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물 무렵,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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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62회 작성일 17-01-06 00:12본문
하루가 저물 무렵, 그대여 / 안희선
아주, 사랑인 것에로
그대는 강하(降下)하리로다
하루가 저물 무렵,
노을 붉게 물든 하늘 끝에서
나의 소망으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대여
그대를 알고 나서
나, 아무 것도 결실(結實)한 것 없었지만
또한, 그럴 것인가 라고 묻는 이 아무도 없었지만 ─
그래도 난 아무 상관이 없어
내 영혼의 깊은 상처여,
타는 듯한 그리움의 중심이여 ─
이 차가운 세상 속의 따뜻한 원경(遠景)이여
메마른 내 가슴의 모든 걸 지워버리고,
그대의 품에 꿈처럼 안기고 싶어라
내 아픈 그리움의 중심이여,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사랑이여 ─
나를 구원(救援)하는 마지막 풍경(風景)이여
<시작 Note>
모든 꿈(소망)은 실재적인 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고,
그 꿈을 지각(知覺)함에 있어서 상상된 것이 實在的인 것과
하나가 되는 상태도 있을 거 같다
- 이는 시를 쓰게 하는 좋은 이유
특히, 사랑에 허기(虛飢)진 영혼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겠다
마치, 실현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는 꿈의 상상력이
그 현실을 대신하는 것처럼...
Scene in a dream - kebin kern
<사족 같은 敷衍>
졸시에서 말해지는, <나를 구원하는 마지막 풍경>은
<미지의 그리움>일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시적 체험은 有와 無 사이의 세계를 배회하는 거겠지만...
그 어떤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志向은
(상상력에 의한)주관적 현실과
(상상력이 배제된)객관적 현실 사이에 본질적 일치를
꾀하는 것으로 영속적인 시적 자아를 도모하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 비천한 주제에 감히, 그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시적 상념으로서의 대상과 외부세계의 對象을 구별하지 않는 일은
<시를 쓰는 者라면, 누구나 그 意識에 있어 지극히 일상적인 일>
이기도 하겠기에 말입니다
- 즉, 시를 쓰는 자에게 있어서 꿈(所望)은 또 하나의
강력한 현실이란 거 (거듭 거듭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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