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로운 봉선사에서 무르익는 찬란한 봄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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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로운 봉선사에서 찬란한 봄을 즐기다. 2025.5.14.수 오랫만에 남양주 진접읍에 위치한 봉선사를 둘러 본 날이었다. 마침 날씨도 쾌청하게 받쳐주고, 홈에서도 그리 멀지않아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봉선사에 도착하니 11년전에 다녀온 그 모습들관 너무나 다르게 잘 꾸며져 있었다. 아름다워진 풍경과 휴식공간들로 채워진 드넓은 뜰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함과 동시에 참으로 좋은 곳을 잘 찾아 왔구나 싶었다. 평일이지만 불자와 쉼터찾아 온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봄을 만끽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들, 그 얼굴들엔 너나 없이 봄날의 파릇한 생동감이 차고 넘쳐 흘렀다. 경쾌한 걸음으로 경내를 둘러보며 그 아름답고 찬란한 봄날을 만끽도 하면서 심신을 다듬는다.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였다. 따라서 봉선사라는 이름은 운악사에서 선왕을 받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이름이다. 그럼 무르익는 봄날, 봉선사의 봄을 사진으로 둘러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볼까요.봉선사 느티나무 유래 500여 년 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먼자가신 선왕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도 운악사에서 봉선사(奉先寺)로 고쳐 불렀습니다. 이 때 절입구 양지바른 곳에 느티나무 한그루를 정성스럽게 심었습니다. 예전부터 느티나무가 없는 사찰이 없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사찰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니라 사찰을 위해 느티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그후 이 느티나무는 대지를 향해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는 두팔을 벌려 하늘을 떠받들 듯 우람한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전란을 겪으면서도 다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생로병사의 자연 현상 앞에서 초연한 이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나라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하고 무념 무상의 경지를 깨닫기도 합니다. 지금은 500년 풍상에 옛날의 기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매년 봄이면 푸릇푸릇 싹을 내어 자연의 품에서 벗어나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 현대인들을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 수령: 500년, 나무둘레: 5m, 수고: 21m * 현장해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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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6년(1551) 봉선사가 교종갑찰(敎宗甲刹)로 특선(特選)되었다. 교종갑찰이란 전국 승려들의 교학(敎學) 능력을 평정(評定)하는 곳으로 일종의 승려들의 과거장(科擧場)이다. 명종 7년(1552) 승과(僧科)가 열리니 서산(西山), 사명(四溟) 같은 고승께서도 응시하였다고 한다. 그간 구전(口傳)되던 과거장, 승과평(僧科坪) 자리를 주변 원지(園池)와 더불어 승과원(僧科園)이라 이름짓고 불기 2553년(2009년) 7월에 이 표석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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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봉선사 명상체험센터 건립공사 기간이 2025.5. .~ 2026.12.03 까지라니 내후년 2027년도에 방문하면 더욱 새롭게 변모될 봉선사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또 건강을 챙겨 그 때를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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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500년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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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사원이나 종묘, 궐문 도는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는 석비로 노소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존경을 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봉선사 하마비는 서기 1469년 조선 7대 세조대왕의 위패를 어실각(御室閣)에 모시고 중창불사를 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이곳을 지나는 정승, 판서도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높이 93cm, 너비 37cm, 두께 18cm 크기의 대리석으로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음각되어 있다.
하마비는 말을 탄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문구가 음각된 비석으로 보통 궐이나 사찰 입구에 세웠다. 봉선사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는데, 하마비부터는 말에서 내리는 것을 안내하기 위함이었다. 원래 사찰 경내의 입구에 세워져 있었으나 한동안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1998년 건국대학교에서 지표 조사를 위하여 주차장 정비 사업을 하던 중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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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동종 [보물 제397호] 1469년(예종 원년)에 주성되었으며, 총 높이 229.4cm, 입지름 156.0cm 의 청동범종이다. 이 대형 범종은 조선조 예종 원년(1469)에 선왕인 세조대왕의 치적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제작되었다. 종의 고리부분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역방향을 향하는 일체쌍두의 용뉴를 형성하였으며, 중심 정상부에는 용의 발톱으로 여의보주를 소중히 받든 모습이다. 종의 몸체에는 상부로부터 연판, 연관, 보살상, 범자, 하대장식이 배치되었으며, 상대와 당좌는 생략되었다. 천판은 반구형으로 조형되었으며, 주연에는 넓은 단엽복판연화문을 돌려 장식하였다. 그 밑에는 2조의 융기된 선각을 돌려서 종신과 구분을 이루었다. 종신 중복에는 융기된 3조의 횡대를 돌려 몸체를 상하고 구분하였다. 사방의 연곽대에는 섬세한 당초문이 장식되었고, 그 안에 반구형으로 돌기된 8염화문이 모두 9개씩 정열된 모습이다. 보살상은 얕은 선각부조로 조형되었는데, 상호, 의습, 영락 등의 묘사가 매우 섬려하다. 하대에는 나선형의 거친 파도문이 정려하게 장식되었다. 이 종은 15세기 후반에 왕실의 발원으로 관장에 의하여 제작된 대형 범종이다. 용뉴조각이나 각부 장식의 조형상태가 우수하고 종신의 연곽과 보살상, 하대문양 등 부분적으로 한국종의 문양요소가 반영된 조선전기의 모범적인 조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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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 지주(幢竿支柱) 당간지주는 깃발을 세우는 기둥으로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기(幢)를 걸어 외부에 알리는 구실을 하였다. 봉선사 당간지주는 서기 1469년 당사 초창 때 세워진 것으로 명종 6년 승과고시 부활과 더불어 전국 승려들이 모여 승과평(僧科坪)에서 시험을 치를 때 승과기(僧科旗)를 높이 달아 두었다고 한다. 1매의 대석을 깎아내어 양쪽 기둥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제작기법이 뛰어나고 보기 드움 형태이다. 기둥높이 148cm, 기둥너비 34cm, 기둥사이 40cm, 전체너비 108cm, 두께 100cm로 웅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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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사항으로 보통 사찰에서 대웅전의 기능을 하는 전각의 현판이 봉선사에서는 한글로 그냥 '큰법당'이라고 되어 있다. 봉선사를 재건한 운허는 경전의 뜻만 알면 되는데 경전을 보기 위해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굳이 한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이런 운허의 뜻으로 우리나라 사찰 중 최초로 한글 현판이 탄생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큰법당은 주련에도 한글을 사용했음은 물론, 내부에도 화엄경과 법화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동판에 새겨 벽면에 붙여놓았다. 또 이 큰법당은 재건 당시 콘크리트를 사용했는데 언뜻 생각하면 가치가 없을 것 같지만 한글 현판을 사용한 운허의 뜻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 오히려 당시 기술을 대표하는 사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522호로 지정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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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보현보살, 중앙: 석가모니불 ,우측: 문수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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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연산홍
작약 꽃봉오리
모란과 연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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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약사전인 대의왕전 중생의 병과 고통을 낫게 해주는 약사불을 모신 대의왕전이다.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약사전에 모시는데, 봉선사는 대의왕전이라는 곳에 모신다. 입구에 손모양이 독특하다.
길상사와 봉선사의 관음상은 모두 카톨릭신자이자 서울대교수이며 조각가인 최종태란 분이 제작했는데 길상사의 것은 법정스님의 의뢰로 제작되어 2006년 4월에 봉안식을 가졌고, 봉선사의 것은 2017년 5월에 점안식을 올렸답니다. 이 관음상은 카톨릭신자가 제작하였다는 점과 외관상 성모마리아 같기도 하고 보살상 같기도 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 인터넷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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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붓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봉선사의 관람을 마친다. 홈에서 떠날땐 광능내등 여러곳을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예전같지않은 건강으로 모두 접고 아름다운 봉선사에서만 힐링하곤 주차장 옆 큰대문집 식당에서 돌솥영양비빔밥정식(1인 15000)으로 점심 맛나게 해결하곤 교통혼잡없이 홈으로 내 달렸다. 오랫만에 건강한 1일 나들이를 간단하나마 보여드리게 되어 매우 기쁘답니다. 감사합니다. <봉선사의 여담>-나무위키에서 옮김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本寺)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최서해가 이곳에 승려로써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1924년 10월 춘원 이광수의 소개로 약 3개월 동안 승려로서 봉선사에 기거하며 『탈출기』를 수정하고 일문으로 된 서구 문학을 번역하기도 했다고. 절 입구에 여러 부도탑이 있는데 그 끝에 1975년에 세워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있다. 봉선사에 이광수의 기념비가 있는 이유는 이광수가 속세의 운허와 동갑에, 8촌 친척이라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 이력 때문에 해방 무렵 갈 곳이 없었던 이광수를 거둬준 이가 운허였는데 그는 이광수가 인근 사릉 근처에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이광수는 사릉에서 1944~1948년까지 살았는데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운허의 도움으로 봉선사에 들어가 은거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사릉과 봉선사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광수가 쓴 작품이 <도산 안창호>, <나의 고백>, <돌베개>이다. 기념비는 이광수의 전처인 허영숙이 세운 것으로 그녀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고 말년인 19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였는데 납북된 이광수의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되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1975년 5월 귀국하였는데 갑자기 여러 병을 얻어 기념비를 세우기 직전인 9월에 사망하였다. 사실 이런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알기 어려운데 경기도에서 친일 문화 잔재 청산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고 이 기념비가 경기도에 소재한 대표적인 친일 잔재물로 꼽히고 있어 향후 청산 대상이 될 지, 보존 대상이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반 대중들에겐 가수 유현상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도 유명하며 가왕 조용필 역시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하철 안내> *수도권 전철 4호선: 진접역 → 신도브래뉴아파트.진접역 정류장에서 21번 버스 이용. 진접역 ~ 봉선사 약 20분 소요 *수도권 전철 4호선: 오남역 → 오남역 정류장에서 2번, 2-2번, 2A번, 2-2A번 버스 이용. 오남역 ~ 봉선사 약 30분 소요
감사합니다.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찬란한 빛/김영희
댓글목록
메밀꽃1님의 댓글

아이고 반가워라요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매일 여행작가 방에 들어와 한숨만요
오늘은 개인적으로 전화을 드릴려고 했는데
딱 오셨네요
이연이 뭔지 자주 오시던분이 안오시면 혹시나 다른생각을요
또한 제가 빛님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필요로하기도 하구요
진접이면 4호선 끝인가요 ?
얼마전 남양주는 찾아갔었는데 봉선사 절은 몰라서 못찾아갔네요
다행으로 모습을 보여주셔서 한시름 놓입니다요
조만간 꼭한번 찾아가서 빛님의 수고하신 고마움을 체함하겠습니다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어마나 우리 열정적인 반가운 메밀꽃님께서 곱게 자리하다 가셨네요.
제가 한창 게시물 미비한곳을 보충중인 중에요. 놀라웠어요.
네 4호선 종점이 진접인데 그 종점에서 택시이용하면 10분소요로 7천냥이 든다네요.
인터넷 검색해서 알게 되었지요.
건강이 예전같지않고, 그리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젠 접어야하나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딘가 훌훌 떠나고 싶단 생각에 남편의 안내와 라이드로 멀지않아 다녀오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곳이더군요. 추천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그리고 점심은 주차장옆 먹거리장인 큰대문집이 그중 맛집인듯, 손님도 많고 맛있더군요.
오랫만에 게시물로 뵙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않네요.
늘 생각해 주셔서 매우 고맙답니다.
늘 행복과 건강을 빌어드립니다.
안박사님의 댓글

#.*찬란한빛`김영희* 旅(記)行作家님!!!
참말로 오랫晩에 "여행정보房"에서,뵈오니 방갑습니다`그려如..
"메밀꽃`산을" 甲丈님도 방가움에,"아이고 반가워라!" 標하십니다`요..
"부처님`오신날"을 期하여,兩主께서 "남양주"의 "奉先寺"에 다녀오시고..
"김영희"作家님과 郎君님 貌襲을,오래間晩에 뵈어도 예前과 꼭같은 貌濕이..
"찬란한빛"任의 祥細한 解說로,"봉선寺"를 즐`感합니다!"빛"任!늘,康`寧하세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안박사님,
게시물 하나 올리면서 반갑게 뵙습니다.
늘 즐겁게 감상해 주셔서 감사하답니다.
모습은 예전같은 듯하나
세월은 그냥 지나는게 아니라 몸속은 예전과 확연히 다르답니다.
잘 살아 보려고 몸관리는 하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네요. ㅎ
안박사님,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