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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시-초-1605-12] 실리콘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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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9회 작성일 16-05-0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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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시-초-1605-12]         실리콘 키드          / 시앙보르



황사는 내 젊은날이다
주머니에서 모래가 한웅큼 나왔을 때
물이 감미로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모래알 석영이 실리콘 웨이퍼에서 날 빚었다는 사실

산호세 실리콘 밸리에서는 
하루 세 끼를 모래를 먹고 모래를 즐기고 모래에서 잠을 자고 모래꿈을 꾼다
문득 눈물샘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젊은 작곡가는 8비트 때부터 그녀를 위해 
64비트가 되어서도 그녀를 위한 노래 하나에 열중했다

여자는 먼 옛날에 떠나갔는데도
활엽수 의자에 앉아 이파리를 연주하고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없는 노래를 
마스터 테잎에 녹음하거나
메모리칩에 담아두고 귀를 가져다 붙였다

티벳에서 풀을 씹던 양의 귀와
낙화암에서 투신한 꽃처자의 귀와
심해를 떠돌던 넙치의 귀가 들려왔던가


작곡가가 잠들었을 때
나는 몰래 마스터 테잎을 연주했다
60분의 묵음이 양편에 날개를 거느린 강으로 흘렀다
비로소 인간의 사랑과 이별과 그리움 따윈
도무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들끓다가 식었고 회오리치다 날아갔고 원인이 불분명한 에러들로
밤새도록 내 몸은 리셋되었다

다가설 수 없는 성운 저편이었으나
청년이 손등에 떨군 한 방울의 눈물이
실리콘처럼 반짝였다

신비로운 빛이었다
쓰나미에 휩쓸려간 산호의 자취

-------------
* 혹시 누가 실리콘 웨이퍼 약 120 공정을 거쳐 날 만들지 않았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이 즐겁다. 적막한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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