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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2015년 시마을 문학상 수상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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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47회 작성일 15-11-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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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시대에 걸맞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도 현대성이 가미된 작품을 발굴하여 문학이 독자의 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과 문학의 저변확대 도모의 취지로 2005년 부터 시행된 시마을 문학상이 올 해로 11회째를 맞이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시마을은 시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좋은 시를 쓰는 좋은 시인으로 거듭 날 수 있는 창작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번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은 지난 1년간(2014.10~15.9월) 시마을 창작시란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선정된 월단위 ’이달의 우수작(최우수작 및 우수작)‘전체를 본심 대상으로 하여 선정하였으며, 기 수상자및 본인이 삭제한 작품은 선정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2015년 시마을문학상 창작시 부문 대상 수상자로「미래도」를 쓰신 정두섭 (무의)님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금상에는 동하 님의「한 입 코끼리, 그리고 스무고개 달팽이」, 서승원님의「사과를 바라보는」, 은상에는 수퍼스톰님의 「황구지천」, 천수님의「나비의 여행공식」, 동상에는 동피랑님의「문어」jooni님의「세렝게티가 걸려 있는 동물원」윤희승님의 「탁본」시엘06님의 「서커스」가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문학상 대상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수상기념패가 전달되며
  시상식은 오는 12월 12일(토) 시마을 송년문학행사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우리나라 문단의 대들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문학을 사랑하는 시마을 문우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2015년(제11회)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

【대상】

 

미래도 / 정두섭 (무의)

나는 계단입니다 당신이 밟으면 도가 되지요
나는 계단입니다 당신이 밟으면 레가 되지요

나는 계단입니다 당신이 밟으면 미가 되지요 당신은 한꺼번에 두 계단을 오르고
계단은 솔, 계단은 사라지고

나는 계단입니다 당신이 밟아도 계단입니다 계단은 소리가 없고 계단은 회색입니다, 불 꺼진

당신은 계단입니까
나는 계단입니다 당신이 밟으면 시가 되지요

출구는 입구입니다
고장 난 무지개가 떴습니다
빨주노초파, 남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보지도 않고

계단은 숨이 가빠 저절로 계단을 타고
사람들은 또각또각 시간을 뚫고 지각도 뚫고 지상으로 솟구칩니다

건반을 밟으면
무지개의 바깥 계단이 움찔합니다 그러나 소리가 없지요
반건 오징어처럼 오므린
음계 바깥의 음계입니다 색깔도 없지요 울음도 메말랐으므로

나는 계단을 지배합니다 출발과
도착, 점과 점 사이를 반복하는 계단
바깥은 따듯해, 바깥은 느긋해?
납작 엎드려 계단을 기웃거리다가

오 거룩한 주머니여 때 묻은 입술로*
계단을 짓밟아주세요, 아낌없이

당신은 계단입니까 나는 당신의 안쪽 계단입니다  


* 계명(階名)의 유래, ‘세례자 요한의 찬가’ 변용

【금상】

 

 

한 입 코끼리, 그리고 스무고개 달팽이 / 동하

 

1.
한시라도 빨리 코끼리를 집어삼키기에는 걸음이 느리다.
달달할 거야, 달콤할 거야.
안간힘을 써서 달리는 중이야. 온 몸이 근육통에 아플 정도로.
모가지를 빼들고 수탉이 울어댄 먼동부터 삭풍에 놀라 붉게 타오른 저녁 앞까지
코끼리를 미행한 목격자가 있으니까.


2.
코끼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투명해져.
나는 등에 언제나 무게를 지니고 있어.
무게는 무계無稽를 지니고 있어.
둥글둥글 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구겨져 있어 한 없이 모난, 물음표.


3.
달팽이집을 깎는다.

너무 어렸다는 죄 때문에
너무 무지했다는 죄 때문에
멈출 수 없이 스무고개 달팽이집을 깎는다.

달팽이집을 깎는 방법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과
수많은 목격과 고뇌로 둥글고 명확한 모양으로 깎는 것.

속에서 시커먼 냄새와 시퍼런 멍이 들고
다시 아물만하면 반복

달팽이집 안으로 영겁의 시간동안 메아리가 퍼지는 소리가
청동이 울리는 것 같다.

고독과 마주하는 중이다.


4.
서늘하면서 달콤한, 고상하면서도 즐거운
나는 프로이트의 환자였다.
코끼리에 이끌려 다가가면 거리감을 상실하고 만,
혹은 몇 번의 유혹이 깨져야 너를 가늠할까.
혹은 너와 나를 가름할까.

낌새를 알지 못하게 느릿느릿, 사자처럼 다가갈 것이다.


5.

집어넣기엔 커다랗게 아프다
다시 스무고개 달팽이집을 깎는다.

결국
너는
커다랗다

 

-----------

사과를 바라보는 / 서승원

                   

사과를 베어 물었더니 입술이 부어올랐다

독하게 날 떠난 애인의 뒷모습처럼 쓰렸다

사과는 농담으로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고

나 또한 붙잡지 않았다

더는 친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난 왼손잡이다 욕부터 먹으며 자랐다

사과를 깎으면 누이들이 달려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칼날은 내게 먼저 달려들었다

누이들은 날 사랑한다고 했으나 칼끝은 날카로웠다

사과는 둥글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내가 되어서야 사과를 내밀었다

잘린 몸으로 온 사과는 불통이었다

자주 입안이 헌 나와 유독이었던 사과와

그 후 아내는 내게 사과를 권하지 않았다

나도 아내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비가 적게 오는 해에도 사과는 열렸다

쉬운 상대 한 그루쯤 키우고 산 것이

다행인 나날이었다

 

【은상】

황구지천 / 수퍼스톰

 

1
어릴 적 황구지천은
내 마음에 운하를 파고 흐른 갠지스 강이었다
그곳에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이 있었다
맑은 물살이 풍화한 지구각질을 하류로 굴려 보내는 것을 보았고
성스러운 물로 세례를 받듯 봄부터 가을까지
물로 뜨거운 이마를 적시는 사람들도 보았다
간혹 장마철에 익사한 이름 하나 쓸쓸히 떠내려갔더라도
그것은 수몰된 과거의 지평선일 뿐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기의 비린내를 따라다니며
물에 발자국을 수없이 찍었다
천변의 수양버들 그늘아래에서는 매일 불의 혀가 자랐다
다시 죽을 수 있는 느긋한 불길의 지문은
갠지스 강의 판화였다

2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양은 솥바닥을 핥던 불의 혀를 완전히 잘랐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고
수양버들 밑에 심었던 연기의 뿌리도 뽑혔다
물속에서 자란 수많은 종양을 뜯어 먹은 물고기들은 소경이 되거나
목발을 짚었다
아픈 물위에서 구름처럼 부푼 거품이 바람에 쓰러져 신음하며
서해를 향해 흘러갔다
물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었다  

3
지난해 늦가을
황구지천을 따라 허공에 박혀있던 수많은 점자를 보았다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지 않았어도
마침내 긴 감옥살이에서 물이 서서히 풀려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에 혈색이 돌았다

날개달린 점자가 허공을 뚫고 자맥질했다

4
그러나 끊어졌던 불의 혀는 아직도 자라지 않고 있다
점자 머물다 떠난 허공, 아직 따스하다.


*황구지천은 경기도에 위치하는 하천으로 의왕의 왕송저수지를 거쳐 권선구 당수동 · 금곡동 · 장지동 · 대황교동을 거쳐 화성시 태안읍 · 정남면 · 양감면으로 이어진다

 

-------------

 

나비의 여행공식 / 천수

 

강물을 기어올라 처음 본 행성의 봄은
꽃들의 만찬이었다,
이때는 행글라이더를 타고
공중에서 해시계 태엽을 감는 소년처럼
나비도 날개 속에 쉽게 바람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꽃들에 다가갈 때는 어린 손님처럼
언어대신 애교스런 율동을 먼저 지어야 했는데
오히려 너무 화려한 빛과 색채를 지닌 꽃들의 조롱을 견딘 건 의문이다.
하루 같기도 하고 일년 같기도 한 꿈들이 스쳤다.
행성에서 봄에서 여름까지는 몸도 공기도 가벼웠고
늦여름부터는 점점 길 위에 그려진 그림자의 질감이 만져졌다,
언제부터인지 다른 빛깔의 무리진 나비들이
들판에서 산이나 강으로 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들꽃들도 저녁마다 너른 들판에서 드문드문
한적한 마을의 길가로 옮겨가고 있었다.
나비는 행성을 빠져나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행성에 잔류 중인 나비들은 서로 스칠 때 특유의 율동 몸짓 손을 흔든다.
이것은 일테면 다른 행성에서의 자기들끼리의 약속,
무너진 봄의 빛깔로 돌아가고픈
해맑은 소년의 의식으로, 모든 기억도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맹랑한 첫인사처럼 나비는 지상에서 채취한 무늬의 날개를
어두운 그림자 속에 고이 접어 밀어 넣는 것이다.
제 그림자를 다룰 줄 아는 나비를 나는 언제 어디서 보았을까?
호랑나비 한 마리 가을 길로 한들한들 날고 있다.
해시계 태엽이 풀려가는지 길 위에 제 그림자를 펼치고
여행 중 여러 행성 머물 때 각 행성에 맞게 도안한 무늬중 하나를 벌써
제 긴 그림자 속에서 살펴 고르고 있다.

동상】

 

문어(文魚) / 이규성 (동피랑)                        
              
                      
해병이라 불러줄래?
머리통이 포탄이야
물올라 빵빵한 내 뒤통수를 툭, 쳐봐
안전핀을 뽑고 터져줄게
귀신 잡는 해병처럼
얼굴에 해먹빛 화장을 하여줄게
난 기분에 따라 군장이 바뀌어
조심해!
덜컥 붙잡고 끈적끈적 널 빨아버릴지
너의 칼날 앞에 나는 맨살이지
끓는 냄비 속 통째로 날 처넣겠다고
뚜껑이나 덮어줄래?
이승쯤 피로나 풀며 건널 수 있어
밖으로 내미는 발이 있으면 그냥 둬
평생 기었던 바닥, 상류가 알기나 할까?
당신이 승리에 도취된 듯
내 주검 질겅질겅 씹어 삼키겠다면
내 검은 추깃물 함부로 버리겠다면
각오해!
깜짝, 너 식도를 막아줄게!

 

-----------------

 

세렝게티가 걸려있는 동물원 / jooni


저 삐쭉한 전나무 배꼽 높이에
세렝게티 초원이 걸려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마른 나뭇가지 하나 달랑,
누가 매달아놓았다고 우기시겠지만, 아니에요  
틈만 나면
긴 혀를 날름거리며 빨아 대는대요
물리지도 않는 걸 보면 분명해요 그런데

우글거려야 할 아카시아 잎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둘러봐도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흙바닥
기웃대는 구경군들 뿐,
하지만 상관있나요
싱싱한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달려있다고
계속 우기는대요
광활한 아프리카가 펼쳐져 있다는대요
쌉싸름한 초원이 씹힌다는대요

얼룩말 코끼리 사슴들도 울타리 저 너머에서
할 일없이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착각은 아닌가 봐요
휑하니 걸려 있는 마른 가지가 진짜 아프리카 초원일까요,
공갈 젖꼭지일까요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은

절대 생각을 굽히지 않아요
긴 모가지가 온통 고집이에요
빈 가지의 허공에
혀를 날름거리며 긴 하루를 핥아요
침 질질 흘리며 혀에서 피가 나도록,
날이 저물면

낮의 초원은 더 넓어지나 보죠
혀의 놀림이 더 빨라지고 거칠어졌어요
긴 목이 끌어올리는 낮은
신음소리가 캄캄한 어둠을 몰고와요

 

-----------------

탁본 / 윤희승

 

오랜 응달에서 새겨진 비문의 형체는 쓸쓸해 보인다

마흔 둘,

 

어릴 땐 그도 그늘 바깥에서 뛰놀았다

뒷산의 뻐꾸기소리며

진달래 피는 소리며

첫사랑 두근거리던 가슴과

앞산 엄마 무덤가에 잡초를 뜯던 어린 손을

탁본 뜬다

 

지나간 여자가 없기에 같이 뜰 여자는 없다

 

허기를 달래던 라면 몇 가락과

절뚝거리던 왼 무릎의 시린 소리와

삭이던 외로움 몇 자락과

술잔에 일렁이던 울음의 파문 몇 개도

눌러 뜬다

 

그 흔한 아버지의 이름도 비문엔 없다


한 생애를 뜬다

젊은 날을 비껴가던 햇살의 문양을

끈덕지게 달라붙던 불운의 촉수를

망울이다 만 꽃자리의 흉터를

소용돌이치던 설움의 파편을

꾹꾹 눌러

뜬다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한 음각의 비문,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를

탁본한다

 

영안실이다


 

-----------------

서커스 / 시엘06

 


천막 안에
천국을 비끄러매습죠
다시 없는 기회 아니겠습니까
 
광대 뒷면을 의심하시나요
요놈 주머니를 털어보았자 시뻘건 히죽거림 말고 뭐 있겠수
괜히 우울을 주물럭대지 마십시오
자, 들어가서 무조건 화려해집시다
뿜빠라 뿜빠
 
곧 마술사가 그림자를 열어 보이겠습니다
타로 카드를 뒤집어서 우리들의 회한도 얇게 하겠답니다
보세요, 눈물에 시간을 뽑아버리니
이렇게 에메랄드가 되잖아요, 박수를
이봐요, 공중그네 아가씨
반대편 남자를 사랑하나요?
허공에서 배신은 가장 높은 묘혈이지요
사내의 회전과 의문의 타이밍
살짝 죽음에 할퀴는 이 짜릿함, 제발 박수를
 
소녀여,
삶이란 등을 휘어 입에 무는 백색 공
엄마, 그렇죠?
모든 구부림은 아름다운 거죠?
말해 뭐하니, 너의 역전은 언제나 황홀하단다
 
외줄 좁은 면을 흠모합니다
공중을 걷기 전 까지는 모든 완성을 미루세요
직립은 부끄러운 바닥입니다
당신들을 위해 제 현기증을 바치겠어요
오, 박수는 치지 마세요
저 시커먼 유속 위를 걸어가는 내 발바닥의 노래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상관없습니다

 

*해커님의 자작나무 호텔은 작가의 사정으로 선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심사평】

                                                    - 정병근(시인), 고영(시인, 시인동네 발행인)

새롭다는 것은 장르를 초월하여 어떤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창작이란 곧 새로움의 다른 말이므로 이 새로움을 향한 갈망은 창작자들로 하여금 실패의 참담함을 견디고 산고(産苦)를 극복케 하는 추동력이 된다. 새롭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개성의 표출이며, 새로운 것은 유일하다는 점에서 단독자(單獨者)와 같은 종교성의 발현이고, 창작자를 조물주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지극히 험난할 것이 자명한 이 새로움의 길로 성큼 들어서서 계속적인 실험과 모험을 시도한다. 허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조차 곧장 식상해져버리는 예술의 영토에서 선배 예술가들의 그늘로부터 비켜선 자리에 새로운 깃발을 꽂는 일은 얼마나 지난한 과업인가. 때문에 새로움전제된 실패를 예정한다. ‘전제된 실패라는 말이 품고 있는 낭만성 속에는 실패조차도 새로움일 수 있는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숱한 실패를 맛본 창작자라면 실패야말로 예술의 시장에서 높은 상품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믿고 쓸 수 있는 화폐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성공이란 이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 다름없으며, ‘새로움은 태어나는 순간 낡아버린다는 진리 앞에서의 겸손이 성공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미 실험된 실험은 재탕에 불과하며, 이미 모험된 모험은 추종일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실패의 가치 척도가 되는 것은 그 처절함이다. 철저하게 실패할수록 실패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철저한 실패란 많은 용기와 과단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기 작품에 대한 오랜 사유와 그것을 현현하는 과감한 창작의 실행만이 처절한 실패를 보장한다. 실패의 성공을 위해서는 거기에도 새로움이 필요한 것이다.

한입 코끼리, 그리고 스무고개 달팽이는 발랄한 어투와 신선한 표현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금상에 머문 이유는 모호함에서 오는 의미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코끼리’, ‘달팽이’, ‘프로이트는 구체적이지만 이 말들이 실제로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진술들은 끊임없이 현실을 환기하지만 그것이 현실을 재연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둥글둥글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구겨져 있어 한없이 모난, 물음표.”와 같은 문장 앞에서 즐거움을 느낄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과 행위 등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아쉬웠다. 함께 금상으로 선()사과를 바라보는은 오브제를 다루는 언어의 감수성이 남달랐다. ‘사과의 중의성을 그때그때 변주하며 시를 전개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으로서 개인적 사건들만을 소환한 것은 아쉽다. 시의 분량을 늘여 사과의 의미를 한 알의 사과가 아니라 사과나무로 사과밭으로, 다시 말해 세계로 확장했어도 좋았을 듯싶다. 이때 사과나무니 사과밭이니 하는 것은 물론 좀 더 넓은 관계 영역에 대한 비유다.

은상을 받은 황구지천은 익숙한 방식으로 시를 전개하지만 탄탄하고 깊이가 있다. 어조는 가객의 노래처럼 유려해서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것은 유행가를 듣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기에는 편했지만, 미학의 시선으로는 불편했다고나 할까. 내용의 깊이는 여타의 시들을 압도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전형적인 서정시의 방식을 취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함께 은상을 받은 나비의 여행 공식도 비슷하다. 시의 안정감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었다. “오히려 너무 화려한 빛과 색채를 지닌 꽃들의 조롱을 견딘 건 의문이다.”라는 산문 투를 지양한다면 괄목상대할 만큼 시의 질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동상에 든 문어는 달변이다. 재치 있는 내용도 그렇거니와 때에 따라 말을 적절히 늘이고 줄여서 바람이 잘 통하는 시 한 편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문어의 생태를 시화(詩化)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물도감에 나올 법한 문어의 특징에 관한 설명을 편하게 시의 문체로 번역했다는 인상이다. “평생 기었던 바닥, 상류가 알기나 할까?” 같은 표현이 돋보이지만 이것이 풍자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세렝게티가 걸려 있는 동물원은 동물원의 비유를 통해 삶을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심각하지 않은 어조를 활용한 것이 큰 미덕이다. 시는 기린을 중심으로 상상력에 속도감을 더하는데, 화자인 기린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 앞으로 뛰어나가려는 상상력의 뒷덜미를 자꾸 낚아채는 것 같아 답답했다. 탁본은 공감의 흡인력이 돋보이지만 너무 안이한 문장들이 눈길을 거스른다. 그 문장들은 시의 비감만은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지만, 시를 다 읽고 난 뒤 기억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자작나무 호텔도 마찬가지다. 동화적 상상력과 알레고리가 시에 입체감을 부여하며 시의 외양을 다채롭게 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익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커스는 눈여겨볼 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 시는 좋은 의미에서 여러 가지로 서커스처럼 요란하다. 시인의 의도를 뛰어넘은 자리에서 태어난 것 같은 역동적인 이미지가 천진함과 과감함을 오가는 목소리에 실려 약동한다. 그런데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상관없습니다같은 마무리가 이 빛나는 장점들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이미지들이 축적되며 만들어놓은 시의 긴장감이 일시에 풀어진다.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

미래도를 대상으로 올린 이유는 이 작품이 앞서 말한 실패의 새로움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작품이지만, 그 단점의 생성 원리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다. 이 시는 새롭게 실패한다. 시를 읽고 나면 미래도라는 제목이 미래도()’인 동시에 미레도로도 읽힌다. 독자를 낯선 설정, 낯선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 이렇게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은 보통의 감각을 넘어서는 것이다. 시적 정황이 좀 모호하지만 의외로 술술 읽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는 -당신이라는 중심축이 단단히 시를 지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당신이라는 주체는 자신과 연결되는 시의 대상들과 상황들의 모호함을 밝혀줌으로써 그 모호함을 상상력이 틈입할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 상상력이 당신의 관계로 모두 수렴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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