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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압박에 시간이 멈췄다..강원 인제 ‘대간령’ 마장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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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61회 작성일 23-06-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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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의 전설’서 건진 추억… 초록의 압박에 시간이 멈췄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06-22 09:06 박경일 기자 소간령을 넘자마자 나타나는 마장터 마을의 숲길. 숲의 초록이 마치 물감을 부어 놓은 듯하다. 숲 한가운데로 난 순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길게 이어진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강원 인제 ‘대간령’ 마장터 가는 길 미시령 박달나무쉼터서 출발, 소간령 넘어 오솔길 트레킹 만끽 전기도 닿지 않는 첩첩산중의 마을 ‘마장터’… 지금은 집 다섯 채만 남아 낙엽송 도열한 ‘수직의 세상’ 아래 ‘수평의 세상’ 펼쳐져… 원시림 방불 마지막 주민 살던 투막집엔 “영화롭던 시절은 끝” 메모 덩그러니 인제·속초·고성=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백두대간을 넘는 가장 유순한 길 여기, 한때 ‘전설’이었던 길 끝의 여행지가 있다.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갯길 진부령(520m)과 미시령(826m) 사이에는 ‘대간령(大間嶺·대관령이 아니다)’ 고개가 있다. 전설은 그 고개 아래에 있는 ‘마장터’에 새겨져 있다. 깊고 아득한 숲길 저편에 신기루처럼 남아있는 마을. 초록의 숲 한가운데 다 쓰러져 가는 굴피집과 초가집으로 남아있는 오지 중의 오지. 대간령 고개는 마산봉(1051m)과 신선봉(1204m) 사이의 낮은 목을 넘는 고개다. 이름난 고갯길인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를 넘어간다고 해서 ‘샛령(새이령)’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 하면서 ‘사이 간(間)’ 자를 써서 대간령이 됐다. 대간령 고개는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개다. 강원 인제 쪽에서 출발하면 먼저 작은 고개 소간령을 만나고 그 뒤에 큰 고개인 대간령이 있다. ‘큰 대(大)’ 자를 썼지만, 대간령은 부드러운 언덕 수준이다. 대간령이 그러니 소간령은 말할 것도 없다. 백두대간을 넘는 데도 길이 순한 건, 이미 인제 쪽 들머리 해발고도가 높아서 표고 차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 잊혔지만 대간령은 예로부터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가장 유순하고 편안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내륙의 물산과 바닷가의 소금과 생선이 넘나들었다. 백두대간 고개를 걸어 넘던 시절 이야기다. 동해의 소금이며 수산물을 지고 넘어온 이들과 육지의 물산을 가지고 동해로 넘어가던 이들이 대간령 아래에서 쉬어갔다. 거기 주막이 들어섰고 마을이 생겨났다. 짐꾼들이 타고 온 당나귀며 말이 이 마을에서 거래됐다. ‘마장(馬場)터’란 마을 이름은 ‘말을 사고팔던 장이 있었던 터’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마장터 계곡. 대간령 정상에다 쌓아놓은 돌탑. 마장터의 초가집 기둥에 누군가 붙여놓은 이성부 시인의 시 ‘봄’. 마장터에는 육지 사람보다 고성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성의 소금이며 수산물은 한 발짝이라도 내륙으로 더 들어가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고성 사람들은 대간령을 넘어 인제를 지나서 원통까지 드나들었다. 일제강점기 무렵에 마장터에는 서른 가구가 넘게 살았단다. 역사상 가장 북적이던 시절이다. ‘고작 서른 가구’라 코웃음을 치겠지만, 가서 보면 안다. 이 멀고 깊은 첩첩산중에 그게 얼마나 믿기지 않는 얘기인지. 그 무렵 마장터에는 함지박을 만드는 공장과 기차선로 침목 생산 공장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른 가구가 살았었다고 하지만, 그때도 마장터는 세상과 등 돌려 앉은 꼭꼭 숨겨진 오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마장터까지 가는 숲길은 멀고, 그 길을 꼬박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곳이 얼마나 오지였는지를 설명하는 마장터 사람들의 이야기 끝에 늘 등장하는 게 ‘8·15해방을 보름쯤 뒤에야 지나던 스님의 귀띔으로 알게 됐다’는 얘기다. 스님에게 해방 소식을 들고 일본인 관리인 아래서 침목을 만들던 이들이 연장을 던져버리고는 만세를 부르며 산에서 내려갔다던가. 흔히 오지를 말할 때 ‘6·25전쟁 때 난리가 난 줄 몰랐다’는 비유를 들지만, 마장터는 그랬을 리 없다. 6·25 때는 백두대간 첩첩산중까지 전쟁의 피비린내가 진동했으니까. # 전기도 전화도 없는 오지, 마장터 한계령과 진부령, 미시령 고갯길이 닦이고, 터널까지 뚫리면서 걸어 넘던 대간령은 교역로의 수명을 다했다. 빠르고 편한 길이 놓이면서 이전의 길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렇게 길이 잊힌 뒤 마장터에는 화전민이 찾아들었다. 전방지구의 잦은 무장공비 출몰을 이유로 화전민이 쫓겨난 뒤에는 봄이면 나물을, 가을에는 버섯을 따며 산에 기대서 생계를 꾸리는 서너 가구가 들어와 투막집을 짓고 살았다. 마장터가 ‘오지의 전설’이 됐던 게 바로 이 무렵이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닿지 않는 곳. 짙은 숲 속으로 난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첩첩산중으로 걸어 들어가면 거기 호롱불 심지에 불을 켜고 사는 이들이 있었다. 압축성장 시대를 힘들게 건너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그곳은 로망이 되고도 남았다. 세상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 다들 안간힘을 써야 했던 그 무렵, 마장터는 ‘시간의 변화를 거부하는 곳’의 상징이자, 감행할 수 없는 상상 속 탈출의 목적지였다. 로망이나 도피처라고 했지만 실제 마장터에 가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던 대중교통 사정도 이유가 됐지만, 그보다는 주 6일의 격무 속에서 마장터까지 다녀올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멀기도 하거니와 가볼 시간을 낸다는 것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으니 마장터의 로망은 더 강력해졌다. 그 시절, ‘오지 좀 가봤다’는 사람들에게도 마장터는 전설 같은 곳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쯤의 이야기다. 오지의 전설은 그곳이 멀다고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녀와서 길을 찾지 못해 돌아가지 못했다는 무릉도원 얘기와 안평대군이 꿈속에 본 절경을 그린 몽유도원도의 공간이 전설이 됐던 건, 멀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였다. 마장터가 오지의 전설이 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마장터에 갈 수 있다. 그저 마음만 내면 된다. 길은 여전히 멀지만 뚜렷하고, 무엇보다 이제는 시간이 있다. # 바다와 내륙의 물산이 오가던 고개 몇 번이나 계곡 물을 건널까. 하나 둘 셋…. 열 번을 넘어서면서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마장터 가는 길의 출발지점은 강원 인제의 ‘박달나무쉼터’다. 미시령 터널로 가는 56번 국도에서 살짝 왼쪽으로 비킨 길 끝에 박달나무쉼터가 있다. 간판을 ‘쉼터’라 달았지만, 식당 상호다. 주인은 식당 사장 겸, 산행 가이드 겸 농사꾼이다. 그가 여기 정착하기까지 구구절절 사연이 있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 꺼내놓지 않기로 한다. 그의 말마따나 ‘다 쓰자면 책이 몇 권’이니까. 마장터와 인연 있는 사람 중에서 이만한 사연쯤 없는 사람은 없다. 이 깊은 오지까지 걸어 들어왔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다 있지 않겠는가. 박달나무쉼터에서 출발한 길은 소간령을 넘어 마장터와 대간령으로 이어진다. 박달나무쉼터∼소간령∼마장터∼대간령의 순이다. 오지로 가는 길이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은 외길이어서 잘 못 들 수 없다. 앞만 보고 걷는다면 마장터까지는 편도 1시간 남짓, 왕복 2시간이 걸린다. 마장터 너머 대간령까지 다녀온다면 편도 2시간이 조금 넘는다. 대간령에서 고개를 넘어서 고성의 원대리와 도원리를 지나 바다까지도 갈 수 있다. 옛사람들이 교역을 위해 넘나들던 길이다. 그 시절 고성의 소금이며 수산물은 한 발짝이라도 내륙으로 더 들어가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고성 사람들이 대간령을 넘어서 인제를 지나 원통까지 악착같이 드나들었던 이유다. 그런데 지금은 물산을 싣고 가는 것도 아니니 대간령 너머까지 걸을 이유는 없다. 대간령 너머 고성 땅인 원대리와 도원리 가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 구간이다. 대부분 번듯한 임도 길이어서 걷는 재미도 없다. 그러니 박달나무쉼터에서 마장터나 대간령까지만 갔다가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트레킹을 추천한다. 굳이 대간령까지 가지 않고 마장터만 보고 온대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대간령 트레킹 매력의 8할쯤은 ‘가는 길 위에’ 있으니까. # 계곡 사이 이어지는 명주실 같은 길 ‘아니, 이런 숲을 다 봤나.’ 박달나무쉼터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마장터 가는 숲길로 접어들면 깜짝 놀라게 된다. 초입의 숲길은 미로 같다. 여느 숲길과는 느낌이 다르다. 빽빽한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 틈으로 딱 어깨 하나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길 양쪽 나무와 풀이 길을 포위한다. 말 그대로 ‘초록의 압박’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길은 마산봉과 신선봉 사이 계곡을 따라 타래 풀린 명주실처럼 이어진다. 계곡이라곤 하지만, 폭포를 이루는 바위 계곡이 아니라 땅을 스미듯 적시며 흘러가는 물길이다. 이런 계곡을 따라가니 길이 순할 수밖에. 마장터 가는 길은 평지는 아니지만, ‘평지나 다름없다’고 써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가파르지 않아서 쉬지 않고 걷는대도 숨이 차 멈춰서는 일은 없다. 초입의 숲길 구간을 빠져나오면, 마장터까지 이어지는 길의 풍경은 대체로 평이하다. 계곡 옆 비탈진 사면에는 지난가을의 낙엽들이 수북하다. ‘무릉도원’급 풍경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 비가 많지 않은 계절이라 계곡의 수량은 적다. 여름 장마가 지나고 나면 계곡은 차고 맑은 물로 넘쳐나는데, 그 무렵 첨벙거리며 계곡을 건너는 마장터 트레킹은 청량한 즐거움이 있다. 마장터는 소간령 너머에 있는데, 소간령은 어느결에 넘는지도 모르고 넘어간다. 고갯마루에 당도해서야 거기가 고개인 걸 알 정도다. 소간령 직전에 약수터가 있다. 아래 계곡에서 솟는 물을 호스로 끌어놓고 그 위에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았다. 그 옆에 서툰 솜씨로 짠 나무 벤치를 놓았다. 고개를 넘기 전에 물 한 잔 마시고 쉬어가라는 배려다. 약수를 끌어오고, 의자를 놓고, 성황목 아래 작은 제단(祭檀)을 만든 건, 그 깊은 마장터에서만 자그마치 44년을 살았던 약초꾼 정준기(81) 씨다. 마장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그는, 1년 6개월 전쯤 ‘몸이 산을 따라주지 않아’ 산에서 내려와 도시에 정착했다. 수소문 끝에 속초에서 어렵게 그를 찾았다. 한 서민아파트 마당에 우두커니 나와 앉아있던 그는, 약수터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 수평의 세상과 수직의 세상 마장터 마을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그야말로 거대한 숲 한가운데 있다. 첩첩산중에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평평한 ‘수평의 세상’이다. 지형만 봐도 마장터에 마을이 생겨난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다. 마장터에는 마을의 흔적이 희미하다. 그저 숲 한가운데 가느다란 오솔길이 있을 따름이다. 그곳이 마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숲은 다채롭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마을 여기저기 군집을 이룬 낙엽송 숲이다. 1970년을 전후해 화전만이 나간 빈 집터와 밭터에 심은 것이란다. 심은 지 반세기가 지난 낙엽송들은 온통 ‘수직의 세상’을 이뤘다. 낙엽송 숲만 근사한 게 아니다. 낙엽송 도열한 숲은 그것대로, 서어나무 극상림의 숲은 그것대로, 참나무 숲은 또 그것대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청아한 새소리와 돌돌 흐르는 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틈입하지 않는 고요함까지 깃들었다. 그런 숲길을 걷는 기분은 황홀하다. 마장터에는 억새로 지붕을 올린 투막집과 귀틀집을 비롯해 다섯 채쯤의 집이 남아있다. 마장터의 집은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사라져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세 채만 그나마 온전한 편인데 집주인들은 일찌감치 거처를 산 아래로 옮겨놓고 주말에나 생각난 듯 들르고 있다. 마장터의 집이 거처가 아니라 별장이 됐으니, 마장터가 ‘온전하다’고 말할 수도, ‘없어졌다’고 말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다. 그러기 전까지 마장터에서 살았던 마지막 주민이 2년 전 속초로 거처를 옮긴 정 씨다. 정 씨가 살던 투막집 흙 담벼락에는 달력을 잘라 노트처럼 만든 메모지와 줄에 매단 볼펜이 있다. 약초를 뜯으러 가서 집을 비운 사이에 다녀가는 이들이 여기에 용건을 남긴다. 휴대전화가 무용지물인 이곳에서 집주인에게 다녀간 기별이라도 남겨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집주인이 마장터를 떠난 줄 아직 모르는 이들이 메모지에 편지를 적어 놓았다. “‘○○감자탕’ 왔다 갑니다. 막걸리 놓고 가요.” “뵙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어르신,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빠른 쾌유와 남은 날의 편하심을 기원 드립니다.” 그렇게 메모를 읽다가 딱 한 줄만 남긴 메모 앞에서 눈길이 오래 멈췄다. 누가 남겼는지 모르는 한 줄의 문장이 이렇다. “영화롭던 시절은 end(끝).” 예나 지금이나 깊은 오지 신세를 못 면했던 마장터가 어디 한 번이라도 영화롭던 시절이 있기나 했었을까. 그렇다면 그가 흘려 쓰듯 적어놓고 간 ‘끝났다’고 한 건 마장터의 영화가 아니라, 아마도 자신의 빛났던 청춘이 아니었을까. 청춘의 추억을 되짚어 찾아온 이가 빈집 앞에서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남겼으리라. 44년 동안 마장터에서 살았던 정준기(81) 씨의 투막집. 1년 6개월 전, 정 씨가 마장터에서 내려간 뒤로 집은 비어 있다. 소간령에 설치한 스탬프 비치함. 마장터 가는 길은 트레일 코스인 ‘인제 천리길’의 한 구간이다. # 산에서 내려온 마장터의 전설 이제부터는 속초의 한 서민아파트에서 만난 ‘마지막 마장터 주민’ 정준기 씨의 이야기. 그는 마장터를 떠난 날을 정확히 기억했다. 2021년 12월 29일. 서른다섯 한창나이에 마장터에 들어왔다가 일흔아홉 노인이 돼서 나갔으니,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약수터는 잘 있던가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는 소간령 목전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약수터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러고는 약수터를 만들면서 돌무더기를 쌓은 연유를 들려줬다. “무장공비가 자주 출몰하던 시절에 ‘간첩이 우물과 약수에 독약을 푼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돌 더미를 쌓고 그 안에 약수를 감춘 건 제아무리 간첩이라도 독약을 물에 풀겠다고 그 돌을 일일이 다 들어내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약수터의 안부를 사실대로 말해줬던 건 잘한 일이었을까. 약수가 가득 담기는 스테인리스 양푼 바닥에는 흙이 쌓여 있었고, 바가지는 깨져 있었다. 양푼의 흙을 비우고 새 물을 받을까 하다가 그냥 지나친 게 이제 와서 못내 마음에 걸렸다. 정 씨는 몇 번이고 “내가 있었으면 깨끗하게 치웠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런 그에게 ‘약수터 옆 나무 벤치가 무너졌다’는 얘기는 차마 해줄 수 없었다. 그는 왜 두고 온 투막집보다 약수터 안부를 더 궁금해했을까. 그건 약수터를 ‘누군지 모를 길손에게 베푸는 호의’로 만들어서다. 황혼의 시간에는 ‘제 것’보다 ‘남에게 해준 것’이 더 오래 남는 법일까. 마장터를 떠나왔지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약수터에서 사람들이 오래오래 달고 시원한 물맛을 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그 마음이 짐작돼 덧붙인다. 누구든 마장터에 가게 되거든 약수터 양푼 바닥의 흙이라도 씻어주기를…. 그는 산에서 내려온 뒤로 마장터에 다시 가보지 못했다. 무릎도 상하고 기력이 달려 이젠 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단다. ‘그곳이 그립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장터가 가장 생각날 때는 ‘여름밤’이라고 했다. 마장터에서는 아무리 더운 날에도 계곡 물에서 멱을 감고 나오면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집 앞 계곡은 삼복의 염천에도 물이 너무 차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마장터 산장’ 팻말을 단 통나무집 아래 계곡에서 목욕을 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말한 통나무집 아래 계곡은, 물감을 부어 놓은 것 같은 초록의 숲과 바닥이 환하게 비치는 청량한 계곡의 물빛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천연 수영장이었다. 아직도 그곳의 풍경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그에게, 도시의 여름밤은 숨 막힐 듯 덥다. # 영화롭던 시절은 끝났지만… 사실, 정 씨가 들려준 마장터에 대한 추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추억은 ‘산중생활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봄에는 나물을, 여름에는 약초를 캐고 가을에는 버섯을 따며 생계를 이어온 그에게 산은 ‘치열한 직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돌아보는 마장터는, 어쩐지 은퇴한 직장을 되돌아보는 퇴직자의 심경과 닮아 보였다. 그가 마장터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생계 때문이었다. 원통에서 교량 공사 잡부 일을 했던 그는 겨울을 코앞에 두고 공사가 끝나자 살길이 막막해졌다. ‘일 해주고 밥 먹을 곳’을 찾던 그는 어찌어찌 알게 된 집에서 대여섯 마리 소를 도맡아 키우는 일을 했단다. 한 해 겨울을 거기서 났다. 소 주인은 약초꾼이었다. 봄이 되자 산으로 들어간 그를 따라나섰다가, 그 길로 마장터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고 했다. 산에 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싫다고 놀은 적은 하루도 없었다. 봄가을, 나물과 버섯이 날 때는 누구보다 더 먼저 산에 올라가야 했다. 동이 트기 전에 산에 올랐다가, 점심을 집에서 먹고는 또다시 산에 올라 밤늦게 내려왔다. 송이 철인 가을 한 달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는 “버섯으로 하루 100만 원 벌이도 해봤는데, 평생 산삼은 한 번도 캔 적이 없다”며 웃었다. 그 시절 마장터는 오지를 찾는 이들에게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산중의 낭만을 찾아온 도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면 그는 기꺼이 문을 열어줬다.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둥글게 모여 앉은 이들에게 산중의 무용담을 얘기해준 적도 있고, 비분강개한 젊은이들의 시국 토론에 끼어들 때도 있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술추렴을 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다 지나갔다. 마장터 집은 별장이 됐고 거기 살던 사람은 떠났다. 하지만 정 씨는 다시 마장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 정 씨 집 담벼락의 메모지에 적어놓은 글귀처럼, 다 끝난 ‘영화롭던 시절’의 추억이 거기 있어서다. 그런 추억이 없다고 해도 관계없다.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마장터는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아는 이들의 소매를 붙들어 데려가고 싶지만, 낯모르는 이들에게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은 곳. 마장터는 그런 곳이다. ■ 설악과 금강의 사잇길 인제에서 마장터를 거쳐 대간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줄곧 맑은 계류를 따라가는데, 이 물이 설악산국립공원의 경계다. 계류 왼쪽이 마산봉이고, 오른쪽이 신선봉. 오른쪽 신선봉 쪽이 설악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마장터는 계곡을 바짝 끼고 오른쪽에 있는데, 본래 있던 마을이라 국립공원에서 제외됐다. 신선봉은 2003년 설악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됐지만 실은 ‘금강산 제1봉’으로 불렸다. 금강산 2봉은 마산봉이다. 그러니 마장터 가는 길은 금강산 1봉과 2봉 사이를 걷는 길인 셈이다. 박경일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 / 전임기자 글 사진: 문화일보 트래블에서 옮김 옮긴이: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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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으로 맛깔스런 잼난 기행문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았을까?
목요일이 기다려지는 박경일 여행기자님의 이야기랍니다.
 
섬세하게 묘사된 그 표현들을 토씨까지 빠뜨리지않고
상세히 읽어 내려가노라면 온몸에 행복감으로 차오릅니다.
참 좋은 글과 사진을 만나 또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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