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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첩첩 물 첩첩’ 초겨울 정취…이 계절, 더 매혹적인 강원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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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9회 작성일 23-11-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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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첩첩 물 첩첩’ 초겨울 정취… 옛길 돌아나온 산촌 풍경엔 박하향 나는듯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11-23 09:20 박경일 기자 강원 정선의 남평에서 여랑으로 이어지는 꽃베루길에 차 한 대가 들어섰다. 초겨울 오후의 눈부신 볕으로 늦단풍 물든 낙엽송이 화려하다. 꽃베루길은 산허리를 따라가는 길이어서 걷는 내내 장쾌한 조망을 호사스럽게 누릴 수 있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이 계절, 더 매혹적인 강원 정선 작은마을 기웃거리기 신선이 그림연습 했다는 화암리 전망대선 병풍같은 바위 한눈에 무인운영 공유시설 ‘하여가게’ 주민 모두가 이웃과 음식 나눠 일제때 노다지 광산으로 번영 이젠 미술 마을로 재건 안간힘 정선=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초겨울 여행은 어렵다. 이때는 어디든 황량하다. 단풍은 다 졌고 눈은 아직 멀었으니 찬사를 걸어놓을 만한 자연경관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초겨울 느낌 그대로 알싸한 박하 향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강원 정선이다. 다른 계절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곳은 초겨울이더라도 별 상관없다. 아니 정선에는 초겨울이라 더 매혹적인 곳도 있다. 산 첩첩, 물 첩첩한 정선의 마을을 다니고, 길을 걷다가 온 이야기다. # 추천! 초겨울 여행… 정선 산촌 마을 초겨울에 정선을 여행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첫 번째가 ‘작은 마을 기웃거리기’다. 이즈음 정선의 산촌 마을 풍경은 느리고 아늑하다. 그래서 평화롭다. 농사가 다 끝난 초겨울 농한기의 산골 마을에, 속도와 긴장 따위가 있을 턱이 있나.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초겨울 양지바른 담 아래 낡고 오래된 것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을 따름이다. 초겨울 정선의 산촌 마을에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박하 향 같은 차고 맑은 기운과 마을을 휘감고 있는 느긋한 시간이다. 무위의 시간 속에서 주민들은 느리게 산다. 이즈음 정선 마을에 가면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얘기할 수 있다. 겨울 산촌 마을에서는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가 바뀐다. 주민들도 그렇고, 여행자도 그렇다. 들뜬 한여름 피서철이나 행락객 넘쳐나던 단풍 시즌에 건성건성 대하던 그런 관계가 아니다. 정선의 겨울, 외딴 마을에는 차가운 기온을 은근하게 덥히는 환대가 있다. 그렇다고 호들갑스러운 건 아니고, 오히려 무뚝뚝한 쪽에 가까워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마음 쓰는 게 긴가민가 느껴질 정도의 환대다. 이런 환대는 겨울 산촌에 사람이 귀해서 그렇다. 기꺼이 아랫목을 내어줄 것 같은 환대 뒤에는, 대개 한 스푼쯤의 호기심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겨울에 여(기)까지 뭐하러 왔냐’는 질문에 대한 답 하나쯤은 가지고 가야 하는 이유다. ‘그림 화(畵)’자에 ‘바위 암(岩)’자를 쓰는 화암리는 한자 뜻을 풀어 ‘그림바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미술마을 프로젝트를 하면서 화암리 입구에 세운 조형물. 정선의 작은 마을 중에서 먼저 가는 곳이 화암면의 화암리다. 화암(畵岩). ‘그림 화(畵)’에 ‘바위 암(岩)’이니 ‘그림바위마을’이다. 화암리 마을 옆에는 진짜 ‘그림바위’가 있다. 병풍처럼 서 있는 높이 50m, 길이 150m에 달하는 수직의 뼝대(바위벼랑)다. 산신령이 여기서 그림연습을 했단다. 사실 이만한 뼝대야, 정선 땅에는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면 왜 여기를 콕 짚어서 그림바위라 명명했을까. 정선읍에서 조양강에 합류하는 동대천 물길이 그림바위를 끼고 흐르는데, 동대천 건너편에 신선대가 있다. 신선대는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은 천변의 바위벼랑이다. 신선대 바위 위에 전망대가 있는데, 여기 오르면 그림바위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산신령이 그림 연습을 했음 직한 자리다. 아마도 그림바위란 이름은, 뼝대를 굽어볼 수 있는 신선대가 있어서 붙여진 건 아니었을까. # 하여가게…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그림바위마을, 그러니까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는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산촌 마을이다. 마을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이 마을에서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 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덕분에 마을은 이야기와 공공미술로 단장됐다. 교회 종루에는 주민들의 추억들이 새겨졌고, 마을 여기저기 조형미 넘치는 상징물이 세워졌다. 변전소 건물은 미술관이 됐고, 작고 낡은 성당은 마을 박물관이 됐다. 화암마을에서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이걸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미술 마을 프로젝트는 오래되고 쇠락한 마을을 ‘재생’하고자 시도된 것.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만든 ‘재생’마저도 쓸쓸하게 낡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화암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하여가게’였다. 가게는 화암면주민자치회가 입주한, 마을에서 가장 번듯한 신식 건물인 ‘화암공간’ 앞에 있는데, 삼면이 유리로 된 시골 마을버스 정류장처럼 생겼다. 하여가게는 24시간 무인 운영되는 공유시설. 주민자치회 총회에서 제안된 마을 의제 사업 중 압도적 찬성으로 선정돼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사업이란다. 하여가게는 누구든 나누고 싶은 음식을 가져다 놓고,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한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가게 안에 진열 냉장고 3대와 매대가 있는데, 매대에는 무말랭이와 보리강정, 허브차, 중국 명차 등이 놓여 있고, 냉장고 안에는 여러 봉지로 나눠 담은 모닝빵과 잘 무쳐낸 마늘장아찌 등이 있었다. 특히 눈길이 갔던 건 냉장고 안에 있던 빈 병에 담긴 청주. 누군가 술을 샀는데 그게 너무 많았던 듯 병 몇 개에 나눠 담아 가져다 놓았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팔다 남은 것도 아니고, 업체의 기부를 받아 물품을 대는 것도 아니다. 하여가게에 있는 것들은 모두 주민들이 순전히 스스로 제 것을 나눠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물품에는 저마다 스티커에 품목과 가져다 둔 날을 정성껏 적어 붙여두었다. 매대에는 상품이 풍성했다. 가져간 것들보다 가져다 둔 것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아, 이게 가능하다고?” 가게 앞에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이곳 소개를 망설였다.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하여가게를) 외부 사람들도 당연히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외지인이 가져가기만 해서는 가게가 어찌 유지될 수 있을까. 화암마을에 간다면 가져갈 것보다 ‘가져다 놓을 것’을 먼저 챙겨보면 어떨까. 외딴 산촌 마을의 동화 같은 무인가게가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화암 8경의 제5경인 화표주. 산신이 신틀을 걸어놓고 짚신을 삼았다는 우뚝 솟은 기둥 모양의 거대한 바위다. # 믿기지 않는 노다지의 전설 화암면은 지금은 비록 손바닥만 한 산촌 마을이지만, 한때 일확천금의 욕망으로 들끓던 곳이었다. 화암은 세종실록에 ‘금생산지’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금의 역사가 깊은 곳. 한일 강제병합 이후 화암면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전국의 광산업자들이 화암면으로 몰려들었다. 화암면에는 북동 금광도 있었고, 한치 금광도 있었지만, 대박 중의 대박은 천포광산이었다. 천포광산 개발은 말 그대로 ‘일확천금의 신화’였다. 신화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三菱)전화 교환수를 했다는 평안북도 출신의 김정숙이다. 스물세 살 나이에 남편과 함께 정선으로 내려온 그는 천포광산 광업권을 사들였는데, 이 광산에서 8년 만에 거대한 금광맥을 발견했던 것. 이 광맥에서 한 해에 자그마치 22.9㎏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생산량이었다. 그는 2년 만에 천포광산의 광업권을 20만 원에 팔아넘겼다. 당시 1원이 지금 시세로 14만 원쯤 되는데 10만 원씩만 쳐도 자그마치 200억 원이 넘는 ‘대박’이었다. 1930년대 화암면은 광산에서 쏟아지는 노다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가마니로 돈을 담아 다니던 금광 집안의 며느리’와 ‘돈을 항아리에 담아 놓고 쓴 시어머니’의 고부갈등 얘기가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다. 화암면에는 정선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고, 신작로가 놓였으며, 저잣거리 양조장이 생겼다. 마을을 장식하고 있는 공공미술에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 얘기가 많고, 광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다지가 쏟아졌다는 천포광산이 바로 지금의 화암동굴이다. 화암동굴은 천포광산이 금맥을 찾아 거미줄처럼 땅을 파고 들어갔다가 발견한 동굴이다. 동굴 옆에는 당시 천포광산 인부들의 집을 재현해 금광 마을로 꾸민 천포금광촌이 있다. 화암8경·옛길 걷기 ‘작은 금강산’ 의미 담은 소금강 협곡 전망대서 보는 정취 으뜸 깎아지른 절벽 고사목 한 그루 비장한 경관 보여주는 몰운대 산중 굽이굽이 도는 꽃베루길 금강송 숲 걸으며 마을 조망 # 60년 전 관광전략? 화암 8경 화암마을 일대에 ‘화암 8경’이 있다. 화암리와 몰운리 주변에 빼어난 경치 여덟 곳을 묶어 이르는 이름이다. 화암동굴도 화암 8경의 ‘제4경’이다. 8경으로 꼽은 여덟 곳 모두 예사 경관은 아니지만, 사실 화암 8경이 오랜 내력을 가진 건 아니다. 뒤져보니 화암 8경이 문헌에 등장하는 때는 1960년대쯤 된다. 그 전에는 없었던 이름이란 얘기다. 사실 ‘8경’이나 ‘9곡’이라 이름 붙은 명승 뒤에는 명망 있는 선비가 있게 마련이다. 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거나 은둔했던 선비였다. 이들은 여덟 곳의 경치나 아홉 곳의 계곡을 짚어서 이름 붙이고는, 그곳을 소요하며 제자를 기르고 글을 남겼다. 그런데 화암 8경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없다. 변변한 시문도 남아있는 게 없다. 중중첩첩한 산중의 척박한 땅이었던 과거에 여기까지 문기(文氣)가 스미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선에는 눈 돌리는 곳마다 경관이 빼어나서 화암 8경의 경치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였을까. 화암 8경을 만들었던 건 아마도 천포금광이 해방과 함께 1945년 폐광되면서 돈과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행락객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메우기 위한, 지금으로 치면 ‘명소화 작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때 누군가가 이미 관광의 경제적 가치를 알아봤던 셈이다. 8경의 순서가 곧 서열은 아니지만, 그래도 1경이라면 ‘대표급’이 아닐까. 화암 8경의 제1경은 화암약수다. 물맛은 비릿한 철분 맛과 알싸한 탄산이 쌉쌀하게 섞였다. 처음 약수를 발견했다는 이의 이름 석 자가 뚜렷하다. 문명무. 화암마을에 살았던 그는 1910년쯤의 어느 날 화암약수를 발견했단다. 그 이름 뒤에는 전날 꾼 용꿈 속에서 황룡이 나왔던 땅을 파자 약수가 솟아올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누벼져 있다. 화암약수는 코로나19 이래 줄곧 일회용 종이컵을 비치해놓고 있다. 납작한 접이식 종이컵이 아니라, 홀더에 끼워진 컵 모양의 일회용이다. 갈 때마다 한 번도 종이컵이 떨어진 걸 본 적 없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다. 수직의 벼랑 끝에 말라죽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몰운대. 화암 8경의 제7경이다. # 눈 내리는 몰운대의 비장미 제2경 거북바위나 제3경 용마소, 제5경 화표주는 모두 화암마을 주변의 천변에 있다. 걸어서 화암마을을 둘러보면서 다 볼 수 있다. 화암 8경이 대부분 동굴이나 기이한 형상의 바위라 풍경이 계절을 그다지 가리지 않지만, 계절에 딱 맞춰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제6경인 소금강(小金剛)이다. ‘작은 금강산’이란 작명의 소금강은 한두 곳이 아니지만, 적어도 늦가을부터 초겨울만큼은 정선 소금강의 정취가 그중 으뜸이다. 소금강은 화암마을에서 몰운 1리까지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4㎞ 구간에 걸쳐있는 풍경을 부르는 이름. 물길과 물길을 따라가는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높이 150m의 장엄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소금강 협곡 경관의 절정은 단풍 들 무렵부터 눈 내린 풍경까지. 그동안에는 경관 감상 포인트가 따로 없어서 어느 결에 차로 휙 지나치게 돼서 아쉬웠는데, 근래에 협곡 중간쯤에다 ‘소금강 전망대’를 만들었다. 천변의 수직 절벽과 마주 서는 자리인데, 여기서 보면 협곡과 협곡을 끼고 유연한 커브를 그리는 도로,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볼 수 있다. 화암 8경 중에서 가장 비장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제7경 몰운대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아슬아슬 서서 가지를 뒤틀고 서 있는 죽은 소나무 한 그루가 비장감을 더해주는 곳이다. 눈발이 날리는 날에 물가에 층층이 포개놓은 듯 깎아지른 절벽에 서면 세상이 다 아득하다. 물에서 피워올린 안개에 잠긴 듯하다 해서 ‘몰운(沒雲)’이란 이름을 얻었다. 몰운대의 절벽 끝에는 족히 수백 년은 됐음 직한 소나무 고사목 한 그루가 벼랑 끝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깎아지른 벼랑이 보여주는 건 넘치는 긴장감. 그 긴장의 끄트머리에서 삭풍한설을 견디며 발끝으로 매달려있다가 1992년 말라죽은 늙은 소나무 고사목이 드러내는 건 비장미다. 소나무 고사목, 둥치 아래에 지난 2019년 심어진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죽은 소나무의 발치에는 후계목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언제 삭정이로 무너져 사라질지 모르는 고사목의 대를 잇고자 심은 어린 소나무다. 2019년 4월에 심은 것이라는데, 4년 넘게 자랐는데도 키가 60㎝가 채 안 된다. 죽은 제 아비 소나무의 풍모처럼 자라려면 얼마나 더 아득한 시간이 흘러야 할까.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후계목이 있다는 건 마음 놓이는 일이다. 고사목이 쓰러지는 게 더 이상 가슴 철렁한 일이 아니라, 순리처럼 느껴진다. # 정선의 꽃베루길을 오후에 걷기 초겨울 정선을 여행하는 두 번째 방법이 ‘옛길 걷기’다. 정선의 걷는 길 중에서 ‘꽃베루길’을 추천한다. 남평에서 여량을 오가던 10여㎞의 옛길이다. 길은 꽃베루재를 넘는데, 꽂베루란 이름이 명확하지 않다. ‘꽃베루’라는 이들도 있고, 더러 ‘꽃벼루’로 쓰기도 한다. 꽃베루길은 정선읍에서 남평을 지나 여량으로 가는 옛길이다. 꽃베루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베루, 혹은 벼루는 정선지역 사투리로 ‘벼랑’이란 뜻. 꽃은 ‘곧은’ 혹은 ‘곧’에서 왔다. 꽃베루에 얽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앞서 말했던 고종 때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 그리고 그의 부인과 관련된 얘기다. 오횡묵은 정선군수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지방 수령 벼슬을 했다. 자인현감, 함안군수, 고성부사를 지내고 여수군수와 진보(청송)군수, 익산군수, 평택군수까지 지냈다. 민심을 잘 살피고 능력도 인정받은 행정가였다. 군수 오횡묵과 함께 꽃베루재를 넘어오던 부인이 고갯길이 너무나 길고 지루해 탄식하자, 오 군수가 나졸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이 고개가 언제 끝나는가” 그랬더니 나졸이 그때마다 말했다. “곧 베루(벼랑)가 끝나요.” 그때의 ‘곧 베루’가 ‘꽃베루’가 됐다는 얘기다. 산허리를 굽이굽이 도는 꽃베루길은 42번 국도가 놓이기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도 역할을 했다. 이 길은 정선에서 강릉으로 가는 외길이나 다름없었다. 정선읍에서 꽃베루길을 따라 여량과 임계를 거쳐 강릉으로 넘어갔고, 강릉에서 꽃베루길을 걸어 정선으로 돌아왔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이 길을 따라 버스가 다녔다고 했다. 험한 데다 수십 길의 절벽을 따라가는 산길이어서 버스가 구르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고 했다. # 사라진 길이 되살아난 사연 42번 국도가 놓이고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꽃베루길은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저 아래 강변을 끼고 번듯한 도로가 났으니 산중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꽃베루길은 당장 쓸모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버려진 길이 다시 살아나게 된 건 2002년과 2003년 잇따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와 매미 때문이었다. 당시 태풍과 수해로 국도가 유실되면서 일대 주민들이 고립되자, 산중의 꽃베루길을 비상도로로 활용하기 위해 시멘트 포장을 했다. 이후 군도로 관리하면서 묻혔던 꽃베루길이 살아나게 된 것이다. 꽃베루길의 가장 큰 매력은 빼어난 조망이다. 줄곧 산의 허리와 가슴 사이쯤의 높이로 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덕에 마치 길고 긴 전망대 덱 위를 걷는 기분이다. 울창한 금강송 숲을 끼고 걷는 내내 반대편으로 골지천 물길과 일대의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상원산과 두타산, 가리왕산의 겹쳐진 능선이 그려내는 산 그림자도 일품이다. 꽃베루길의 절정은 단연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노랗게 빛나는 겨울 햇살이 눈부신 역광으로 강변과 마을에 쏟아져 흘러넘치는 풍경을 마주하고 서면 가슴이 다 저릿저릿할 정도다. 꽃베루길을 넘던 얘기가 정선아리랑 가사에 있다. “아질 아질 곧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여기 왔나. 정선 땅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곧베루….” 아찔아찔 위태롭고 지루했던 그 길이, 이제는 경관을 즐기면서 걷는 근사한 길이 됐다. 그래 봐야 그사이의 시간이 고작 60년 안쪽이다. ■ 몰운대 130여 년 전 정선군수를 지낸 오횡묵의 이름이 몰운대 절벽에 새겨져 있다. 그가 다녀간 뒤에 쓴 시에서 그 얘기가 나온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세속을 떠났으니 … 이름을 남겨 유랑(劉郞)에게 부탁하는데 그래도 비(碑)에 비하면 나은 것 같네.’ 유랑이란 소설 ‘유명록(幽明錄)’에 나오는 후한 때의 인물 유신(劉晨). 천태산에 가서 선녀를 만나 살았는데 세상에 나왔다 다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이 있다. 그 후 유랑이란 ‘세월이 지나 다시 찾아왔음’을 뜻한다. 박경일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 / 전임기자 *글 사진: 문화일보 트래블에서 옮김: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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