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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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민들레 / 조미자
이제는 짐을 줄여야 할 나이
날아갈 듯 가벼워야 하리라
버릴 것 찾아 창고를 뒤지다 마주친
전기밥솥, 점잖게 앉아 있다
보름달처럼 둥실한 몸통에 앉은 키도 의젓한 십인 용
그만은 해야 두 애들 도시락에 남은 식구 점심이 되었지
오로지 취사와 보온에만 속을 달구던 것이
쥐 빛 머리 위로 먼지가 뽀얗다
저녁에 쌀 씻어 앉혀 놓고
새벽에 단추만 살짝 눌러 주면
밥물 넘을 걱정 없이 단잠 한숨 더 재워 주고
추운 겨울 따시게 밥 품어 주던
저것이 언제 창고로 밀려 났더라?
쌀도 웬만한 열로는 응어리가 안 풀려
압력으로 암팡지게 열을 올려야
찰진 밥이 되는 세상에서
찰기 없는 밥 품고만 있던 어느 날
날벼락 맞듯 창고로 밀려 났으리라
오늘도 청암 양로원 담장 밑엔
나란히 나부끼는 하얀 민들레들
<문학세계>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꽃보다 아름다운 그대>,
<길이 되어 누워보니>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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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지나간 세월을 말함에 있어서
그 '진술' (시적 구성)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점이 좋다
- 요즘의 詩流처럼 <언어비틀기>로 일관하는 것에 비한다면
시인이 제시하는 '시적 공간' 또는 '詩語'가
안겨다 주는 고요한 회상(回想)이 '전기밥솥'을 통하여,
그 어떤 잔잔한 관조(觀照)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무리없이 잘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
한때는 정겨운 식구들의 체온이 자리했던, '전기밥솥'
요즘의 성급한 '압력밥솥'에선 찾을 길 없는,
따스한 보온(保溫)의 정겨웠던 옛 시절
세월이 흐른 후에, 이제 그것은
다만 고운 추억의 이름으로 창고에 자리한다
마치, 양로원 담장 밑에서
덧없는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처럼...
生에 대한 시인의 꾸밈없는 자각(自覺) 혹은, 자세 및
시인 자신까지를 포함한 사물에 대한 깊은 면을
읽게 해주는 정갈한 詩 한 편이란 생각이다
- 희선,
댓글목록
핑크샤워님의 댓글

시인님, 간만에 뵙니다..이제 선거도 끝났고 시간적 여유가 다시 생겨나서 틈나는 대로 들러 읽고 쓰고 보고 하면서 그 동안 귀에 찌든 세상 목소리 깨끗이 정화나 할려구요, 늘 건강하세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영영, 이곳을 떠나신 줄 알았다는
다시 뵈오니 반가운 마음,, (비록 그간에 저는 한쪽 눈이 속절없이 돌아가셨지만)
- 이게 모두, 꽃맘님의 무심함 때문... (참, 별 걸 다 딴지 건다는 - 샤워님의 한 말씀)
각설하고
공사다망하시겠지만, 가끔 이쁜 꽃 올려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