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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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파는 상점 / 허영숙
봉지 속의 단단한 행성들
질량이 다른 햇살과 바람이 이룬 또 하나의 조용한 우주
행성의 씨눈을 열어보면 깃털 같은 흙의 질감
그 속에 산바람이 불고
햇살의 끄덩이를 잡고 돋아나는 촉이 보이네
촉을 열면 또 새로 돋는 마디, 마디 위의 꽃대
꽃대 위에 나비를 품고 앉은 꽃을 보네
나비를 품은 봄을 보네
또 다른 행성에서는 소금기 가득한 흙
파도를 딛고 조용히 다니러 온 안개를 읽네
안개의 살결을 열면 잎맥에 깃든 비린내,
비린내를 품고 피는 꽃
꽃잎에 고인 해풍
해풍에 날리는 눈발, 눈발들
행성들의 씨눈에는
아직 열어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우주가 압축되어 있네
자신의 주소로 멀리 날아가
압축을 풀며 새롭게 피어 날 푸른 우주가
봉지 속에 있네
궁금한 행성을 찾아 진열대를 살피다가
유치원 승합차에서 내리는
막 발아하는 새싹과 눈이 마주치네
낯익은 얼굴
우리 저 우주에서 본 적 있지?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等
2016 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금 대상자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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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및 생각>
그 언젠가, 시인에게는 일반인에 없는
시안詩眼이 있다는 말을 한 적 있다
- 이 말은 물론, 그 어떤 의식적 차별화를 뜻하는 건 아니고
다만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視角의 차이를 말함이겠다
꽃을 유난히 사랑하는 老母는 해마다 꽃씨들을 소중히 간직했는데,
그야말로 <엄마의 보물 제 1호>라고 할까
미루어 짐작컨데,
꽃씨가 간직한 생명의 힘(발아의 전율)을 사랑하셨음이리라
꽃씨, 하나 하나가 무한의 가능성을 품은 우주의 행성인 것을
나는 신앙하는 종교가 없지만, 이따금 성경이나 불경을
심심파적破寂으로 뒤적이곤 하는데...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를 보자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則一切多則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하나 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일지니
한 티끌 그 가운데 온 宇宙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었네
결국, 일체一切가 지니는 실상實相에는 본질적本質的으로 시간 및 공간의
한정적인 개념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세파에 찌든 우리들은 그 본질을 보기에 시선이 너무 혼탁해진 거 같다
그 같은 맑은 시선은 어린 아이들의 깨끗한 심상心象에나 깃들 수 있을 거란 생각
그런 걸 보면, 수십년 불도를 닦은 고승대덕의 마음은 곧 해맑은 아이의 마음
그 언젠가, 우리들이 해맑은 어린 아이였을 적에 지녔던 마음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까맣게 잊었지만...
" 궁금한 행성을 찾아 진열대를 살피다가
유치원 승합차에서 내리는
막 발아하는 새싹과 눈이 마주치네
낯익은 얼굴
우리 저 우주에서 본 적 있지? "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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