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번개불처럼, 그리고 삼시세끼 소회(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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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뭔가 내 나름의 머릿말을 장황스레 달으려 하다가,
내 생각은 모두 접고 글만 옮겨본다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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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집안을 이끌었던 사람들 중에 잘난 사람보다 소리 없이 열심히 살며
덕을 쌓는 사람들이 일꾼이지 자신의 이야기만 높이 내는 사람이 일꾼이 아니다.
우주의 본질은 도와 덕으로 돌아가고 한집안의 죄업이 쌓이면
그 집안에 바보나 장애인이 태어나서 그 업을 해소하기 위해서 삶이 험하지만 살다가 간다.
사람들은 바보라고 장애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그 바보나 장애인은 오히려 그 집안에서
쌓인 업보를 해소하고 사람들이 지은 업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모르고
타인이 무시한다고 더불어 무시하는 집안의 바보들은 다름아닌 그 사람들이 아니라
힌 것을 검다고 하며 사는 헛똑똑이들인 소위 말많은 자들이 바보인셈이다.
목소리 높고 잘난 척 하는 자는 덕을 쓰기 위해서 온 덜떨어진 바보이며
오히며 현실에 바보로 태어나고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사람들이 참 일꾼이다.
사람들은 천지공사에서 나오는 '뒤로 돌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 잘나고 똑똑한 것들이 만든 세상의 최대치가 지금과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도와 덕의 가치가 떨어진 지금 세상이야 끈 기다란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집안의 덕을 소모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바보들로만 보인다.
경주 최부자의 행동 중에 어려울 때 타인들의 재산을 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런 마음을 지켜서 14대 동안 부를 이어왔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돈을 모으는 탐욕의 기준으로 보면 바보나 하는짓 아닐까?
큰 돈을 벌수 있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더불어 살자고 하는 바보짓말이다.
지금은 헛똑똑이 들이 사는 세상이다.
웃자란 콩나물 뽑히듯이 골로 갈 일이 벌어지는 것이 천지공사다.
좋은 대학 나와서 하는 탐욕에 춤추는 자야 무간지옥을 스스로 갈려고 자청하는 자이지만
똑똑하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고로 깨달음을 추구하고 부처의 경지로 가신 분들은 머리 좋은 분들도 있고
반대로 우직하게 한길로만 간 분들도 있고 순진하신 분들도 있었다.
착각이 심하면 헛똑똑이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일꾼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무식도통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하는 마음, 오직 모르는 마음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바보를 보라. 바보는 바보처럼 사람을 믿고 바보는 바보처럼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인다.
상제님께서 머리에 식자든 헛똑똑이들을 경책하신 것은 다름아니라 마음이 천심에 이르면
똑똑해도 천진난만하고 무식해도 천진난만함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지금 세상에 헛똑똑이들은
합리적 사고가 전부인 줄 안다.
오직하는 마음과 오직 모르는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깊어지거나 지극해지면 무식도통에 이른다.
좋은 대학 나와봐야 양심에 먹줄이 끼어서 잘난 척하다가 덜 떨어진 행동하기 십상이다.
깨달은 이가 나 깨달았소 하지 않는 것은 온전히 오직 모를 뿐과 오직할 뿐에 이르면
누리고 누릴 뿐이다. 그것을 영화 루시에서 인성이 말살된 듯한 무감증환자처럼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평상심시도야에 이르면 담담해서 할 일을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찐한 자극도 그것이 자극이라 미친 척이야 얼마든지 할 수있지만
그것에 취해서 속는 일은 없다.
광풍이 불어도 그 광풍속에 자신의 일을 하는 힘은 다름아닌
오직 하는 마음과 오직 모르는 마음에 있다.
말을 가리지 마시라.
눈앞에 간절히 목마른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은 스스로의 문제다.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라도 타인을 구하든 아니면
모른 척하고 지나가든 어느 길도 잘못 된 길은 없다.
오직 선택의 문제일 뿐.
사람들은 심하게 착각하는 것이 그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정해놓지만 과연 그럴까?
머나먼 미래의 여정이 그 영혼이 살아나가야할 길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른 길일 뿐
편한 길이 꼭 능사는 아니다. 다만 현재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의
덕과 죄의 게이지가 달라질 뿐.
삶은 그런것이다.
능히 깨달아서 도달해야 생사를 넘어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다생겁의 고해속에서 형성된 업을 해결해 나갈 수있다.
어디를 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답은 오직 스스로가 할 수 있을 뿐이다.
삼시세끼 고창편이 끝났다.
그속에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묘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싶지만 그속에 동물 중 오리와 개가 뜨고
손씨, 차씨, 유(柳)씨 남씨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그 배경이된 촬영지가 다름아닌 고창(高敞)이라는 점이 더 기묘하다.
결국 그 삼시세끼의 출연자는 또 한편의 해원자들이 아닌가 싶다.
천지공사에 위 출연자들의 성씨가 뜻하는 것은 천지공사의 끝에 드러날 사건을
다 표방하고 있을만큼 함의가 무겁기 때문이다.
더더욱 오리의 등장은 다음 아닌 오리알 터를 연상하게 하니 예사롭지 않았다.
고창(高敞)은 높아서 걸리는 것없이 탁 틔여서 넓어진 형국이다.
그만큼 고창에 담긴 의미가 매우 크다. 오리알터는 한자로 부란지(鳧卵地)이며
이번 경주 1차지진이 난 부지리(鳧池里)와 마찮가지로 오리라는 뜻을 담고있다.
왜 그렇다면 고창에서 찍은 삼시세끼를 보게 되었냐하면
그것은 천지공사 오선위기도수 후에 그 다음 판몰이 공사의 행선지가
고창(高敞) 사창리 알미장(卵山場)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창에 관련된 사건 혹은 그 이름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운수가 장소를 옮기며 빙글빙글 돌듯이 보기 쉽지만 사실상 그 음동을 좇아서 응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삼시세끼가 저번 주 금요일인 9월9일 갑오일에 끝이 나고 지금은 감독판을 방영하고 있다.
우연일까? 백로 3일차가 갑오일이며 그날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만큼 천지공사에서 결정된 운수가 현실과 함께 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이름과 장소만 다를 뿐, 같은 간지를 타고 별별일이 다 발생하며 현실화해 왔으니
사람들이 긴장감이 떨어질 무렵 정유일에 지진이 났고 그 지진 발생지 마저도
오리라는 뜻이 있는 부지리(鳧池里)에서 1차 지진이 났으니 우연이라 하기 힘들다.
평범한 생활속에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사는 것이 별 것없다고 하는
출연자의 이야기처럼 삶은 먹고 사는 일이라는 것을 대리체험하는 것이다.
세상사 묘한 시기에 묘한 방송이었다.
그 내용은 평범을 다룬 프로그램이지만 본인들도 모르게
천지공사와 일치하는 점이 많으니 참 묘하다.
역시 현실이 알려주는 운수는 명확하게 우연인듯 필연으로 드러난다.
늘 말하지만, 현실이 전부며 마음공부하고 덕을 쌓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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