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시-초-1605-18] 염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뻘쭘시-초-1605-18] 염원 / 시앙보르
산고양이는 허기진 게 아니다
풀어지는 눈빛과 발톱이 억울해져서
우듬지 까치집을 향해 몸뚱이를 흔들었던 것이다
떠돌다가 뚝뚝 잘려나간 이웃을
잠시나마 견뎌보고 싶었던 것이다
까치 부부의 울음이 뜨거워지고
내리꽂히는 날개에 아카시아 향이 터질 때마다
콧잔등이 홀로 매워지고 싶었다
까치 알처럼 따뜻해져서
얼굴을 핥아주던 에미의 혀와 젖꼭지로
다시 부화할 수만 있다면
여우의 신포도 따윈 과감히 무시할 수 있으리라
힘 센 쥐가 지배하는 하수구에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갸르릉, 갸르릉 소리마저 방해가 될까봐
너는 불청객이 되어가는 꼬리 쪽으로 돌아서며
뜨거운 까치에게서 멀어지기로 한다
둥지라는 거, 가족이라는 거, 저리 높은 곳에 있어서
못내 다가갈 수 없어
신축 연립주택 거푸집 속으로 사라지는
----------------------------
* 까치 부부가 난리법석이라 우듬지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황금색 털이 누렇게 변색되고 전성기를 잃어버린
고양이가 힘없이 주저앉아 부러운 눈으로 까치집을 올려다봤다. 빛을 상실한 두 눈이 깊어보였다.
전에 까치를 위해 돌멩이를 던진 적이 있어서 사과를 했다. 산고양이는 " 꺼져, 꼰대야" 하며 웃었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현실에 대한 상황의식을 암담이라 한다면 (이건 내 나름의 시독법 詩讀法으로 어설프게 깔아보는 전제)
과거 한때는 현실이었으나 이제는 비현실이 된 것에의 동경은 분명, 염원이리라
시를 일독하며, 가슴에 밀려오는 건 해체되는 보금자리의 쓸쓸함 같은 것
오늘 날, 가족의 보금자리로서의 둥지는 해체 일로를 걷고 있단 느낌
(시만 해체시가 있는 게 아니다.. 가족생활에도 해체가 있다)
종래 우리들이 인식했던 포근한 가족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따스함을 담보하지 않는다
식구들의 하루 안부를 확인했던 저녁식사마저도 함께 모여 하는 경우는 드물고,
한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대화 없이 각자의 칸막이를 치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요즘 일인 가구가 그렇게 급속히 늘어가는 건
가족의 둘레를 벗어나, 혼자여서 너무 편하고 좋다는 건 확실히 병증(病症)이다
情보다는 차가운 욕심만 강조하는 사회가
단란했던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조차 그렇게 황량하게 만들어 가는지도..
산고양이는 늘 혼자 살아간다
까치 부부의 정겨운 둥지를 부러워하며, 그런 보금자리를 염원하며
그리고 보니, 회색빛 도시에 길고양이들도 너무 많아졌다
걔네들의 스산한 모습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꼭 빼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
너무 주관적 감상이어서, 시인에게 송구한 맘도 들고..
어쨌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깊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객관적인 감정을 요구한다면 산문이겠지요. ^^
늙어서
핑크샤워님의 댓글

그렇군요, 시앙보르 시인님!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는 것을 한 수 배우고 까치발로 나갑니다/ 건필하시고 건강하세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꽃을 보살피는 정성보다 못하지요.
졸시나마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습작기 동문이오니 편히 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