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쭘시-초-1605-09] 벌레스크* 처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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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시-초-1605-09] 벌레스크* 처형식 / 시앙보르
어항 속에서
물풀에 홀렸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익사 당한 초록 금붕어, 빨강도 파랑도 아닌
금서 禁書 에 숨막혀 죽은 진시황릉에서
아우성 치는 말발굽을 들었다
톰아저씨 오두막은 알박기를 했다는 이유로,
분노의 포도는 오염된 포도주를 제조했다는 이유로,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사춘기들을 들쑤셨다는 이유로,
틴들의 영역본 성서는 잡것들이 귀한 경전을 읽었다는 이유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경비원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바람을 피워댔다는 이유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동부전선을 깔봤다는 이유로,
악마의 시는 악마 따위가 시를 끼적였다는 이유로,
보바리 부인의 사랑은 바바리 코트를 뭉갰다는 이유로,
1984는 19세와 84세의 늙은 사랑을 그렸다는 이유로,
노트르담의 꼽추는 장애우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열하일기는 중국풍으로 일기를 썼다는 이유로,
전환시대의 논리는 니가 뭔데 전환을 시키냐는 이유로,
태백산맥은 태백시를 노골적으로 밀어줬다는 이유로,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젓가락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몽실 언니는 유아교사 자격증도 없이 아기를 돌봤다는 이유로,
아기공룡 둘리는 어린 공룡을 무임금 착취했다는 이유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웃집의 주거안정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였다는 이유로,
물 한 입 뻥긋하지 못했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제대로 살지 못하니 더 죽어야 할 목숨이다
* 벌레스크 : 귀한 정신을 야비하게 표현하는 정신, 댄스, 쇼,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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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에 '금서의역사'를 읽을 때, 살아남은 자의 치욕, 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잘 살려고 어항 속에서 벙긋댄다. 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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