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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찬의 화요클래식] 테너 Enrico Caruso와 Mario La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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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22-04-0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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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rico Caruso (1873 ~1921) 



Mario Lanza (1921 ~1959) 


지난 주의 한국 여성지휘자 소개를 빼고는 거푸 3주간에 걸쳐 두세기의 테너들을소개해왔었습니다. 그러나 테너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서 꼭 모시고 와야 할 두분이 남아 있죠. 전설의 테너, 불세출의 가왕 엔리코 카루소와 영화 '위대한 카루소'에서 카루소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후세의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알라냐등이 테너의 꿈을 갖게 만든 마리오 란자입니다. 많은 후배 테너들에게 롤 모델로써, 스승으로써 또 표본으로써 앞선 삶을 살았던 엔리코 카루소와 마리오 란자 스토리로 금주 화요 클래식을 열겠습니다.

오랜 세월 세계각국의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하며 나의 기준으로 가장 좋은 곳을 순서로 매긴 Best 5 places가 있습니다. 그중의 한곳에 들어가는 곳이 남부 이태리 지중해의, 지상 낙원같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 소렌토입니다.
삼십수년 전부터 이태리 출장중 현지 친구들과 몇차례 여행을 갔던 곳으로 늘 숙소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경위에 서 있는 '그랜드 호텔 엑셀시어 비토리아'였습니다. 오랜만에 재작년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단체 여행이라 다른 호텔에 묵는 바람에 비토리아호텔의 추억을 연장하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작은 도시 소렌토와 엑셀시어 비토리아호텔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가 1910년대 말 40대 후반의 카루소가 늑막염으로 요양차 와 있었던 곳이 바로 이호텔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 , 이탈리아 최초의 오페라 가수, 음반으로 목소리를 남긴 최초의 성악가등 카루소를 수식하는 말은 너무나 많습니다. 나폴리 빈민가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카루소는 많은 고난과 차별을 극복하고 21살에 나폴리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뷰합니다. 데뷰후 나폴리 공연, 이어서 라 스칼라까지 진출한 카루소는 단기간에 유명 성악가로 발돋움합니다. 당시 이미 유명했던 작곡가 푸치니의 '라보엠' 오디션을 보러가서 노래를 부른 카루소의 음성을 들은 푸치니는 그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누가 나에게 보냈소? 하느님이 보냈군요 ! 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비단결같은 미성, 바리톤같은 묵직한 저음을 동시에 갖고 있는 리릭테너로 이탈리아에서 성공한 카루소는 1903년 뉴욕 매트로폴리탄 가극장에 데뷰하여 18년간 40여편의 오페라를 600회 이상 공연하며 부와 명예를 다 감아쥡니다. 11개국으로부터 국가훈장을 받을 정도로 각국을 다니며 세계인들에게 음악으로 기쁨을 준 카루소는 전생에 무슨 큰일을 하였을까요? 아마 우주를 구했나 봅니다.

 카루소의 성공 뒤에는 아들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격려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 성가대의 합창단에서 남들과 다른 목소리때문에 지휘자로부터 쫓겨납니다.힘든 막일을 해가며 겨우 레슨비를 마련해 선생을 찿아간 카루소에게 너는 오페라 가수가 될 수 없어 라는 실망스런 말을 듣습니다. 이렇게 좌절할 때마다 '아들아! 너는 훌륭한 오페라가수가 될거야, 틀림없이 !!' 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카루소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 어머니였습니다.

성악가로서는 한참 전성기인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카루소를 기리며 그의 두번째 부인으로 미망인이 된 도로시는 카루소의 시신을 향유로 방부처리후 유리관에 넣어 생전의 카루소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금도 나폴리 인근의 델 피안토에 있는 카루소 묘소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는 음악인들의 성지가 되어 관광객을 부르고 있습니다. 

칸소네의 거장 루치오 달라가 카루소가 세상을 떠난지 65년후인 1986년 지중해의 태양이 작렬하는 어느날 흠모하던 카루소를 그리워하며 카루소가 마지막 삶을 살았던 비토리아 호텔의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서 절벽아래 내려다 보이는 아쿠아 마린 쪽빛의 나폴리만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하루밤사이에 작곡한 곡이 그 유명한 칸소네 '카루소'입니다. 긴 세월이 지난 후의 후세 음악인이 몇세대 앞서 간 카루소의 궤적을 좇아 먼길을 찿아와 애절한 심정으로그를 숭모하며 신들린 듯 작곡에 몰두하게 만든 두사람의 운명적인 인연은 무었으로 설명할까요?






엔리코 카루소가 타계한 해에 태어난 마리오 란자는 '위대한 카루소'라는 영화에서 카루소를 연기하며 당대 최고의 테너로 자리매김합니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스페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서 10대에 이미 기성 가수들 못지않은 출중한 노래실력으로 16세에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됩니다. 리릭 테너로는 카루소를 제외하고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마리오 란자는 오페라가수, 대중가수 또 영화배우로 팔방의 능력을 발휘하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본명은 알프레도 아놀드 꼬꼬짜로 필라델피아의 작은 오페라단에서 활약할때 지휘자 세르게 쿠세비츠키의 눈에 띄어 각별한 관심과 지도를 받으며 메사추세츠의 탱글우드 음악원에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는 '자네 목소리는 백년에 한번 만나기 힘든 대단한 목소리야'라는 칭찬으로 란자의 기를 살려줍니다. 탱글우드에서 란자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보리스 골도브스키로 부터 오페라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그후 공식적인 첫 오페라 데뷰 무대는 1942년 탱글우드에서 공연된 '유쾌한 아낙네'들이었는데 이공연부터 본명을 버리고 마리오 란자라는 이름으로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그의 데뷰 무대는 많은 평론가와 음악 기자들의 관심을 끌며 '비교할 수 없는 테너가 나타났다.' '하늘이 내린 놀라운 테너!'등의 격찬을 받으며 성악가로, 오페라가수로 성장합니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 칼 왕자로 캐스팅되었다가 뚱뚱해진 체중으로 배역을 놓치게 되면서 란자의 내리막 길은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인다운 욱하는 성격과 낭비벽 그리고 건강문제로 말년에는 편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38년의 짧은 삶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명반들로 그는 아직도 세기의 테너로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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