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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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의 노래
졸지에 눈먼 채, 홀로 있다고 해서
외로운 게 아니다
숭숭 뚫린 가슴 속의 튼튼한 상처마다
응고되지 않는 출혈로 탈색이 되어
맥 없이 신음하는 허연 지푸라기 같은 몸으로
불어오는 세상의 바람결에 속절없이 흔들린다고,
쓸쓸한 게 아니다
정말,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껴져
그런 나를 마주치기 싫어지는 건
모두가 외면하는 참된 불행의 몫을
나마저 너에게 스스럼 없이 떠 넘기는
헛사랑의 고백이 내 마음의 자리로
공허하게 남을 때
내 안의 불 같은 욕망이 빚어낸
죄값을 현찰로 치룰 길 없어,
수척해진 영혼의 모습으로 눈부신
회한의 신용카드를 긁을 때
사랑의 잔고부족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미 마이너스 통장이 된 나를
사정없이 쏘아댈 때
떠들석한 군중 속으로 멋적게 사라지는,
내 뒤통수를 나마저 슬그머니
외면할 때
- 안희선
<넋두리>
세상 탓, 남 탓만 하며 살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더라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내가 실종된> 허수아비 같은
내 존재를 마주치기 싫어져서...
(난, 어쩌다가 나조차 마주치기 싫은 존재가 되었는지?)
예전엔 가을 들녘의 허수아비의 모습이 소박하고 정겹고 그랬는데
몇해 전, 세째 동생의 장례식 참석차 잠시 귀국해서 들러본 농촌의 풍경...
노을 속에 펄럭이는 허수아비들의 모습들이 너무 험악해서 섬뜩하기조차 했다
(밤에 보면, 정말 [전설의 고향] 수준일 거 같음)
- 하긴, 요즘의 새들이 사람을 닮아 하도 영악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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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제인가, 수 많은 인파의 물결에 휩쓸려 도심의 거리를 걷다가
문득 이 모두 <세상이란 무대를 정처없이 배회하는 허수아비들>의
행진 같단 생각이 들어, 혼자 실없이 웃었던 기억도 나는데...
아무튼, 현실 속의 나란 존재는 사랑의 주체(主體)는 커녕 그 중심권에서 영영
벗어나 있는 국외자(局外者)에 불과한 허수아비일 수밖에 없단 기특한(?)
생각도 들더란 거다 - 이제사, 조금 철이 든 건지는 몰라도
그러나, 그런 보잘 것없는 초라한 한 허수아비로서의 나에게도
소망이란 게 아직 남아있다면 그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 곰곰히
그나저나, 먼저 간 동생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너무 보고 싶다
나는 이렇게 흉한 허물 벗는, 허수아비처럼 서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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