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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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이경록
1
나는 발표했어, 오늘 아침
저 바다에 관한 새로운 교서를,
오늘 아침 나는 발표했어.
지금까지는 너무 수월했어. 나도 알아.
너무 적에게 말려들었어.
한여름 내내 뜨겁던 여론, 뜨겁던
햇빛만으로 되는 줄 알았어.
어떤 국지전에도 견대낼 수 있는 강건한,
짜디짠 소금이 구워지는 줄 알았어.
나도 알아. 그게 나의 취약성이야.
부삽에 떠올려진 조수 속의 염분을
언제나 객관적으로만 보는 버릇,
사태의 핵을 뚫어보지 못하는 점,
그게 나의 고쳐지지 않는 결점이야.
물론 이번의 참패는 아무것도 아냐. 나는 발표했어.
2
전 해안은 이미 봉쇄되었어. 끝났어.
이제 내게 필요한 건 바다의 총면적, 아니
퍼렇게 끓고 있는 바닷물의 총량이야.
그 속에 숨어있는 적들의 분포도, 희고 단단한
이마, 변하지 않는 소수의 강경파.
그들의 뿌리를 뽑고 구워내는 일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휘어잡고 다스리겠어.
저 맹물만 남은 바다, 정신이 죽은 바다를......,
李炅錄 (1948 ∼ 1977)
197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
1976년 大邱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박정남, 이태수,
이하석, 정호승 등의 시인들과 더불어 [자유시] 동인을 결성
1977년 백혈병으로 사망
1979년 遺稿시집으로 <이 식물원을 위하여>와
1992년 <그대 나를 위해 쉼표가 되어다오>
2007년 <나는 너와 결혼하겠다>가 상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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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나에게 있어, 소금이란 무엇인가?
짠맛의 하얀 결정체, 모든 음식물의 간을 맞추는데 꼭 필요한 것,
산화와 부패를 방지시키는 것, 바다와 사람의 눈물에 똑 같은
농도로 녹아있는 염화나트륨, 과다한 섭취를 하면 혈압을 정직하게
상승시키는 기제(機制), 그리고....... 아, 또 뭐가 있을까?
맞다, 생명에 결핍되면 속절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사실, 이게 제일로 중요하겠지
그래서, 종교판에서 걸핏하면 그리도 자주 인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체로 이상(以上)과 같은 것들이 소금에 관한 나의
선입견이자 고정된 관념이겠다
그런데, 이 같은 생각의 태도는 꼭 소금에만 한정될까?
세상의 사물(事物)과 현상(現象)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에는?
뭐, 관념에 따른 생각이야 그렇다고 치자
(살다보면, 누구나 제 나름대로 관념의 세계는 구축하기에)
정작 중요한 건 정말 결정적인 사태에, 대상(對象)에 관한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을 해야할 때에, 내가 지닌 생각이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을 터
왜냐하면 나란 존재가 생각과 행동의 완전한 일치와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 두고 있기에 (좀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말 따로,
행동 따로, 살아오며 그럴 때도 솔직히 있었단 거)
그렇게 한 생각 접고 보니, 실로 나란 존재에 깃든
관념적 경직성과 실제로 드러내는 행동의 기만성에 참담한
무력감까지 느끼게 된다
정말 나의 가장 큰 적(敵)은 바로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살고있는,
행동 없이 입으로만 상하지 않는 소금을 줄기차게 말하는,
소수의 강경파인 것을
오늘의 이 詩를 읽으니, 그같이 경직되고 기만된 삶에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는 시인의 자세가 느껴진다
그저 입에서만 맴도는, (단지 무능한 관념으로서)
정신이 죽은 바다에서 눈부신 흰빛의 소금을 말하는
기만, 독선, 허위의 공소(空疎)한 세계가 아니라,
진정한 정신의 양심으로서 세상의 소금이
돠어야 한다고 외치는 거 같다
특히 한참 썩어가는 세상에 살고있는 시인들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한다고......부르짖는 거 같다
개인의 살풀이 일기장 내지 넋두리 같은 글만 풀어낼 게 아니라...
- 희선,
The Twilight Shore
댓글목록
率兒님의 댓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이소. 사람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깨달음이 뭐 별 게 있겠습니까? 저는 인간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 깨달으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거룩하고, 얌전하며(?), 지랄맞게도 너무 똥폼에
젖다보니 그 이중성을 견디지 못하고 신기루 같은 뭔가를 자꾸 구하게 되는 것이라 봅니
다. 제가 쓴 책 제목 있잖아요?
'사는 게 뭐 별 건가?'
다시 한번....
'인간이 뭐 별 건가?'
천당 팔아먹는 목사도 죽을 병 드니까 안 죽을라꼬 이 병원 저 병원 쫒아다니며 발버둥
억수로 칩디다.
'어이 목사 양반! 어떻소? 죽음 앞에 서 보니 당신도 별 거 없지요?'
공동묘지 가운데에 딱 버티고 서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쳐다보니 그렇더라고요. ㅎㅎ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이제, 갈 날이 머지 않았음인지
요즘 들어 부쩍 드는 한 생각
참, 염치없이 살아왔다는 거
인간이란 결국, 그 본성이 지독한 이기주의이며 (까 놓고 말하자면)
똘똘 뭉친 허영 虛榮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
게다가 악하기까지 하다는 거 (요즘, 저는 성악설 性惡說을 적극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 물론, 살아가는 동안에 갖은 치장을 해대며
남들이 보기에 안 그런 것처럼 (착하고 정의로운 것처럼) 꾸미긴 했겠지만
그런데, 이경록 시인의 <소금> 같은 시를 읽으면,
희서나.. 꼭 그렇게 살아왔어야 했니? 하는 自問과 함께
새삼 부끄럽단 생각도 들더랍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채 서른도 안된 나이에
세상을 뜬 건지.. (어쩌면 그 영혼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도 들고)
참, 천당 말씀을 하셔서
천당인지 극락인지, 아무튼 그곳엔
성직자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없다네요 -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음
아무튼 인간이 원천적 영혼 불구 不具의 존재라는 데는
하등의 토를 달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런 허접한 주제에 뭐 그리 잘났다고 온갖 치장질들을 해대는지..
형님의 수필집 제호처럼, "사는 게 뭐 별 건가?'합니다
정말 題號 하난 잘 다셨다는..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솔아 형님,
率兒님의 댓글

염치 없을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봅니다.
나홀로 와서 나홀로 살다가 나홀로 떠나는 인생인데 누가 누구에게 부끄러울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염치가 없을 것입니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어찌 그리도 멋진 말이 존재하는지.....
한평생을 미친지랄을 하면서 겨우 뭔가를 깨달은 줄 알았더니 이미 수천 년 전에
부처님이 다 말씀해 놓았다는 것을 안 순간 그 기분 어떻겠습니까? ㅎㅎㅎ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처님이 무슨 뾰쪽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는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희선은 희선처럼 왔다가 살다가고
솔아도 솔아처럼 왔다가 살다가는데 누가 머시라꼬? 결국 종점에 가 보니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그 어디에도 선도 없고 악도 없더라입니다.
퍼떡 오소!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바야 안 되요? 한번 맺어진 인연이 얼마나 귀한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