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시-초-1605-07] 화홍십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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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시-1605-07] 화홍십일홍 / 시앙보르
분주하던 꽃들이
손끝에서 무릎에서 눈동자에서 지워졌다
저게 무슨 나무야?
섭하단다, 목련꽃 환하던 거 기억 안나?
담벼락 저건?
손목이 물들겠다고 하구선, 개나리잖아
천변에 주욱 늘어서서 답답해보여
벚꽃 아래 걸을 적에 천상천남 기분내더니
워크샵 가서 단체로 산행하다 잡목 땜에 애 먹었어요
진달래 만발할 때 거기 누워 일어서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만
일어서요, 웬 날나리 먼지들이 이리 많아?
짜식아, 민들레 홀씨 주구장창 노래 부르더니
꽃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일급비밀,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나처럼, 혹은 당신처럼
치명적이고도 참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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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 같은 후배를 만났는데 디지탈단지 천변 벚꽃이 이뻤다고 자랑이다.
우리 동네 천변 벚꽃이 꽃을 떨구니 '저건 무슨 나무죠? ',
에라이, 그래, 그래서 네가 좋구나.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참, 뻘춤하다면서 시는 하나도 안 뻘쭘하다는.. (시를 읽는 이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 아, 이건 시를 쓰는 사람이 이런 시를 써서 뻘쭘하다는 건지..
아니면 시를 읽는 사람을 뻘쭘하게 한다는 건지 (당췌, 알 수 없다는)
아무튼, 花紅十日紅 ...
그닌깐, 꽃의 붉음도 채 열흘을 못간다 (환언하자면, 최대한 열흘은 간다)
협의(좁은 의미)로 보자면 '인생에 있어 젊음은 찰나'라는 뜻도 있지만,
넓게 보면 '한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꽃은 백일 붉은 것이 없고, 사람은 천일을 한결 같이 좋을 수 없다 라는 의미의
인무천일호 화무백일홍 (人無千日好 花無百日紅) 도 떠올리게 하는 시..
하긴, 처세술에서 제일 치명적인 건 저 잘났다고 자랑질 하는 거
- 사실,이런 사람들 많죠 (저를 포함해서)
참, 치명적이고도 참혹한 거죠 - 인생기록표에서
그 깊은 오의(奧義),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화려한 꽃에 열광하다 지고나면 나무 이름도 모르는 것에 대해,
사람과 함께 엮어봤습니다. (뻘쭘은, 퇴고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붙인 3급 코드명입니다. ^^ )
안 시인님을 통해서 귀한 어휘들 많이 채록합니다.
한자를 기피하는 성격인데, 마음에 드는 말을 어색하지 않게 품는 중입니다.
'오의 : 매우 심오한 뜻' 도 무척 좋군요. 친근한 기분입니다. (시편을 심오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정성이 깃든 리플에 대해서 제대로 '리플러' 노릇 못해드려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