 달아맸다. 문제는 그 바람에 길이 자주 헷갈린다는 것.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서로 다른 이정표와 여러 개의 화살표는 길을 찾아야 하는 도보여행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망경대산을 오르다 보면 만봉불화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한옥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 산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긴 회랑을 두르고 있는 건물과 2층으로 지어진 거대한 한옥 누각이 마치 궁궐을 연상케 할 정도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뜬 무형문화재 단청장인 만봉스님을 기리기 위해 2013년 전통불화 전시장으로 문을 열었다는데, 운영이 쉽지 않은지 몇 년째 문을 거의 닫다시피 하고 있다. # 꽃을 보는 절과 조망을 보는 절 이곳에서 봐야 할 것은 불화박물관이 아니라, 박물관 앞의 자그마한 절집 망경산사다. 비구니 사찰이자 정토 도량인 망경산사는 ‘꽃절’이다. 절집 마당에 갖가지 나무와 화초를 가꾼다. 한사코 법명을 밝히지 않는 망경산사 주지 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절집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야생화를 가꾸고 산야초를 심어 기른다. 여기는 산중이라 꽃이 늦다. 법당 앞 서부해당화 나무는 이제야 막 분홍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산 아래서는 지고 있는 매발톱꽃과 금낭화가 한창 만발했다. 텃밭에다 꽃모종을 심고 있던 스님은 “정성을 다해 마당에 ‘극락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수행을 삼고 있다”고 했다. 스님이 정성껏 가꾼 꽃이 어찌나 화사한지, 보는 마음도 절로 환해진다. 그렇다면 스님은 그 꽃을, 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다 심고 있는 게 아닐까. 작은 절 망경산사와 마주 보고 있는 거대한 불화박물관과의 관계가 복잡하다. 한 기업가 신도가 거대한 박물관을 지어서 망경산사에 시주하겠다고 시작했던 일이 어찌어찌 번잡해지다가 소송 일보 직전까지 갔다.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대략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야기가 복잡다단하다. 어쨌든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망경산사는 훌훌 털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다시 고요한 절집으로 되돌아갔다. 일대에 이름이 비슷한 절집이 있어 헷갈린다. 망경대산 중턱에는 만경사가 있다. 망경산사와 만경사. 사실 두 곳은 같은 절이나 마찬가지다. 탄광촌의 낡은 집을 손봐서 창건한 망경산사가 20년 전쯤 퇴락해 무속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산중의 만경사를 사들인 것. 만경사는 기막힌 조망의 벼랑에 들어선 내력 있는 절집이다. 일대 탄광촌에서는 유일한 절집이었으니, 그 시절에는 신도들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번성했다. 부처님오신날 무렵이면 쌀을 시주하려는 줄이 산 아래까지 이어질 정도였단다. 간절한 시주와 기도는, 탄광 일을 하는 가장의 안전을 위해 바쳐진 것이었으리라. 만경사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경사에 세 명의 도인 중 한 명이 득도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고향에서 전해진 부모의 부고에 마음이 흔들려서라는 이야기도 있고, 손가락 하나로 까마득한 절벽의 바위에 도인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 만경사는 석불로 가득하다. 저마다 다르게 형상화한 관음보살 응신불(應身彿) 33개를 비롯해 다양한 형상의 불상이 세워져 있다. 만경사에서 압권은 조망이다. 불상을 등 뒤에 놓고 절집 마당에 서면 산중 마을과 그 뒤로 파도처럼 펼쳐진 거대한 산 그림자가 펼쳐진다. 망경대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여기다 대면 어림도 없다. ‘바라볼 망(望)’에 ‘경치 경(景)’을 ‘만경’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자리다. 만경사에는 33개의 관음보살상을 비롯해 불상으로 가득하다. # 탄광마을 모운동의 오래된 기억 망경대산의 허리춤을 타고 넘으면 길은 산 너머 모운동으로 이어진다. 모운동이야말로 운탄고도 1330의 9개 길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소다. ‘모운(暮雲)’이란 지명은 우리말을 가져다 한자로 표기한 이름. 모운은 ‘모이는’에서 왔다. 구름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모운동은 도무지 마을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해발 500m 남짓의 구릉에다 터를 잡은 마을이다. 모운동은 오지 중의 오지다. 고려 때 이곳에 천민 집단주거지인 ‘주문이소’가 있었다. 지나온 예밀리에도 역시 천민 주거지인 ‘성미탄소’가 있었다. 논이나 밭 한 뙈기 변변히 없는 이 깊은 산중에 고립돼 키나 고리짝을 만들었던 천민들은, 신분차별의 설움을 받으며 과도한 공물과 수탈에 시달리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리라. 해발고도가 높아 구름이 모이는 곳이란 이름을 얻은 모운동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던 시절이 있었다. 25가구 남짓에 주민 수 3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지만, 1954년 채굴을 시작한 옥동광업소가 번성하던 1960∼1970년대 모운동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 좁은 터에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드문드문 남은 집들도 하나둘 비워져 가는 모습을 보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얘기다. 그 시절 모운동에는 비탈진 사면마다 촘촘히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 안쪽에는 제법 큰 시장과 양복점, 당구장부터 막걸리 장단의 색싯집까지 없는 게 없었다. 마을 한쪽에 번듯한 극장까지 있어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영화를 틀어줬단다. 영월읍에도 변변한 극장이 없던 시절이라 읍내 주민들까지 영화를 보러 이 산골 마을까지 비탈진 고개를 올라왔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은 뒤 하나둘씩 모운동을 떠나면서 마을은 썰렁한 빈터로 남고 말았다. 탄부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다 떠났고, 마을에는 지치고 병든 이들만 남았다. 빈집은 무너지고, 사람 손이 안 간 밭은 묵은 밭이 되고….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 운탄고도1330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산중의 탄광 마을은 그동안 몇 번이고 변신을 시도했다. 2007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허름한 집 담마다 서툰 솜씨로 벽화를 그려 넣고 석탄 운반도로를 산책로로 가꿨다. 눈 밝은 이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지만, 마을의 쇠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대를 품고 폐교를 개조해 만든 펜션도 영업이 여의치 않아 곧 문을 닫았고, 정성을 다해 놓았던 ‘산꼬라데이 길’도 흐려졌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전기가 마련됐다. 지난가을 개통한 운탄고도 1330 길이 마을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모운동에서 출발하는 운탄고도 3길에서는 운탄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석탄을 실은 트럭이 다니던 진짜 ‘운탄길’을 따라간다. 운탄고도가 다른 걷기 길과 다른 점은 두 가지. 하나는 운탄길은 줄곧 산허리를 끼고 간다는 것이다. 짙은 숲이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대신 옆구리쯤으로 산과 산을 건너가서 그렇다. 그래서 얻어지는 건 걷는 내내 한쪽으로 트인 시야다. 또 하나 운탄고도가 다른 건 길이 넓다는 것이다. 다른 걷기 길이 대부분 오솔길이라면, 운탄고도의 산길은 소형차 한 대쯤은 넉넉하게 다닐 수 있을 만큼 넓다. 시야가 막혀 어디쯤 걷는지를 잘 알 수 없는 오솔길보다는 시야가 탁 트이고 폭이 넓은 길이 오래 걷기에는 더 좋은 듯하다. 가야 할 길을 가늠하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걸을 수 있으니까. 모운동에서 운탄고도 3길로 들어서면 곳곳에서 광산 흔적을 만난다.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 기둥인 ‘동발’을 만들던 동발제작소의 자취도 있고, 탄차에 기댄 광부 동상도 있다. 광부 동상 옆에는 황금 폭포가 있다. 폐갱도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돌려 만든 폭포인데 철 성분이 많아 붉은색의 물이 쏟아지면서 주변을 황토색으로 물들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길옆에는 옥동광업소의 폐갱도가 있다. 갱도 앞에 폐허가 돼 당장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광업소 목욕탕이 있다. 목욕탕 건물 머릿돌에 이렇게 적혀있다. ‘이 건물은 광산 근로자를 위하여 정부의 지원으로 건립된 것이니 다 함께 고마운 마음으로 이용합시다.-동력자원부 1987년 11월 3일 준공.’ 광부에게 목욕탕이 권리가 아니라 ‘시혜’이던 시절이었다. 목욕탕이 없었을 때 광부들은 채탄을 마치고 검은 얼굴로 회사에서 집까지 왔다. 퇴근길에는 얼굴이 온통 새카만 광부들로 북적거렸는데, 길에서 지나친 자식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운탄고도는 그런 시간을 넘나든다. 길 위에는 근사한 자작나무숲을 비롯해 수많은 경관 명소가 있지만 ‘운탄고도 1330’이 자연과 경관을 가로질러 찾아 나서는 건, 힘겨웠으나 이제는 오래돼 애잔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그게 폐광된 탄광일 수도 있겠고, 오래전에 봉인한 자신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 ■ 트레킹과 와인, 그리고 족욕 운탄고도 1330 2길이 지나는 예밀2리에는 마을 기업 ‘예밀와이너리’가 있다. 마을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포도 품종 ‘캠벨얼리’가 재료다. 예밀 와이너리는 10년 넘도록 캠벨얼리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족욕을 즐기며 와인을 맛볼 수 있는 힐링족욕센터가 있다. 드라이 와인과 로제 와인, 두 잔이 제공된다. 트레킹을 끝낸 뒤 발의 피로를 푸는 데 더할 나위 없다. 박경일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 / 전임기자 글 사진: 문화일보 트래블에서 옮김 옮긴이: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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