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갈 것들은 떠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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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갈 것들은 떠나가거라 / 안희선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에 빠지게 하는 것
사랑을 말하고, 아름다운 삶을 말하고,
소망의 꿈을 말하게 하는 것들
하긴,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마는
삶의 뼈마디에 채곡하니 깃든 아픔에서
비로소 깊은 울음을 닦아내는
사람들은 알지
차라리,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삶은 한층 더 솔직할 수도
있었다는 걸
허망(虛妄)의 아름다움이여,
네 갈 곳으로 가거라
더 이상 사람들이 속지않게
아직, 절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신들린 허수아비의 몸짓으로 유혹하지 말고
떠나가거라
알몸으로 차가운 세상에 부대끼며,
뜨거운 눈물로 나누는
따뜻한 시선(視線)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사랑이 되어지고, 소망이 되어지고,
아름다움이 되어지리니
부끄러운 말(言)무덤에 가득한 것들아
삶을 희롱하는 도깨비 같은 것들아
몽롱한 춤만 추는 것들아
이제, 너희들이 진짜배기 어둠인 것을 알거들랑
더 이상 현란한 몸짓으로 취하게 하지 말고
너희들 갈 곳으로 어서들 떠나가거라
세상의 무대는 진짜 현실의 배우들만 서있기도
그지없이 좁기만 하느니,
떠나갈 것들은 서둘러 떠나가거라
더 이상, 어른거리지 말고
헛광대의 꿈나라로 모조리 떠나가거라
[Note]
시를 쓴다는 게 왠지, 사기를 치는 일 같이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그 언젠가 이성복 시인의 [이제 그만 사각의 링 위에서 내려오고 싶다]란 글을 보고...
시께나 쓴다고 참, 맹랑한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면에서도 제가 도달하지 못한 곳에서
저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허튼 짓이라는 생각이 들 때... 시라는 링 위에서 내려오는 것도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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