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환멸, 或은 죽음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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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환멸, 或은 죽음 후에 / 안희선
두려움이 없는 얼굴로
포획(捕獲)의 그물을 치던
창백한 본능의 욕구
아니 그것은 이미 종교,
아무도 그런 너를 탓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너는 투철한 생존의 상징으로
우리의 시대를 풍미(風靡)해 온 것을
그래,
죽음의 시간 후에 낡은 줄에 매달린
육신의 껍질을 보면
이따금 운 좋게
네가 지닌 환상적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볼 수 있다
제 알맹이를 스스로 파먹었던
표독스러운 노고(勞苦)를
그 환멸을
아, 정직한 배고픔은
어떤 죄악도 용서해 주는 섬뜩한 신앙
그리하여
세상은 참으로 하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멍텅구리 같이 은혜로운 것들도 있어서
쇠약한 영혼이 목을 매는 날에도 아침은 싱그럽고
저주받은 삶이 웅크린 어두운 숲 속에도
행복을 예감하는 새들은 지저귀고
심지어,
대낮에 제일 외로운 태양은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고
한밤에 가장 괴롭게 침묵하는 달까지도
메마른 가슴들로 하여금 시를 노래하게 하며
단 한 번의 악수에도 깊은 정(情)을 느끼는
바보 같은 마음들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들의 모습에서
완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렇다 하여 무작정 헐벗은 시간들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을...
둘러보면,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조차도
이 삭막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그렇게 고운 수의(壽依)를 입고
한 올의 실다란 연기가 되어
깊은 하늘과 포옹하는 걸
우린 매일 보니까
* 이건 어디까지나, 제 천박한 생각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사는 게 너무 즐겁다는 사람은 없을듯... 요
- 아, 물론 온갖 걸 누리고 사는 극소수의 비린내 나는 사람들은 그 명단에서 제외할까요?
돌아보면, 정치. 경제 . 사회 . 문화 . 종교 그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없어 보이고 - 제대로 돌아가기는 커녕, 더욱 더 망가지는 거 같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대의 그 어떤 산파역 産婆役도 담당 못하고 있단 느낌
(저 개인적으론,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문학이라는 입장이지만... 아무튼,)
물론, 저 같은 건 빼놓고.. 대다수의 시인들은 그래도 <견고한 어둠을 뚫고 싶다>는
지향 志向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렇게 <기도>라는 시어를 많이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던 <세상 한 끝이 환멸과 죽음으로 가차없이 떨어져 가고 있다> 해도,
눈을 감아도 볼 수 있는, 그 어떤 아름다운 소망은 기억하고 싶어지네요
Embrace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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