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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족족 옛 영광 떠오르네... 줍듯이 둘러보는 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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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1회 작성일 23-12-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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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기운 품은 조선 제일의 명당… 발길 닿는 족족 옛 영광 떠오르네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입력 2023-11-30 09:08 박경일 기자 산의 형상이 소라껍데기를 닮은 나각산(螺角山)의 정자와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 날씨 좋은 날에 여기서 보는 낙동강과 소백산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줍듯이 둘러보는 경북 상주 ‘경상감영’ 있던 곳… 三災 없다는 우복동, 풍수지리 덕에 대규모 정착촌 이루기도 청화산~도장산 사이 가늘고 긴 용유구곡… 물살에 깎인 바위 장관 연출 나각산 봉우리 두곳에 각각 정자… 낙동강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대 늘재 고개 아래 ‘보굴암’… 세조 딸과 김종서 손자 사랑의 도피처 설화도 정선=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경북 상주 땅에는 조선 초 200여 년 동안 경상감영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상남·북도를 통합한 경상도 도청이 있었던 셈이니, 그 시절 상주는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였습니다. 경상도란 지명도 경주와 상주 지명 첫 자를 따서 붙인 것입니다. 낙동강이란 이름도 상주에서 왔습니다. 낙동강의 ‘낙동(洛東)’은 상주의 옛 지명인 낙양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고즈넉한 중소도시가 된 지금의 상주를 보면, 경상도와 낙동강의 이름을 있게 한 과거의 영화가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상주의 인구는 절반이 됐습니다. 오랫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셈이지요. 오래 소외돼서 그럴까요. 상주에는 압도적인 명소가 없습니다. 상주에서는 길을 가며 ‘줍듯이’ 여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비록 한껏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은 없지만, 상주여행에는 뜻밖에 반짝이는 작은 사금파리를 주워든 것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상주를 여행하는 매력입니다. # 최고 명당이 상주에 있다고? 경북 상주에 우복동(牛腹洞)이 있다. 한자의 뜻을 풀면 ‘소의 배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안온한 동네’다. 풍수지리설이나 도참설에 따르면 우복동은 전란과 질병과 기근, 즉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명당이다. 여기 살면 자손들이 복을 받고 부자가 되고 벼슬길에 오를 수도 있다 믿었다. 난리 통에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피란처니, 난세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을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실 우복동은 행정지명은 아니다. ‘우복동 휴양 마을’ 같은 마을의 별칭이나 ‘우복동 식당’이나 ‘우복동 펜션’ 같은 상호, 그리고 ‘우복동길’처럼 도로명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우복동이란 어디 한 곳에다 붙인 지명은 아니라 ‘최고의 길지(吉地)’를 부르는 이름이라서 그렇다. 우복동은 조선 시대 이래 민간에서 널리 읽힌 예언서 ‘정감록’에 등장하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와 연관이 있다.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이자 예언가였던 격암 남사고. 그는 전국 열 곳의 최고 명당을 가려내 ‘십승지지(十勝之地)’라 불렀다. 그 열 곳이 소백산 아래 풍기의 금계촌, 공주 유구 마곡, 안동의 춘양, 영월의 정동 상류, 보은 속리산, 무주 무풍동, 운봉의 지리산, 부안 변산, 예천 금당동, 성주 만수동이다. 이런 곳을 일러 우복동이라거나 만수동, 무릉동, 청학동 등으로 불렀다. 십승지에 대한 정감록의 해석은 ‘난세에 풍수설에 따라 복정(卜定·길흉을 점쳐서 정함)된 피란처에서만 지복(至福)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 대신 각자도생과 도피를 말하니 봉건시대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다분히 반역적이다. 환난에 몸을 숨길 곳을 거론하는 건, 곧 닥칠 난세를 예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민심도 술렁였을 것이었다. 조정에서 정감록에 붉은 딱지를 붙여 금서로 묶어버린 이유다. 책을 묶는다고 말까지 묶어버릴 수 있었을까. 십승지 얘기는 목소리 낮춘 귓속말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모르긴 해도 ‘불온’이란 딱지가 외려 귓속말 전파의 속도를 높이는 데 적잖이 일조했으리라. 십승지 가운데 중심에 있는 보은 속리산이 어딜 가리키는가를 놓고 논란이 있다. 충북 보은 구병산을 꼽는 사람도 있고, 문경의 농암면을 지목하는 이도 있으며, 청주의 우암산이 그곳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가장 믿을 만한 정설은 상주의 용유리, 그러니까 용유계곡 일대를 말한다. 오래전부터 용유리 사람은 제 동네를 행정 지명 대신 ‘우복동’이라 불러왔다. 오랫동안 그걸 믿고 다들 그렇게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이미 우복동이다. # 길고 느린 고개 너머 우복동 가는 길 우복동으로 가는 길. 우복동에 가려면 괴산의 가령산과 문경의 대야산 틈으로 파고들어서 ‘늘재’를 넘어야 한다. 늘재는 속리산과 청화산 산줄기가 이어진 능선을 넘는다. 우리나라 고개 가운데 ‘진고개’나 ‘진재’는 긴 고개라는 뜻이고, ‘늘티’나 ‘늘재’ ‘늘고개’는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여기 늘재도 고갯길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완만하다. 늘재는 해발고도 380m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큰 고개보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백두대간의 맥을 이으면서 물을 나누고, 땅을 잇는 까닭이다. 늘재는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늘재 북쪽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강으로, 남쪽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늘재는 또 경북 상주 화북면과 충북 괴산 청천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32호선의 고갯길이기도 하다. 늘재를 넘어 우복동으로 가기 전에, 우선 절집 석문사부터 들렀다 가자. 백악산 아래 옥양폭포 위쪽에 들어선 석문사의 역사는 일천하다. 아미타불 기도 도량으로 1990년 창건했으니 30년이 좀 넘었다. 절집 이름은 ‘석가 세계로 가는 문’이라 석문(釋門)이지만, 돌로 된 문이란 뜻의 석문(石門)이라 쓰는 게 더 적당하다 생각될 정도로 주변에 집채보다 큰 바위들이 즐비하다. 석문사는 요사채 너머로 너른 마당에 극락보전과 산신각을 갖춘 소박한 절집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석문사 극락보전은, 숭례문 해체 보수작업을 하고 광화문 복원을 지휘한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것이라는데, 절집보다는 극락보전 곁 큰 바위에 새겨진 창건 내력을 적은 창건기에 먼저 눈길이 간다. 그 글에 ‘보굴암(寶窟岩)’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석문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면 벽을 이룬 거대한 바위 무더기가 있는데 거기가 보굴암이다. 보굴암의 바위 아래에는 약사여래불을 앉혔고, 불상을 바라보는 자리에 약사전을 들여놓았다. 보굴암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법한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1873년 서유영이 지은 야사집 ‘금계필담’에 전해지는 얘기다. 의령 현감을 지낸 서유영은 암행어사의 무고로 유배됐다가 풀려나 고향인 충남 금산에 돌아와서 이 책을 썼다. 말년의 외로움을 달래고 소일을 위해 일생 동안 보고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역사와 설화를 버무려 쓴 이야기들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봉래 양사언이나 개운조사가 바위에다 썼다는 글씨 ‘동천(洞天)’. 경북 상주의 석문사와 옥양폭포에서 차로 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괴산 삼송리의 왕소나무. 600년 넘게 목숨을 이어오다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쓰러진 나무다. 용유구곡의 제2곡인 연좌암(宴坐岩). 세조의 맏딸인 공주와 세조가 죽인 김종서의 손자가 결혼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보굴암. 경북 상주를 대표하는 명소인 경천대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 #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 # 용유구곡의 물길을 따라 걷다 상주 우복동은 청화산 아래에 있다. 일생을 ‘사람이 살 만한 땅’을 찾아다니며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썼던 이중환은 청화산의 기운을 좋아했다. 그가 ‘청화산인(靑華山人)’이란 호를 썼던 이유다. 그는 명산으로 손꼽히는 속리산과 마주 보고 있는 청화산을 일러 “앞 뒤편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며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린 것이 없으니 가히 복지(福地)라 일컬을 만하다”고 했다. 우복동의 정식 행정지명은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다. ‘용유(龍遊)’는 말 그대로 ‘용이 노니는 곳’이란 뜻. 용유리에는 청화산과 도장산 사이로 계곡이 가늘고 길게 이어진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송명흠의 아버지 송요좌가 이 계곡에다 구곡(九谷)을 정해 용유구곡을 경영했다고 전해진다. 우복동이 보여주는 게 지형과 지세의 기운이라면, 용유구곡이 드러내는 건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다. 용유구곡에는 구곡의 명소를 따라가는 ‘용유구곡길’이 있다. 우복동의 지세와 기운, 용유동의 경관을 모두 따라가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용유구곡의 시작인 제1곡은 동천석(洞天石)이다. 동천석은 우복동의 들머리에 있는 ‘동천(洞天)’이란 글씨를 새긴 돌이다. 구불구불 초서체로 쓴 글씨는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봉래 양사언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고, 개운조사가 손가락으로 새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2곡 연좌암(宴坐岩)은 계곡 옆에 집채보다 큰 저층아파트만 한 거대한 바위를 부르는 이름이다. 연좌(宴坐)란 편안하게 쉰다는 뜻. 백거이의 시 ‘병중연좌(病中宴坐)’의 한 구절 “조그마한 연못가에 편안하게 앉았더니(宴坐小池畔) 이따금 맑은 바람에 소매 끝이 살랑이네(淸風時動襟)” 에서 가져왔다. # 구곡의 정자를 따라가는 길 3곡은 주민들이 산신제를 올리던 산제당. 이중환이 이곳 용유동을 우복동이라 지목한 이래 전국 각지에서 정감록의 예언을 믿는 이들과 관직을 버린 선비들이 이주해와 한때 주민들이 400여 호까지 불어났단다. 그렇게 이상향을 찾아 우복동까지 온 이들도 질병과 재앙을 물리쳐달라는 제사를 올렸던 것이었다. 용유구곡의 5곡부터 9곡까지는 상주의 경계를 넘어선 문경 땅에 있다. 상주에서는 용유계곡이었던 것이, 경계를 넘어 문경 땅으로 넘어가자마자 쌍용계곡으로 이름을 바꿔 단다. 5곡 병천정사는 용유구곡의 주인 격인 송요좌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정자. 마을 유림들이 오래전에 송씨 문중으로부터 정자를 사들였는데, 관리에 여간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민박집에 위탁해 그나마 여름 한철에는 피서객에게 허름한 숙소로라도 내주려고 손을 보지만, 다른 철에는 딱하다 싶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다. 병천정사 앞 계곡의 바위가 제6곡 회란석(廻瀾石)이다. 회(廻)는 물이 도는 모양이고, 란(瀾)은 물결이 이는 현상이다. 물결이 휘돌아 흐르는 여울의 바위가 물살에 기이하게 깎여나가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흰 너럭바위에 물살이 파이고, 구르는 돌에 깎여 만들어진 기이한 ‘포트홀’이 인상적이다. 포트홀의 형상이 용이 몸을 뒤틀며 바위에 남긴 흔적 같다고 해서 ‘용바위’라 부른다. “신기하다 용들이 놀던 곳에 기이한 돌들 골안에 가득하다 반석에 찍힌 흔적 어지러우니 한 마리 용은 아닌 듯하다.” 조선 영조 때 함창현감을 지낸 정종로가 남긴 시 ‘용유동에서’가 바로 여기를 노래하는 것이리라. 7곡부터 9곡까지는 주변과 잘 구별되지 않는 경관이라 굳이 찾아갈 것까지는 없다. 9곡 너머의 물길을 끼고 있는 정자 ‘사우정(四友亭)’은 빠뜨리지 말자. 천변의 바위에 근사하게 올라앉은 정자는 소박하면서도 그윽하다. 정자가 이름으로 삼은 ‘사우(四友)’, 즉 네 가지 벗은 산·수·풍·월(山水風月)을 뜻한다. 정자와 계곡은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하고 맑은데, 문제는 심히 어지러운 주변 환경이다. 빼어난 풍경을 가리는 ‘무단투기나 취사를 금한다’는 위협적 현수막, 물놀이 계절이 아닌데도 정자 발치에다 흉물스럽게 박아놓은 안전수칙 팻말, 물 위에 띄워놓은 부표의 무신경함은 화가 치밀 정도다. 게다가 정자에 딱 붙은 유원지 시설이 부서져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것도 볼썽사납다. # 낙동강을 보는 최고의 전망대 상주를 대표하는 건 낙동강이다. 낙양은 상주의 옛 지명. 낙동강은 그 동쪽에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낙동강 1300리에서 유일하게 ‘낙동(洛東)’이란 지명이 상주에만 있는 이유다. 상주 동남쪽에서는 어디서든 낙동강을 볼 수 있는데 가장 빼어난 낙동강 전망대는 상주 동남쪽 낙동면의 나각산이다. 나각산은 해발 240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 산세가 둥글고 소라껍데기를 엎어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해서 ‘소라 라(螺)’에 ‘뿔 각(角)’ 자를 이름으로 삼았다. 산이 낮아서 어느 코스를 택하든 30분 안쪽에 산책하듯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름길 내내 소나무 그득한 솔숲이다. 나각산 정상에는 두 개의 봉우리에 각각 정자가 하나씩 있는데, 두 곳 모두 사방으로 트인 테라스 같은 전망대다. 두 봉우리는 짧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다. 정자에서는 낙동강과 낙동리, 상주와 의석을 잇는 낙단대교와 낙단교가 보인다. 고개를 들면 소백산 산줄기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낙강정 구름다리 아래에는 ‘마고할멈굿터’가 있다. 굿터에는 봉황 알을 훔쳐 먹은 할머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젊어지려고 알을 훔쳐먹은 할머니를 신선이 동굴에 가뒀는데, 할머니가 바위에 큼지막한 강돌이 막힌 역암 동굴 안에서 강돌을 봉황 알로 착각해 빼먹다가 이가 모두 빠져버린 뒤 산 아래로 내려가 소식이 끊겼다는 전설이다. 마고할멈굴 속에는 사라진 할머니 대신 지리산 천왕봉에 있었다는 마고할미상을 빼닮은 금박 입힌 시멘트 할미상을 가져다 놓았다. 나각산 아래에는 낙동강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상산 선비들, 낙강에 배 띄우다’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데, 낙동강 물길에 배를 띄우고 시를 읊던 옛 선비들의 생활과 기록을 흥미롭게 전시해놓고 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낙동강의 수많은 나루 이야기와 낙동강의 변천 과정 등에 대한 전시를 펼쳐놓고 있다. 낙동강역사이야기관에서 흥미로웠던 건 주차장 주변을 가득 채운 나무화석이다. 수백 개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화석이 마당을 가득 채웠는데,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만한 규모다. 내부에도 엄청난 숫자의 화석유물과 동물박제가 전시돼 있다. 개인 수집가로부터 무상 임대받은 것이라는데, 당초 예정됐던 3년간의 전시 기간이 2년 전에 끝났는데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직 찾아가지 않아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 ‘시의전서’ 음식을 맛보다 반가음식부터 왕실음식까지 400여 종의 옛 음식을 기록한 ‘시의전서(是議全書)’는 경북 상주에서 전해진 것이다. 1919년 상주군수 심환진이 반가의 조리책을 빌려 필사해 둔 것이 그의 며느리 홍정에게 전해졌는데, 그게 바로 시의전서였다. 상주시는 2018년 시의전서 음식의 표준화된 레시피를 만들어 상주 시내 식당에 보급해 혜원식당, 안압정, 상산관, 삼백한우뜰, 수라간, 주왕산삼계탕 등에서 시의전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 / 전임기자 *글 사진: 문화일보 트래블에서 옮김: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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