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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찬의 화요 클래식] 원조 쓰리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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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62회 작성일 22-03-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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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쓰리테너


Mario Del Monaco

Franco Corelli

Giuseppe Di Stefano

 

파바로티, 도밍고 그리고 카레라스 이들 쓰리테너는 이미 우리세대에서 그들의 성과와 함께 불멸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지난 주 화요 클래식에서 쓰리테너의 뒤를 잇는 포스트 쓰리테너는 이 시점에서 결정하기 어려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섯명의 테너를 'top 5 tenors'로 소개했습니다. 오늘 화요 클래식은 지난 주 짧게 언급했었던 원조 쓰리테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며 그들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쓰리테너의 롤 모델로써 세 사람에게 음악적인 자극과 영감을 준 원조 쓰리테너라고 할 수 있는 세 명의 테너와, 동시대에 함께 경쟁하며 활동했던 다른 5명의 테너를 추가로 소개하며 그들 생애의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원조 쓰리테너라고 할 수 있는, 모두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주세페 디 스테파노부터 소개하며 나머지 5명의 테너인 이탈리아의 베니아미노 질리, 페루치오 탈리아베니, 미국의 잔 피어스, 리차드 터커, 독일의 프리츠 분덜리히는 다음 주에 계속하여 소개하겠습니다.

 

특히 오늘 3명 테너들의 마지막 곡은 모두 '투란도트'Nessun Dorma를 올렸습니다. 당대 최고 기량의 3 테너들이 각기 연주하는 네순 도르마를 비교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마리오 델 모나코 Mario Del Monaco


1015~1982 피렌체 출생 1941년 데뷔

아버지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엔리코 카루소의 첫 부인이었던 소프라노 아다 지아케티와 사촌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델 모나코는 자연스럽게 카루소를 그의 영웅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페사로 음악원에 보내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했으나 음악원 생활에서 그는 차라리 그림과 조각, 건축공부에 열을 올렸으며 이런 관심은 성악가로 성공한 후에도 미술 전시회를 열 정도였습니다. 델 모나코의 성악 소질을 알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아르투로 멜료끼 선생을 만난 후 음악원을 그만두고 6년간 사사하여 목을 열어 후두를 내리고 강하고 우람찬 목소리를 내는 독특한 창법을 전수받은 델 모나코는 드라마틱 테너의 힘차고 남성적인 목소리, 듣는 이를 압도하는 격정적인 가창으로 황금빛 트렘펫이라고 불리어지며 20세기 가장 큰 성량을 가진 최고의 테너로 성장합니다. 1940년 군대에서 제대와 동시에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데뷔하고 3년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 푸치니 '나비 부인', 이듬해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토스카'를 불러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텔로'는 남미 순회 공연으로 그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갖다 안깁니다. 스피드 광인 델 모나코는 48세 되던 해 그가 몰던 스포츠카가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왼쪽다리가 으스러집니다. 수차례의 치료와 재활을 거쳐 다리는 어느정도 회복했으나 그의 카리스마와 자신감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그 사고는 델 모나코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많은 음악 유산들을 놓치게 된 후세의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https://youtu.be/0i2ZCa-0YEI


https://youtu.be/CrJC7l5Pn-k


https://youtu.be/CrJC7l5Pn-k

 


- 프랑코 코렐리 Franco Corelli


1921~2003 이태리 앙코나 1952년 데뷔

마리오 델 모나코와 쌍벽을 이루며 스핀토, 드라마틱 테너로 활동한 코렐리는 할아버지가 성악가이며 음악 활동을 하는 가족들이 여럿 있었으나 배를 건조하는 일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해상공학을 전공하다 성악에 대한 관심을 뒤늦게 갖게됩니다. 코렐리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독학하며 자신의 발성법을 완성하여 30세 되던 해 1951년 피렌체의 마지오 뮤지칼레 경연에서 우승을 합니다. 이듬해 '카르멘'의 돈 호세로 데뷔하고 3년만에 라 스칼라 극장에서 소폰티니의 '베스탈의 무녀'를 하며 당시 승승 장구하던 마리아 칼라스와 공연하게 되는데 이때가 마리오 델 모나코,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와 함께 이태리 오페라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황금기였습니다. 1956년부터 197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간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외모와 힘있고 카리스마있는 목소리로 매트로폴리탄 가극장의 기둥 배우 역할을 했습니다. 풍부한 성량으로 우렁찬 목소리를 내는 그는 의외로 완벽함을 추구할려는 예민한 성격 탓에 공연 전에는 늘 긴장하고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은퇴후 뉴욕과 밀라노를 오가며 여생을 즐기던 코렐리는 심장 질환으로 8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https://youtu.be/xDHSFxVbMWc


https://youtu.be/j8gkIPg7pw0


https://youtu.be/Eg-59NoES2o

 


- 주세페 디 스테파노 Giuseppe Di Stefano


1921~2008 시실리아 1946년 데뷔

가사가 지닌 감성을 보기드물게 유려한 아티큘레이션과 순결한 음성으로 노래하는 스테파노는 역시 시실리아 출신인 성악가 루이지 몬테산토에게 사사하였습니다. 레조 에밀리아 시립 오페라 극장에서 마스네 '마농'의 데 그리에 역으로 데뷔한 스테파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주인공 데 그리에와 너무 잘 어울려 대단한 찬사를 받으며 데뷔공연을 마칩니다. 데뷔 2년후인 1948년 이미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리골레또'의 만토바 공작역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사랑의 묘약 네모리노, 리골레토 만토바공작, 춘희 알프레드, 토스카, 라보엠등 수 많은 작품에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애잔한 정감과 독특한 감미로움이 있는 리릭 테너였던 그가 40대에 들어서며 리릭 스핀토, 드라마티코까지 시도를 했으나 리릭 테너로써의 역할만큼 성공적이진 못했으며 이시기에 혹사한 성대로 그의 성량은 빨리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1971년과 1974년 두번의 내한공연으로 한국 팬들을 만났습니다.


https://youtu.be/ancP_IloAvc


https://youtu.be/vT-RiwBFUs0


https://youtu.be/6TSabZyOU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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