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웠다, 백양사 절집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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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8회 작성일 23-11-19 09:25본문
여행레저 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웠다, 백양사 절집의 하룻밤 백종현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23.11.17 00:02 백암산 중턱 약사암에서 내려다본 백양사의 모습. 단풍이 절정인 시기는 지났지만, 아직 가을 기운이 남아 있다. 20년 묵은 간장으로 발효한 두부장, 10년 된 감식초를 곁들인 나물 겉절이, 우리네 ‘단짠’의 진수의 보여주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 특급호텔이나 고급 한정식집에서 내놓는 음식이 아니다. 남도 산사에서 맛본 절밥의 면면이다. 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산(742m) 자락의 백양사는 정갈한 사찰음식과 그윽한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1박2일 백양사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1박2일 한 것이라곤 ‘잘 쉬고 잘 먹고’가 다였으나, 여운은 길었다. 정관스님의 가을 절밥 백양사 뒤로 보는 거대한 암벽이 백학봉이다. 백양사의 비구니 수행 도량 천진암에 사찰음식의 대가가 살고 있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뉴욕타임스 등에 소개된 뒤 세계적인 음식 거장으로 떠오른 정관스님이다. 지난 10일 천진암을 찾았다. 정관스님은 “내 보물 1호가 여기 있다”며 대웅전 앞 장독대에서 손님을 맞았다. 그의 아담한 장독대에는 긴 세월을 묵힌 장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20년 이상 숙성했다는 씨간장 독을 열자 이른바 ‘간장소금’ 결정이 가득했다. 진한 빛깔로 단단히 굳은 것이 보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백양사는 고즈넉한 풍경 덕에 사계절 탐방객과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끊이지 않는다. 정관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음식 수행’ 프로그램은 음식을 테마로 하는 전국 템플스테이 중 가장 인기가 높다. 코로나 전인 2019년 한 해에만 981명이 다녀갔는데 그중 536명이 외국인이었다. 30명을 정원으로, 한 달에 서너 차례밖에 열지 않아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백양사 관계자는 “매월 15일 오전 9시에 다음 달 예약을 받는데, 인기 가수 콘서트 티켓 경쟁 못지않다”고 귀띔했다. 한 스님도 “정관스님은 사찰계의 BTS”라고 거들었다. 표고버섯 조청 조림, 무전과 수삼 튀김, 나물 겉절이, 알토란 들깨탕. 정관스님은 ‘요리하는 철학자’로 통한다. 이날 요리 시연에서도 조리법보다는 “적게 먹어야 정신이 가벼워지고 버리는 에너지가 없다” 같은 설법에 더 집중했다. 시식 전에는 수경스님(전 화계사 주지)이 쓴 『공양』의 한 구절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를 인용했다. 이날 밥상에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비롯해 나물 겉절이, 수삼 튀김, 알토란 들깨탕 등이 올랐다. 맛은 물론이고 음식을 접시에 올려낸 솜씨도 예술적이었다. 약사암에서 굽어본 단풍숲 정관스님은 자연에서 발효한 된장과 간장을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꼽는다. 백양사에서 절밥만 맛본 건 아니다. 첫날은 법복으로 갈아입고, 명상에 나서고, 합장·오체투지 같은 불교 예법을 배웠다. 이튿날은 오전 4시30분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내장산국립공원에 자리한 백양사는 화려한 가을 풍경으로도 유명한 장소다. 애석하게도 올해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단풍이 예년만 못했다. 백양사의 가을을 특별하게 장식하던 ‘애기단풍’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운치와 백암산의 백학봉 암벽을 등에 진 대웅전의 기품은 여전했다. 백양사 명물로 통하는 쌍계루. 아침 공양 후 산내 암자 약사암으로 향했다. 백학봉 중턱에 자리한 약사암은 ‘신비의 도량’으로 통한다. 기암괴석 사이에 들어가 있기도 하거니와, 영험한 샘이 솟는다는 영천굴을 곁에 끼고 있어서다. 백양사에서 소위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이란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30여 분 거슬러 올라 약사암에 닿았다. 이틀짜리 시한부 불자의 눈에는 신묘한 기운보다 시원한 풍경에 감탄이 나왔다. 암자 끝자락에 서니, 울긋불긋한 가을 숲에 둘러싸인 백양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백양사(장성)=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중앙일보 여행레저에서 옮김: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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