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시-초-1605-02]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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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달을 거의 라면과 김밥으로 때우고
정기적으로 멤버들과 함께 끼 당 80만원 짜리
압구정 불란서 요리를 즐기는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아파트를 줄여서
와이프와 피렌체를 거쳐 희망봉까지 다녀온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작년에 주식으로 3천을 날리고서
이참에 2천을 벌었다는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주말 이틀을 대학로 소극장을 전전하며
거진 노숙자 모드로 꾀죄죄해진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전세로 옮기고
서해안 촌구석에 손바닥만한 폐가를 화실로 꾸미고서
주말이면, 고물 전축판을 틀어놓고 토마토를 가꾸는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승용차를 팔고 중고 할리데이비슨을 끌고와서는
우당 우당 머플러 배기음을 잔뜩 뿜어대는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담배 한개비 주소,
건방진 고삐리들과 5 대 1로 맞붙었다가
코뼈가 부러져 퉁퉁 부은 그는,
자기처럼 살아보라 한다
이참에 새로 벌인 사업이
거래업체 부도로 뒤통수 맞았노라 푸념하면서도
그는 꼭 자기가 밥과 술과 노래를 사주고 돌아간다
공부도 나보담 못했고 번듯한 대학을 나오지도 못하고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지만 매사에 당당한 그가,
내게는 늘 멋있고 부러웁다
펠리칸 고시 만년필과 백지 몇 장이면 살만하다고,
그러니 너도 나처럼 살아보라고
나는 그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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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하자 : 내 자존은 무엇일까, 물론 열등감을 조작하려는 잔머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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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고민하겠습니다..
하긴, 요즘 한 세상 살아가려면
인간마저 규격화 . 기계화 . 상품화가 필수인데
그래서, 시를 쓰는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뭐, 지가 쓰는 글은 시도 아니지만)
가뜩이나, 눈탱이까지 맛이 가서 세상도 잘 안 보이는데 말여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아, 아닙니다. 제가 설교하는 시를 싫어합니다.
다녀보니, 의외로 귀, 눈, 코, 목, 수족 상실한 분들이 많더군요.
스티비 원더 고백처럼 '가슴'만 뜨겁게 살아 있다면 다른 상실이나 결핍이 보충되고 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