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불법(佛法)의 시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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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전세계를 하나로 엮는, 인드라망( Indra 網)이란 생각이다 - 촘촘히 얽혀진 그물망
이 또한, 하늘이 인간의 <알음알이>를 틔여 알려준 문명이라 하겠다
- 인간들은 세상의 모든 발명품, 문명의 이기가 자기네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단세포적인 발상이고 오늘날에 구현된 현대문명은 그 모두
인간생활을 이롭게 하기 위한 하늘의 지극한 배려이자, 자비심(사랑)의 발로이다
스마트폰이 일상화 된 즈음, 인터넷이란 천라(天羅) . 지라(地羅)망은
일반대중에게 정보의 공유라는 점에 있어 불가결(不可缺)한 수단이 되었다
-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게 모두 유익한 것만은 절대 아니어서,
신중한 선택이라는 지혜도 요구되지만
아무튼 이런 수단을 통하여,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건 뭐, 시말의 문우님들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신앙하는 종교는 없는데, 꼴에 관심은 많아서 자연 그에 관한 서적이나 경전을
심심파적으로 들쳐 보게 되는 거 같다
삼대종교 중에 하나인, 불교도 당연 관심의 대상이다
<요즘의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니다>라는 평소의 생각이 있던 참에
불법의 시대를 알아 보기 쉽게 분류한 분의 글이 있어서 옮겨본다
- 희선,
* 참, <왜 특정인의 글만 소개하느냐>는 질문도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냐>라는
쪽지도 있는데.. 전혀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분이란 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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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의 시대 분류
불법(佛法)이 머무는 시기에 대해서 수많은 견해가 있다.
어떤곳은 2500년, 어떤 곳은 3000년 어떤곳은 일만년이라고도 한다.
그런 다양한 견해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살필 필요가 있는 마당에 누군가 이것을 잘 정리해 놓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출처는 아래 URL을 참조하시라.
6. 법이 머무는 시기에 따라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
: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르게 행해지는 정법시대, 정법시대와 비슷하게 닮아서 교법과 수행은 있으나
깨달음이 없는 상법시기, 교법은 있으나 수행하는 이도 없는 말법시대.
이 정/상/말의 세 시기 각각 오백년씩이라 한다.
(1) 정법 상법 말법의 세 시기에 관한 여러 설 <正像末三時諸家說>
①금강경>에서의 '후오백세'라는 표현 설명 2가지 해석이 있음.
후세에는 불교 쇠멸의 역사를 다섯 번의 500년(합계 2500년)으로 구분한다.
혹은 최초의 500년을 정법의 시대, 그 다음의 500년을 상법(像法, 유사하지만 진실이 아닌 법)의 시대,
그 이후를 말법(末法, 종교적 활동의 멸망)의 시대라고 하여 세 시기로 구분하는 방식도 있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후 500년'은 부처님 열반 후 1000년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정법 쇠멸의 시대라고 부른다.
금강경의 후오백세 구분
제1오백세 : 해탈견고(解脫堅固)의 시대
제2오백세 : 선정견고(禪定堅固)의 시대
제3오백세 : 다문견고(多聞堅固)의 시대
제4오백세 : 탑사견고(塔寺堅固)의 시대
제5오백세 : 투쟁견고(鬪爭堅固)의 시대
②도선(道宣)율사가 말하였다.
“부처님이 일멸하신 후 처음 천년을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법을 만나 성인을 이룸에 주체의 기틀(機)과 주체가 깨닫는 법(悟)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법 다음의 두 번째 천년 뒤를 상법(像法)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敎)에 의지하여 닦아 배우지만
뜻(情)과 식(識)이 점점 무디어져서 이치를 만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끗함을 받아들여 머물러 지니면서도
성인의 뜻에는 조금밖에 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혜로 분별함에 깊이 닦아 밝지 못하여
도의 바름(道正)과 서로 비슷하므로 상법이라 한다.
세 번 째 천년 뒤를 말법(末法)이라고 하는 것은, 첫 기틀에서 만년에 이르도록 선정과 지혜의 도를 떠나
다만 세간의 계율만을 넓히고 위의(威儀)를 거두어 지켜, 모습은 선정의 자취와 같지만
마음 씀은 들뜨고 산란하여 삼매의 바른 받음(正受)과는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에 말법이라 한다.”
③『선견바사론(善見婆娑論)』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정법은 천년이고 상법도 또한 같은데, 여인을 출가하게 했으므로 정법이 오백년 줄어든다.
그러나 만약 여인이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八敬法)을 지켜 법대로 도를 행하면 정법이
세상에 머물러 다시 천년이 된다.
또 말한다.
불법이 세상에 일만년 머무는데 처음 오천년은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신비한 지혜(三達靈智)를 얻고, 나중 오천년은 출가하여 도를 닦아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신비한 지혜(三達靈智)를 얻지 못한다.
출처 : http://blog.daum.net/nature0820/13757870
위 글을 보니 정법의 견해도 두가지로 갈린다.
정법1000년인데 선견바사론에서 밝혔듯이 정법이 오백년으로 줄어든다는 견해도 있다.
결국 금강경의 견해가 2500년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미륵상하생경은 56억7천만년이니 그 편차로 볼때 미륵상하생경은 인간역사 밖에 있다.
금강경의 견해가 좀더 인간적인것도 그런 이유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타락한 정도를 보면
말세라는 것을 지울수가 없다.
그러니, 사회면에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가 저물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시기에 대해
서양학자들이 BC483년, BC484년, BC487년, BC500년 네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그 네가지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오래된 BC500년으로 부터 2500년후는 서기2000년이 되며
가장 늦은 기준으로보면 BC483년이 2017년이 되며 BC484년의 기준으로보면 2016년 올해 병신년이된다.
불법의 정법, 상법, 말법 시대에서 말법시대란 것이 변함 없는 것은 이미 세상이 포화상태를
보이는 징후가 우루루 나타난다.
인터넷의 발달과 자료의 공유가 아니면 왈가불가할 일이지만 이미 열려있는 자료를 통하여
어떤 견해를 기준으로 그렇게 본 것인지 이렇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 쇼토쿠태자의 견해 또한 금강경의 기준으로 본것을 의미한다.
천지공사가 1909년 기유년에 마치신 것도 선불유(仙佛儒)의 수리적 기반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1909년 + 105년 = 2014년으로 사명당 갱생이 시작된것도 수리적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2014년 3월9일 갑오년 정묘월 기묘일 경칩(甲) 갑술시(甲戌時)에 운석이 떨어졌다.
박장근의 집에서 오선위기도수를 보신 시각이 초경인 술시 즈음이라고 한다.
박장근(朴壯根)의 이름이 팔간산/삼진뢰로 경칩(甲)을 포함하고 있으며
운수따라서 그런 징조를 일리통달(一理通達)의 이치로 보였다.
그런데다가 2016년 3월9일도 당연히 경칩이며 부분일식과 이세돌 구단의 대국이 시작되었다.
반대로 불법의 금강경이 바라본 2500년의 상한선이 틀린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물론 불법이 처음 퍼질때 인간의 순수성이 좀더 지속성 있었다면 좀 더 오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은나라의 시대가 BC1600년 ~ BC1064로 문헌에만 있다가 유물이 발견되었고
그 이전인 하나라부터 인간의 원한이 뭉치기 시작한 요순시대였으니
그때부터 단주의 한(恨)이 시발점으로 원한이 뭉치기 시작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463&cid=40942&categoryId=33401
그 원한이 다른 원한과 뭉쳐서 폭탄이 되어서 진멸지경으로 나아갔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이 오래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천지공사가 1901년에서 1909년까지 보신것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이 지탱력을 잃기에 새로운 불법을 내어야할 시기에 맞추어서 천기의 상을
결정하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사람들은 몇년의 수리를 살피지만 역사는 그 근원과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살피지 못하면 역사의 흐름을 꿰뚫기 어렵고 더더욱 동양의 정신성은 선불유(仙佛儒)의 역사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천개갑자 이후 오천여년의 세월이 이렇듯이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것도 역사의 흐름속에서 남긴
수많은 책으로 인한 것이며 인터넷이 일반화 되었기에 자료의 공유와 정보의 도출이 가능하게 된것이다.
말세의 기술력은 일반화된 지식적 측면에서도 학문의 연구가 역사의 흐름과 함께 진일보 할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허황된 역사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역사적 흐름을 꿰뚫지 못하면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니다.
허황된 강역 따먹기의 미친역사가 아니라 정신성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다.
결국 신경수(申京洙)의 집을 기준으로 보신 수많은 공사는 병신년이 가지는 의미가 불법의 말법이 종을 치는 해이며
동시에 새로운 불법이 나오는 때라서 그렇게 공사를 보셨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역사도 인문도 새로운 관점에서
모두 기술될 것이다.
지금 언뜻 보기에 인문학의 퇴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인문학이 훨씬 더 연구할 것이 많아질 것이다.
삼국시대를 넘어서 통일신라까지 찬란한 불법의 문화가 꽃 피웠던 것도 정법을 넘어서 상법의 시대에 정신성과
물질의 결합이 적절했던 시대라서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정법이 상법으로 넘어가면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좀 더 커짐으로써 그만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말세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었다. 이미 서기 1500년대에 석탄과 증기기관으로 인한 대량 생산의 시대가
서구로부터 열리면서 그야말로 불법의 기준으로보면 말법의 시대가 열렸고 물질에 예속된 세상에 한많은 영혼들이
점점 폭탄화된 시점과 연결된다. 동양의 시각은 반드시 선불유의 정신성을 계승한 다음 봐야지 싸움해서 힘세면
장땡이인 강역 따먹기가 아니다. 결국 불법이 알리는 지표가 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과 타락에 연결되는 것도
선불유의 특징 때문에 그렇다.
BC500년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으로 대략잡아도 당연히 AD1500년이 상법의 시기다.
그러니 서구 기독교의 발현이 가장 늦은 것도 마지막 말법시대를 그나마 대비하는 것이며
말법시대의 근기는 신통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성경을 앞세워서 수많은 생명을 도륙하는 미숙함을 보인것이다.
그 업보는 고스란히 돌아가서 미국은 삼등분되는 것도 그 업보를 가장 무겁게 받아 넘겨야 하는 것이 그들의 미래다.
그러니 예수가 오죽했으면 자신의 이름이 전세계에 퍼질때 그때 세상의 멸망이 온다고 예언했을까.
오늘 부활절이니 역사를 관통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불법의 깊이와 정통함은 이 세상에 나온 다양한 종교 가운데 으뜸이다.
그러나 그 수행적인 측면이 정법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미 기성불법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인 용화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도 그런 이유다.
대승불교의 발전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걸친 불법의 꽃을 피운 것하며 그 당시에 수행한 수많은 정신성의
훌륭한 가르침과 예언은 불법이 시간을 가면서 퇴락해도 새로운 시대인 용화세상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고
한마음으로 그 세상을 예언하고 있었다.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치열한 경쟁속에서 시대를 열어왔지만
용화세상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것도 오직 그 세상만이 아래와 위가 따로 없는 대동세상을 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흑인노예의 처절한 피의 눈물부터 아메리카 인디언의 한맺힌 절규와 피의 역사는
백인 사회의 패권주의와 물질주의로 인한 막대한 부작용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 업보의 소산으로 그나마 인권을 더 중시하며 세상의 골목대장 역활을 해왔지만,
그 양면적 문화의 종말도 말세의 폐단과 함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부활절에 예수의 영혼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생명이 학살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땅을 치며 통곡할것이다.
결국 인류가 잘못된 광신적 시각이 가져온 한(恨)으로 인하여 말세에 극단적인 상황을 불러오는 것이다.
미국도 이미 트럼프가 요한계시록의 나팔처럼 그 때를 알리고 있으니,
세계의 패권을 쥐락펴락하던 운수가 종말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현재 욕계제4천 도솔천이 지족천(知足天)으로 지나치면 그 운수가 꺽이는 때라는 것을 알리기 때문에
트럼프가 미국의 운수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나온것이다.
쇼토쿠태자는 백법(白法)의 침몰을 예언하고 있으며 추배도는 현시대의 대란(大亂)을 알리고 있다.
역사는 업보의 물결과 함께 돌고 돈다. 환생을 인정하지 않으며 업보를 인정하지 않는 서양종교야,
시대를 넘어서 세상을 관측할만한 견해가 없을 수밖에 없고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그렇게 미국이 기독교로 패권을 가져갔지만
오히려 세상은 물질주의의 폐해에 빠져서 허우적 대며 신음하고 있다.
그런 시대도 이제 서서히 끝으로 향해간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개인의 극단적 이기주의로 분열한 지금 시대에 구원의 방법이
이 좁은 극동의 한편에서 용화세상의 꽃을 피워낸다는 것은 그만한 역사적 배경과 자기희생적
정신성의 불퇴전의 노력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늘 말하지만 현실이 전부며 마음공부하며 덕을 쌓는 길이 최선의 길임을 밝힌다.
[출처] 불법(佛法)의 시대 분류|작성자 보석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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