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시-초-1605-15] 업장 業障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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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시-초-1605-15] 업장 業障 소멸 / 시앙보르
눈이 부셔서 잔뜩 찡그렸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우는 일은 힘든 일이어서
사지를 버둥거려서 울음을 아주 많이 키웠다
첫날도, 둘째 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여서
축축한 젖을 빨고 축축한 오줌과 변을 지렸다
작살을 매단 돌고래와,
춤 추는 문어,
낚시 바늘에 꿰인 금갈치,
풍성해진 해파리가 애무하며 지나갔다
다섯의 돌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운석과 구름과 별과 뾰족한 달과 골이 난 바람에게,
부딪히고 깨지고 멍들고 터지고 얻어맞고 찢기고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나무를 올라타고,
고집 센 불씨가 남아 살을 태우기도 했으나,
어느 아이는
첫째 계단에서,
둘째 계단에서,
셋째 계단에서,
넷째 계단에서,
다섯째 계단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져
그 밤에 하늘의 별들이 늘었다
땀띠, 천식, 간질, 백혈병, 볼거리, 악성빈혈, 소아마비, 결막염, AIDS,
결핵, 폐렴, 피부염, 홍역, 장티푸스, 뇌수막염, 외이염, 열경련 등이
끊이지 않고 덤비자,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일어서서 여섯 살이 되었다
이후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아토피염은 벗어날 순 없었으나
가려움 정도는 기꺼이 사랑하기로 한다
별이 떨어지는 밤에는 비늘이 된 흉터를 더듬어본다
지금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울 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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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유아기는 사고의 연속이었다. 하필 얼굴을 비롯해서 중요한 부위를 많이 다쳐서 부모님 맘고생을 많이 시켰다.
흉터를 더듬다보면, 살아남은 자의 기쁨보다는 떠나간 자들의 슬픔이 먼저 다가온다.
어린 나이, 아니 젖먹이 때 잠시 빛을 보자마자 떠나간 그 아기들. 떠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업장 소멸...
저도 그 언젠가 <번뇌무진서원단> 이라는 글 같잖은, 글을 쓴 적 있었지만
저도 제 생애에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참, 다생겁에 걸친 전생의 업장이 두텁고 두터움을 느낍니다
아무튼, 사람의 인생은 그런 거 같습니다
쌓인 업장이 두터울수록 현생의 시련과 아픔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단 거
- 왜?
그렇게 누적된 업장을 현세의 시련과 고통으로 상쇄해야 하기에, 털어내야 하기에
요즘의 저를 돌아봐도 그렇구요
한개도 안 뻘쭘한 시를 감상하며, 생뚱한 잡설만 늘어 놓고 갑니다
업장 소멸 !
그리고 현재의 삶에 충성 ! (제 군 복무 시절 경례구호)
시앙보르님의 댓글

^^ 유아기의 고난을 업장이 소멸된 것으로 저는 알고 살아갑니다.
물론 가끔 어려움은 있으나 너도나도 겪는 사소한 것들이라서 지속되는 '업'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나름 땡초 신앙생활도 한몫을 했지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같잖은 댓글.. 죄송요
시를 읽다 보니, 문득 그 때 (군 시절) 생각이 나서요
심기를 불편케 했다면,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길요
* 올렸던, 쓰잘데기 없는 댓글은 대폭 삭감했음 - 웃음
시앙보르님의 댓글

아, 아닙니다. 넘 예민하신 듯... ^^
저야 '심기'가 없사오니 괘념치 마시고요, 늘 감사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