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찬의 화요클래식] 세기의 테너들,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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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22-03-22 13:07본문
세기의 테너들, 네번째
베니아미노 질리(이),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이)
잔 피어스(미),
리차드 터커(미)
프리츠 분덜리히(독)
7월의 독백 - 박가월
아이쿠! 어쩐담, 야속해라
벌써 7월도 초입을 갉아 먹었어
올해도 반년이 지나간 거야
해놓은 것도 없는데
계획은 자꾸만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은 흰머리뿐이야
희망도 잊혀져 가고 있어
나뭇잎을 벌레가 갉아먹듯
인생은 좀 먹는 거야
말없이 세월은 가기만 해
날이 갈수록 님하고는
정 쌓이는 것 뿐이 없는데
거저 쌓이는 정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가
헤어지면 마음 아프게 시리
세월은 정이 없는 거야
대꾸도 없이 인생만 데리고 가거든
올해도 벌써 한해의 절반을 보내고 7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작금의 안타깝고 답답한 심경을 비슷하게 표현한 시가 있어서 소개하며 금주의 화요 클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3주에 걸쳐서 지난 세기와 현세기의 걸출한 테너들을 소개해 왔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예고한 대로 원조 쓰리테너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뛰어난 5명의 테너를 소개합니다.
- 베니아미노 질리 1890-1957
'드디어 우리는 진정한 테너를 발견했다!' 파르마 콩쿨 성악 경연에서 심사를 하던 심사위원들이 베니아아미노 질리의 목소리를 듣고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던 심사평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레카나티 출신으로 산타 체실리아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1914년 파르마 콩쿨 우승 후 같은 해 '조콘다'의 엔초역으로 데뷔했던 질리는 세계 역대 최고 톄너의 한사람으로 회자됩니다. 스물 여덟살 되던 해인 1918년부터 전설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초청으로 라 스칼라 극장 전속으로 활약하며 푸치니와 베르디등 이탈리아 오페라에 정통했던 그는 1920년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초대를 받은 후 런던의 코벤트 가든, 유럽과 미국의 유명 오페라극장들을 점령하였습니다. 단정하고 서정적인 미성은 그에 앞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불세출의 가왕 카루소의 후계자란 평가를 받게 합니다. 파바로티의 롤 모델이기도 했던 질리가 부르는 비제의 '진주 조개잡이' 아리아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은 사랑하는 연인의 귀에 조용하고 나즈막하게 소곤거리는듯한 감미로움을 선사합니다. '진주 조개잡이' 귀에 남은 그대음성, '토스카' 오묘한 조화 그리고 라 팔로마.
- 페루치오 탈리아비니 1913-1995
'날 잊지 말아요, 마음에 맺힌 그대여. 나 항상 그대를 고대하노니 나를 잊지 말아요... ' 1959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어 국내에는 1969년도에 개봉했던 이탈리아 뮤지컬 영화 '물망초'에서 주연을 맡았던 전설의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가 영화속에서 열창했던 물망초의 가사 일부입니다. 탈리아비니는 우아하고 기교적이며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리리코 레제로 테너로 1938년 피렌체의 벨칸토 콩쿨에서 우승합니다. 같은 해 피렌체에서 '라 보엠'의 로돌프 역으로 데뷔후 41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제노바 카를로 펠리체, 로마 오페라극장, 42년 라 스칼라로 진출을 확대하고 계속해서 런던 로얄 오페라, 코벤트 가든, 매트 오페라, 파리 오페라극장의 초대를 받으며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 마스네등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을 주로 합니다. 특히 그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소토 보체는 그가 부르는 이탈리아 민요에서 듣는 이를 감동케 합니다. 물망초, '라보엠' 그대의 찬손과
'사랑의 묘약'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 잔 피어스 1904-1984
본명은 자콥 페렐무스. 폴랜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뉴욕에서 자란 피어스는 콜롬비아대학을 나왔습니다. 댄스 밴드에서 바이올린 주자와 팝가수로 활동하다 이태리 파르마 출신으로 라 스칼라, 매트 오페라, 뉴욕 필을 지휘한 마에스트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만난 후 토스카니니가 가장 좋아하는 테너가수로 함께 많은 연주와 레코딩 작업을 합니다. 1941년 매트 오페라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드로 데뷰한 후 68년까지 27년간 매트 전속으로 활동하며 이 시기 남미와 유럽 투어를 통해 글로벌 테너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69년이후 배우, 교수, 토크쇼 진행, 콘서트 무대및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80세까지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 나의 끓어오르는 마음에서 오는, 에니버서리 왈츠(다뉴브강의 잔물결)
- 리차드 터커 1913-1975
1944년 매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 합격한 터커는 45년 '조콘다'의 엔초로 매트에서 데뷔하고 47년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칼라스와 공연하며 유명세를 얻게됩니다. 매트에서만 30개 이상의 배역으로 700회 가까운 오페라 공연을 했으며 이탈리아의 델 모나코, 코렐리등이 맹활약하던 시기였음에도 타임지로부터 1950년대 세계 최고의 테너라는 찬사를 받았던 터커는 리릭 테너이나 때로는 스핀토, 트라마틱 테너로도 활약하며 카루소에 이어 매트 역사상 6일 연속 오페라 무대에 선 두번째 가수가 됩니다. 60의 나이가 넘어서도 전성기의 기량으로 무대를 빛내며 매트와 30시즌을 함께했던 터커에게 메트 오페라 하우스는 역사상 첫 극장 장례를 치뤄주며 영광스런 가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투란도트' 네순 도르마, '리골레토' 여자의 마음.
- 프리츠 분덜리히 1930-1966
뛰어난 성과와 인기로 30대에 이미 전성기를 맞았다가 갑자기 요절한 제임스 딘과 비견되기도 하는 분덜리히는 독일의 작은 마을 쿠젠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지방 합창단 지휘자,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소년시절부터 성악 소질을 인정 받고 프라이부르크 음악 아카데미에서 성악과 호른을 공부합니다. 리릭 테너로 성장하여 모짜르트와 독일 예술가곡 연주에 특별히 재능을 발휘했던 그는 30세에 바이에른 슈타츠 오퍼, 빈 국립가극장과 짤즈부르그 축제에서 활동하며 많은 아름다운 음반을 남깁니다. 그의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목소리와 또렷한 발음, 지적이고 절제된 해석은 슈만과 슈베르트의 가곡해석에서 후배 테너들에게 표준으로 남아있습니다. 35세 되던 1966년 짤즈부르그 연주후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하기 전까지 카라얀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카라얀과 빈필, 베를린 필과 하이든의 천지창조 녹음등 많은 레코딩을 하며 사후에도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슈베르트 송어, '마술피리' 타미노의 사진과 슈만의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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